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총선, 강화되는 인종주의와 헤브론

[워커스] INTERNATIONAL

  슈하다 거리 끝에 자리한 이스라엘 군의 검문소 [출처: 뎡야핑]

4월 9일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우익 정당들이 대결을 벌이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잠깐의 예외를 제외하면 항상 우파 연립 정부가 집권했으니 새로운 일은 아니다. 집권정당 리쿠드 당은 종교주의 정당부터 민족주의, 온건주의, 극우주의 정당까지 다양한 우익 세력을 아우르는 차기 연정을 구성해 놨다. 리쿠드와 대결하는 신생 정당 이스라엘회복당은 이스라엘군 참모총장 출신의 베니 간츠를 필두로 유대인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군 장성 출신 후보들을 출마시켜 새로운 우파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집권당 리쿠드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에 5선을 노리고 있지만, 뇌물수수와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가 확실시 돼 입지가 불안정하다. 하지만 총선 결과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 정부가 갑작스레 1967년에 팔레스타인과 함께 이스라엘에 군사 점령당한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는 등 부패 혐의로 핀치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의 지원에 박차를 가한 데다, 총선 전 정례 행사로 자리잡은 가자지구 침공을 또다시 자행하며 리쿠드 당이 인구 80%를 점하는 유대인 유권자의 표를 끌어 모으는 데 전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되려면 크네셋(이스라엘 의회) 의석 120개 중 과반수인 61석을 확보해야 한다. 한 석이 아쉬운 리쿠드 당은 연정에 극우 유대민족주의 정당인 유대권력당(Otzma Yehudit)을 참여시켰다. 이미 현 연립 여당의 대다수가 극우 정당인 마당에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의 유대계 로비단체들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나 보다. AIPAC(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은 유대권력당이 “인종주의적이고 비난받아 마땅한”정당이며 이스라엘의 핵심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반발했고, 반명예훼손연맹(ADL)의 CEO는 “유대권력당의) 레토릭이 증오로 가득”하다는 등 연정에 합류시켜 합법화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예외적이지 않은 유대권력당의 인종주의

마치 유대권력당과는 달리 자신들과 기존 이스라엘 정당은 인종주의에 반대한다는 듯이 들린다. 하지만 당장 이번 선거만 봐도 유대인 후보들은 저마다 이스라엘 인구의 18%를 점하는 아랍-팔레스타인 시민권자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을 서슴지 않으며 유대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노골적 혐오 표현 속에 단연 두각을 드러낸 건 재선에 나선 리쿠드 당의 젊은 의원이다. 오렌 하잔 의원은 아랍-팔레스타인계 발라드 당의 당수 자말 자할카 의원을 총살하는 캠페인 영상을 유포했다. 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총살 씬에 두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다. 자할카 의원에게 살해 선동 혐의로 고소당한 하잔 의원은 해당 영상이 인종주의적이지도 반-아랍적이지도 않다면서 이렇게 항변했다. “테러리스트 자할카의 뻔뻔함과 냉소는 한계를 모른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특정 정당에 국한된 이슈가 아니다. 크네셋은 지난해 이스라엘을 유대민족의 국가로 선언하는 법을 통과시켜 헌법적 수준에서 인종차별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그 법이 통과되기 전에도 이미 이스라엘엔 점령지 팔레스타인인은 물론,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을 차별하는 법안이 65개나 있었다. 애초 건국 후 20년 가까이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은 군사 정부를 통해 별도 통치했고, 내부의 군정이 종료된 이듬해엔 서안지구, 가자지구, 동예루살렘 즉 팔레스타인을 점령해 지금까지 반세기 넘게 군사 통치하고 있다. ‘핵심 가치’는 늘 유지돼 왔다. 인종주의를 운운하며 호들갑 떠는 것이 더 신기한 상황이다.

