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소환한 베일 논쟁

[INTERNATIONAL2]

복장을 규제하는 국가

2021년 3월 7일 스위스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안면을 가리는 베일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민투표에서 51.2%의 찬성으로 가까스로 통과됐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의도를 가진 어떠한 복장도 금지"하는 법안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한 유권자들이 선택한 것이다. 민감한 사안임을 고려해 해당 의상의 명칭이 명시되지는 않았다. 법안을 발의한 극우 성향의 집권당 의원들은 심지어 이 법의 대상에 훌리건들도 포함된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기도 했다. 스위스에서는 12년 전 이슬람의 상징 중 하나인 미나레트, 즉 모스크의 부속 건물로 예배시간을 알리는 시설의 건축을 국민투표로 금지했는데, 또 다시 이슬람의 상징으로 여겨진 베일 금지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진 것이다.

법안이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연방 차원의 판결이 나온 사례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법이
 문제 삼는 복장을 착용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매우 드물어 전국적으로 몇십 명에 불과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부르카 문제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지 말았어야 한다는 다음 견해를 이해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는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착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새로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이다. 무슬림의 존재가 불만스러운 이들을 자극하기 위한 조치이다. 현재에도 지자체 차원에서 과도한 형태의 복장을 규제하는 법이 이미 존재한다."(1)

  2020년 7월 벨기에에서 히잡을 쓸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 장면 [출처: @aneesaxk]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초래한 모순적 상황

이러한 과도한 법제화의 문제와 함께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는 최근의 상황이 공공장소에서 안면을 가리는 복장 착용을 금지하는 것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프랑스에선 2004년 학교에서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고, 2010년에는 공공장소에서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며 이러한 변화를 일찍이 선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프랑스에서도 코로나19에 학교나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상점에서도 손님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이 두 조치는 프랑스가 이전까지 학교, 대중교통, 상점과 같은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이나 노란조끼 시위대의 두건 착용 등에 극도로 엄격했던 점을 되돌아보게 했다. 특히 무슬림 주민들에게는 이 조치가 불편하게 다가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에 입을 맞추는 프랑스식 인사를 거부하는 것을 급진적인 성향의 표식으로 간주했는데 이제는 정반대로 이것을 공중보건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태도로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종교적 표현으로 의상을 착용하는 것과 공중보건 차원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의 차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반니캅법 2조에 따르면 안면을 가리는 복장 금지는 이 복장을 착용하는 것이 건강상의 이유나 직업적인 이유일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모순되지 않는다. 또한 감염 예방에 있어서 머리나 얼굴을 가리는 히잡, 니캅, 부르카 등이 마스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양자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베일의 다양한 의미

베일은 사회마다 다른 형태를 띤다. 그리고 무슬림 여성만 이것을 착용하는 것도 아니다. 고대부터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러한 의상이 존재해 왔으며, 중동의 경우에도 이슬람이 창시되기 훨씬 전부터 태양, 바람, 또는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안면의 일부를 가리기 위해 사용해 왔다. 자주 언급되는 용어만 살펴보면, 먼저 히잡은 머리만을 가리는 베일을 지칭한다. 부르카는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세계에 알려진 파슈툰 족의 전통의상이다. 파란색 또는 고동색의 긴 베일은 신체 전체를 가리고 안면을 격자무늬로 가린다. 니캅은 이슬람의 보수 이념인 와하비즘이 확산한 도시 지역에서 여성들이 착용하는 것으로 눈 부분만 노출한 의상이다. 차도르는 이란의 전통의상을 가리킨다.(2)

