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수집, 시급 375원의 노동

워커스 20호 위클리매드코리아

“홈리스들은 어떻게 먹고사나?”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거리에서 매일 먹고 자는 사람이 무슨 돈이 필요할까 싶다가도, 담배 피우고, 술도 마시는 거 보면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럼 언제 어떻게 일을 하나? 저렇게 맨날 술만 먹고 씻지도 않고 도대체 일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는데 돈은 어디서 나나? 상상하기 어렵다. ‘벌어먹고 사는 존재’로서의 홈리스라니…. 가끔 폐지를 밖에 두면 언제 없어졌나 싶게 누군가 가져간다. 작은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모으고 다니는 노인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위클리매드코리아’에서는 3명의 홈리스 노동팀 활동가가 홈리스와 노인들의 대표 일거리인 폐지 수집에 나섰다.


밤 11시
누군가는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들 시간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고단한 하루를 달래기 위해 친구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잔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선택한 이유는 사람이 없는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모을 폐지를 고물상이 문 여는 새벽 5시에 맞춰 팔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라는 계산에 있었다.
폐지 수집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가 없다. 사전적 의미로 ‘쓰고 버린 종이’를 뜻하는 폐지와 ‘거두어 모음’을 뜻하는 수집을 합쳐 부른다. 물론 폐지 수집의 폐지에는 쓰고 버린 종이뿐 아니라 고철 등의 재활용 원자재까지 포함되니 조금 더 넓게 ‘쓰고 버린 종이 등을 거두어 모으는 행위’를 통칭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생각보다 빛이 많은 밤
폐지 수집 초보인 우리는 평소 친분이 있던 아저씨의 조언을 통해 폐지 수집 경로를 짰다. 과거 그분이 돌았던 경로로 종각역 일대를 돌기로 했다. 목표는 1미터가 조금 넘는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채우는 것. 이 정도를 채우는 데 얼마큼의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 그리고 과연 얼마를 받을지 궁금했다.
밤 11시, 도시의 수많은 네온이 달빛을 상쇄시킬 만큼 무수하지만 ‘저녁은 어둡다’라는 학습과 경험적 근거에서 그 시간의 밝기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종각역에서 리어카를 펼치고 폐지 수집을 시작했다. 조계사 방향으로 걷는데 특히나 유리로 된 건물이 많은 종로 거리는 너무 밝았다. 마치 극 무대의 주인공이 된 것같이 모든 빛이 리어카를 끌고 있는 우리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인위적인 빛뿐만 아니라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주변 사람들의 눈빛이 더 강렬한 핀 조명처럼 느껴졌다.
폐지를 하나 줍기도 전에 리어카를 끌고 있는 내 모습이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비춰질까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겁이 났던 모양이다. 내가 느끼는 무게와 달리 그들의 시선은 한참 가벼웠을지도 모르겠다.

동료들
경로를 알려 준 아저씨의 확신과는 다르게 폐지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조금 실망하던 중에 첫 박스를 발견했다. 첫 수집이다. 박스를 주워 잘 펴서 리어카 위에 얹었다. 그렇게 조계사 앞을 지나 인사동 초입에 도달하니 박스가 꽤 모였다. 그런데 조계사를 지나며 고민이 하나 생겼다. 폐지 수집을 시작하며 걱정했던 부분 중 하나인데, 우리가 걷고 있던 도로 건너편에서 실제 생계를 위해 폐지를 수집하는 동료를 본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내가 줍는 종이 박스 하나가 한 사람의 밥 한 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우리의 폐지 수집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가게 앞 깨끗한 폐지는 손대지 말고 쓰레기와 섞여 있는 폐지들만 수집하기로 했다.
인사동 길에 들어서니 상대적으로 빛도 없거니와 사람들 시선에도 신경이 덜 쓰였다. 길을 따라 걸으며 구석구석 폐지가 있나 살펴보기에 바빴다. 인사동 길 중반에 들어설 즈음, 우리는 갑작스레 걸음을 재촉하며 샛길로 들어서야 했다. 아까는 길 건너편에서 동료를 만났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걷는 맞은편에서 우리를 향해 오는 동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눈에 단지 재미로 가난을 체험해 보는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웠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니까.

폐지 수집, 이걸 좀 아는 사람
인사동에서 동료를 피해 골목길에 들어섰던 우리는 어찌어찌 걷다 보니 다시 종각역을 향하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의 노동이 이례적이어서일까, 초반에 주위 시선을 신경 쓴 탓일까,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피곤이 몰려왔다. 우리는 잠시 종각역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쉬기로 했다.
맞은편 동료를 피했던 아찔한 상황과 폐지가 제법 쌓이니 모양새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찰나에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가난한 삶을 체험하는 거냐고 물었다. 우리는 아니라고, 진짜 생계를 위해 시작한 거라고 답했다. 아저씨는 우리를 하나하나 훑어보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고철이나 알루미늄을 팔면 그나마 돈이 되지만 폐지는 정말 못 해 먹을 짓이라며 돈이 하나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고철의 과거와 현재 가격을 비교하는 등 경험담인지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모를 말들을 끊임없이 하다가 기다리는 버스가 오자 그제야 자리를 떠났다.
그 아저씨가 우리를 살피고 판단한 것처럼 우리 또한 그 아저씨를 살폈다. 아마 한 번쯤 폐지 수집을 해 봤던, 지금은 공공 근로나 자활을 통해 어딘가의 민간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일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그때까지 우리에게 쏟아지던 눈빛과는 다른, 이걸 좀 아는 사람을 만났다.

