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광고업체 제일기획, 그들이 원하면 다 이루어진다

[워커스 27호] 비선실세에 자금 지원, 관료 배출, 올림픽 개입, 이들이 노리는 것

11월 15일. 검찰이 삼성그룹 서초사옥 내 제일기획을 압수수색했다. 17일과 27일에는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실소유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 원을 건넨 과정에서 김재열 사장이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혐의 때문이었다. 검찰은 제일기획이 장시호 측에 건넨 돈이 대가성 뇌물인지 집중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김재열 사장은 두 차례 모두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제일기획은 한국 최대 대기업 집단인 삼성그룹 계열의 광고대행사다. TV, 신문, 잡지, 라디오 등의 매체 광고를 비롯해 스포츠마케팅, PR, 전시, 이벤트 등의 프로모션, 뉴미디어 사업 등을 벌이며 광고 및 커뮤니케이션 시장의 공룡으로 군림하고 있다. 5대 프로 스포츠 구단을 거느린 최초의 스포츠 전문 기업이기도 하다. 제일기획은 2014년부터 삼성 프로축구단, 남녀 프로농구단, 남자 프로배구단을 비롯해 올해 1월에는 프로야구단인 삼성라이온즈를 인수했다. 삼성그룹이 만든 스포츠구단 대부분을 흡수하며 공격적인 스포츠마케팅 사업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다.

  사진/홍진훤

제일기획 출신은 실세가 된다

삼성그룹과 삼성의 광고 에이전시인 제일기획까지. 그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돈줄이었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 원을, 비덱스포츠에 35억 원을 지원했고,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180억 원의 지원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검찰은 삼성전자가 장시호가 운영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 원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임대기 사장이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보고 소환조사를 진행했다. 삼성의 재단 기부금 중 제일기획의 이름으로 K스포츠 재단에 후원한 돈은 10억 원이다. 수십 억 원의 돈다발은 강제적인 ‘기부금’이라는 외피를 썼다. 하지만 그 실체는 촘촘히 엮인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한 공모 자금의 성격이 짙었다.

실제로 다수의 제일기획 출신 인사는 비선실세들과 관계를 맺어 주요 요직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들은 차은택-최순실이 벌인 사업을 직접 추진하거나 지원하며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활약했다. 대표적으로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한콘진) 원장은 제일기획 제작본부 상무(보) 출신이다. 송 전 원장은 차은택의 광고업계 선배다. 차 씨의 인사 개입을 통해 한콘진 원장으로 임명된 낙하산 인사이기도 하다. 송성각 전 원장은 제일기획 제작본부장으로 근무하던 2005년, 차은택 감독에게 광고 제작을 의뢰했던 인연이 있다. 두 사람은 포스코 계열사인 광고회사 ‘포레카’를 강탈하려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에 가담했던 김영수 전 포레카 대표도 제일기획 출신이다.

차은택 감독 소유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 대표인 김홍탁 마스터도 제일기획 출신이다. 최순실 씨와 공모 혐의가 드러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딸도 현재 제일기획 카피라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차은택이 대표로 있었던 CF프로덕션 ‘아프리카픽쳐스’의 주요 거래 회사는 제일기획과 삼성전자, 이노션 등이었다.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실에도 제일기획 출신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총선 출마로 공직에서 물러난 강영환 전 공보협력비서관은 제일기획 출신이다. 그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대학 동기로 알려져 있다. 올해 후임으로 임명된 조창수 공보협력비서관도 제일기획 디지털전략그룹장 출신이다. 오승제 뉴욕문화원장도 제일기획 해외법인장 출신이다. 그는 차은택 감독과 송성각 전 원장의 입김으로 뉴욕문화원장으로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창조경제-문화융성으로 제일기획 키우기

제일기획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차은택 등 비선실제들이 추진한 창조경제-문화융성의 수혜자이기도 했다. 산업에 문화라는 옷을 입혀 추진된 창조경제-문화융성 사업은 제일기획의 사업 확대를 위한 규제완화와 신사업 지원으로 이어졌다.

제일기획 본사 매출액은 2013년 9,270억 원에서 2014년 8,710억 원으로 감소했다. 매출 감소와 국내 사업 정체 상황에서, 제일기획은 2014년부터 삼성그룹 스포츠구단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위기 타개책으로 꾀한 것은 스포츠 마케팅과 신산업 확대였다. 그 중 하나가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 사업이었다. ‘디지털 사이니지’란 ICT(정보통신기술)와 광고를 접목해 동영상 등을 제공하는 옥외 동영상 광고 서비스다.

