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가?

[워커스 99%의 경제] 투자와 혁신의 사회화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은 규제인가?

요즘 마치 규제 때문에 투자도 혁신도, 성장도 이뤄지지 않아 규제가 경기 침체의 주요한 원인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다. 혁신경제 주류 이론가인 윌리엄 제인웨이는 중앙일보 주간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로 ‘국가 규제’를 대답해 주길 바랐던 기자에게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혁신의 장애물 가운데 국가의 규제 시스템보다 국민 불만이 더 결정적이다.”1) 그는 트럼프 미 행정부가 쇠락한 철강공업지역인 러스트벨트 지역 노동자들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혁신보다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나섰다는 점을 꼽았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의 불만이야말로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불필요한 관행, 행정 절차 등 관료적인 규제의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규제완화 요구는 자본의 생산성 저하가 국가의 규제 때문인 것으로 치부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은산분리 완화가 그렇다. 인터넷 은행의 사업성이 부진한 이유는 신용카드 사용이 활발하고, 각종 PAY업체들이 성행해 지급결제 부문에서 큰 이점이 없고, 여신 부문에서도 애초 시중은행과의 차별성으로 삼은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신에) 중금리 대출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과 조건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은산분리 때문에 산업자본이 추가 자금 지원을 할 수 없어 인터넷 은행이 침체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경제성장에서 국가 규제가 장애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규제 그 자체보다는 시장화가 문제다. 가령, 국가에서 무상이나 저가에 공급되던 복지서비스–대표적으로 의료–가 민영화되고 시장화돼 의료비가 오르면 GDP(국내총생산)가 올라간다. GDP는 재화와 용역의 최종 시장가격을 조사하기 때문이다. 즉, 국가는 다양한 복지 서비스라는 ‘사용가치’를 창출하지만 (무상일 경우) 시장에서 상품으로 교환되는 ‘교환가치’를 갖지 않기 때문에 가치로서 GDP에 합산되지 않는다. 이제 이 사용가치를 교환가치가 될 수 있도록 민영화하면 이것은 시장가격을 갖기 때문에 그대로 GDP에 포함된다. 특히 국가 (독점) 영역의 규제를 풀고 민영화해 시장을 형성하면 그게 곧 성장이고 혁신이 된다. 자본이 경제 침체기 때마다 성장과 혁신에 방해가 되는 국가 개입 또는 국가 부문 축소 요구를 ‘규제 완화’–사실은 ‘민영화’–로 집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명목상 GDP 상승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제로섬 게임과 같거나 오히려 국민 후생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민영화돼 수돗물 값과 전기요금이 폭등하면 똑같은 수돗물과 전기를 공급받던 국민들은 더 많은 생계비를 지출해야 하거나 빚을 내야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엄연한 모순을 야기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대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가와 국민의 희생을 일반화하는 것이다.2)

  누가 아이폰을 스마트하게 만드는가?

투자와 혁신 ; 주체는 누구인가?

규제 완화는 투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투자를 해야 혁신할 수 있고 생산성이 향상돼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런데 규제 때문에 투자할 수가(곳이) 없다는 것이다. 투자는 누가, 어떻게 하는가? 정말 케인스가 말한 자본가의 동물적 충동(animal spirits)이 투자를 결정하는 요소인가? 경제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어떤 물건이 어떻게 팔릴지 알고 공장을 짓고 시설투자에 나설 수 있을까? 어떤 기술이 어떻게 대박이 날지 모르는데 어떤 연구개발에 얼마나 더 투자할 수 있을까?

투자율은 2010년 이후 약간 회복했지만 아직도 2008년 이전 수준으로도 돌아오지 못했다. 자본가들이 투자는 않고 규제 때문에 혁신이 위축된다며 투덜거리는 것은 국가 규제 내부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본가들은 케인스가 강조한–어디에 투자하는 게 돈이 되는지 아는–동물적 충동을 지니고 있다.

