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 2기 민주노총, ‘지구화시대의 국민적 노동운동’으로 거듭나자

[정치칼럼] 비정규직, 여성·이주노동자 위한 강성 노조돼야

최근 민주노총이 문재인정권의 ‘청와대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자 그것을 비난하는 기사, 논평, 논설, 댓글들이 각종 미디어를 압도한 바 있다. 이른바 ‘진보언론들’의 지면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그런 기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문득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수구파시스트정당인 자유한국당의 후보가 ‘강성-귀족 노조’인 민주노총 때문에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는 주장을 해 민주노총이 언론에 회자됐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저들 모두는 민주노총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희롱해도 되는 ‘영혼 없는 노동조합’ 쯤으로 생각하고 있거나,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상대의 생각, 의견 등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마음대로 불러내어 이리저리 찔러보고 동네북처럼 두드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곤 구체적인 정보부재의 일반대중들을 대상으로 언론플레이를 하며 오히려 민주노총에 모든 책임을 씌우고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들의 그런 행태는 다른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한데, 민주노총이 아직 그들의 품에 안기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기에 그렇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집권 보수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존재는 누구인가. 이른바 ‘적폐’인 수구파시스트 사회정치세력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수구파시스트세력들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존재는 누구인가. ‘적폐 청산’을 외치는 자유주의 사회정치세력인가. 겉으로는 다시 보지 않을 듯 서로 다투니 그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도 아니다. 수구 혹은 파시스트인 자신들을 여전히 ‘보수야당’이라는 우아한 이름으로 불러주고 우대하며 정치의 다른 한 축으로 인정해주고 있는데, 왜 그처럼 미워하겠는가.

[출처: 심형호]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의 배경

그들 양자는 지난 20년 동안 집권을 둘러싸고 ‘갈등적 관계’를 이어오긴 했지만, 신자유주의 좌/우파로서 각종 노동관계법들을 통과시켜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몬 ‘환상의 콤비’로 지내오지 않았는가. 그들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지면이 아까울 뿐인데,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민주노총이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위치에 있음을 자임하는 이들에 의해 장악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민주노총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망둥이쯤으로, 그렇기에 대화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만 간주될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그런 그들이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이유이다. 그 인지,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이 민주노총에 대해 ‘진보-좌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좌파’는 사회에서 가장 착취, 수탈, 차별, 아예 배제당하는 이들과 그 고통을 함께하며 그런 관계들을 넘어서기 위해 이론, 실천적으로 쟁투하는 이들, 세력을 이르는 것인데, 민주노총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기에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수구파시스트들이 ‘강성-귀족노조’라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 ‘너희들은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한 번이라도 싸운 적이 있어?’라고 반문할 일이 아니다. 그들 중에 어느 시처럼 ‘뜨거운 연탄재’가 되어 보았던 자들이 존재하기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질문 자체가 과거로 현재-미래의 삶을 규정하고자 하는 보수, 수구를 자임하는 언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뜨거웠던 그 과거를 훈장삼아 아직도 ‘철들지 않고 있는 뜨거운 연탄재’를 어떻게 하면 안전한 화로 안에만 가두어 둘 수 있는지, 그 방안을 마련하느라 저렇게 골몰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냉정히 질문해 보자. 그들이 민주노총을 ‘강성-귀족 노조’, 심지어 ‘자기이익만을 챙기는 적폐’라고까지 비난하는 것이 어디 그들 책임인가. 아니다. 민주노총 책임이다. 여전히 노동해방, 인간해방이라는 목표를 품고 있다면, 아니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버리지 않는다면, 바로 민주노총 때문이다. 문재인정권의 모토로 말한다면, 민주노총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꺼이 노동 계급 안에서 가장 고통 받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나아가 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강성 노조’가 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집권한 문재인정권이, 자본이 이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민주노총에 대해 어떤 대접을 해주려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조직에 대한 대중적 신뢰, 사회정치적 권위는 그 누가 대접하고, 손에 쥐어준다고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조직노동자 중심의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자양분으로 유지되었던 신뢰와 권위가 더 이상 유지, 작동될 수 없다면, 그것을 새로이 만들어야 하는데,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 지구화시대에 조응하는 내용과 형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그것만이 저들의 조롱, 동네북이 되는 것을 청산하는, 환대는 고사하고 최소한 노동자들의 존재의미 자체, 민주노총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심으로, ‘국민운동’의 중심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수 없이 사유, 토론, 공유해 왔기에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 하나는 민주노총이 신자유주의 지구화시대에 대응하여 명실상부한 비정규직노동자 중심의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커져가고 있는 민주노총과 각 산별,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운동 사이의 거리를 좁혀나가야 한다. 이런 방향전환이 없다면, 이른바 제3기 민주정권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권, 자본과의 대결에서 의미 있는 사회정치적 역할을 할 수 없다. 그 비정규직 안에서 가장 계급적으로 착취 받는 존재가 성차별과 인종적 혐오에 노출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그런 대중적 신뢰와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 노동자들을 개, 돼지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는 자들에게 스스로 그 존재 이유를 보여야 한다.

다른 하나는 민주노총이 이른바 ‘국민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실 이 표현은 생소하지 않은데, 그 동안 권력과 자본이 민주노총에게 ‘계급을 넘어 국민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귀가 따가울 정도로 ‘조언’해 왔기 때문이다. ‘노사협조주의’를 가리는 외피로 말이다. 이 용어를 재전유하고 비틀어 말하면, 민주노총은 기꺼이 ‘지구화시대의 국민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노동자 등 이른바 ‘국민’인 그 구성원들이 어떠한 이유로도 착취, 수탈, 차별, 배제 받지 않는 사회관계들, 따라서 더 평등한 권력관계들 속에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앞장서는 운동의 선두에 서야 한다. 실질적 국민으로 가장 하층에서 이 사회의 생산-재생산에 참여하고 있는 이주자들의 삶과 고통에 응답하고 그것을 함께 짊어지고 가는 그런 운동을 추동하는 핵심조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노총’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존재해야 하는, 여전히 소환되고 있는 이유이다.

향후 민주노총의 역사적 존재 의미는 다가올 2기 직선 집행부구성 과정에서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얼마만큼 조직 재편과 사업에 반영하여 구체화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자유주의정치세력, 수구파시스트정치세력들도 민주노총이 그런 조직으로 거듭나지 않는다고 저렇게 아우성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너희가 그렇게 할 수 있니?’라는 자신에 찬 권력과 자본의 저 비아냥거림에 답해야 하지 않는가. 그냥 하나의 관료조직으로 남아 이른바 ‘뻥파업’을 남발하며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그저 그런 조직, 자신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 대중적 신뢰와 정치적 권위를 재구축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현재-미래의 삶을 위해 어느 길을 갈 것인가. 자기통치성을 열망하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 존엄성을 걸고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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