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사람들

[NTERNATIONAL4] 내가 왜 너를 그리워하는지 아니?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영화에서처럼 추격을 당할까 봐, 이곳에서 쫓겨날까 봐, 우리와 팔레스타인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난해 2월, 나와 친구들은 팔레스타인 요르단 계곡에 있는 바르달라 마을에 있었다. 1월에 트럼프의 중동평화구상(1)이 발표된 후 요르단 계곡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팔레스타인 활동가 라시드가 있는 바르달라 마을에 머물며 할 일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이 그곳까지 미쳤다. 이스라엘 당국은 당시 성지순례를 온 한국인들이 바이러스를 전염시킬까 봐 자국 경비까지 들여가며 모든 한국인을 거의 강제추방하다시피 돌려보내고 있었다.(2)

팔레스타인 보건 당국도 긴장하고 있었다. 급기야 저녁 8시만 돼도 거리에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 머물던 우리에게 밤 10시에 팔레스타인 보건 담당자가 찾아와 내일 코로나 검사를 받을 거라고 알려줬다. 심지어 다음날까지 기다릴 수 없었는지 자정이 가까운 늦은 시간에 낯선 방호복을 입은 의사가 찾아와 코로나 검사를 하고 돌아갔다. 결과는 내일 알려 준다는 말만 남긴 채.

우리는 심란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만약 우리 중 누군가가 확진 판정을 받아 동선을 밝혀야 한다면 우리가 만났던 많은 팔레스타인 활동가의 이름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 어떻게 활동을 마무리해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렇다고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한 채 대책 회의를 하며 지내야 했다. 우리의 유일한 안식은 라시드의 형인 왈리드가 운영하는 자와파(구아바) 농장에서 나무 가지치기를 하며 농장을 돌보는 것이었다.

와엘

  한글을 배우고 있는 와엘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그때 와엘에게서 전화가 왔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오랜 동지인 와엘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블루스에서 우리와 함께 이런저런 일들을 했었다. 와엘이 수화기 너머로 “안녕!”하고 어색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더니 점퍼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하나 꺼내 더듬더듬 “밥은 먹었어? 가족들은 잘 지내?” 같은 말을 읽어 내려갔다.

그 며칠 전 우리는 약간의 자유 시간을 내 저녁에 와엘과 에발산(3) 언저리 언덕에서 모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연히 몇 마디를 가르쳐주게 됐는데 와엘이 나중에 공부한다며 메모를 했었다. 와엘이 우리에게 물었던 한국어는 세 마디였다. “안녕”, “밥은 먹었어?”, “가족들은 잘 지내?” 그때는 별생각 없이 그저 유쾌한 분위기에서 서로 웃으며 한국말을 공부했었다. 하지만 마음이 심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듣게 된 와엘의 한국어 인사는 가슴 깊숙이 들어와 버렸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타국에서 듣는 “밥은 먹었어? 가족들은 잘 지내?”라니.

와엘은 구속과 구금, 출국 금지 등 이스라엘군 당국의 갖은 탄압에도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을 멈추지 않는 활동가다. 와엘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진지함, 다른 하나는 다정함이다. 일할 때 보이는 한없는 진지함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보이는 다정한 주름과 눈매, 목소리와 말투. “한국말 어떤 거 배우고 싶어요?” 물어봤을 때 그가 선뜻 꺼낸 말은 “가족들은 잘 지내?”였다. 와엘의 활동은 본인은 물론 가족을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안녕, 와엘! 밥은 먹었어요? 가족들은 잘 지내요?” 안부를 묻습니다.