확실히 현재 자본주의 경제에서 혁신의 주체가 누구인지, 투자의 주체가 누구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혁신이론 경제학자인 마리아나 마주카토(Mariana Mazzucato)는 <기업가형 국가(The Entrepreneurial State)>에서 “자본가만이 혁신에 기여하고, 국가 부문은 성장에 부담을 준다는 신화는 이제 무너졌다”며 “인터넷에서 나노기술에 이르기까지 기초 연구와 뒤이은 (기술의) 상업화 모두 대다수 근본적인 진전은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업들은 수익이 명확해 보이는 시점에서 여기에 동참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혁신의 상징인 아이폰(iPhone)에 탑재돼 있는 주요 기술들은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은 것들이다. GPS,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심지어는 음성으로 작동되는 개인 비서 Siri까지도. 애플(Apple)은 초기에 정부의 공공자금 지원기관인 중소기업투자협회(Small Business Investment Corporation)로부터 50만 달러를 지원 받았다. 컴팩(Compaq)과 인텔(Intel)도 벤처 캐피탈이 아닌 공적자금인 중소기업혁신연구프로그램(SBIR)을 통해 보조금을 받고 성장했다. 가장 혁신적인 제약 회사 중 75%가 거대 제약사나 벤처 캐피탈이 아닌 국가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의 자금에 빚을 지고 있다. NIH는 지난 10년 동안 생명 공학-제약 지식기반 산업에 6000억 달러(700조 원)를 투자했다. 마주카토는 “납세자가 이 기술 회사들이 부자가 되도록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삼성을 포함한 우리나라 재벌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중화학 공업 정책, 업종 전문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속에서 재벌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재벌이 보유한 핵심기술들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발전했다. 현재까지도 공공기반의 기술연구소들이 보유한 핵심기술들을 계속해서 민간 기업에 이전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의 가장 큰 혁신성은 글로벌 생산체제(GVC)를 확립한 것이었다. 각 부품을 가장 저렴한 생산지별로 만들어 조립함으로써 엄청난 가격경쟁력을 누렸다. 생산의 세계화의 이점을 살려 가장 저렴한 노동력 가치로 초과이윤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바로 그 혁신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최근의 모든 혁신 기업들이 가진 고유한 혁신은 사용자들의 무료노동(사용가치)을 교환가치로 바꾸는 식의 노동력 착취로 이룬 것들뿐이다.3)


소비 진작이 아닌 투자와 혁신의 사회화

한 나라의 생산성을 따지는 요소 중에 자본과 노동 외에 총요소생산성(TFP)이 있다. 동일한 자본과 노동을 투여해도 어떤 나라의 생산성은 더 높고, 어떤 나라는 더 낮은 것이 총요소생산성의 차이라는 것이다. 생산성을 결정하는 요소로서 자본과 노동 외에 나머지 여러 가지 제도와 기술 수준 등을 퉁쳐 이르는 아주 모호한 요소다. 아무튼, 최근 세계적인 차원에서 생산성 정체는 바로 총요소생산성 부진에서 기인한다고 알려져 있다.4)

규제라는 측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강한 중국은 2008년 세계대공황 속에서 성장률이 다소 꺾였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여기서는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생략하고, 다만 국가주도의 투자와 경제운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만 강조하도록 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자본주의 국가의 케인스 정책과는 달리 단순히 경기 부양이나 소비 수요를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정 정책을 사고하지 않는다.5) 중국 정부는 중앙정부 소유의 국유기업(양치)을 바탕으로 경제의 60% 이상을 국유부문으로 유지하고 있고, 투자 전략도 민간 자본보다 국가가 주도하고 있다. 확실한 국가 우위의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고 있는 셈이다.6)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내놓자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국가주도 기술발전 체제를 꺾기 위해 사실상 무역전쟁이라는 형태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국유기업인지 항상 의심받고 있는) 칭화유니그룹을 필두로 중국 IC부문 산업 기금을 관리하는 국가투자기구인 시노IC캐피털을 통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방정부와 투자 기관을 아울러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이끌고 있다.7)

