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경제와 계급

[워커스 연재] 로봇, 디지털 경제와 자본주의의 미래(9)

[출처: 사계]

벡터 계급 vs 해커 계급?

로봇경제의 발달은 생산양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면 계급관계는 어떻게 될까?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노동력을 상품으로 제공하는 노동자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 현재의 계급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이에 대해 메켄지 워크(McKenzie Walk)는 <해커 선언>1)에서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벡터 계급(vectoralist class)과 대항 계급인 해커 계급(hacker class)을 상정한다. 벡터 계급은 자본가 보다 더 나아간 지배계급, “우리 시대에 새로 출현하는 지배계급”이라 정의한다. 벡터 계급은 물질적 재화의 생산을 정보의 순환에 종속시키는 새로운 지배계급으로서 그 권력은 정보재(information stock), 정보의 흐름(flow), 정보의 분배 수단(vector)에 대한 소유와 통제로부터 나온다. 즉, “그들의 권력은 지적 재산, 특허권, 저작권, 상표권을 독점화하는 것에 있다. 정보의 사유화는 부수적이 아니라 지배적인 상품화 생활의 양상이 되었다.”

이에 반해 해커 계급은 자기 스스로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웨트웨어(wetware)를 프로그램 한다는 점에서 생산 도구의 디자이너들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생산 수단을 완전히 박탈당하지는 않은 계급이다. 해커 계급은 “예술에서, 과학에서, 철학에서, 문화에서, 데이터가 수집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지식 생산에서, 정보가 추출될 수 있는 곳에서, 세상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이 그 정보에서 생산되는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고 그것이 벡터 계급에 의해 상품화되고 사유화되는 것에 저항하고 투쟁한다.

워크가 상정한 벡터 계급과 해커 계급의 대립은 자본주의 계급관계인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이 정보통신 영역과 생산의 디지털 전환의 확대로 계급관계가 심화되고 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워크가 해커 선언을 쓸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 정보통신 공간은 자본이 완전히 잠식하기 전 다소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당시 해커들은 인터넷 공간으로의 자본의 확장에 저항하는 유력한 집단이었고, 리눅스 등 대안적 프로그램을 유지 운영하는 핵심적인 급진적 저항 투사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 급진적 의미의 해킹보다는 돈이나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크래킹이 일반화되었고, 리눅스 등 동료생산 방식의 급진적 대안 프로그램도 자본의 이윤 도구로 전락했다. 현재 해커는 하나의 계급으로 또는 세력으로 존재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워커의 문제의식은 정보통신 공간과 디지털 전환에 따른 계급관계의 변화를 예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수용자(user/audience) 계급

생산관계의 변화에서 주목할 것은 자본이 디지털 혁명을 통해 커뮤니케이션과 인간의 두뇌노동을 상품화해 생산에 참여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댈러스 스마이드(Dallas Smythe)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수용자에게 판매(selling)될 뿐만 아니라, 수용자 자체가 상품으로 생산되고 거래된다는 ‘수용자 상품론(theory of audience commodity)’을 주장했다.2) 스마이드는 “독점자본주의 하에서 물질적 실재는 사람이 잠자지 않는 모든 시간이 대부분 노동 시간이다. (...) 취업시간 이외의 노동 시간 중 가장 큰 부분은 수용자의 시간으로 광고주에게 판매된다. (...) 광고주에게 팔려나간 ‘그들의 시간’에서 노동자는 (a) 상품 생산자로서 필수적인 마케팅 기능을 수행하고 (b) 노동력 생산 및 재생산을 위해 일한다.” 수용자의 노동력은 생산, 판매, 구매 및 소비되기 때문에 가격이 책정되어 상품이 된다. 따라서 수용자의 시간은 노동 시간이 되며 수용자들은 무급노동시간을 헌신하고 실제 TV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광고를 통해 착취를 교환한다.

당시 수용자는 시청률 조사기관을 통하지 않고는 반응이 확인되지 않았고 정보를 수용하지만 자체로 데이터를 생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 이후 ICT와 정보통신공간에서 오늘날의 수용자는 직접 반응하고 데이터를 생성한다. 이를 계승발전 시킨 것이 바로 크리스티안 푹스(Christian Fuchs)의 디지털 노동가치론(digital labor value theory)이다.3)

푹스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자체로 생산수단이자 노동수단이며 따라서 인간의 두뇌활동 즉 두뇌노동은 상품으로 팔려 나갈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인터넷 플랫폼은 (소프트웨어) 액세스 또는 컨텐츠를 상품으로 판매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대한 액세스를 제공하지만, 외부의 상품 형태가 아니라 (두뇌 노동의 결과인) 사용자(수용자)의 데이터를 상품화한다. 데이터 상품화에 대한 대가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사용자에게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공한다.

