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천연덕] 워커스 23호

20년 전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기 2년 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백화점이 무너진 시간은 불과 10여 초. 그 사이 5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다친 사람도 1,000명에 육박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몇 달 전에는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아침에 등교하던 수십 명의 학생이 탄 버스가 무너진 다리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황망한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무릇 사회적 위기와 전환은 대형 사고가 그 전조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외환위기를 거치고 김대중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리해고’라는 게 생겨났고, 비정규직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공기업과 은행은 민영화 돼서 재벌과 해외자본에 팔려나갔다. 금융시장도 개방돼 해외 투기자본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주테크, 집테크라며 빚을 내서 주식과 집을 샀다. 내 돈으로 장사하면 바보 소리 듣는 시대가 됐다. 곧이어 FTA(자유무역협정)라는 것도 체결되면서 마치 세계가 하나인 것처럼 여겨졌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가 상징하듯 박정희식 발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그 자리를 신자유주의가 대신하게 됐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사회를 유지하던 시스템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에서 터지고 있다. 메르스 사태, 지하철 안전문제, 공사장 폭발, 지진, 핵발전소 안전문제까지. 정부의 대처 능력과 사회적 해결 능력은 의심받고 있다. 빚으로 또 빚을 내면서 성장하던 신자유주의 체제, 핵심을 제외한 모든 것을 외주화한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제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장기 불황 속에 놓여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20년 전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시작을 알린 것이라면, 20년 지난 지금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의 끝을 알리고 있다. 더는 부채로 성장할 기반이 없고, 위험까지 외주화한 사회에서 시스템은 붕괴했고 사회적 위기와 불안은 더 없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끝자락, 다시 말해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점에 서 있다. 그런데, 정말 물어보자. 신자유주의 다음은 무엇인가? 재벌과 기성 정치권은 도대체 어디로 우리를 끌고 가는가? 폭발 직전인 가계부채를 염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 부동산 시장을 키우고 있다. 임금피크제니 성과연봉제니 하면서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는 임금체계를 뜯어 고치려 하고, 일자리를 늘린다면서 파견제를 확대하려고 한다. 수만 명의 비정규직이 실업자가 되는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도 마땅한 실업 대책은커녕 이후 산업 정책에 대한 아무런 비전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오죽했으면, 재벌과 조선일보가 정부에게 나서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구조조정을 챙기라는 주문을 할까. 하지만 이것도 말뿐이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유럽, 가깝게는 일본을 봐도 도대체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이들 나라에서도 중앙은행이 돈만 풀고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 외에 대안은 없다’던 대처 영국 전 총리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본주의의 대안은 그것 외엔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부, 삶을 지속시켜 주지 못하는 체제 속에서 ‘국가’의 역할 그 자체에 의문을 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치권력이 아니라 국가 말이다. 사회적 전환기엔 더더욱 그렇다.(워커스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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