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압에 의연하게 싸우는 차우항단,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NTERNATIONAL1]

숨죽인 도시의 등불 하나

대규모 시위와 저항에도 꿈쩍하지 않는 당국. 코로나 팬데믹, 그리고 국가보안법 통과 이후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폭압. 2년 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던 홍콩의 현재 모습이다. 일국양제로 상징되던 제한된 민주주의와 자치의 공간이 사라지면서 노동조합은 스스로 해산 결정을 내렸다. 활동가들은 구속되거나 많은 홍콩 시민의 선택처럼 해외로 탈출해야 했다. 중국에 반대하는 언론은 폐간되고, 선거 입후보도 봉쇄당했다. 사실상 홍콩에서 더 희망을 찾기란 어려워 보였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중국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해 온 홍콩의 차우항단(Chow Hang Tung) 변호사의 투쟁이 주목받고 있다. 홍콩은 매년 천안문 항쟁일인 6월 4일에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촛불집회를 개최해 왔다. 중국의 일부지만 천안문 항쟁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대규모 촛불집회는 일국양제의 상징과도 같은 행사였다. 그리고 이 행사를 개최해온 ‘애국민주운동 홍콩시민연합회’(지련회)에는 홍콩노총을 비롯한 홍콩의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가입해 활동해왔다.

  차우항단 변호사 [출처: 차우항단 페이스북]

올해 6월 4일을 앞두고는 홍콩 당국이 촛불집회와 더불어 천안문 기념행사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다. 지련회의 대표이자 홍콩 노동운동의 상징인 리척얀 홍콩노총 사무총장은 이미 구속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부대표인 차우항단 부주석은 당국의 탄압에도 촛불집회를 조직했다. 결국 홍콩 당국은 6월 4일 당일에 차우항단 부주석을 체포했다. 이후 보석과 체포가 반복되는 와중에도 차우항단 변호사는 결연하게 당국과 맞섰다. 국가보안법으로 상징되는 계엄령하에서 홍콩노총이 해산 결정을 내리고, 지련회 마저 해산을 결정했을 때, 옥중에서 그는 싸우지도 않고 해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옥중에서 호소했다.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홍콩 사회는 중국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한 신고가 급증하며 시민사회의 공간이 극도로 위축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 차우항단 변호사의 투쟁 호소는 홍콩 활동가뿐 아니라 시민에게도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각종 혐의가 적용돼 몇 년을 감옥에서 보낼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구속 후에도 당당하고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차우항단 변호사의 모습은 홍콩 시민을 위로하는 등불이 되고 있다.

홍콩 시스터

차우항단 변호사를 처음 만난 건 2011년이었다. 필자가 활동하는 국제민주연대를 비롯해 아시아 지역 노동단체와 노동조합은 지난 2002년 아시아 지역 다국적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한 아시아다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Asian Transnational Corporation Monitoring Network)1를 결성하고 격년제로 총회를 개최해왔다. 차우항단이 2011년 대만에서 열린 총회에 참석했을 당시는 그가 홍콩에서 중국의 노동문제에 대응해온 ‘Labor Action China’라는 단체에서 막 활동을 시작했던 때였다. 이 회의를 통해 필자는 차우항단과 친해질 수 있었다. 차우항단은 2012년에 반올림이 주최한 전자 산업 노동권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다른 홍콩 활동가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삼성본관 앞에서 국제회의 참가자들과 항의 행동을 벌인 적도 있다. 이후 차우항단은 영국에서 유학해 법대를 졸업하고 홍콩으로 돌아와 인권변호사 및 중국민주화 활동을 이어왔다.

차우항단이 변호사가 된 후에도 필자는 홍콩과 한국에서 그를 지속해서 만나며 교류를 이어왔다. 2011년부터 약 10년 동안 매년 한 번은 만나서 함께 술을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는데, 차우항단이 처한 어려움을 알게 된 건 2019년 홍콩 시위가 시작되고 나서였다.

2019년 홍콩 시위 때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 중 하나는, 홍콩 시민의 시위가 반중감정에 따른 중국인 차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상당수의 홍콩 시민은 중국의 억압에 분노하며, 왜 홍콩이 중국의 민주화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지련회의 활동을 못마땅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차우항단은 중국과 홍콩 당국의 탄압 전부터, 중국 민주화 활동에 대한 홍콩 내부의 입장 차이로 공격과 비판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언제나 유쾌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를 ‘홍콩 시스터’라고 불렀다. 그가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던 그런 사연들을 나중에 알고 나서야, 차우항단이 현재 암울한 홍콩에서 시민들에게 인정받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지금에서야 중국 민주화에 대한 입장을 넘어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속상하지만, 친구가 현재 홍콩에서 너무나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해

최근 홍콩 당국은 차우항단에게 대외적인 발언 및 활동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동안 페이스북2을 통해 홍콩과 아시아의 수많은 친구와 교류해온 그는 표현의 자유를 얻지 못하느니 인신의 자유를 포기하겠다며 보석을 거부했다. 그리고 이러한 차우항단의 저항은 재판에서 더욱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당분간, 아니 어쩌면 한참을 그와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얼굴을 보려면 홍콩에 가서 면회를 해야 하는데, 홍콩을 갈 수 있을지, 면회가 가능한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홍콩에서 폭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 싸움이 많은 홍콩시민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고 있음을. 그리고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에도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홍콩 활동가가 그 싸움의 소중한 희망이 되고 있음을 꼭 한국 사회에도 알리고 싶었다.

최종 판결이 나면 중국대사관 앞에서 친구의 석방을 요구하는 1인 시위 일정이 추가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연말이면 홍콩의 감옥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도. 1인 시위와 편지 보내기 외에도 친구와 하루 속히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 너무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보고 싶다고, 이 지면을 빌어 그에게 마음을 전한다.

<각주>
1. https://www.facebook.com/ATNCMonitoringNetwork
2. https://www.facebook.com/tonyeec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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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당분간, 아니 어쩌면 한참을 그와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얼굴을 보려면 홍콩에 가서 면회를 해야 하는데, 홍콩을 갈 수 있을지, 면회가 가능한지도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홍콩에서 폭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음을, 그 싸움이 많은 홍콩시민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고 있음을. 그리고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주의에도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홍콩 활동가가 그 싸움의 소중한 희망이 되고 있음을 꼭 한국 사회에도 알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