유대권력당의 인종주의 선동이 논란이 되자 이스라엘 선거관리위원회는 유대권력당 후보들의 출마를 심의했지만 곧 허용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8대 1로 뒤엎어 당 대표의 출마를 금지했다. 다만 같은 당의 다른 후보의 출마는 승인했다. 정당 자체로 총선 출마가 금지되진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권력당은 뭐가 다르다고 여겨지는 걸까? 유대권력당은 미국 브룩클린 태생 랍비 메이르 카하네의 추종자들이 만든 정당이다. 미국 내 극우 유대조직을 결성해 활동하던 랍비 카하네는 이스라엘로 이주한 뒤 팔레스타인인 인종 청소를 드러내놓고 주창하며 1971년 카흐(Kach) 당을 창립했다. 카흐 당은 팔레스타인인 상대로 각종 폭력 사건을 일으켰고, 1984년 총선에서 의석 하나를 확보해 크네셋 진입에 성공했다. 인종주의 선동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4년 후 총선에서 카흐 당의 의석이 3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 확실시 됐지만, 크네셋 의원들은 천박한 카흐 당과 그 당수를 ‘나치’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때문에 이들의 출마를 막기 위해 다음 총선이 있기 전에 인종주의를 선동하는 후보의 등록을 금지하는 선거법 개정으로 카흐 당원들의 출마를 저지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금지하는 인종주의의 정체는 모호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점령지, 즉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땅에서 모든 팔레스타인인-아랍인을 인종 청소한다는 것은 이미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만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건국 이념에 내재돼 있고,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선주민 학살과 추방으로 실현됐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결혼 및 성관계 금지 등 극단적 인종차별로 보이는 이들의 정책도 이미 연립 정부에 참여하는 종교주의 정당들과 다른 점이 없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창설을 부정하고, 예루살렘의 성지 하람 앗샤리프(템플 마운트)의 이스라엘 소유권을 주장하는 등 카흐 당의 주장은 다른 극우 정당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노골적 인종주의로 인해 ‘중동 유일의 민주 국가’라는 포장이 적나라하게 벗겨지는 것을 못 견디는 것뿐이다.

특히 1994년 카흐 당은 이스라엘에서 그리고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테러 단체로 지정됐다. 기만적이나마 “평화 협상”의 외피를 두르고 있던 오슬로 협정 진행이 한참이던 1994년 2월, 카흐 당원이 서안지구 헤브론의 이브라힘 사원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카흐 당이 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 때문이었다.

이브라힘 사원 무슬림 학살

총기를 난사한 카흐 당원은 브룩클린 출신 미국인 이주자 바루크 골드스타인으로, 카하네와도 개인적 친분이 있는 자였다. 이브라힘 사원(막벨라 동굴)은 이슬람교와 유대교 모두에 성지인 선지자 이브라힘(아브라함) 일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 위치한다. 1967년 팔레스타인을 군사 점령한 이스라엘 당국은 이브라힘 사원을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과 나눠 쓰도록 강제했다. 이슬람 사원과 시나고그, 즉 유대교 사원이 공존하게 된 것이다.

1994년 2월 25일 학살 당일은 이슬람의 명절 라마단과 유대교의 축일 부림절이 겹친 금요일이었다. 전날 유대인들은 축일을 맞아 원래 무슬림들의 예배가 있는 금요일에도 사원을 사용하고 싶다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폭력 사태는 없었지만 분위기는 험악했다. 다음날인 금요일 새벽 4시 반 경 골드스타인은 사원에 난입해 예배를 보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총기를 난사했다. 12살 어린이를 포함해 29명이 살해됐고 150명이 부상을 입었다. 종교 시설에서의 총기 난사는 팔레스타인을 넘어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유엔 총회는 즉각 학살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인종주의 성향이 아무리 강해도 정당이나 국가가 대량 학살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는 쉽지 않다. 카흐 당은 테러 단체로 지정됐고, 나치와 똑같다며 비난받으며 지금까지도 다른 극우 정당들과는 ‘다르다’고 인식되고 있다.

방미 중 카하네가 암살된 뒤 당은 2개로 갈라졌지만 팔레스타인인을 모두 인종 청소해 유대 국가를 만든다는 카하네의 핵심 가치는 카하네주의자들에게 계승돼 새로운 극우 조직 및 정당들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학살 후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사원을 둘로 나눠 유대교 사원에 더 넓은 면적을 할당하고 “유대인이 무기를 소지할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팔레스타인인에게 강화된 군사 조치를 부과했다. 골드스타인은 학살의 생존자들에게 맞아 죽었지만, 헤브론의 유대인 정착민은 그를 순교자라 추앙했다. 팔레스타인 헤브론의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은 이스라엘 내에서도 강경 극우파로 유명하다.

H1/H2 : 헤브론 불법 유대인 정착촌의 제도화

팔레스타인에 세워진 불법 유대인 정착촌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파괴하고 그 위에 들어섰거나, 팔레스타인 마을 옆에 위치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자국 영토로 불법 병합한 동예루살렘을 제외하면 헤브론은 팔레스타인 도시 안에 불법 정착촌이 들어선 유일한 도시다.