제일기획은 이미 2000년대 후반부터 디지털 사이니지에 눈독 들여왔다. 2009년 3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디자인 서울 거리’ 사업의 일환으로 강남역 거리에 ‘미디어폴’을 설치했다. 미디어폴은 디지털 사이니지 형태의 가로시설물이다. 총 22개의 미디어폴을 설치하는 데 강남구청이 들인 예산은 4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6개월 뒤, 강남구는 제일기획과 위탁운영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내용은 제일기획에 수익 몰아주기 방식이었다. 미디어폴 사용료나 광고 수익 분배 등의 조항 없이 3년간 무상으로 임대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불법 시설물에 대한 기업 특혜 의혹이 일었다. 당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는, 일부 옥상 간판 등을 제외하고는 디지털 광고물 설치를 금지하고 있었다. 현재 강남역 미디어폴은 운영이 중단된 채 무용한 시설물로 전락해 있는 상태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창조경제-문화융성 사업의 일환으로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 활성화 대책을 들고 나왔다. 2013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 시대의 방송산업 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 육성’을 정책과제로 꼽았다.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는 2014년 3월, 광고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스마트 광고 발전 협의회’를 발족했다. 협의회에는 광고업계를 대표해 조창수 제일기획 디지털 캠페인 그룹장과 김종필 이노션 수석국장 등이 참석했다.

2015년 12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디지털 사이니지 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2018년까지 333억 원을 투자해 플랫폼 S/W 및 콘텐츠, 차세대 디스플레이 핵심기술 등을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아울러 관광지 등 전국 5개소에 시범단지를 구축하고, 평창 동계올림픽과도 연계해 디지털 사이니지 올림픽 거리 5곳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삼성전자와 제일기획은 디지털 사이니지 기술 및 콘텐츠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이다. 지난해 1분기, 삼성전자의 디지털 사이니지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25.5%로 최강자의 자리를 지켰다. 뒤를 이은 기업은 LG전자로 점유율은 7.6%다. 삼성을 중심으로 한 디스플레이 시장 확대는, 광고 및 컨텐츠 시장의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디지털 사이니지 광고 및 컨텐츠 제작, 대행서비스 시장에서 제일기획과 현대차그룹 광고사인 이노션 등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법까지 개정하며 규제를 풀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7월,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에는 ‘디지털 광고물’을 광고물로 명시해 디지털 사이니지를 합법화 하고 건물과 벽, 옥상, 거리 기둥, 공공시설물, 창문 등에 디지털 광고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평창올림픽 유치한다고 이건희 사면하더니...결국 ‘비리’올림픽 오명

2009년 12월 29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단독으로 특별사면을 받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이 회장은 2008년 7월,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선고 후 그는 곧바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포기했다. 그러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를 포함해 한국 프로스포츠 연맹 회장단과 대한체육회 회장까지 들고 일어났다. 이건희 회장 없이 어떻게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느냐는 아우성이었다. 이듬해 특별사면을 받은 이 회장은 유유히 IOC 위원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2011년 7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창비리올림픽’이라는 오명을 안은 채 근근이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무려 13조 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 붓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다. 올림픽이 권력형 비리로 몸살을 앓게 된 것은 단순히 비선실세의 이권개입 의혹 때문만이 아니었다.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삼성그룹 자회사인 제일기획의 갖가지 특혜와 비리 의혹도 평창 동계올림픽에 치명타를 날렸다.

제일기획은 지난 11월 1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및 폐회식 주관 대행사로 선정됐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개, 폐회식에 62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특혜 의혹이 일었다. 제일기획 출신 인사들이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들어가 제일기획 선정을 밀었다는 의혹이었다. 실제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은 지난 6월 조직위원회 국제부위원장 자리에 올랐고, 이 외에도 조직위원회에 3명의 제일기획 출신 인사들이 포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조달청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대행사 선정 과정에서 나타난 특혜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만이 아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결정 직후인 2012년 6월. 조직위원회는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엠블럼 및 로고 개발 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첫 공공 입찰이었다. 한 달 여 뒤, 엠블럼 제작 수주 이력이 없는 제일기획이 최종 우선 협상권자로 선정됐다. 디자인 업계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관례상 국내외 행사 엠블럼 제작은 소규모 디자인 업체의 영역이었다. 매출 1조원이 넘는 공룡 기업이 2억 여 원짜리 엠블럼 개발 입찰까지 가로챘다는 반발도 나왔다. 결국 한국디자인기업협회는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 등에 항의 공문을 보냈다. 당시 제일기획 측은 협회에서 추천하는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엠블럼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협회와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직위 차원에서도 국민 대상 엠블럼 공모를 실시했지만, 역시 제일기획의 엠블럼이 최종 선정됐다. 제일기획은 2013년 5월, 오방색을 활용한 평창 동계올림픽 엠블럼을 발표했다. 하종주 제일기획 디자이너가 제작한 독자적인 엠블럼이었다.

제일기획은 올림픽 유치 단계부터 공을 들여왔다. 깊숙이 개입도 했다. 평창유치위원회의 국제 올림픽위원회 총회 프레젠테이션을 기획하고, IOC 현장 실사단을 직접 맞이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광고대행업체로는 유일하게 미래창조과학부가 추진한 ‘평창 ICT 동계올림픽 추진 TF'에 참여했다. 검찰이 김재열 사장을 상대로 뇌물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여전히 제일기획 특혜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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