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의 반란과 삭제된 여성 전사들의 혁명적 활동

[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

  독일 일러스트레이터 헤르만 보겔의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출처: Wikimedia Commons]

21세기 인류사회는 거대한 전환기에 직면해 있다.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자본주의는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등 정치·사회 혁명을 거치면서 변증법적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한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인간의 노동이 필요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인류는 미증유의 세기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대에 노동자 민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해 반란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늘 해왔다.

고대 시대에는 역설적이게도 노예제도가 ‘민주주의’가 꽃핀 아테네에서 가장 발전했는데, 아테네 인구수와 거의 맞먹는 수십만 명의 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뒤를 이은 로마제국 역시 전쟁을 자주 치르면서 노예제도가 매우 성행했다. 따라서 로마의 대토지 소유제도는 당연히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렇게 로마는 무수히 많은 노예의 희생과 식민지 민중들 피땀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노예제도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대토지 노예제 경영은 자영농의 몰락을 가져왔다. 그리고 노예에 대한 억압과 수탈 체계가 노예들의 반발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노예들의 자유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으로 나타났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직전에도 로마는 여러 차례의 노예 전쟁을 경험했다. 기원전 198년 에는 라티움에서, 기원전 196년에는 에트루리아에서, 기원전 185년에는 아풀리아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났다. 아풀리아 반란은 다음 해까지 이어졌고, 7천여 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역사에서 보통 노예반란이라고 하는 것은 시칠리아에서 터진 두 차례의 노예 전쟁과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말한다.

계급투쟁의 전형을 창조하다

그러나 정말로 로마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전쟁은 기원전 73년, 이탈리아 본토에서 일어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었다. 이탈리아 본토에서 갖가지 민족의 노예들이 함께 일어난 세계 최초의 국제적 반란인 점에서 스파르타쿠스 반란은 이전의 노예반란과는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것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단순한 노예의 불만을 넘어서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계급투쟁의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파르타쿠스 전쟁이 로마 사회 내부의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 당대의 로마의 적을 자처하던 세력과 연관 관계가 있었고, 그로 인해 장기화할 수 있었다.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 볼테르는 스파르타쿠스 전쟁을 가리켜 “가장 정의로운 전쟁,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정당했던 전쟁”이라는 평가를 했다. 18세기 말 아이티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노예 출신의 투생 루베르튀르는 ‘검은 스파르타쿠스’로 불리면서 독립혁명에 헌신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1891년 동료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파르타쿠스가 고대 역사를 통틀어 가장 걸출한 인물이고, 위대한 장군 이자 고결한 인간이며 고대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대표자라고 평가하면서 평생 존경을 버리지 않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0년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 “죽음이 노예에겐 유일한 자유요”라는 스파르타쿠스의 대사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부분 “프롤레타리아는 잃을 것이 라고는 쇠사슬 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라는 구절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스파르타쿠스의 위대함은 레닌에 의해서 계승돼 상징적 인물이 됐다.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카를 리프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등의 혁명가들이 ‘스파르타쿠스단’을 결성해서 사회주의 혁명 활동을 가열차게 전개하다가 반혁명 세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20세기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 역시 스파르타쿠스 찬양자였다.

스파르타쿠스가 서구에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하워드 패스트의 소설 ≪스피르타쿠스≫(1951)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는 공산주의자이다. 각본을 쓴 달톤 트럼보 역시 공산주의자이다. 음악을 맡은 작곡가 알렉스 노스 역시 좌파로 알려져 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매카시즘의 광기가 미국을 강타할 무렵 좌파만이 제작이 가능한 영화였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로마 장군이 패배한 반란군에게 의기양양하여 누가 스파르타쿠스인지 알려주면 다 살려주겠다고 유혹하지만 노예들은 저마다 일어나서 외친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이 대사는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의 하나로 꼽힌다. 그리고 그들은 노예로서 살지 않고 인간으로서 죽음을 맞는다. 스파르타쿠스는 과거에도 현재도 다른 스파르타쿠스로 존재했고, 이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수많은 스파르타쿠스는 탄생하고 죽을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혁명의 세계를 장엄하게 열었기 때문이다.

삭제된 여성 전사들의 혁명적 활동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여성들의 혁명적 활동은 삭제돼 있다. 반란의 지도자인 스파르타쿠스의 가족에 대한 기록조차 없다. 고대 로마가 철저히 가부장적이며 계급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리스 전기 작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에서는 스파르타쿠스가 여느 노예들과 달리 지적이고 교양이 있는 그리스인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설명하면서, 그의 아내는 같은 부족 출신이며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홀린 예언가였다고 묘사했다. 하워드 패스트의 소설 «스파르타쿠스»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스파르타쿠스»에서는 그의 아내를 바리니아로 부르면서 소설에서는 게르만족 출신으로, 영화에서는 브리타니아 출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른 소설에서는 스파르타쿠스의 아내를 프리기나, 아폴로니아로 서술하고 있다. 또 다른 사료에서는 아내 이름은 언급하지 않은 채 스파르타쿠스와 같은 트라키아 출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생몰연대조차 모르는 스파르타쿠스의 출신을 분석하면 그의 아내 또는 연인에 대한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검투사 노예로 팔려 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전쟁 중에 구사한 전술들을 살피면 그리스 군대나 로마 군대에서 지휘관으로서의 경험이 있던 자유인 출신으로 보인다.

따라서 검투사 노예 이전에 스파르타쿠스는 아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아내가 로마인들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복수를 생각하게 됐다. 검투사 노예 시기에는 법적으로 배우자를 허락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아내라기보다는 디오니소스신의 여사제로 활동하고 있는 연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는 여사제의 예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다. 이는 그녀가 반란의 시작에 있어, 예언자의 역할을 하며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검투사들을 선동 하거나, 규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들 반란군에 일부 여성 검투사와 여성 노예들이 결합한 것은 당연했다. 여성 노예는 남성 노예보다 더 비참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노예가 하는 집안일이나 안주인 심부름은 물론 주인 부부와 귀족들의 성적 대상이었다. 필요하면 상품처럼 여기저기 팔려 가야 했던 삶이었다. 이렇게 비참한 삶에서 분노와 저항의 행동이 발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여성 예언자 노예’들은 로마에서도 위험요소로 취급했다. 그들은 기원전 135년 시칠리아에서의 반란과 기원전 104년의 반란을 야기한 장본인이다. 이런 인식은 지속해 서기 60년 무렵의 농업학자 콜루멜라의 «농업서»에는 여성 예언자 노예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비록 반란군은 전쟁에서 패해 혁명에 실패하지만, 여성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그 지역의 평범한 남성들과 결혼하고 또 다른 스파르타쿠스를 출산했다. 그리고 그 스파르타쿠스는 아버지처럼 투쟁과 폭력 속에서 죽었다. 이렇게 여성들의 혁명적 활동이 지속할 수 있는 원천은 내구력 때문이다. 혁명은 오래 버텨야 다가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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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인, 『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 나름북스, 2020.
배영수 편, 『서양사 강의』, 한울아카데미, 1992.
하워드 패스트, 김태우 옮김, 『소설 스파르타쿠스』, 미래인, 2008.
M.J. 트로우, 진성록 옮김, 『신화가 된 노예 스파르타쿠스』, 부글북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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