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세력화에 먹이 준 언론…이제 노조가 역할할 때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 주로 전문가에 의해 이뤄져… 당사자 비정규직 목소리 드러나야”


“능력주의와 공정성 담론을 이야기할 때 정규직들을 중심으로 말하고 분석하는 것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당당하게 권리를 외치면서 자부심을 드러내는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 더 필요하다. 왜 우리의 투쟁이 정당한지, 왜 우리가 나가는지 언어로 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능력주의와 공정성 담론에서 비정규직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동안 능력주의와 공정성 담론은 젊은 공공기관 정규직들의 주장과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에 대한 분석에 그 논의가 집중돼 있어 당사자인 비정규직의 입장은 평면적으로만 다뤄지기 일쑤였다. 특히 언론은 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다루고, 이에 대항하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전문가의 의견만을 차용함으로써 비정규직을 더욱 소외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철폐연대)는 23일 오후 온라인 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능력주의와 공정성 담론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발제문은 18명의 비정규직 노조활동가를 설문 조사한 답변을 기초해 작성됐다.

발제를 맡은 김혜진 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공정성 담론’을 지식인들의 비판을 넘어서 비정규직 주체들의 세력화와 자기 투쟁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산하면서 돌파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공정성담론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노동자들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야 하고 이 노동자들이 세력화하여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이러한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기업과 싸우는 것이고, 노동자들을 분할하는 정부와 싸우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도 했다. 능력주의를 뛰어넘을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고 했다. 이를 뒷받침할 몇몇 사례도 제시됐다.

김 씨는 “영화산업의 경우 ‘능력을 키워서 감독이 되면 된다’던 흐름이 있었지만 이제는 ‘영화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으로 나아간 영화산업노조가 있다. 이렇게 조직이 시작되면 노동자들도 능력을 키우기 위해 경쟁하기보다는(이 때의 능력에는 윗 사람에게 아부하는 능력 등이 포함된다) 함께 변화하기를 택할 수 있다. ‘공정성 담론’을 ‘공공성 담론’으로 되받아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도 있다. 민간위탁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의 접근인 것이다”라며 “MZ세대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사측과의 투쟁을 선택한 네이버 노동자들은 사측에게 ‘투명한 의사소통’을 요구하고 다른 IT 노동자들을 함께 조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해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험을 묶고 발전시켜 대안담론과 대안세력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울어진 언론에 기대하기보다 능력주의가 팽배한 이 시기 노동조합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동조합을 단일한 공동체로 상정해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의 가능성’에 매달리기보다는 대안을 마련하고 그에 동의하는 주체를 새롭게 모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언론은 공정성을 중요한 가치처럼 보도하며 비정규직 권리 찾기 투쟁에 반대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세력화에 정당성을 부여해왔다. 정부나 자본, 기관은 정규직의 주장을 핑계삼아 경쟁 채용과 자회사 등을 관철시켰다.

김 씨는 “이전까지 비정규직은 왜곡된 고용형태라는 생각도 강했고, 이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은 그 자체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 논리가 공정성과 만나 이데올로기적 정당성마저 획득하려 하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축되고 있다”라며 “하지만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들은 능력주의가 ‘권리를 훼손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임을 직시하고 있다. ‘정규직보다 내가 낫다’ ‘정규직과 비교해 나는 이 정도를 받아야 한다’가 아니라 ‘그 누구의 권리도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이는 능력주의 자체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판만으로는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세력화를 통해 주체로 서야 그 목소리가 힘을 받게 되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세력화의 주체로 서기 위해서라도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중요하고, 왜 ‘모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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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능력주의와 공정성 담론을 이야기할 때 정규직들을 중심으로 말하고 분석하는 것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당당하게 권리를 외치면서 자부심을 드러내는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 더 필요하다. 왜 우리의 투쟁이 정당한지, 왜 우리가 나가는지 언어로 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이어 “비판만으로는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세력화를 통해 주체로 서야 그 목소리가 힘을 받게 되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세력화의 주체로 서기 위해서라도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중요하고, 왜 ‘모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