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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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샌더스 페이스북]

버니 샌더스의 두 번째 미국 대통령 도전이 끝났다. 그는 4월 8일,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선거운동 중단을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위급한 시기에, 이길 수 없는 선거운동을 계속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며칠 후에는 경쟁 후보인 조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위험한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을 막기 위해 모든 미국인들이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2016년 민주당 경선 당시 샌더스는 23개 주에서 승리하고 46%의 대의원을 확보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상대로 접전을 벌였다. 이번에는 14개 주 경선이 동시에 치러진 3월 3일의 ‘슈퍼 화요일’ 이전까지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했지만 결국 초반의 돌풍을 이어가지 못했다.

샌더스는 흑인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을까

샌더스의 경선 포기 선언 후, 올해 78세인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두 번째 도전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다.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무상 대학교육, 학자금 대출 탕감 같은 과감한 정책들이 지지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잡아당긴 반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이상으로 비쳤다는 것이 대표적인 시각이다. 샌더스의 급진적 주장이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중도적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 어렵다는 주장이 2016년과 비슷하게 반복됐다.

이와 더불어 샌더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지지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는 주장도 종종 제기돼 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권자들이 샌더스보다 바이든을 민주당 후보로 더 선호한다는 정치적 주장은 대개 두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흑인 유권자들이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지지의 연장선상에서 오바마의 충실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을 선호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샌더스는 흑인 대통령의 지지자이기보다는 비판자이며, 흑인보다는 백인 노동자들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흑인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가진 반감과 관련된 것이다. 즉 그들이 샌더스보다 바이든이 트럼프를 상대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선 시작 전인 작년 11월, ‘너무 왼쪽으로 멀리 가지 말 것’을 주문하며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를 견제한 오바마의 입장과도 비슷하다.

흑인 유권자들이 바이든을 선호한 것은 결과적으로 사실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바이든이 처음으로 승리하며 기사회생한 2월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예비선거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이 선거에서 바이든은 48.7%의 지지를 얻어 2위(19.8%)인 샌더스를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흑인 인구 비율은 전체 515만 명 중 29.5%로, 미국 전체 흑인 인구 비율인 약 12%보다 훨씬 높다. 더욱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민주당 예비선거인단 가운데 아프리카계 미국인 비중은 무려 60%가량을 차지한다. NBC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날 흑인 유권자의 61%가 바이든에게 투표한 반면 샌더스는 고작 16%의 지지만을 얻었다. 이 정도의 쏠림이라면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로 바이든이 승리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과하지 않다. 다른 지역에서도 흑인이 바이든을 선호하는 경향은 뚜렷했다. 백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주민의 몰표로 샌더스가 승리한 3월 3일의 캘리포니아 경선에서도 흑인 층에서는 바이든 지지가 많았다.

[출처: 샌더스 페이스북]

샌더스를 지지한 젊은 흑인들

물론 실제 흑인 유권자들의 성향은 조금 더 복잡했다. 젊은 흑인 유권자들은 백인, 히스패닉, 아시아계와 마찬가지로 샌더스를 더 선호했다. 1월까지 여러 여론조사에서 35세 이하의 젊은 흑인들이 바이든보다 샌더스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드러냈고, 실제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CNN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샌더스는 30세 미만 흑인들에게 38%의 지지를 얻어 36%를 얻은 바이든에 앞섰다. 텍사스에서도 샌더스 지지율은 41%, 바이든은 31%였다. 테네시에서는 30세부터 44세까지의 흑인 유권자 37%가 샌더스를, 35%가 바이든을 지지했다. 이 주들은 흑인 유권자 비율이 높은 남부에 속하며 모두 바이든이 승리한 곳이다.

