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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방송국 | BASE21 의 지나온 길
온라인을 대안미디어로 활용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사진, 이미지, 동영상, 글 등 모든 형태의 매체적 성격으로 구성될 수 있는 내용들을 디지털화를 통해 그대로, 때로는 변형하여 또는 통합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다. 진보적이라고 불리우거나 이 사회 소수세력일 수 밖에 없는 단위에게는 항상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은 어떠한 매체를 유통하는 데서 이 사회의 커다란 장벽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PC통신, 인터넷을 통하면 매우 경제적이면서도 기획에 따라 충분한 독자를 확보할 수 있고, 게다가 항상 매스미디어를 지탄하게 만드는 일방향성을 타파한 쌍방향적 소통까지 가능케 한다.
1996,97년도 노동법개악반대 총파업투쟁 당시 자발적으로 건설되었던 '총파업통신지원단'은 사이버 대안미디어의 시발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97 노동미디어 행사와 진보네트워크센터 건설 논의가 시작되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설립이 추진되는 가운데 변화되는 IT환경, 특히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과 멀티미디어환경의 도래에 대비할 필요성이 논의되었으며, 외국의 노동자TV(www.workingtv.com)나 프리스피치TV(www.freespeech.org) 같은 사례들도 소개되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추진위에서는 98년 9월, "서울 국제민중대회 총결산 및 실업자대행진"과 11월의 민중대회 실황을 인터넷 오디오로 생중계(real solution 이용) 하는 등 몇가지 실험적 작업을 시도했으며 다음해 7월경 인터넷방송사업 단위의 구축이 정식으로 제안되었다. 당시에는 취약한 여건과 불투명한 전망 가운데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 내의 작은 작업팀 형태로 인력과 장비를 갖추어 가기 시작했고, 99년 9월 "참세상방송국"이라는 이름으로 웹사이트를 열고 첫 시험방송(음악방송)을 내보냈다.
한편 참세상뉴스는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인터넷 사업 영역의 일환으로 사회운동 매체들의 KINDS화와 소외된 진영내 운동세력들을 위한 매체적 역할 수행을 목표로 역시 98년 11월부터 센터의 주요 컨텐츠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성장해왔다. 꾸준히 운동단체들의 매체를 조직화하고 보도 생산 역량을 키워가는데 집중하면서, 항상 운동진영의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 집산적 역할을 고민해온 관점에 참세상뉴스는 배치되어 있었다.
더불어 2000년 매향리 사건으로부터 많은 운동진영의 국제연대단위가 모여 백악관 및 미 국회의원 항의메시지 조직과 사건 진상을 해외로 알리기 위한 역할을 수행해나가기 시작하면서 진보적이면서도 국제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대안미디어를 고민하게 되었다.
이에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인권운동사랑방, 민주노총, 환경연합, 녹색연합,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성공회대 아시아정보센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의 국제연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진보적 영문미디어 생산을 결의하게 되었고, 2001년 5월 영문미디어 BASE21(http://base21.org)이 오픈하였다.
이렇게 필요성에 의해 센터내에서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시작한 미디어단위들은 애매한 조직에서의 위상과 중복성에 일정정도 동감하면서 2002년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통합 초기 단계로 구체적인 운영방식에 있어서 명확한 체계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리라고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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