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당신의 선택은?

[워커스] 나를 찾아서

3월 10일 박근혜를 파면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반 년 가까이 광장을 메우고 촛불을 들었는데, 한 달 만에 분위기는 너무나 달라진 듯합니다. 길거리엔 이제 대선 후보들의 선거홍보 차량들이 번쩍이는 LED문구와 로고송을 쏟아내고, 박근혜 퇴진이 적혀있던 현수막들은 선거유세 현수막들로 바뀌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문재인-안철수의 지지율을 톱뉴스로 보도하는 가운데 아들, 딸, 부인과 관련한 각종 의혹들을 헤드라인으로 장식합니다.

얼마 전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지요. 결국 우병우는 봐주기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재용을 제외한 재벌들은 그 누구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올해 발표된 재벌 사내유보금은 800조를 넘었고, 지난해 보다 50조 원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던 조선소 노동자들은 울산의 다리 위로 올라갔고,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싸우던 노동자들은 광화문 광고탑 위로 올라갔습니다. 노조파괴-직장폐쇄에 맞서 파업을 벌이던 갑을오토텍 노동자는 8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하며 생계로 괴로워 하다 목숨을 끊었습니다.

5월 9일, 우리는 박근혜가 사라진 자리에 누가 오를지 선택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장미대선’이라고 합니다. 그 장미꽃은 누구를 위한 걸까요. ‘현명한 선택을 기다립니다’라는 문구가 여기저기 휘날리는 오늘, ‘왜 우리는 누군가를 선택하는 데 그쳐야 하는가’하는 자괴감을 느끼며 이번 호 <나를 찾아서>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선택자’가 아닌 ‘행위자’이기를 바라며.


A 타입 : 홍준표

최근 1~2년 사이 ‘트럼프 현상’이 세계 곳곳에 나타나면서, 우파정치와 ‘막말’의 결합은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한 듯합니다. 한국에서는 ‘홍트럼프’라는 별칭을 갖게 된 홍준표가 있죠. 짐짓 무게 잡는 기존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벗어나 개인 SNS를 적극 활용하고,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만한 감정적이고 적대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면서 트럼프를 따라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많습니다. 촛불과 박근혜 파면을 거치며 ‘이대로 가다간 좌파들에 나라를 빼앗기겠다’는 위기감으로 뭉친 보수우파세력을 강력하게 결속하는 듯합니다. 박근혜와 거리를 두면서도 박근혜를 살리겠다며 태극기를 끌어안는 그의 모습에서 대선 이후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는 보수 세력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본인의 낮은 지지율을 ‘롤모델도 몰라보는 젊은이들’ 탓으로 돌리고,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콕 집어 주적으로 선언하며 ‘귀족노조 분쇄’, 자유로운 해고를 비정규직 대책으로 내놓은 홍준표. 트럼프는 전통적인 산업노동자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죠. 홍준표는 과연 한국의 트럼프가 될 수 있을까요?

B 타입 : 문재인

이번 대선에서 공세와 검증은 유독 문재인 후보에게 집중되는 모양새입니다. 공약보다 아들 취업특혜 논란이 더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죠. 완고한 지지층을 보유한 것도 특징입니다. 노무현에 대한 향수를 공유하는 이 강력한 지지층은 당내 경선과정부터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문재인 캠프 공약 가운데 눈에 띄는 건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일 겁니다. 고용창출을 시장이나 민간기업 자율에만 맡길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며 인건비는 제약하고 인력은 축소해왔습니다. 외주화는 일상이 됐지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려 할까요? 최근 문재인 핵심공약에서 ‘사드 국회비준 동의’, ‘재벌순환출자구조 해소’가 제외됐습니다. 상공회의소 초청강연에서는 자신이 “전혀 반기업적이지 않다”며 기업친화적 정체성을 강조하기도 했지요. 노무현 정부와 삼성과의 관계를 해명하지 못하는 가운데 캠프에는 삼성 고위직 출신들이 합류했습니다. ‘대세’라는 문재인, 그가 당선될 경우, 정부는 ‘누구의 정부’가 될까요?

C 타입 : 안철수

1~2주 사이 급격한 지지율 상승을 이끌어내면서 ‘대세’를 넘보는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 안철수. 민주당 내부경선이 끝나자 민주당-문재인에 반대하는 여러 세력과 중도보수층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보수후보 단일화 논의가 나왔고, 심지어 극우논객 조갑제가 ‘안철수 당선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중도보수층 지지를 의식해서인지 안철수의 뚜렷한 우클릭 행보도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사드 배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드반대 당론까지 변경했습니다. 문재인의 공공부문 일자리 공약을 비판하며 시장과 민간기업 자율성을 주장하기도 했지요. 기업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재벌특혜-민영화법으로 알려진 규제프리존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국공립인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보육대란에 시달리는 학부모들이 아닌 사립 유치원장들을 대변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전부터 기업인 출신 전문가라는 성격을 강조했던 안철수. 10년 전 이명박의 슬로건이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일까요?