이것이 케인스적 재정정책의 일환이 아닌 것은 정부가 단순히 투자나 소비 촉진을 위해 나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불황기 또는 수축기에 긴축정책보다 적극적인 확장 정책을 사고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단순히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것으로 정부가 역할을 한다면 이와 같은 경기변동을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 소비 수요를 진작시킨다고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다. 소득주도성장의 근본적인 한계는 바로 경기부양, 수요진작 식의 보조대책이기 때문이다. 다른 경제구조는 그대로 둔 채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소득주도는 생산과 고용, 투자와 혁신의 사회화와 연결되지 않고 고립돼 오히려 다른 경제부문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총량적으로 가계, 기업, 정부가 모두 부채를 지고 있는 상태에서 (생산성 향상 없이) 가계의 일시적인 소득 향상은 다른 쪽의 빚만 더 키울 뿐이다. 가계는 가계대로 소득향상이 장기적이라 판단되더라도 늘어난 여유자금을 빚 갚는 데 쓰거나 금융상품이나 부동산 등 투기적 자본에 돈을 쓸어 넣을 공산이 더 크다.

이미 투자는 상당 부분 사회화하고 있다. 삼성이 180조 원 투자를 약속하는 것처럼 재벌과 독점 대기업이 이미 사회화된 형태의 투자를 사적으로 점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밴처 캐피털의 규모도 그렇지만 수익률은 더 의심스럽기만 하다. 점차 세계적으로도 정부에 의한 직접 투자, 국유펀드, 공적 연기금을 통한 투자의 사회화 조치는 확대되고 있다. 그에 따라 혁신도 사회화하고 있다. 사기업들은 국가와 사회가 이룬 주요한 기술혁신의 꼬랑지를 잡아 다시 쓰거나, 생산방식을 바꾸어 노동력 가치를 절하시키거나, 새로운 착취 방식으로 혁신할 뿐이다. 투자와 혁신은 사회화하는데,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따른 불균형, 불일치, 불평등 문제는 더 커져만 가고 있다.

한편 이러한 투자의 사회화는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물론이고 직접적인 이윤 분배와도 직결된다.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의 질서에 조응한–대자본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도록 주문하는 것처럼 사회화된 투자는 분배의 영역에서도 자본가의 이윤 축소를 동반한다. 때문에 자본은 정부의 직접 투자를 회피하거나 정부의 역할을 초기 사업성이 있을 때까지의 투자로 제한하려고 한다. 쉽게 말해 기업이 돈 벌 수 있도록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기반시설과 시장 분위기, 환경 등을 만들어 놓고 국가는 빠지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 결과 분배에서도 불평등은 확대했고, 생산성은 오히려 더 하락했으며, 성장은 둔화했다.[워커스 46호]

[각주]
1) https://mnews.joins.com/article/22858832?cloc=bulk#home
2) 최근 논의되는 규제5법도 의료민영화, (인터넷 은행의) 은산분리 완화, 개인정보보호 완화, 지역 및 산업별 규제특례 등의 문제다. 이는 모두 대자본, 재벌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3)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2602
4) 만약 규제가 문제였다면 우리보다 훨씬 규제가 약한 유럽이나 미국의 생산성은 더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대와는 달리 전 세계의 생산성, 특히 선진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정체 내지는 침체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다. 한국도 같은 상황이다.
5) 케인스도 공황기에 최종 수단으로 투자의 사회화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시장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때, 일시적인 국가 개입을 말하고 있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말하지는 않고 있다.
6) 어찌됐든 시장경제라는 점에서 부의 축적과 빈부격차, 불평등 문제가 더욱 커졌지만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7) ‘반도체 굴기’의 선두주자인 칭화유니그룹은 성장해 나가자 보조금 정책으로 무역규범에 어긋난다는 지적과 사실상 국유기업으로 치부되면서 해외 진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칭화유니그룹의 사례처럼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정부 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중국은 지난해부터 공개적인 정부 보조금 대신 펀드 등 투자 기관을 통한 우회적인 접근 방법으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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