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10년, 존엄한 삶의 부재

[워커스] INTERNATIONAL

  2018년 1월 튀니지 사람들이 물가 급등과 세금 인상에 항의하며 시위하고 있다.
[출처: https://www.rosalux.de/news/id/38271/leere-taschen-in-tunesien?cHash=55462ce98c8fc09521f50aa0c0eac018]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의 시디 부지드에서 행상을 하던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광장에서 분신한 뒤 튀니지 전역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이듬해 1월 14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벤 알리가 23년의 집권 끝에 사임하고 사우디 아라비아로 피신했다. 1월 25일 이집트 카이로 에서는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가 전개됐고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군에 전권을 이양하고 퇴진했다. 3월 6일에는 시리아의 반정부시위가 내전으로 이어지며 현재까지 38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 10월 20일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트리폴리 함락 후 도주하다 시위대에 살해됐다. 10월 23일 튀니지에서는 최초의 자유 선거로 제헌의회 선거가 치러져 이슬람주의 정당 엔 나흐다가 의석의 41%를 차지해 제1당이 된다. 2012년 2월 27일 예멘에선 1년여의 반정부운동 끝에 33년간 집권한 알리 압달라 살레가 퇴진한다.

이제 10년이 된 ‘아랍의 봄’의 주요 일지다. 유럽의 1848년 혁명 이후 거의 최초로 10여 개 국가에서 민중 저항운동이 진행됐다. 시위가 순식간에 혁명으로 전환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혁명 세력이 인적 자본, 정당,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아랍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즉 그때서야 민주주의와 자유에 눈을 뜬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SNS 등 기술적인 요인이나 우연적인 사건이 만든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며, 미국이나 유럽의 ‘민주주의 증진’ 전략의 산물은 더더욱 아닐 것 이다. 이미 2010년 이집트의 청년 활동가 할레드 사이드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경찰에게 무참히 폭행당한 후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그해 내내 지속하고 있었다. 즉 당시부터 이집트 등 아랍사회의 균열에 대한 얘기가 회자됐다.(1) 튀니지도 2008년 7월 가프사 지역 광산노동자 시위에서 아랍의 봄의 전조를 찾을 수 있다.

실패한 혁명?

하지만 튀니지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봄은 오지 않았다. 아랍의 봄의 시작만큼이나 결과도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다양한 양상을 띠었지만 많은 나라가 봉기 이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 한편에서는 독재의 붕괴를 경험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끝나지 않는 전쟁과 칼리파라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목격했다. 가장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튀니지조차 현실은 더욱 신중한 입장을 요구한다. 외부세계의 평가 역시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정치적 자유는 신장하고 민주주의 제도는 발전했지만, 물질적인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불평등은 여전하다.” 실업이나 기성세대와의 갈등과 같은 청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저항은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아랍의 봄은 실패했는가? 이 흔한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쉽다. 객관적인 지표들에 따르면, 아랍의 봄의 배경이 된 주된 요인들이 이후 호전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청년실업은 이집트에서 2010년 28%에서 2017년 34%로, 튀니지에서는 29%에서 35%로 악화했다. 부의 불평등 역시 심화해 상위 10%가 전체 부의 61%를 차지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으로 나타났다.(2) 물론 경제 상황이 사회운동의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민중의 삶의 질 개선과 함께 민주주의의 진보 역시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실패’의 원인으로는 외세의 개입이나 미약한 노동계급과 같은 요인이 많이 거론된다. 1990~ 2000년대에 이 지역에 확산한 신자유주의가 혁명의 방식과 경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한 글에서 아넌 고팔(Anand Gopal)은 실패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인해 중동 노동 계급의 힘이 극도로 약화한 것에서 찾고 있다.3

지대경제라는 전통적인 산업구조의 특성과 함께 최근의 경제정책이 노동계급과 좌파의 헤게모니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왜 아랍 현대사에서 저항운동의 주요 이념이었던 아랍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이번 혁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는지를 자문한다. 그러면서 아랍 세계 좌파의 풍부한 경험을 고려할 때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부재 현상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로 계급적 측면이 더욱 약화한 점을 강조한다.