D 타입 : 유승민

박근혜 정부의 공신에서 ‘배신자’로 내쳐지고, 이후 친박-비박 갈등의 핵심으로 떠올라 지난해 총선에서 공천 문제로 김무성의 ‘옥새파동’을 불러온 유승민.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자 마침내 친박과 완전히 갈라서며 분당을 이끈 주도자가 됐지요. 그런 만큼 ‘친박-수구’세력과 다른 ‘진짜 보수’를 자처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신자’ 낙인 탓인지 보수층에서도 별다른 지지율 반등은 없는 상황입니다. 유승민의 핵심 기조는 ‘안보는 보수, 경제는 개혁’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는데요(사실 모든 정당들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사드가 논란이 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사드배치를 적극 주장하고 나선 바 있습니다. 한편 최저임금 1만원과 재벌개혁에 있어서는 안철수보다 더 적극적입니다. 그러면서도 일자리 공약으로 내세운 청년창업은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어찌됐든 후보등록 당일부터 당내에서 사퇴논란이 불거질 정도로 낮은 지지율이 골칫거리인데요. 당내 기류처럼 (그리고 어쩌면 보수언론의 바람처럼)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시도하며 ‘합리적 보수’ 확대재편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 타입 : 심상정

민주당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이재명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본선 돌입 이후 ‘진보 후보’ 타이틀을 거머쥔 심상정. 주요 본선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박근혜 사면은 불가하다며 못을 박았고,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도 유일합니다. 재벌에 대해서도 다른 후보들이 지배구조 개선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면 심상정은 독점기업체 분할, 불법 경영세습 금지 등 후보들 가운데 가장 강도 높은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요. 하지만 마냥 진보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지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안보공약에서 미국의 핵우산이 북핵을 억제하는 가장 합리적인 수단이라고 언급했지요. 사드는 북핵 대응책이 아니라는 의미였지만,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으로 북한의 핵을 억제한다’는 전략은 전통적인 보수적 안보관에 입각해 있습니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에 대해서도 재벌 책임을 거론함과 동시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했지요. 정규직 임금은 저절로 높아진 게 아니라 싸워서 얻은 결과물이지만, 귀족노조 프레임은 진보진영 안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하는 듯합니다.

F 타입 : 조원진

2012년,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자 한 군소정당이 ‘한나라당’ 이름을 가져다 쓴 적이 있었죠. 당시 19대 총선이 있었는데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새누리당과 한나라당이 다 나와 있어 혼란스러워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5년이 지나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자 이번에는 친박단체들이 ‘새누리당’ 이름을 그대로 가져갔습니다. 2012년 박근혜가 주도해서 바꾼 이름이니만큼 꼭 지키고 싶었던 걸까요? 박근혜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태극기 집회에서 추대한 후보가 바로 조원진입니다. 대표적인 공약은 탄핵세력 심판, 박근혜 석방 및 명예회복이지요. 이들에게는 홍준표조차 배신자입니다. 사실, ‘박근혜를 살리겠다’고 공언한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이 있는데 굳이 갈라져 나와 출마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새는 ‘종북좌파 척결’을 내걸고 출마한 전 국정원장 남재준과의 후보단일화 논의도 나오는 듯합니다. 태극기의 정치세력화, 잠깐의 소란일지 향후 극우집단의 전진기지가 될지 궁금해지네요.

G 타입 : 찍을 사람이 없다

대선 후보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 당신, 이번 선거에서 아무도 찍고 싶지 않은 것 같군요. 어쩌면 당신은 뜨거웠던 광장의 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다시 정치인들의 선거무대가 펼쳐진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지도 모릅니다. 촛불이 만든 대선은 ‘전쟁위기설’이 나돌며 안보대선으로 바뀌었고, 후보들의 공약을 들어보면 지난 대선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장미대선’이라는 수식이 그다지 달갑지 않을 겁니다. 박근혜가 사라졌어도 일상은 여전히 고단하니까요.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이 한동안 회자됐습니다. 내가 쑤어놓은 죽을 내가 먹는 게 이렇게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 내내 당신이 뜨겁게 분노했다면, 당신만이 아니라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함께 분노했다면, 그래서 반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냈다면, 우리는 ‘이번 대통령이 누가 될까’ 보다 더 큰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찍고 싶은 후보가 없는 건 그래서 더 좋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후보가 있다면, 당신과 우리가 할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니까요.

H 타입 : 무관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투표일은 공휴일일 뿐, 정치가 어떻고 대통령이 누가 되고 하는 문제는 당신의 관심 밖입니다. 딱히 누가 좋지도, 싫지도 않은 당신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굳이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정치 얘기, 사회 얘기는 어렵거나 무거울 뿐이고 나 자신과 별로 관계없는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쨌든 일해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정치는 당신이 내일도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을지, 먹고살 만한 월급을 받을 수 있을지 결정하는 바로 당신의 문제입니다. 일 걱정 없이 여유롭고 풍족하게 살고 있다면 좀 다를까요? 즐겁게 여행을 떠났던 당신의 가족이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 덧없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사회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사회는 당신에게 아주 관심이 많습니다.[워커스 30호]
덧붙이는 말

강후 |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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