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민주주의

[워커스]워커스 사전


숙의(deliberation)란 말은 심의, 토의, 토론을 뜻하는 번역어로, 숙의민주주의는 토론과정을 거쳐 합의에 도달하는 민주적 절차를 뜻한다. 토론하는 것도 좋은 것이고 민주주의도 좋은 것이니 ‘토론하는 민주주의’란 얼마나 좋은 것일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

민중(demos)의 지배(kratia)를 실현했던 고대 아테네에는 모든 시민들이 참석해 안건을 발의하고 결정하는 장소, 공식 민회가 열리는 프닉스 언덕 외에, 또 다른 민주주의의 장소가 있었다. 아고라라고 불린 광장이다. 우리말로 하면 ‘장터’라고도 할 수 있다. 민회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아고라에서는
맘껏 말할 수 있었다. 미주알고주알 나랏일을 떠벌리며 때로는 논쟁을 벌이고, 때로는 욕지거리 싸움판이 벌어지기도 하는 곳이 아고라였다. 아고라(agora)라는 말은 아그로스(agros)라는 말에서 왔는데, 전자는 읍내의 장터이고, 후자는 시골 마을의 공터나 들판을 뜻했다. 모두가 민중의 삶터다. 폴리스로 보낼 시민 대표들도 여기서 추첨으로 뽑았다. 폴리스나 데모스에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떠드는 곳,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곳, 아고라는 공론장의 원형을 상징한다. ‘숙의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바로 이런 토론하는 민주주의를 상상하게 하고, ‘공론화위원회’는 아테네의 공론장 아고라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연상되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 구현되는 숙의민주주의는 대부분 민주주의를 절차로 환원하는 장치이며 공론장을 제도화하기 위한 기술적 고안물이었다. ‘숙의민주주의’라는 낯선 말이 한국 사회에 처음 유입된 시기는 2000년대 이후다. IMF를 거치며, 신자유주의는 학문세계에도 거침없이 밀려들어왔다. 때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 문학적 사조의 외피를 빌었고 때로는 경제이론이 정치사회이론으로 둔갑하여 수입되었다. 숙의민주주의 개념도 그런 시기에 도입되었다. 민주주의론이 ‘공공관리론’나 ‘집합행동이론’, ‘갈등관리론’, ‘게임이론’ 등으로 대체된 시점이기도 했다. 게임이론에 따르면 행위자들은 처음에는 모두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지만 게임이 반복될수록 상호 이익의 극대화를 모색한다. 이런 행동이론은 투표와 같은 정치 행위에도 적용되었다. 단수 투표와 복수 투표, 일회 투표와 반복 투표에서 참가자들이 투표 행위에 좀 더 신중해지고 결과에 대해서도 좀 더 수용하게 되는 차이가 나타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방법이 아니라 주체의 문제

이런 민주주의 이론들의 가장 큰 특징은 ‘데모스(노동자, 민중)’라는 계급적 정치적 주체를 지우고 시민을 개인화하며, 개인을 기본단위로
한 민주주의 제도를 설계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민주주의는 갈등당사자, 이해당사자 간의 문제를 푸는 방법과 기술로 환원된다. 신고리5, 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은 ‘공론조사’라는 여론조사 기법에 의해 이루어졌다. 여론조사가 숙의민주주의로 둔갑한 것은 스탠포드대 교수 제임스 피시킨이 자신이 고안한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 기법을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기반해서 오직 ‘방법론’으로서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주체다. ‘누가’ 토론하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공론화위원회 안에서는 시민(개인)들이 토론하였고 그들이 결정하였다. 하지만 공론화위원회란 방식 자체는 누가 고안하였고 누가 작동시켰는가. 그건 대통령의 지시와 국무총리 훈령으로 만들어진 위원회였다. 그 안에서 토의하는 방식, 투표하는 방식, 그 규칙들은 누가 만들었는가. 공론화위원회의 참가자 시민들은 여론조사의 표본 대상이 되어 주어진 절차에 따라 토론을 하고, 투표를 했을 뿐이다. 공론화위원회의 시민대표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경험이 되었을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아니다. 심의 과정은 위원회 안에서만 존재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입과 발이 묶인 채로 위원회의 최종적 결정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공론화위원회는 일종의 ‘결정 대행기구’가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실은 모두가 ‘대상’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공론화위원회를 ‘추첨제 민주주의’의 모델로 보기도 한다. 500명의 시민대표는 실제로 아테네의 평의회, ‘500인 위원회’와 닮아 착각을 일으킬 만도 하다. 그러나 아테네의 시민대표들이
한 일은 국가 업무에 관한 ‘심의와 집행’이다.
‘결정’은 오직 민회에서만 하도록 했다. 각자 자기의 자치구(데모스)에서 동료 시민들과 함께 추첨으로
뽑힌 아테네의 시민대표들은 일정 기간 동안 다른 시민들을 대신해서 폴리스의 상시적 공무를 돌아가며 맡았다. 그것은 특수 목적을 위해 한시적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위원회에서 결정을 대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추첨제 민주주의가 아니라 기업의 ‘티에프TF(task force)’식 구조에
더 가까웠다. 티에프는 특정한 업무, 임무(task)를 할당받아 해결하기 위해 편성되는 임시 조직이다. 그런데 표본집단(sample)을 시민대표라고 부르면서, 우리는 여론조사를 ‘추첨제 민주주의’와 혼동하게 되었다. 나는 묻고 싶다. 공론조사를 통해 효율적으로 합의와 결정을 도출해내는 이 신갈등관리술을 과연 계속 ‘민주주의’라 불러도 좋은가. 이런 숙의민주주의 제도는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워커스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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