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위원회, 후퇴한 중대재해법 취지 다시 살려야”

산재·시민재해 유가족들,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 촉구

10일 열리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규제심사를 앞두고 산재·시민재해 유가족들이 모여 법 제정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을 전체 종사자 및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재해예방을 위한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시가 필요하다고 요구사항을 밝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제정을 촉구했다. 산재·시민재해 유가족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에 힘써온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발언에 나섰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노동자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씨는 “며칠 전 용균이 일곱번째 재판이 있었다”라며 “증인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원청의 지시가 없이 하청직원이 멋대로 일하다 사고가 난 거라고 책임을 회피했고, 원청 사장은 사고의 위험을 몰랐다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28년 만에 통과시킨 산안법은 누더기가 됐고, 절박한 심정으로 시민과 노동자를 살리고자 만들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반쪽짜리 법이 되어 본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라며 “규제개혁심의위원회가 국민의 목숨을 기업의 이익과 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제 역할을 해야한다”라고 강조했다.

tvn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씨는 “저희 유가족은 다시는 우리와 같이 가족을 잃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단식농성을 비롯하여 노동자와 시민사회와 함께 투쟁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온 힘을 쏟았다”라며 “그런데 정부의 시행령안은 법 취지를 더 후퇴시켜 기업과 기업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독소 조항과 규제 조항을 만들어 법의 실효성을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 씨는 “규제개혁위원회는 기업과 기업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내용들, 즉 ‘장시간 노동과 과로, 일터 괴롭힘으로 인한 사망, 직업성 질병 범위의 과도한 축소, 2인 1조 작업등 핵심 안전조치 누락, 안전보건 관리의 외주화, 중대시민재해 적용대상인 공중 이용시설 범위와 원료·제조물 범위의 협소한 규정 등’ 독소 조항과 규제 조항을 없애고 법 취지를 살리는 시행령이 되도록 심의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조순미 씨는 “지난 8월 31일은 가습기살균제참사가 국민들에게 알려진 10주기 였는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그 이전에 제정됐다면 시민재해,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으로는 시민재해의 원인이 되고 있는 원료, 제조물에 대한 관리와 책임, 특히 사업주 및 담당책임자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라고 지적하며 정부의 시행령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윤근 직업성⋅환경성암 119 대표는 정부 시행령이 직업병의 범위를 급성중독 24개 항목으로, 과도하게 축소한 점을 지적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정한 직업병 판단 기준에 객관성과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유럽국가를 기준으로 보면 산재 사망의 97% 이상을 직업병이 차지할 정도로 직업병 문제는 산업재해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라며 “직업병의 범주를 축소하는 조치는 산재 사망을 줄이고자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 결국 특정 기준으로만 한정된 직업병의 범주는 직업병의 심각성과 과학적 기준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수정 보완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규제개혁은 규제완화와 동의어가 아니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이 걸린 일이다. 오늘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는 후퇴된 시행령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취지를 살리는 자리가 되어야 하며, 기업이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제대로 편성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하고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가 제대로 시행돼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전날에도 지하철 환풍구에서 20대 노동자가 작업 중 추락해 사망하는 등 산재 사망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7월 입법예고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안은 과도한 직업성 질병 범위 축소, 산재 사망 예방을 위한 핵심 안전조치 누락, 안전보건 관리 외주화 등 초기 입법 취지와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채워져 법 제정을 촉구한 이들의 비판을 들어왔다. 이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 시행령에 반발해, 시행령안의 문제점을 지적한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의견서엔 시민 1,180명이 동의했다. 한편, 경총을 비롯한 재계도 정부 시행령이 사업 관리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며 지난 23일 경제계 공동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고 보완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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