샌더스를 지지한 흑인들에게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샌더스의 여러 공약은 다른 어떤 후보보다 흑인 사회가 미국 정부에 요구해 온 내용을 충실히 담고 있었다.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시간당 15달러로의 최저임금 인상, 무상 대학교육과 학자금 대출 전액 탕감, 세입자 보호를 위한 전국적인 월세 규제 등 샌더스 공약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있는 대다수의 흑인이었다. 실제로 흑인들은 백인에 비해 복지를 확대하자는 정책에 긍정적이었다. 〈카이저패밀리파운데이션〉이 2019년 9월부터 11월 사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전 국민 의료보험에 대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선호도는 74%였다. 이는 44%를 기록한 백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일 뿐 아니라 샌더스의 주요 지지층인 히스패닉의 69%보다도 높은 수치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정책은 샌더스의 형사사법제도 개혁안이다. 이는 다른 어떤 인종보다 미국 흑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다. 샌더스는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경찰의 잔혹한 행위와 비무장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살해하는 행위를 막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은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유색인종을 감옥에 보낸 차별적 사법제도이므로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그는 민영 교도소 폐지, 사형제도 폐지, 가난한 흑인 남성이 ‘학교에서 교도소로’ 연결되는 구조적인 인종차별 혁파를 강조했다. 이러한 샌더스의 정책은 마틴 루터 킹의 운동부터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에 이르기까지, 흑인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요구해 온 내용을 온전히 반영했다. 특히 바이든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찰력 강화 법안인 1994년의 범죄법을 최초 작성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형사정책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차는 두드러진다.

샌더스의 인종 정책은 물론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 1960년대 대학생이었던 그의 이력에는 시민권 운동 참여 기록이 있다. 그는 시민권 운동 시기의 대표적인 단체인 인종평등회의(Congress of Racial Equality, CORE)의 시카고 대학교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며 공립학교의 인종차별 철폐 활동에 나섰다가 체포당한 이력이 있다. 1963년 8월에는 킹 목사가 주도한 워싱턴 행진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그에게 킹은 단순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외친 시민권 운동가가 아니었다. 샌더스는 늘 정부를 압박해 민권법과 투표권법을 통과시킨 이후의 킹을 강조했다. 즉 그에게 킹은 부유한 흑인과 ‘리버럴한’ 지지자들로부터 멀어져, 베트남 전쟁과 빈곤, 소득 불평등에 반대하다 암살당한 급진적 지도자다. 샌더스는 자신의 책 《우리의 혁명》에서 “킹 목사는 민권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암살당한 것이 아니라, 테네시 주 멤피스의 청소 노동자들과 함께 인간다운 삶에 어울리는 임금과 노동조건을 요구하며 싸우던 중에 암살당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흑인 운동과 접점을 가진 샌더스가 시민권 운동 세대의 투사부터 힙합 음악인에 이르는 진보적 흑인 유명 인사들의 지지를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장 최근인 3월 초에는 킹의 동료 시민권 운동가이자, 1980년대 두 차례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던 제시 잭슨 목사의 지지를 얻었다. 잭슨은 연설에서 “원주민을 제외하면 흑인은 미국에서 사회적·경제적으로 가장 뒤처진 사람들”이며 “가장 중도적 경로를 택해서는 따라잡을 수 없다”며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다. 지난 2016년 선거에서는 전설적인 시민권 운동가이자 가수인 해리 벨라폰테가 샌더스를 지지했다. 1980년대에 두 차례나 공산당 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던 앤절라 데이비스도 샌더스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데이비스는 수십 년 동안 감옥산업복합체(prison-industrial complex) 폐지와 구조적인 인종차별 비판을 주장해 온 운동가로, 이 문제들에 대한 견해는 샌더스와 데이비스가 거의 전적으로 일치한다. 오바마 행정부를 줄기차게 비판해 온 두 인물인 철학자 코넬 웨스트와 래퍼 킬러 마이크, 사회주의자 래퍼 부츠 라일리와 정치적 힙합의 아이콘 퍼블릭 에너미도 공개적으로 샌더스 지지 활동에 앞장섰다.