  2019년 10월 레바논 베이루트 청년 시위대의 모습 [출처: https://www.rosalux.de/publikation/id/43375/der-unvollendete-arabische-fruehling?cHash=30de21d6aa294c1e5f41e09b9393af51]

혁명은 계속된다

중동 전문가 질베르 아슈카는 “질서가 우세하다” 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표현을 빌려 아랍의 봄의 암울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4) 그러면서 동시에 활화산처럼 언제 분출할지 모른다고 덧붙인다. 실제 2018년 모로코, 튀니지, 요르단, 수단에 이어, 2019년 수단, 알제리. 이라크, 레바논에서 전개되고 있는 ‘제2의 물결’ 또는 ‘제2의 혁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0년 전 주요 무대가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였듯, 지금도 알제리, 수단이 주된 무대다. 중동은 아랍의 봄과 지난해 ‘제2의 물결’을 거치면서 권위주의 국가가 있는 곳이나, 또는 국가의 부재를 경험하는 곳에서 민중의 저항운동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집트에서 알 시시가 철권통치를 고수하는 등 기존 체제가 유지되고 있지만, 시민은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억압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 이라는 징후도 나타난다. 10년 전보다 열기는 식었지만, 저항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아랍의 봄이 만든 시위 문화, 즉 SNS를 활용하거나 광장을 점거하는 것,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시위가 끝난 후 현장을 청소하는 등의 방식이 아랍 세계 전역에서 목격되고 있다.

혁명 10년의 튀니지

아랍의 봄의 진원지이자 민주화를 경험한 튀니지에서도 저항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멈춰 세운 지금도 시민은 튀니지 전역에서 파업, 농성, 도로점거를 통해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빈민이나 청년뿐 아니라 언론인, 법조인, 간호사 등도 이 대열에 가담했다. 일자리, 적정 노동조건, 부패 종식, 물·가스·의료 등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의 접근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역사학자 히다 트릴리는 튀니지인들이 겪고 있는 환멸과 환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튀니지는 1월의 환상 속에 산다. 1987년 1월 총파업, 1984년 1월 빵 폭동, 2011년 1월 혁명. 그리고 모든 사람이 2021년 1월을 생각하고 있다.”

튀니지경제사회권포럼(FTDES) 대표인 압데라만 에딜리 역시 유사한 진단을 내놓고 있다.(5) “사회운동이 격화되고 있다. 발전모델의 실패가 자유, 노동, 존엄성을 요구하는 시위의 배경이었다. 그런데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 포럼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1백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제도권 교육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올해만 해도 1만2천명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주를 택한 이들은 말한다. 이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튀니지에서 자신들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민을 떠나는 것, 여기에서는 그것만이 꿈이다.” 고학력자의 이주는 더 나은 곳을 찾아 떠나는 전통적인 두뇌 유출이 아닌 일자리와 생존이 어려워 반강제적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의 한 조사기관이 17개 아랍국가 18~24세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년 시행하는 ‘아랍 청년 조사’(Arab Youth Survey) 2020년 판의 결과에 따르면, 아랍에 거주하는 약 2억 명의 청년 중 42%가 이민을 꿈꾸는 것 으로 나타났다. 이 중 15%는 이주를 적극적으로 준비한다고 답했고 25%는 단순히 생각하는 정도였다. 국외 이주를 원하는 이유로는 부패를 가장 많이 꼽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도 크다. 중동 역시 세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팬데믹 으로 인해 경제가 악화했다. 아랍국가의 부채가 2020년 크게 증가한 가운데 응답자의 20%는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이 팬데믹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었다고 답했다. 아랍의 봄 10년 후 많은 수의 청년이 오지 않는 미래에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6)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는 자유와 민주

38살의 경영학 박사 베시르 모클린은 정부의 교육연구부 건물 앞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자유?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는 자유는 엉터리다!”, “3천5백 명의 박사 실업자가 있다. 기껏해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일자리만 찾을 수 있다. 2016년부터 채용이 멈췄다.”(7) 시위대의 리더 중 한 명인 화학박사 마넬 셀미는 “10년 전 나도 거리에 나섰다. 그때에는 꿈이 많았다” 라고 말한다. 아랍의 봄을 이끌었던 가치는 자유, 사회정의, 존엄성 등이었다. 자유는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정치참여의 기회 보장 등을 의미하고 사회정의는 부정부패와 불평등을 겨냥한 표현일 것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존엄성이다. 다소 교과서적인 이 용어가 아랍 세계의 맥락에서는 자유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정도의 고용 조건과 권리 보장, 사회의 자존감을 훼손시키지 않을 정도의 대외관계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튀니지는 어디로 가는가? 혁명에서 복고로》 (2019)의 저자 아템 나프티에 따르면(8) 현재 튀니지 국민은 혁명이 한 가지 성과만 낳았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가 그것이다. 벤 알리시대 (1987~2011년)에는 튀니지를 지배하는 벤 알리 가문에 대해 농담을 하려면 여러 번 주변을 살펴야 했고 결국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달라졌다. 튀니지인들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 자유의 신장과 함께 민주주의 제도가 갖춰졌고, 아직 미숙하고 느리지만 작동을 시작하고 있다. 1959년 왕정을 폐지하고 선포한 공화국이 벤 알리의 독재로 중단된 후 이제 어렵사리 ‘제2 공화국’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 선거가 실시됐고 최근에는 개혁적인 인물이 대통령에 선출됐다.