사용자와 플랫폼 간의 관계가 현대 임금 관계의 형태로 조직되어 있다면, 사용자들은 디지털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돈을 받을 것이다. 이 돈은 다양한 생존 수단을 사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금전적 지불과의 차이점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사용자는 보편적인 교환 매체(화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특정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받는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사용자가 플랫폼에 액세스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반적인 생존 수단을 제공하지 않고 대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특정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액세스할 수 있게 한다. 이를 통해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데이터를 상품화하고 이를 광고와 교환한다. 일종의 이중시장을 형성한다.4)

한편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구글과 같은 플랫폼에서 사용자는 정보의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프로파일, 콘텐츠, 연결, 사회적 관계, 네트워크 및 커뮤니티를 사용 가치로 생산하는 생산적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다. 이들은 창의적이고 활동적이며 네트워크로 연결된 디지털 노동자이다. 또한 이러한 모든 활동에 대한 데이터가 생성되어 광고주에게 판매되며, 대상 광고주는 돈 대신 사용자의 선호도 및 데이터에 액세스하여 사용자에게 맞춤 광고를 제공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소셜 미디어의 사용 가치가 사용자 자신에게는 소외되며 이로 인해 활동, 데이터, 경험, 플랫폼 및 생성 된 금전적 이익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잉여 가치와 금전적 이익을 창출하는 디지털 노동자가 착취당하는 것이다.5)

‘소셜 미디어’에서 디지털 노동은 임금이 없고, 주로 여가 시간에 이루어지며, 사회적으로 노동으로 인식되기 어렵기 때문에 가사노동과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가사 노동, (ICT의 국제분업관계에서 아프리카 광산에 일하는) 노예적 노동 및 디지털 노동은 임금으로 주어지는 것이 거의 없고 착취가 많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즉, 노동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이 잉여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임금노동 관계만이 아니라 착취관계 또한 잉여노동의 창출과 수탈에 적지 않은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게 은폐되어 있다.

노동수단을 보유한 노동자

앞선 연재에서 로봇경제의 발전과 생산의 고정자본화 경향에 따라 노동을 공장, 사무실, 작업장 밖으로 몰아내는 탈공장화가 확산될 것이라 전망했다.6) 또한 유연 노동의 확산과 저임금화 경향에 휩쓸리면서 고정자본인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거나 배제된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수단을 보유하고 생산과정에 등장한다. 독립 자영업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우버는 우버 택시, 에어비앤비는 주택이나 대여 가능한 방(room) 등을 가지고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다. 긱 경제에서도 클라우드 워커와 클릭 워커의 경우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기술이나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프리랜서 영역이 더욱 확장되면서 프리랜서 형태의 노동도 늘어나고 있으며, 문화, 예술,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도 독립 자영업이나 기타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허물어진 영역에서 고용과 자영의 경계가 허물어고, 놀이와 노동의 구분 또한 희미해지면서 노동시간과 생활시간(여가)의 경계도 옅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계급의식과 계급 관계도 변하고 있다. 그러나 확대되는 자본의 독점, 특히 생산수단으로서 로봇의 영역이 더 확산되면 더욱 강화되는 독점과 불평등의 심화, 또한 자본주의의 주기적 공황의 확대 속에서 계급으로서의 수용자(사용자) 노동에 대한 갈등도 커진다. 이 속에서 노동수단을 보유한 노동자들은 시장교란과 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생산자연합의 길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로봇경제가 심화할수록 주요 생산수단인 로봇에 대한 노동자- 수용자 통제에 대한 요구 속에서 계급관계도 보다 구체적으로 형성될 것이다.7)[워커스 40호]


[각주]
1) “A Hacker Manifesto”,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2) “Communications: Blindspot of Western Marxism”. Smythe,D.W. Canadian Journal of Political and Society Theory1. 1977.
3) “Digital Labour and Karl Marx”, Christian Fuchs, Routledge, 2014.
4) 비슷한 입장으로 이항우는 이를 정동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정동 자본주의는 디지털 네트워크 속 행위자들의 정동 노동을 사적으로 전용한다. 정동의 산물이자 가시화 기술인 ‘페이지랭크’는 사용자의 경험, 감정, 태도, 생활양식, 믿음 등과 같은 가능한 한 모든 형태의 정동을 구글 브랜드와 결합시키는 특허 재산이다. 자세한 것은 “정동 자본주의와 자유노동의 보상”(이항우, 한울아카데미, 2017) 참조.
5)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다른 제조업 보다 이윤율이 월등히 높은 것도 단순히 독점적 지대의 형태로 상업이윤을 많이 확보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잉여노동을 무급 (또는 유튜브와 같이 극소수 유급) 형태로 고도의 착취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6)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 (로봇, 디지털 경제와 자본주의의 미래4), 워커스 35, 2017년 10월.
7) 주로 서유럽과 일본에 등장한 해적당(Pirate Party)은 파일 공유 소프트웨어나 부트레그 CD의 합법화 등 저작권법의 개정과 인터넷 상의 개인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등장했다. 이들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수용자(user 또는 audience)의 관점에서 정치적 문제를 바라보고 정당을 조직했고 어느 정도 대중적인 지지를 형성했다. 하지만 ‘노동’이 아니라 독점적 ‘소유’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와 한계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