근대 이후 서구인들의 사고에서 베일을 쓴 여성은 아랍 또는 이슬람 사회의
이질성과 후진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현실은 보다
 복합적이다. 베일을 착용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풍습이 현대사회에서 부활하는
 현상은 다양한 배경과 의미를 가진다.
먼저 베일은 착용이 강요되기도 하고 금지되기도 한다. 심지어 아랍 및 이슬람 사회에서도 그렇다. 히잡 착용 금지는 이란, 터키, 튀니지 등 20세기 초중반에 일찍이 근대화를 시도했던 사회들에서 전통을 극복하고 보편적인 문명에 진입하는 것을 상징하는 조치였다. 현재 유럽의 이주민들을 염두에 두고 몇몇 국가에서 도입한 베일 금지 조치도 이와 유사한 논리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20세기 후반 중동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히잡 착용이 보다 이슬람적인 사회의 징표로 강요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보수적인 아랍국가들이나 이란에서는 여성의 히잡 착용 여부를 단속하는 '도덕경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베일 착용의 의미 역시 다양하다. 국가의 금지에도 베일을 착용하는 행위는 시민불복종의 한 형태일 수 있다. 역으로 착용을 의무화하는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 사회가 요구하는 베일의 착용을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도시화로 인해 낯선 이들과 접촉하게 된 여성들이 불가피하게 착용하기도 했다. 이슬람주의에서처럼 근대적인 사회체제에 대한 거부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민주화운동에서 부패한 기성질서에 대한 비판을 상징하기도 했다.

문제인가? 문제를 만드는가?

앞서 언급한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안면을 가리는 복장 착용 사례는 관련 법 제정 이전이나 이후나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법을 위반한 사례가 한 해에 200-300건 정도였고 모두 경고조치에 그쳤다. 많지도 않지만 기존에 착용한 사람들이 법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이 관행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별 효과가 없는 것이다. 최근 『니캅의 이면』을 출간한 아녜스 데 페오(Agne ́s De Fe`o)는 법 시행 이후 10년 동안 니캅을 착용한 200여 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3) , 이 여성들이 이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즉 배우자에 종속된 급진적인 이슬람 신봉자라는 이미지에 크게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족이 강요한 것이라는 인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이들의 상당수는 미혼이었다. 니캅 착용이 독실한 신앙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의 종교에 대한 생각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법 시행 이후에 니캅을 착용하기 시작한 이들이 있었는데 이 법으로 인해 낙인이 찍힌 무슬림들에 대한 연대 차원에서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2017년경부터 프랑스에서 니캅 착용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법의 효과가 아니라 외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즉 2014년부터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던 이슬람국가(IS)가 이슬람에 부정적인 평판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다.

  스위스 국민투표 홍보 피켓 [출처: @VOLFdotTV]

그렇다면 중대하거나 시급한 사안이라고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법제화가 진행되는 배경은 무엇인가? 여성의 복장 그 자체보다 더 중대하고 시급한 정치적인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법이 제정된 스위스의 경우 전체 인구 850만 중 무슬림의 비율은 4.4%이며 열성 신자는 드물고 스위스 사회에 잘 통합돼 있다고 평가된다. 출신 국가 등에 따라 여러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고 무슬림을 대표하는 정치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라 스위스 사회에서 무슬림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집권 극우정당 스위스국민당의 이해관계였다. 이 정당은 최근 몇 년간 지지율이 하락해왔다. 지지율이 30%에 가까웠던 2010년대 초반에 비해 상황이 나빠진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전히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환경 문제나 코로나 19 팬데믹과 같은 다른 이슈들이 부상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4)

프랑스에서는 학교 급식에서의 할랄 식품 제공, 이민 현상, 테러 사건 등이 대선 시기에 단골 메뉴로 등장해 일정 정도 선거에 영향을 미쳐왔다. 이슬람과 무슬림을 향한 편견이 공화주의 이념, 성평등, 정교분리주의 등의 가치를 내세워 유지되어온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반이민·반이슬람 정서가 강화되고 이를 주도하는 시민사회 및 정당의 발언권이 커졌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슬람과 무슬림을 겨냥한 범죄도 기승을 부리게 된다. 그리고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무슬림 여성들이다. 인과관계를 보면 이슬람이나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 결과인 빈곤 및 배제가 무슬림들을 고립시키고 극단적인 길로 몰아가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닌 것이다. 이주민들은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고자 이주를 택했고 이주한 나라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이주민들의 후예들은 더더욱 통합에의 의지가 강하다. 실제 2세대의 사회통합 정도는 1세대뿐 아니라 심지어 기존 토박이들보다도 강한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도 이주민들이 가장 자주 하는 얘기는 아마 "우리는 통합을 원한다"일 것이다.

