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6년|7월|특집] 최저임금, 무엇을 위한 최저인가?

얼마면 되는걸까? 그게 최저임금이나 화폐의 형태든 현물의 형태든 간에 도대체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이란 무엇일까? 얼마전 있었던 국회 환경노동위의 국정감사에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인 가족이 한달 생활하려면 상식적으로 얼마나 벌어야하는지 장관 개인견해를 듣고 싶다”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질문에 ‘400만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이정미 의원의 ‘상식’과 장관의 ‘상식’은 3인 가족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을 그리면서 만들어진 것일까 궁금했다.

무엇을 위한 최저임금인가?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기 시작할 때, 그리고 총선 등의 주요 선거 공약을 만들때 마다 현재 최저임금인 시간당 임금이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최저임금이 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노동자 평균 임금의 절반은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시급이 아니라 주급을 기준으로 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에는 임금의 상대적 차이와 격차를 줄이기 위한 일환으로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민간 대기업 임직원은 최저임금의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 이상의 임금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소위 ‘최고임금법’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매년 쟁점은 몇 퍼센트를 인상하느냐로 모아진다. 뭐, 사실 너무나도 적은 임금이고 사실 이 조차도 받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다만 얼마만큼의 인상이라도 실제 작동이 가능한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일인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비력이 삶의 질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급 얼마’로 결정되는 노동자의 삶이란 참으로 얄팍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최저임금의 기준이 되는 것은 매년 최저임금위원회가 산정하는 ‘미혼 단신 근로자의 생계비’로 2015년 실태조사 결과인 1백67만3,803원이 최저임금위원회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최저임금이 가구 소득의 전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 다수의 노동자들을 감안할 때 이 기준점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제시하고 있던 최저생계비의 4인 가구 소득(2015년 1,668,329원) 에 비해서도 적은 최저 임금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했다.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

한편, 보건복지부는 2016년 1월부터 최저생계비라는 용어를 없애고 상대빈곤 측정의 기준인 ‘중위소득’을 각종 사회복지 사업의 기준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즉 발표되는 중위소득의 50%미만인 경우를 빈곤층으로 정의하는 국제적 기준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중위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경우를 중산층 150%를 초과하면 상류층으로 구분을 할 수 있다. 기존의 최저생계비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2조6항에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민의 소득, 지출 수준과 수급권자의 생활 실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2000년부터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최저생계비를 발표 할 때마다 최저생계비의 정의, 계측방법, 수준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무엇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또한, 빈곤선을 정하는데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절대’ 빈곤의 개념으로 규정할 것인지, 아니면 나머지 시민들과의 관계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지 않을 상대적 빈곤개념으로 규정할 것인지가 커다란 쟁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위소득의 도입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상대 빈곤을 정책적 개념에 도입했
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는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 2016년 기준 중위소득은 1인 가구 1,624,831원, 2인 가구 2,766,603원, 3인 가구 3,579,019원, 4인 가구 4,391,434원이다. 현재 최저임금으로 주 40시간 근무한다고 할 경우 월급은 126만원 정도가 되는데 이는 2인 가구만 되어도 상대적 빈곤층에 속하게 되는 임금이다.

건강한 생활을 위한 소득 : 영국의 예

1차적으로 드러나는 금액의 차이 이외에 근본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라는 기준이다. 이러한‘기준’에 대한 고민은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러한 개념 중 하날 2000년 영국의 모리스(Morris)가 제안한 건강생활을 위한 최저소득(Minimum Income for Healthy Living)이 있다. 이는 영국사회에서 바람직한 최소 소득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건의료에 있어 필요(needs)를 충족시킬 수 있는 소득수준에 대한 근거자료가 없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연구진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국가적인 주요 관심 대상인 싱글 남성을 대상으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소득을 산정하려고 하였다. 많은 연구에서 성인 건강을 위한 영양, 신체활동, 사회관계 등에 관한 찾아낸 근거들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는 개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객관적인 기본사항을 이용하여 공공보건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저의 소득을 추정하였다.

