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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기고] 꿈꾸는 삶을 살고픈 사람들

[기고]

이 글은 빈활에 참여한 대학생의 기고 글 입니다.

빈활은 '빈곤철폐현장활동'의 줄임말로 올해는 ‘2016 빈곤STOP 프로젝트’로 기획되었습니다. 6월 23일부터 30일까지 노점상, 상가 임차인, 철거민, 홈리스 투쟁 당사자와 대학생이 함께 권리찾기 직접행동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홈리스. 그들은 집이 없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 모두를 포함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그들에게 상처가 될까 그들을 마주할 용기조차 내기가 어려웠다. 그들을 무시하면서 사는 것이 어쩌면 내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부정할 수 없는 존재였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사람이 산다' 다큐멘터리에는 주인공 일수 씨가 등장한다. 일수 씨는 기초생활수급대상으로 선정된 부모님 밑에서 어린 시절을 쪽방촌에서 보냈다. 쪽방촌은 방을 나누고 나눠서 몸 한 칸 누이면 끝인 0.5~1평의 쪽방들로 이루어진 곳을 말한다. 그 곳에서 자란 일수 씨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은 그가 마음 편히 꿈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양의무제로 인해 그가 일을 하게 되면 부모님이 수급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가 일을 해서 버는 돈으로 전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그는 제대로 된 직업조차 가지지 못한 채 결혼을 할 때까지 쪽방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는 기초생활수급비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쪽방촌 사람들은 대부분 병들어 있었고 고독사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일수 씨도 병을 피해갈 수 없었다. 결핵과 당뇨가 심해진 그는 딸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이 멀게 된다. 귀여운 딸의 얼굴을 그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왜 세상은 힘든 이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걸까.

그의 순수했던 꿈을 세상은 좌절시켰지만, 그래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쪽방촌에서 만난 아내를 사랑했고 희망을 잃지 않고 쪽방촌 사람들과 즐겁게 웃으며 지냈다. 나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꿈이 없었고, 남을 사랑하기보다는 의심하기를 먼저 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지만, 나는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했지만, 나는 나를 먼저 생각했다. 그에게는 그를 믿어주는 쪽방촌 사람들과 가족이 있었지만, 남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나에게 남은 것은 많지 않았다. 그를 동정할 줄 알았던 나는 오히려 그를 통해 더 많이 배웠고 감동받았다.

우리는 동자동과 남대문로 5가의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남대문로 5가의 쪽방촌은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인해 내년 1월부터 착공 예정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렇게 되면 쪽방촌의 쪽방 주민들은 이 곳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게 된다. 그들 최후의 보루였던 쪽방촌을 떠나게 된다면 그들이 있을 곳은 서울 어디에 있을까. 나와 인터뷰를 하였던 공 씨 선생님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재개발을 하겠다는 말도, 어떤 보상을 해준다는 말도, 그에 관련된 어떠한 말도 구청에서는 쪽방 주민들에게 하지 않았다. 그저 쪽방촌 주민들 사이의 소문을 들으면서, 옆 건물의 사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은 온 몸으로 두려움을 느낄 뿐이었다. 당장 내년 1월에 재개발 계획이 있으면서 그에 대해 지역 주민들에게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서울시에서는 쪽방촌 주민들의 주거권을, 생존권을 끝까지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서울에 계속 살 수 있도록, 길거리에 내몰리지 않도록, 조치를 어서 빨리 마련해야할 것이다.

쪽방에 살 형편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곳. 그곳은 거리이다.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었고, 그들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거리에 나온 그들을 보며 개인의 ‘노오력’이 부족해서, 삶의 의지가 없어서 홈리스가 된 것이라며 한심하게 바라볼 지도 모른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빈곤 활동을 하며 서울역에서 홈리스 분들을 지켜본 결과 그들은 세상에 치여 몸과 마음이 약해지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집이 있었고, 일이 있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2003년 카드대란이 일어나면서 그들은 일을 잃었고, 돈을 잃었다. 그러나 한 순간 빚더미에 앉은 그들을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남은 것 하나 없는 그들에게 대포폰, 대포통장을 사게 해 그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애버리는 이들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적당히 살다가 적당히 가고 싶어했다. 삶의 희망을 찾기에 그들은 살아오면서 너무도 많은 상처를 받아왔다.

도시의 미관을 위해 그들을 몰아내자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지하철역에서도 쫓겨났고, 서울역 대합실에서도 쫓겨났다. 거리에서조차 돌아다니는 경찰 때문에 그들은 눈치를 보았다. 갈 곳 없는 그들을 어떻게든 사람들은 쫓아내려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활동을 하면서 울컥했던 순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들을 잊은 채 내 일상을 살고 있다.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조차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무엇이 정의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그 어느 것도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이면이 숨겨져 있을 수 있기에, 또한 그것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기에 어떠한 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최소한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못 본 척 피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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