[출처: 샌더스 페이스북]

미국 흑인들의 다음 선택은?

이처럼 샌더스의 정책적 강점을 알아본 흑인들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흑인 대중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대변하는 후보가 아닌, 트럼프에게 승리할 만한 오바마의 파트너를 선택했다. 여기서 흑인 대중이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를 조금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샌더스 지지자인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키앙가야마타 테일러(Keeanga-Yamahtta Taylor)는 3월 14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사람들이 잘 언급하지 않는 이유를 하나 들었다. 그것은 샌더스의 정책들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볼 사람들은 정치에 가장 실망해 온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즉 정부의 정책은 그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았고, 정부의 실패는 투표가 삶을 개선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을 무너뜨려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흑인 대중은 투표만이 아니라 사회운동에서도 때로 좌절했다. 2010년대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는 결국 그 원인이 된 경찰 폭력을 끝장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혁명’이라는 샌더스의 주장은 여전히 추상적인 구호로 머물러 흑인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4월 13일 샌더스에 이어 다음날 오바마 전 대통령도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바이든에게 반감을 가진 샌더스 지지자들이 기꺼이 그에게 투표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샌더스의 흑인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15일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대학인 하워드 대학교의 샌더스 지지 모임은 바이든 캠프에 공개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편지에서 “흑인 학생의 가장 큰 관심사들을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후보를 위해 우리가 협조하거나 지지를 모을 것으로 예상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아울러 바이든이 샌더스의 청년 지지자들로 부터 지지를 얻고 싶다면 자신들과 직접 대화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바이든에게 건강보험제도 개혁, 학생채무 위기 대처, 이민제도 개혁, 여성의 완전한 낙태 권리, 고장 난 형사사법제도 개혁, 반제국주의적 외교정책, 노동권이라는 7가지 요구사항에 대한 확답을 받고자 했다. 바이든의 확답이 없다면, 이 청년들은 트럼프의 재선 저지라는 대의에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전쟁 이후 1932년 이전까지 미국의 거의 모든 흑인은 공화당에 투표했다. 민주당은 노예제와 인종 차별을 지지해 온 남부 기반의 당이었고, 공화당은 해방자 에이브러햄 링컨의 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이 흑인 생활을 개선한 1936년 이후에는 절대 다수의 흑인이 민주당에 투표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민주당의 오랜 동맹이 시작된 것이다. 1960년대를 거치며 보수적인 공화당과 진보적인 민주당이라는 양당의 이념적 지향이 분명해지자 이 동맹은 더욱 강력해졌다. 민주당은 민권법과 투표권법부터 오바마까지 흑인 대중에게 늘 무언가를 제공했고, 동시에 그것은 늘 불충분했다. 그리고 미국의 흑인은 2020년 노골적인 인종주의자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다시 전통적인 동맹을 선택했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의 흑인은 가장 먼저 해고되고 가장 늦게 고용됐다. 2020년 미국에서 코로나19의 피해는 흑인에게 먼저 닥쳤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4월 8일 발표에 따르면 흑인 인구가 많은 대도시 시카고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의 50%, 사망자의 65%가 흑인이었다. 뉴욕에서는 또 다른 소수인종인 라틴계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 흑인과 라틴계 주민들은 자가격리 없이 바깥에 나가 일을 해야 했고, 여러 명이 세 들어 살아야 했다. 기존의 인종별 건강 불평등에 따른 기저질환이 감염병 악화에 더욱 치명적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심지어 흑인 남성들이 범죄자로 취급받을 것을 걱정해 마스크 착용을 꺼린다는 의견도 있었다. 너무나도 굳건해 보였던 흑인의 선택은 대공황과 뉴딜을 겪으며 불과 4년 만에 극적으로 변했다. 감염병과 경제 위기로 한 치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오늘날, 미국 흑인들의 다음 선택이 무엇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