노동 강도
휴식을 마치고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새벽 5시에 문 여는 고물상이 있는 종로3가 방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는 예상 경로에 없던 길이다. 먼저 종각역 젊음의 거리에 들어섰다. 음식점과 술집이 많으니 박스 역시 많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걸음을 재촉했지만 이미 동료들이 한 번 왔다 간 눈치였다. 골목골목에 폐지를 한껏 쌓아 주차해 둔 동료들의 리어카가 보였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쓰레기에 섞여 있는 소량의 박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전보다 더 열심 줍고 뜯고 펴서 리어카에 쌓았다.
리어카가 무거워질수록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생겼다. 우리의 적재 기술이 허술했던지 폐지들을 견고하게 쌓아 올린 동료들의 리어카와 달리 우리 리어카는 몇 번이나 폐지가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나름 잘 쌓으려고 신중을 기했음에도 여러 차례 재정비를 해야 했다. 슬슬 손가락과 손목, 허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종일 움직여야 함은 물론이고 박스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뜯기 위해 손가락과 손목에 생각보다 많은 힘을 주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평소 친하지 않던 땅과 손을 맞대는 비중이 높았고, 평소라면 손대지 않았을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일도 잦았다. 그제야 ‘장갑과 테이프를 뜯을 칼 같은 것을 준비할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폐지 수집의 노동 강도는 높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정신노동과, 장시간 걸으며 허리를 굽히고 박스를 줍고 주운 박스에서 테이프를 떼어 내고 펼치는 육체노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했다.

길거리 사람과 길가의 사람
새벽 2시경, 종각을 벗어나 종로3가 포장마차가 즐비한 거리에 들어섰다. 포차 거리는 이미 몇 번이고 동료들이 지나간 흔적이 많았다.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 역시 많았으므로 박스는 계속해서 나왔다. 우리는 포차를 이동하며 수집을 계속했다. 포차를 이동할 때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술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차이일까? 아까의 시선과는 사뭇 다른 시선이었다. 어떤 불편한 시선이 아닌 자신의 매뉴얼에는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를 봤다는 신기함 또는 다름을 느끼는 듯한 시선이었다. 리어카는 이제 제법 가득 차 끝이 보이는 듯했다. 피곤하지만 힘이 났다. 과연 얼마가 나올지 우리끼리 내기를 하기도 했다.

킬로그램당 60원, 시급 375원의 노동
새벽 3시경, 목표했던 리어카 한가득을 달성했다. 우리는 낙원상가 뒤편에 있는 고물상 앞에 박스를 깔고 앉아 담소를 나누며 고물상이 문 열기만을 기다렸다. 우리가 간 시간에는 이미 폐지를 한가득 모아 두고 잠을 자는 동료들이 꽤 있었다. 고물상 문 여는 시간이 가까워 오자 더 많은 동료들이 몰려왔다. 모두의 그것은 우리 리어카와는 비교할 수 없게 안정적이었다. 줄 서서 기다려 무게를 쟀다. 75킬로그램. 성인 남자 1명만큼의 무게라니 생각보다 많이 모았다. 그리고 4,500원을 받았다. 고물상마다 조금씩 시세가 다르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간 곳은 1킬로그램에 60원이란다. 3명이 4시간 동안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한 결과가 4,500원, 시급으로 따져 보니 375원이었다.

사각지대의 가난
폐지 수집은 홈리스 또는 가난한 노인이 찾는 비공식 노동의 대명사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동이 비공식 노동의 대명사가 된 까닭은 노동 능력이 미약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그만큼 적어서가 아닐까. 가령, 폐지 수집을 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노동 시장인 공공 일자리나 노숙인 일자리, 자활 근로에도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일자리 양도 너무 적거니와 설령 운 좋게 일자리를 갖게 된다 해도 저임금과 짧은 고용 기간으로 실직 이후 다시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누군가는 복지 제도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복지 제도를 이용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다. 실제 폐지 수집을 하는 대부분은 노령, 질환 등으로 인해 근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들인데, 한국 사회 복지 제도는 누가 봐도 일을 할 수 없는 아주 열악한 상황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게 돼 있다. 이용하더라도 일할 것을 의무로 앞세워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근로 연계형 복지’라 불리는 이 악독한 제도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이다.
개인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가난의 책임을 물으며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현 상태가 지속하는 사회를 바꾸지 않는다면, 비공식 노동의 대명사가 폐지 수집으로 불리는 아픔을 우리 사회는 어쩌면 영원히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말

정성철 - 홈리스 노동팀과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홈리스 노동팀은 홈리스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성철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