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력 경제, 성장은 끝났다

[이슈] 코로나 시대, 다시 만난 세계③


저출력 경제

미국 UC Davis 연구진이 14세기 이후 발생한 전염병을 역추적한 결과, 평균적으로 전염병 발생 후 약 40년이 경과해야 중립금리가 이전 수준을 회복한다고 추정했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 압력 없이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금리 수준을 말한다.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경제회복의 주요 지표로 중립금리를 이용한다. 금융위기와 같은 경기침체 시에는 중립금리가 회복될 때까지 대략 5~10년이 걸렸지만 팬데믹에서는 40년이 걸렸다. 애초 중립금리는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전염병 대유행 후 중립금리는 수년 동안 감소하고 10년 이후에는 더 급격히 감소해 약 20년 후 최저치에 도달했다. 약 40년 후에야 중립금리가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 예상했던 수준으로 돌아갔다.1

  팬데믹 이후 중립금리 회복 예상 추이 [출처: Jordà et al, 2020.09.]

이같이 회복이 지연되는 이유는 전염병의 중장기적 영향이 일반적인 경기 순환이나 전쟁하고는 다르기 때문이다. 경기 수축과정에서는 한계 자본을 청산해 이윤율 회복을 위한 새로운 조건을 만든다. 전쟁에서도 일반적인 생산시설이 파괴되고 생산이 전쟁물자에 맞게 재조직된다. 전쟁이 끝나면 생산은 재개되고 경기는 회복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와 같이 전쟁 복구로 일어난 경기가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 호황을 가져오기도 한다. 반면 전염병은 경기 수축을 동반해 자본 파괴가 일어나지만 생산을 재개하기 위한 조건을 회복하는데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된다.

전염병은 자본 투자의 축소뿐 아니라 상대적인 노동력 부족과 (전염병 트라우마로 인한) 예방적 저축으로의 전환 및 소비 축소를 유발할 수 있다. 전염병은 일반적으로 기업 매출 감소에 따른 노동 수요 위축과, 안전에 대한 우려 및 구직 포기 등으로 인한 노동력 공급 위축을 동시에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전염병에 의한 노동시장 충격이 경기침체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노동 수요가 급증했던 전쟁 시기나 노동 수요 감소에도 노동 공급의 감소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금융위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 실업과 고용 불안은 코로나19 진정 이후에도 재취업 실패 및 소득 감소에 대한 우려로 경제활동을 상당 기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처럼 전염병의 중대한 거시 경제적 후유증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됐고, 전쟁 후와는 대조적으로 실제 수익률이 오랜 시간 상당히 하락했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앞으로 40년 동안 글로벌 수준의 경제위기와 또 다른 팬데믹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야 위와 같은 회복경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40년 이내에 경제위기나 다른 팬데믹이 발생하면 회복은 더 길어진다. 산업혁명과 같이 산업전환에 따른 폭발적인 수요와 공급이 형성되거나 전쟁과 같이 아예 생산시설이 파괴되지 않는 한 과거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대응은 생산에서 부(負)의 외부효과가 작용하는 공간이 됐다. 이 때문에 생산량을 축소해야 한다. 즉, 사적으로는 100개를 생산할 수 있는데, 환경오염 등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 최적 생산량을 90개로 제한해야 하는 것이다. 앞선 설명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나라별 감축계획과 기술발전 수준에 따라 부족분만큼 경제의 출력을 줄여야 한다. 아니면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과 자연재해가 재발해 반강제적으로 출력을 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세계경제는 긴 전염병 회복기간 속에 경제의 출력을 줄인 ‘저출력 경제’의 일반화라는 조건을 맞고 있다.

한국, 성장은 끝났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물가상승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의 최대치를 뜻한다. 여기서 능력이란 노동과 자본, 총요소생산성 등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요소를 말한다. 성장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투입해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가 잠재성장률이다.

OECD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매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기 전까지 7%를 상회하던 잠재성장률은 1998년 5.6%로 크게 떨어졌고, 이어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이후 3%대로 추락했다. 이후에도 점진적으로 하락해 2018년 2.9%로 2%에 진입한 뒤 올해 2.5%에 이어, 2021년 2.4%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2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직접적으로 생산성 하락, 부가가치 창출 능력 즉 잉여가치 생산능력의 하락을 말한다. 최근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총요소생산성 개선세가 정체된 가운데 노동 및 자본 투입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나타났다. 경제성장률을 올리려면 잠재성장률을 먼저 올려야 하는데, 현재의 둔화상황을 고려하면 총요소생산성의 개선과 함께 노동과 자본 투입량을 늘려야 한다. 먼저 노동투입량을 늘려야 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추이

