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메갈은 어디로 갔나

[워커스] 워커스X한사성

곧 메갈리아 사이트의 삼년상이 끝난다. 사이트 폐쇄 이후에도 끊임없이 메갈리아를 찾아대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우스갯소리이긴 하다. 하지만 온라인 페미니즘이 그 사이트의 상실을 소화하기 위해 정말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는 생각을 담아 삼년상이라는 단어를 적는다.

여성혐오와 폭력을 매개하는 것을 넘어 자체 생산까지 하던 온라인 공간에서, ‘메갈리안’들의 ‘메르스 갤러리’ 점령과 메갈리아 사이트 탄생은 질식하기 직전 숨을 불어넣은 구원과도 같았다. 메갈리안들은 그동안 일상적으로 당해 왔던 매도와 검열, 성기로 환원됨을 ‘미러링’으로 되돌려 보여주며 원본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이었는지를 남성들의 반응을 통해 다시 확인해냈다.

‘메갈리아’와 ‘메갈(리안)’은 이제 너무 복잡한 기의를 갖게 됐다. 메갈이란 무엇인지 합의된 바는 아직 없다. ‘메갈’은 이렇다, 라고 섣불리 규정해 말하는 행위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메갈의 분노를 사게 된다. 애초에 사이트에 소속감을 느끼지 않기로 약속한 채 철저한 익명의 개인으로 모인 자들을 메갈로 묶어 호명한 것부터가 혐오의 일환이었다. 그것을 ‘그래, 우리가 메갈이다!’라고 받아쳤던 목소리 또한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나는 오해하고 있음을 미리 밝힌다. 메갈로 호명되는 개인 중 한 명의 위치에서 한껏 ‘메갈’을 오해하고 있고, 그 오해를 기반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메갈을 향한 나의 오해 중 각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가 준다면 기쁘겠다.

‘메갈 됨’은 ‘나’ 중심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의 욕망과 ‘메갈 됨’이 부합할 때, 메갈리아는 빠르게 확장됐다. 메갈리아로 인해 내가 겪는 부당함에 통쾌하게 맞받아칠 수 있을 때, 나를 그만 미워해도 괜찮을 것 같을 때, 나를 사랑하게 될 때 ‘나’는 기꺼이 ‘메갈’로 거듭났다. 과거에 경험했던 차별과 폭력들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세계의 문제로 재해석됐고, ‘나’들은 전보다 더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온라인 공간의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에 반발해 일어난 메갈리아는 자연스럽게 사이버 성폭력을 주요 관심사로 삼았다. 그 중 ‘나’를 강렬하게 대입할 수 있는 불법촬영 및 유포 문제로 힘이 모였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페미니즘에는 ‘나’의 욕망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도 존재한다. ‘메갈’들이 자기 나름대로 페미니즘을 찾아-퀴어, 동물, 장애 등의 교차성을 ‘챙기는 것’부터 탈코, 4B(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로 향하며 ‘버리는 것’까지- ‘메갈 됨’으로 옮겨 오는 일은 ‘메갈’의 확장과 거리가 먼 효과를 불러일으킬 때가 많았다. 세계의 문제 안에 나의 책임도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을 따라야 할 때, ‘메갈’은 분열과 축소를 거치며 해체돼 갔다.

당위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그 억누름을 욕망하도록 욕망의 판 자체가 재구성되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에너지를 결집해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나’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세계를 설득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아무리 옳다고 해도, 도달해봤자 내게 직접적인 이득이 되지 않으며 도달하기도 어려운 기준이 있을 때 사람들은 더 나아지려는 시도를 아예 포기해버리기 쉽다.

대다수의 ‘메갈’은 결국 적당히 취직을 하고, 한국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종종 결혼까지 하게 될 것이다. ‘나’들은 개인이었고, 개인이 기존의 질서에 거스르는 존재로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음을 안다. 열성적으로 ‘메갈 됨’을 수행했으나 끝까지 개인으로 남았던 사람들은 너무 지쳤다. 나이를 먹은 ‘메갈’들은 ‘빻은’ 사람들과 타협하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2015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내용의 고민이다.

메갈리안으로 살았던 ‘나’의 역사는 빠르게 휘발됐다. 페미니즘이 리부트됐다고 놀라워하는 목소리 뒤, 그러한 상승에 기여하기 위해 ‘나’들이 견뎠던 아픔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몰라야만 내가 안전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이력서에 한 줄 적어 넣을 수 없는 일에 1년~2년을 바치느라 엉망이 된 학점을 면접관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다고 단체를 만들어 모이는 일은 좀 나았을까. ‘메갈’은 개인이 아닌 단체를 잘 용납하지 않는다. 운동권으로 읽힌 단체들은 여성들에게 단단히 지지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남성들의 공격을 견뎌야 했다. 활동의 고됨에 비해 적절한 임금을 받을 수도 없었으니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자원이 없는 어려움에 처해 여러 단체가 활동력을 잃었다.

최근 영영페미로 통칭되는 메갈 세대 페미니스트의 활동을 담은 ‘스스로 해일이 된 여자들’이 출간된 것을 읽었다. 처음 인터뷰할 때만 해도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각 단체의 탄생 설화를 이야기하며 반짝거렸을 목소리들이 지금은 너무 멀리서 세피아 톤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적혀 있는 이야기의 뒷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사람이 너무 많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기존 ‘메갈’ 방식 활동의 한 장을 닫는 사건이었다. 불편한 용기는 단체였지만 단체가 아니었고, 활동가들의 이름 대신 그 자리에 함께한 개인의 숫자가 남았다. 이 사실이 각자의 삶과 닿았을 때 생길 기쁨과 슬픔을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은 시위에 쏟은 시간을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봤자 바뀌는 것 없더라고, 우리는 패배한 거라고 우울하게 돌아설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자신을 다 태워 분노하고 소리치고 페미니즘을 위해 일상을 던지는 시간을 보내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다시 ‘메갈’처럼 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쉬거나, 새로운 세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넘겨야 할 다음 페이지가 무겁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못 넘길 페이지는 아니다. 나는 실패나 절망 따위를 결론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혹시 이것을 ‘메갈’의 죽음 등으로 잘못 이해하여 기뻐하고 있었다면, 이쯤에서 정확히 해두고 싶다. 나는 내가 오해한 이 맥락과 온라인상의 여성폭력, 혐오의 동향을 연결하고, 다음 운동을 고민하기 위해 이 글이 필요했다. 한국의 사이버 성폭력 대응 운동은 메갈리아로부터 태어났고, ‘메갈’이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또 어디로 갈 것인지, 흩어진 곳에서 무엇을 해냈고 해낼 수 있는지 알아야 사이버 성폭력 근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첫 기고는 ‘그 많던 메갈이 어디로 갔는지’ 주위를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앞으로의 글은 사뭇 다른 분위기일 것이다. [워커스 5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