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농민 3천 명, 아시아 최대 설탕공장에 집단 소송

[INTERNATIONAL1] 캄보디아 농민들이 초국적 기업에 대한 문제제기의 벽을 넘다

  캄보디아 농경지가 불에 타고 있다. [출처: https://www.business-humanrights.org/]

초국적 기업에 법적 책임 묻기

국제사회의 주요 인권 현안 중 하나는 바로 초국적 기업의 인권침해를 법적으로 어떻게 제재할 것인가이다. 초국적 기업들이 한 국가에서 법률을 위반하거나 인권침해를 저지를 경우, 해당 국가는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그런데 사법상의 한계로 제대로 된 처벌은 쉽지 않다. 이는 비단 개도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국내 사법당국이 영국에 본사 둔 기업에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았다. 사법관할권이라는 벽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0년간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선 UN 차원의 조약을 만들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결국 2011년에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이 만들어지면서 각 국가가 기업의 인권 침해에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업에 인권을 존중하라는 권고 수준의 의무만 부여되고 있다. 물론 EU 국가를 중심으로 기업이 해외 공급망에까지 인권침해를 예방하는 조처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들도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초국적 기업들은 이런 견제에서 벗어나 있다. 한국에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움직임을 비롯해 기업의 인권침해를 강력히 응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해외 진출 기업을 포함해 어떤 방법으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지 결론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캄보디아 농민들이 초국적 기업을 에워싼 각국의 사법 장벽에 도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캄보디아 농민들이 집단소송 자격을 획득하다

사건은 아시아 최대 설탕기업인 태국 미트폴(Mitr Phol)사가 2008년과 2009년 사이 캄보디아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 건설을 시도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캄보디아 남서지역 오다르메안체이 지방에서 살던 농민들은 쫓겨나야 했다. 캄보디아에선 1970년대 크메르루주 정권이 들어선 뒤 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재산기록을 모두 없앴고, 그 여파로 토지소유권에 대한 기록이 사라지면서 토지 분쟁이 계속됐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 훈센정권이 중국과 한국 등의 기업에 광산, 발전소, 농장을 위한 부지를 제공하면서 현지 농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퇴거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이렇게 정부가 농민에게서 땅을 강압적으로 빼앗아 기업에 넘기는 바람에, 2000년대 이후 1600만 캄보디아 인구 중 77만 명 이상이 땅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훈센 정권은 이러한 토지 양허 정책을 2012년에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태국 설탕기업 때문에 강제로 땅을 빼앗긴 캄보디아 농부들의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미트폴 사는 자신의 토지수용은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아 합법적으로 이루어졌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이 악화하고 해당 지역이 농장 건설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와 태국 간에 국경분쟁이 일어나면서 결국 2014년에 이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그리고 자신이 수용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년이 넘도록 땅을 빼앗기고 고통받은 농민들은 보상받지 못했고, 땅을 돌려받은 농민도 현재까지 절반에 그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캄보디아 농민들은 현지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2015년 EU와 태국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관련 정부기관에 진정을 제출했다.

캄보디아 농민들이 집단소송 자격을 획득하다

2011년에 만들어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에 따라, 태국 국가인권위는 태국 정부와 기업이 캄보디아 농민들의 인권침해에 책임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인권위 권고에 따라 태국정부는 2016년과 2017년에 걸쳐, 태국 기업의 해외 투자 시 현지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태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상대로 인권존중의 책임을 권고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캄보디아 농민들은 실제 자신의 피해를 미트폴로부터 보상받지 못했다. 법적 강제조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2018년, 캄보디아 농민 3천 명은 태국법원에 미트폴의 강제 토지수용으로 입은 피해를 보상해달라는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타국 농민들이 집단적으로 초국적 기업의 소재지 국가의 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캄보디아 정부는 왜 농민들이 자국 법원이 아닌 태국에서 소송을 시작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태국에서 소송한 이유는 태국 정부와 기업이 이 문제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캄보디아 법원이 부패하고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태국 지방법원은 2019년 7월 4일, 캄보디아 농부들이 태국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들이 제기한 집단 소송을 인정하지 않았다. 개인 소송을 할 경우 소송비가 굉장히 높아져 농민들은 난관에 부딪혔다. 사실상 태국 법원에서 소송 진행이 힘들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지방법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만약 항소심마저 집단 소송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개인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마침내, 2020년 7월 30일, 태국 항소법원은 캄보디아 농민들의 집단 소송 자격을 인정했다. 캄보디아 농민이 자신들이 받은 피해를 태국 법원에서 주장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태국 항소심 판결의 의미

캄보디아 농민들이 태국 법원에서 태국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이 가능해 졌다는 의미는, 적어도 아세안 국가에서 활동하는 초국적 기업들이 인권침해를 저지르게 됐을 때 집단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국경을 넘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업 활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2011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 이후, 전 세계 어디서나 국가가 기업의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위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합의가 현실화 된 국제사회의 흐름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물론 한국기업들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프랑스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로 법정에 설 위기에 처해 있다.

태국 항소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태국 법원이 집단 소송의 자격을 부여한 것만으로도 초국적 기업들이 긴장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캄보디아 농민들이 법정에서 최종 승리하게 되면, 한국에서도 이 승리의 의미에 대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