아미나

아랍은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환대 문화’가 널리 퍼져있다. 나블루스 올드시티 여행을 하던 중 우연히 담벼락에 소담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려놓은 한 여성단체 공간을 발견했다. 막 퇴근 준비를 하던 활동가 ‘아미나’를 그렇게 만났다. 아미나는 이곳저곳 공간을 안내해주었고 활동에 관한 팸플릿도 챙겨주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우리를 기꺼이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우린 더 기쁘게 그 초대를 받아들였으며, 주소와 전화번호만 받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날 우리는 정말 힘들고 가슴 떨리는 하루를 보냈다. 쿠프리 깟뚬이라는 나블루스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의 금요 집회에 참여한 날이었다. 총을 멘 이스라엘 점령군들이 사냥하듯 어슬렁거리며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장면을 본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더 이상 뭔가를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숙소에서 몇 시에 올 거냐는 아미나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가고 싶은 마음 반, 가기 싫은 마음 반이었다. 그러나 아미나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축 처져있던 마음이 100%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고작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도 아미나와 가족들은 우리를 정말 편안하게 대해줬다. 융성한 대접은 손님 같았고 친밀한 태도는 가족 같았다. 아미나의 남편은 팔레스타인의 많은 이들이 그렇듯 젊었을 때 감옥 생활을 하며 몸이 불편해졌고, 지금까지도 거동이 불편해 잘 움직이지 못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는 아미나의 남편과 인사를 나눈 뒤 부엌으로 갔다. 와, 진짜 산더미 같은 노란 캅사(4)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마치 식당에서 파는 것처럼 큰 캅사의 산이었다. 우리는 노란 캅사를 사이에 두고 손님과 가족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즐겁게 저녁을 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아미나의 가족 이야기,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 이야기를 나눴다. 넉넉해 보이지 않는 살림이었는데도 처음 만난 우리를 기꺼이 저녁 식사에 초대해 준 아미나. 나는 아미나의 집에 손님보다 많은 천사가 방문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위즈단

“지금 택시를 보냈으니 타고 오세요.” 세바스티아를 산책하다 위즈단의 전화를 받았다. 위즈단은 다큐멘터리 ‘올 리브, 올리브(All Live, Olive)(5)에 출연해 한국에서도 꽤 유명한 팔레스타인 여성이다. 택시를 타고 위즈단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 집으로 갔다. 저 멀리 사람들이 마당에서 서성이는 집이 보였고 역시나 그곳이 위즈단의 부모님 집이었다. 마당에 샛노란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큰 레몬 나무가 있고, 2월이면 팔레스타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활짝 꽃 핀 아몬드 나무, 올리브 나무가 있는 곳.

  위즈단 어머니께서 해주신 저녁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위즈단과 부모님, 여동생 둘, 아이들, 나중에는 오빠 식구들까지. 대식구가 우리를 맞이했다. 위즈단의 어머니는 성대한 저녁을 준비했는데 채소 볶음밥, 닭고기 볶음밥, 채소 무침 등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렸다. 위즈단의 어머니는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도 자식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고 덕분에 위즈단은 은행에서, 동생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위즈단 가족 역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난민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고향인 자파를 떠나와 자리를 잡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했다. 여전히 고향에는 갈 수 없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들은 언제나 유쾌했다. 절망만으로 살기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시기가 너무나 길고 혹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즈단 가족이 한국에서 유명한 영화배우라는 것을 알려줬고 가족들은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오랜 점령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마음이 모래처럼 버석거리기만 할 것 같지만 오히려 이들과 있으면 웃을 일이 많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웃음이 나고 행복이 번진다.

낮에 우리는 알고 지내던 남성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속상한 마음을 위즈단에게 털어놓았다. 위즈단은 뺨을 한 대 치지 그걸 그냥 두었냐고 열을 냈고 위즈단의 오빠는 세바스티아 남성이 그렇게 했을 리가 없다고 두둔했다. 난 둘 다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남녀의 구별이 엄격한 무슬림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되니까 뺨을 한 대 때려야 하고, 그리고 절대로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위즈단 말처럼 무슬림 남성의 뺨을 치지도 ‘내가 착각했을 거야, 그 사람이 그랬을 리가 없어’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우리는 서로 연대하고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나오는 위즈단의 목소리(내레이션)에서는 굉장히 힘이 느껴졌는데 직접 만나본 위즈단은 자신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위즈단 가족의 모든 여성이 그랬다. 위즈단의 어머니는 그날 남은 저녁밥과 채소, 레몬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쌀을 싸줬고, 포도 잎으로 밥 찌는 법도 상세히 알려줬다. 우리는 늦은 저녁이 돼서야 샛노란 레몬과 환한 아몬드꽃 아래서, 사막처럼 많은 별들을 보며 또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어 더 아쉬운 이별의 포옹을 했다.

바셀과 돌멩이를 든 아이들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연 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모두 본인이나 가족 중 누군가가 감옥에서 고생했고, 고향을 떠나왔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외국도 갈 수 없고 취업 제한도 받는다. 그런 세월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강인함과 희망 같은 흔적이 보인다.

