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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홈리스와 노동Ⅰ] 노가다 판 홈리스

[홈리스와 노동]은 노동을 중심으로 본 홈리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꼭지

“저 사람들은 왜 일을 안 해? 노가다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지.” 거리를 배회하는 홈리스를 가리켜 한 번쯤 해보고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일 안하고 먹고 놀기 때문에 홈리스가 된다는 편향된 시선은 그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육체적 노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노가다는 홈리스들이 접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동으로, 실제 많은 홈리스들이 일명 ‘노가다 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가다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 하찮은 노동이라는 막일의 잘못된 말로 ‘건설일용노동’을 뜻한다. 건설일용노동자는 기업이나 업체에 정식 소속된 노동자가 아닌 인력소개소나 지인을 통해 건설현장에 하루 단위로 고용되는 노동자다. 건설일용노동현장은 다른 노동현장이나 일자리에 비해 자격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임금을 일당으로 받을 수 있어 맞닥뜨린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홈리스가 쉽게 접근 가능한 노동현장이다.

인력소개소는 건설현장과 일용노동자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건설현장과 계약을 맺고 소개소에 찾아오는 일용노동자를 현장과 연결시킨다. 소개소를 통해 현장에 나가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보통 오전 7~8시, 당일 현장노동이 끝나면 받은 임금의 10%를 소개소로 떼어줘야 한다. 현행법상 소개소는 일용노동자로부터 최대 4%의 수수료, 건설현장으로부터 10%의 소개비를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건설현장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소개비 10%는 서면 상의 합의 시 임금에서 떼는 것이 가능하다.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소개비 10%에는 이 같은 꼼수가 숨어있다. 새벽 일찍 출근, 늦은 저녁 퇴근해 받는 일당은 평균 8~10만원이다. 여기에 소개비와 기타경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일당은 7~9만원 정도다.

건설일용노동은 접근이 수월하고 임금을 일당으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그 이면에 다양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경기 영향을 많이 받으며, 대부분 외부에 위치한 건설노동현장은 비나 바람, 눈 등의 기후의 영향 또한 많이 받는다. 특히 동절기에 일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만큼 힘들다. 오늘 일을 했다 해도 불확실한 내일의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건설일용노동자들에게는 노동법 적용 역시 불안정하다. 현장에서 계약서를 작성하지만 실제 자신을 고용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현장도 적지 않다. 건설일용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은 2004년 의무법제화 돼 최근 18개월 이내 180일 이상, 실업급여신청 이전 1개월 동안 10일 미만으로 건설일용노동을 했을 경우 실업급여 자격조건이 된다. 하지만 실제 조건을 충족함에도 업체에서 고용보험을 신고하지 않아 실업급여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산재보험 역시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일을 하던 중 다치게 되어도 치료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노동과정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닌 업체 사무실 청소를 시키고 더 힘이 드는 일들을 일용노동자들에게 지시한다. 때로는 일반공 일당으로 계약하고 숙련·기술이 필요한 작업을 지시하기도 한다. 이 경우 작업반장이나 관리자에게 기능공 일당을 달라는 요청을 해야 하지만 고용관계에서 완전한 을의 위치에 있는 건설일용노동자는 일이 끊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묵묵히 일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몇 달을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정액의 임금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이나 관할고용노동관서에 진정・고소 등의 방법을 택해야 하지만 이는 복잡한 절차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사업주가 해당 일용노동자에 대한 신고나 등록을 안했을 경우, 입증의 책임이 노동자에게 주어져 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일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건설일용노동이 다른 노동현장에 비해 접근성이 덜 까다롭긴 하지만, 일하는 데 있어 필요한 조건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안전교육필증을 수령해야 한다. 특정 조건에 해당하며 지원기관을 알고 있다면 안전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홈리스는 돈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에 지레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더욱이 안전화 같은 장비는 건설현장에서 제공해야 함에도 그렇지 않는 현장이 많다. 때문에 안전화를 지참하지 않고 소개소에서 나가면 일명 대마찌(퇴짜) 맞기 일쑤다. 많은 홈리스들이 실제 안전화를 구하지 못해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당장 한 끼 식비도 없는 홈리스가 몇 만원이나 되는 안전화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안전화가 있더라도 행색이 남루하다는 이유로 대마찌를 맞는 경우도 많다.

운이 좋아 현장에 나가게 되더라도 꾸준히 일을 하는 것은 힘들다. 건설현장의 강한 노동 강도는 일이 끝난 후 재충전할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제대로 된 주거지가 없는 홈리스의 경우 이 같은 재충전이 힘들기 때문이다. 일정 기간 임금을 모아 방을 구한다 해도 다시 거리 생활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렇듯 노가다 판은 홈리스가 쉽게 접근 가능한 노동시장이면서 동시에 접근 제한이 많은 시장이기도 하다. 홈리스를 대상으로 하는 노동권 교육・보장 및 안전장비 문제의 해결 그리고 안정적인 재충전 공간 마련을 위한 주거 및 복지정책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현재와 같은 빈곤감옥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Tip. 건설근로자퇴직공제금

- 건설일용노동자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1998년부터 실시. 일정요건을 충족하는 건설현장은 해당 일용노동자의 퇴직공제금 1일 약 4,000원을 공제회에 적립
- 누적 일수 252일이 되었을 때 퇴직공제금 수령가능. 단, 퇴직공제금이기 때문에 만 60세 이전 수령 시 다시는 건설일용근로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 합의 하에 수령가능
- 수령 및 근로일수 확인방법: (서울지부)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0길 15, 4층 방문확인 및 건설근로자공제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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