혁명은 과거에 상상도 못 했던 자유를 가져다 줬지만, 혁명을 이끌었던 다른 요구들은 그렇지 못하다. 일자리와 존엄성이라는 청년들의 요구는 충족되지 못했다. 2015년 테러가 이어지며 경제 상황이 악화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집트와 유사하게 혁명 이전이 더 나았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화가 아랍의 봄과 그 이후의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최우선적인 과제는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랍의 봄’은 정말 실패하고 만 것인가?

언론은 주로 혁명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보내고 있지만, 혁명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평가는 보다 신중하다. 2020년 12월 17일 프랑스 주간지〈 누벨옵세르바퇴르〉는 16~19세의 나이에 아랍의 봄에 참여했던 이들의 궤적을 보도한 바 있다.(9) 28세의 튀니지계 프랑스인 아자르는 말한다. “나는 다른 형태의 권력을 경험했다. 혁명 과정 동안 벤 알리 정권이 저지른 범죄를 조사하는 진실존엄위원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벤 알리 정권의 희생자들이 발언권을 가지게 되고 법적인 인정을 얻게 된 것이다. 이것만 해도 혁명이 아무 소용없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이라크계 벨기에인인 비디오아티스트 아나스는 아랍의 봄이 실패도 성공도 아니라고 말한다. 아직 끝에 이르지 않은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많은 혁명을 겪게 되리라 생각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프랑스 혁명을 보라! 혁명은 시간이 필요하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출처: https://www.rosalux.de/news/id/43038/missing-peaces?cHash=6de4c7a73d936faa5290777c520076bf]

[각주]
(1) https://www.la-croix.com/Debats/printemps-arabes-ont-ils-vraimentechoue-2020-12-17-1201130735, 2020년 12월 18일 검색.
(2) http://www.jstor.com/stable/resrep21142.9, 2020년 12월 18일 검색.
(3) Anand Gopal, 2020, “The Arab Thermidor”, Catalyst, Vol.4 No.2, Summer 2020.
(4) https://jacobinmag.com/2019/01/arabspring-authoritarianism-rosa-luxemburg, 2020년 12월 18일 검색.
(5) https://www.la-croix.com/Monde/En-Tunisie-gout-amer-10-ans-revoluti on-2020-12-17-1201130621, 2020년 12월 18일 검색.
(6) https://www.la-croix.com/Monde/42-jeunes- Arabes-revent-demigrer-2020-10-08-1201118389, 2020년 12월 18알 검색.
(7) https://www.la-croix.com/Monde/En- Tunisie-gout-amer-10-ans-revoluti on-2020-12-17-1201130621, 2020년 12월 18일 검색.
(8) https://www.nouvelobs.com/ monde/20201217.OBS37667/en-tunisie-la-revolution-se-poursuit-mais-son-avenir-est-plus-que-jamais-incertain.html, 2020년 12월 18일 검색.
(9) https://www.nouvelobs.com/ monde/20201217.OBS37671/ils-avaient-entre- 16-et-19-ans-pendant-le-printemps-arabe-en-tunisie-ils-temoignent-dix-ans-plus-tard.html, 2020년 12월 18일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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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세상 독자

    김종인이가 마침내 치매가 걸렸구나. 윤석렬 검찰총장을 대권후보가 될 수 있단다. 아주 검찰을 통째로 말아먹는구만. 이 양반아, 치매 걸렸으면 비대위원장 그만 두고 집에서 쉬어. 중고등학생한테 뺨 맞고 다구리 당할 소리나 하지 말고. 국회에도 윤석렬 검찰총장의 선배들이 수두룩한테 어느날 갑자기 대권후보로 모시겠어. 으이구, 그러니까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인가보구만. 이 양반아 검찰에서 전무후무하게 대선후보로 오를 정도의 큰 인물이 나왔으면 그것으로 족해야 인간적인 것이지 꼭 대선판까지 들어가서 먹칠을 해야 하나.

  • 참세상 독자

    이 분은 그 엄청난 학문을 지닌 분이군요. 참세상에 또 한 분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