우리는 나블루스에 있는 올드시티 안에서 우연히 바셀이 운영하는 숙소에 묵게 됐다. 바셀은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올드시티 안에는 빈집이 꽤 많은데, 그중 두 채를 빌려 한 채는 숙소로, 한 채는 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호텔은 자원한 청년들이 운영하고 있었고, 이를 배우려는 각지의 청년들이 찾아왔다. 카페는 아침부터 나블루스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바셀은 계획이 있는 사람이었다. 올드시티에 젊은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고 커피 향과 함께 팔레스타인의 향을 여기저기 퍼트리며 다녔다.

나블루스에서 머물며 쿠프리 깟뚬에서 정착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몇 번의 쿠프리 깟뚬 시위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여러 주의 사항을 듣는 데 절로 긴장이 됐다. 친구도 예전에 이곳에서 고무총에 맞은 경험이 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잘못 맞으면 사상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우리는 시위 시작 전에 도착해 주위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실제 총소리를 들었다. 나는 혹시 머리에 총을 맞을까 봐 순간적으로 모자를 쓰고 옆 친구들은 신경도 못 쓴 채 정신없이 달렸다.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 빠르게 달리지도 못했다. 사운드 밤만 터져도 가슴이 너무 뛰었고 최루탄에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시위에는 어린이도 많았다. 당연히 쿠프리 깟뚬 어린이들이었다. 손에는 작은 돌멩이를 들고 있었다. 그들의 돌멩이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에게 닿지도 못할 뿐 아니라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최루탄을 피해 뛰어다니며 구호를 외쳤고 작은 돌멩이를 던졌다. 그날 많은 최루탄이 민가로 날아들었고 유리창도 많이 깨졌다. 큰 사상 사고는 없었지만 그 시위는 몇 년째 금요일마다 이어지고, 사상 사고의 뉴스도 자주 보도된다.

  구아바 농장에서 가지치기를 하는 왈리드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들에겐 또 어떤 사연이 쌓이게 될까? 이스라엘의 점령이 시작된 후부터 일상적으로 투옥되고, 집이 부서지고, 고향에서 내쫓기고. 이동이 제한되며 모든 것을 억압받는 그런 사연들이 쌓여갈 것이다. 그런 중에 희망도 쌓이겠지만 분노도 켜켜이 쌓이겠지. 그리고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도 할 것이다. 와엘이, 아미나가, 위즈단이, 바셀이 그리고 쿠프리 깟뚬의 어린이가.

바셀의 숙소에 머물 때 문의 잠금장치가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숙소에 있던 청년들이 문을 고치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청년들도 그 청년의 친구들도, 바셀도 궁리하고 애를 썼지만 문을 고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그 문을 수리했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했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그립다. 스스로 삶의 대부분의 일을 해결하는 그 모습이 그립다.

바르달라 마을에서 급하게 떠날 때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왈리드에게 “안녕, 다시 만나”라고 말했다. “응! 그래, 다시 만나자”하면 좋을 것을 왈리드는 굳이 “인샬라”라고 했다. 왈리드! 친구의 이름으로, 가족의 이름으로, 연대의 이름으로, 신의 뜻으로 꼭 다시 만나요.

(1) 2020년 1월 20일 당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했다. 요르단강 서안에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지은 ‘정착촌’을 모두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하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인정하는 등 국제법 위반인 이스라엘의 행위들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의 반발과 비판을 받았다.
(2) “정부, 이스라엘 '전액부담' 전세기로 한국인 관광객 귀국 추진”, <연합뉴스>, 2020.2.24.
(3) 천연 오아시스로 유명한 상업중심지인 팔레스타인 중부 나블루스에 있는 산
(4) 양고기나 닭고기에 견과류와 향신료를 넣고 한 중동 지역의 쌀밥 요리
(5) 2017년에 개봉한 주로미, 김태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장기화된 점령 속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팔레스타인의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평화에 물음을 던지고 일상적인 감시와 폭력으로도 멈추게 할 수 없었던 일상을 통해 현재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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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하루속히 평화로운 시간이 와서 모두가 축복받으며 살아가는 나라가 되었으면.......늘 건강하시고 따스한 겨울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