헤브론은 1993년, 1995년 두 차례 오슬로 협정에 따라 구성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통치하는 A지역 중 하나로 지정됐지만 다른 A지역들과 지위가 다르다. 당시 야당이던 이스라엘 우파들은 오슬로 협정에 격렬히 반대했다. 테러 조직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고 합법화했다는 이유였다. 오슬로 협정은 추방된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문제나 예루살렘 지위 등 주요 문제를 다루지 않고, 이스라엘이 ‘합법적’으로 서안지구를 군사점령 할 수 있는 길을 연 ‘임시 협정’이었지만, 이스라엘 우파들에겐 후퇴로 인식됐다. 결국 협정을 체결한 노동당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는 극우 대학생에게 암살당했다. 이후 당선된 네타냐후 총리는 오슬로 협정에 따른 이스라엘군 재배치가 이전 정권의 실수라며 헤브론에서 예정된 군의 부분 철수 계획을 철회했다. 오슬로 협정의 파기를 막으려는 미국의 지도 하에 헤브론의 지위에 대한 재협상이 시작됐고, 1997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정부는 ‘헤브론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은 헤브론을 H1(80%), H2(20%)의 두 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 구역으로 지정했다. 구도심지와 이브라힘 사원은 H2에 포함시켰다. 당시 팔레스타인 주민은 12만 명에 달한 반면, 유대인 정착민은 450명에 불과했고, H2 역시 팔레스타인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피점령지에 점령국의 주민을 이주시키는 것은 제4차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는 불법행위지만, 조약에 의해 극단주의 유대인 정착민의 헤브론 거주권이 보장됐다. 또 이미 자체 무장한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스라엘군 3000여 명이 H2 지역에 반영구적으로 배치됐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유대인 정착민과 이스라엘군의 일상적인 물리적 공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헤브론 조약에 따라 통행 금지를 해지하기로 했던 ‘슈하다 거리’는 아직도 개방되지 않았고, 슈하다에 살던 사람들은 쫓겨났거나 괴롭힘을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슈하다 거리에 남은 팔레스타인 집은 현재 한두 채에 불과하다. 텅 빈 거리를 걸어 다니면 소총을 메고 조깅을 하거나 한 손에 소총을 들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유대인 정착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구도심지의 팔레스타인 상점과 주택이 밀집한 거리를 정착민들이 활보할 수 있도록 이들을 호위하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수시로 교통을 마비시키고 소리 폭탄을 발사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학교에, 일터에, 집에 가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검문하고 세워두고 체포하고, 간간히 죽인다. 군대의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통제 때문에 헤브론은 자발적 국제 활동가가 가장 많이 활동하는 곳이다. 그러나 국제 활동가들의 활동도 위축되고 있다.

헤브론의 암담한 미래

이브라힘 사원 학살 후 유엔은 헤브론에 임시 국제 모니터링 기구(Temporary International Presence in Hebron, TIPH)를 도입했다. 유엔으로부터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대의 활동을 모니터할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TIPH의 활동은 소극적이었고, 자발적 국제 활동가들이 자체 활동 중 인권 침해 발생 시 신고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올 1월 갑작스레 중단됐다. 네타냐후 총리가 6개월마다 으레 갱신해온 TIPH 활동 기간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트위터를 통해 발표한 것이다. TIPH의 강제 철수가 결정되자 세계교회협의회 역시 활동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철수를 선언했다. 극우파 유대인들은 세계교회협의회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에큐메니칼 동반자 프로그램(EAPPI)’의 활동가들을 촬영해 협박하는 등 오랫동안 괴롭힘의 표적으로 삼았다.

두 개 기관의 철수에 고무된 유대인 정착민들은 아직 남은 국제 활동가들의 사진으로 현상 수배 전단을 만들어 거리를 도배하고, 살해 위협을 가하는 등 남은 활동가들도 내쫓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모니터링 없이 어린이들은 이스라엘 군인과 정착민의 폭력적 시선 속에 학교를 오간다. 팔레스타인인 활동가들이 국제 활동가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지켜보는 눈이 줄어들 때면 폭력은 항상 늘어났다.

헤브론의 미래가 두렵다는 말 외에 표현이 안 된다. 더 암담한 것은 총선을 앞두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공습을 시작했고, 미국은 총선에 맞춰 중동 ‘평화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국제 연대 운동의 계속되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불법행위와 학살은 그리고 군사점령은 국제사회로부터 실효성 있는 어떤 제재도 없이 정상화되고 있다.[워커스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