이 연구는 먼저 영국에 거주하는 18세에서 30세 사이의 건강하고 싱글인 남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최소한의 비용을 산정하였다. 식품은 서베이 조사 (측정조사)를 직접 사용하였고, 운동비용 등은 비싸지 않은 가격을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된 설문지를 이용하였다. 주거를 포함한 대부분의 다른 항목들은 국가 Family Expenditure Survey (가족 경비 지출조사)를 이용하였다.



연구 결과 일주일을 기준으로 하여 건강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소비용은 £131.86파운드로 나왔다(1999년 영국 4월 기준, 약 20만 원). 전체 비용 중에 주거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 정도 되었고, 따라서 거주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가정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웨일즈(Wales)에 거주하는 젊은 남성은 값싼 슈퍼마켓에 접근 할 수 있지만 운동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어서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주일에 약£106.47파운드 (약 16만 원)이 필요한 반면, 런던에 거주하는 남성은 더 많은 헬스장에 접근할 수 있고 더 자주 외부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 £163파운드 (약 24만원) 이하로 소비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자세한 항목별 비용은 위의 표 1과 같다.

건강생활을 위한 소득 : 한국의 예

한국에서도 2009년 일부 연구자들이 이러한 개념을 도입하여 1인 가구의 건강생활 최저생계비를 계산한 바 있다 (김명희 외, 2009). 조세와 사회보장 분담금의 비소비 지출에 적용하는 총소득액의 차이를 감안하여 1안과 2안으로 제시를 한 결과 2,026,880원∼2,591,664원이었으며, 이를 기준으로 추정한 최저 임금은 주 40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시급 9,698원~12,400원 이었다.

이 연구에서는 건강을 위한 비용으로 보건의료비, 보건위생비, 건강행위비와 사회 참여비를 포함하였다. 보건의료비는 구강보건, 건강검진 부담금과 의료이용비용을 포함하며, 보건위생비에는 안경, 생리대 등의 보건의료용품 비용과 비누, 샴푸, 손톱깍기, 면도기, 목욕비 등의 개인 위생 관련 비용이 포함되었다. 건강 행위에는 흡연과 음주를 제외한 운동 비용을 포함하였다. 특히 이 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은 사회 참여비인데, 여기에는 경조비, 교제비, 각종회비, 친지방문비, 자녀용돈, 부모님 용돈, 손님 접대 비용 등을 포함하였다. 기본적인 사회 생활을 건강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본 것이다. 한편, 이 연구의 연구진은 이러한 양적인 평가 이외에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으로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가구들을 대상으로 한 질적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그 보고서에서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여섯 응답자는 공통적으로 기본적인 의식주 충족을 넘어서 적당한 문화생활과 사회적 관계를 지적하였다.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빈곤에서 벗어나거나, 노후를 준비하거나, 혹은 다음 세대에게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동물적 '생존'을 위한 비용과 인간적 '생활'을 위한 비용이 함께 고려되어 야 하며,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실제로 다양한 건강 자원과 사회적 기회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역진적인 경우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중식이 제공되는 중산층 가구는 점심 식사를 위한 식비도 더 적게 쓸 수 있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편의를 활용해 할인카드로 영화를 감상 할 수 있는데 비해 빈곤층은 이런 편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한편, 연구진은 건강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득도 중요하지만 노동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산층의 운동 실천율이 높은 것은 지역 사회에서 자원의 가용성과 노동시간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즉, 화폐로 대표되는 물적 조건 이외에도 괜찮은 일자리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편익, 지역사회 자원에의 접근도, 건강 생활이 가능한 노동 시간 등 다양한 사회적 자원의 분포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요(need)’에 기반한 최저임금 논의로의 변화

사실, 상대빈곤선에 준하는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정하고 있고 이 조차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은 한국에서, 물적 조건을 넘어서 ‘필요’를 구성하는 방식과 틀을 고민하자는 제안은 너무 이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의 장기적 비전을 마련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또는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따라 ‘도달 가능한 최고의 건강수준을 향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건강생활을 위한 최저소득에는 이미 사회 참여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고, 육체적 건강이외에도 정신적·사회적 안녕이 ‘건강의 정의’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 ‘필요’의 재구성을 시도해야 한다.

특히 이러한 ‘필요’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당사자 의견 청취와 구체적인 태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비물질적 자원의 활용 가능성과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에서의 필요를 감안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생존이 아닌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이 가능한 권리를 위한 첫발을 내딛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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