노동투입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먼저 생산가능인구(15~64세)를 확대하고 여성과 고령자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이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이어진다. 통계청 장래인구특별추계(2017~2067년)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8년 3,765만 명을 정점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67년에 1,784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50년 동안 생산가능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셈이다. 이것이 경제적으로 더 심각한 것은 지금 당장 출산율이 올라가도 올해 태어난 신생아가 생산가능인구 연령인 15세가 돼야 생산가능인구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 출산율이 늘어도15년 동안 생산가능인구는 계속 축소된다.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여성과 고령자의 참가율을 높이고 이주노동자를 대거 유입해 노동투입량을 늘릴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경제 전체의 고용 축소와 맞물려 일자리 자체의 생산성이 매우 낮거나 저임금의 일자리가 많아진다. 이렇게 되면 노동투입에 따른 생산성 증가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여성과 고령자,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에 더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자본투자도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앞서 설명한 대로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는 다른 경제위기나 전쟁과 달리 한계자본의 청산이나 기존 자본의 가치파괴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한 조건이 충분치 못하고 전염병 유행의 후폭풍으로 노동시장의 성장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따라서 경제 회복도 느리지만 그만큼 자본투자도 더디게 진행된다. 게다가 그린에너지 전환이나 디지털 전환 등 산업전환과 관련된 투자도 적정 이윤이 형성되지 않아 대부분 국가투자로 이뤄져 민간의 자본투자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한편, 총요소생산성은 노동과 자본 생산성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의 생산성을 말한다. 정의도 불명확한데 총요소생산성을 규정하는 요인도 포괄적이고 광범위해 이를 올리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총요소생산성 개선을 위해 교육, 노동시장, 금융 등 제도적인 부문의 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있지만 기후위기에 따른 제도적 규제, 정책적 강제력 등이 총요소생산성을 제한하는 근본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여러 기술적, 제도적 제한과 장벽을 만든 것과 같기 때문에 총요소생산성의 저하 요인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현재 한국 경제는 늦은 경기 회복에 따른 투자 부족, 기후위기로 인한 제도적 제한, 생산가능인구의 절감 등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최소 10년간은 기후위기 대응으로 경제의 생산량, 즉 산출을 줄여야 한다. 경제성장, 경제의 양적성장은 멈추는 수준이 아니라 줄어들 전망이다. 코로나 회복 국면에서 당장은 기저효과로 경제성장률이 반등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잠재성장률과 경제성장률은 하락하며 기후위기 대응 양상에 따라 경제는 역성장 할 수도 있다.

근린궁핍화의 재현

세계경제의 근본적인 딜레마는 과잉공급과 생산경쟁 속에서 경제의 산출을 줄여야 한다는 데 있다. 적어도 탄소의 순배출이 제로가 되고, 신재생에너지로의 산업전환이 완료되거나 관련 기술의 생산성이 화석연료 기반의 기술보다 더 높아질 때까지 산출을 줄여야 한다. 여기에 성장엔진은 멈춰 섰고 고용조건은 더 악화한 상황에 몰려 있다.

나라별 생산량을 직접 조절할 수 있는 국제기구나 논의 단위는 존재한다. 그러나 탄소배출권 거래와 마찬가지로 나라별로 자신의 쿼터는 더 많이, 타국의 생산량은 더 적게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령 글로벌 공급과잉을 겪고 있는 철강업종이 생산량 감축을 목표로 주요 33개국이 참여하는 ‘글로벌 포럼’을 2019년 말까지 3년간 진행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이 협의체가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중국과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면서 중국의 반발이 컸던 탓이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량의 기준을 정하는 파리기후협정조차 탈퇴했는데, 하물며 산업 생산량을 직접 조절하는 국제기구나 회의체 운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국가별로 산출 축소에 대한 만족스러운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시장에서는 무역전쟁과 환율전쟁과 같은 대결을 통한 조정이 나타나게 된다. 자유무역의 확대는 무역 당사국의 생산성이 확대돼야 가능한데, 현재는 과잉공급에 따라 경쟁이 심화하고 산출량까지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호무역과 같은 국가 차원의 갈등과 대결로 상황을 해결해 나갈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결국 20세기 초 국제수지 개선을 통해 실업을 축소하려는 국가별 노력이 타국에 실업을 수출하는 것 같은 ‘근린궁핍화’로 몰아가게 된다. 우리의 산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주변국의 산출이 줄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중 간 무역전쟁과 같이 교역조건과 교역량을 까다롭게 만들고, 보복조치를 서로 주고받으며 나의 줄어든 산출을 상대국에 떠넘기는 것이다. 환율시장의 국가 개입도 빈번해져 간혹 1985년 플라자 합의와 같은 최대의 환율조작 사례도 만들 수 있다.

다른 한편, 과잉공급과 산출 축소는 필연적으로 고용량과 일자리를 축소시키고 생산과 소비수요도 하락시켜 임금을 낮추게 된다. 생산가능인구의 축소경향에도 노동시장의 상대적 공급과잉으로 불안정하고 더욱 질 낮은 일자리가 공급될 가능성이 높고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안적인 경제체제를 찾아서

1930년,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대공황 시기. 케인스는 무려 100년 뒤를 전망하며 《손자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책을 냈다. 책에서 케인스는 100년 뒤 선진국 후손들의 생활수준이 8배는 좋아지고, 기술혁신과 경제성장으로 경제 문제는 대부분 해결했을 것이라 전망했다. 100년이 지나 기술혁신과 자본축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기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고, 인간은 늘어난 여가 시간과 에너지를 돈 버는 일이 아닌 곳에 쓰면서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과연 지금이 그런가?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은 여전하고, 과잉공급과 장기침체로 허덕이며 종종 코로나19와 같은 기후위기의 파괴적 후폭풍에 살아가고 있다. 실업률도 결코 낮아졌다고 할 수 없으며 열악한 일자리만 늘어났다. 빈부격차는 더 벌어져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시대를 맞았고, 노동자들은 줄어든 소득을 부채로 메워가며 빚만 늘었다. 독점은 부분적인 규제에도 세계적으로 더 확대되고 있다. ‘경제적 문제’는 거의 해결된 것이 없고 부채와 스태그플레이션, 기후위기 등 그때는 없었던 더 큰 경제 문제들이 생겨났다.

기후위기 대응의 촉박함 속에서 이윤중심, 성장중심의 경제구조로는 더 이상 대중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다. 이 글에서는 생략했지만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양산된 가계부채 수준과 자산불등평까지 고려하면 다른 경제체계로의 개편을 서둘러야 할 때다.

[각주]

1 Jordà et al, 2020.09. Longer-Run Economic Consequences of Pandemics, NBER
2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추정, 2019.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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