식민지 유산

베일 금지법이 사실상 무슬림 여성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 프랑스 식민주의의 유산이라는 평가도 있다. 수십 년 전 프랑스가 알제리 여성의 안면을 드러내고자 했던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피식민지 여성의 베일은 식민지배자들의 성적 환상의 소재에서 시작해 최근 식민 본국에서 혐오의 소재가 된 것이다. 서구문명과 아랍여성의 관습을 대립시키고 후자를 문명화한다는 사고가 최근의 베일 금지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알제리에서 베일은 오리엔탈리즘의 소재에서 서구화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년) 당시 베일은 1979년 이란혁명 당시 차도르와 유사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식민당국에는 남성에 대한 굴종의 상징으로 간주된 베일이 주체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변신한 것이다. 또 다른 측면이 있기도 하다.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한 알제리인들의 삶에 대한 연구에서 피에르 부르디외와 압델말렉 사야드는 생존이 위협받고 삶의 터전을 잃은 피식민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통에 대한 의존을 기존에 그들이 잘 통합되어 생활하던 공동체에서의 '전통적 전통주의'와 대비되는, 그리고 전통과 무관한 '절망의 전통주의'로 표현한 바 있다.(5)

동등한 존재로서의 무슬림 여성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문제인가? 니캅을 착용한 여성의 모습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정통파 유대인들의 의상만큼이나 섬뜩한 느낌을 준다. 혐오감이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낯선 것에 대한 정서적인 거부감이나 납득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반감이 법적 개입이나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기는 않는다. 그 이상의 조건이 필요하며 유럽의 베일 착용 금지법의 사례는 이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베일을 문제시하는 국가의 태도에서 우리는 어느 민족이나 종교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일탈 현상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 이를 일반화함으로써 집단 전체를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슬람이 공화국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 4500만 정도로 유럽 인구의 6% 정도를 차지하는 무슬림이 유럽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생각, 통합의 대의를 내세우면서 인구의 일부를 배제하는 모순적인 태도, 남성의 위협으로부터 무슬림 여성을 보호한다는 과도한 사고가 식민지 시대 이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베일과 같은 여성의 복장 착용이 필시 남성의 강요에 의한 것이고 무슬림 여성은 자신의 몸에 관한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제한다. 주류사회 성원에게 매우 낯선 복장의 선택이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입각한 이성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은 베일 논쟁에서 보이지 않는다. 잘못된 것일지라도 어떤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의 능력을 갖춘 이성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 지금과는 다른 성격의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퇴행적인 신념을 가지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따져보고 이들에게 발언권을 보장해야 교착상태에 있는 민족 간, 문화 간 관계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https://www.lemonde.fr/international/ article/2021/03/07/en-suisse-une-votation-sur- le-niqab-ne-masque-pas-la-perte-de-vitesse- de-la-droite-populiste_6072230_3210.html, 2021년 5월 20일 검색.
2) https://www.lapresse.ca/ international/201001/26/01-943044-hidjab- niqab-tchador-ou-burqa.php, 2021년 5월 20일 검색
3) Agne`s de Fe ́o, 2020, Derrie`re le niqab, Armand Colin.
4) https://www.lemonde.fr/international/ article/2021/03/07/en-suisse-une-votation-sur- le-niqab-ne-masque-pas-la-perte-de-vitesse- de-la-droite-populiste_6072230_3210.html, 2021년 5월 20일 검색.
5) Pierre Bourdieu & Abdelmalek Sayad, 1964, Le de ́racinement, Les e ́ditions de m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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