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의 시장화, 가치화, 그리고 사회화

[99%의 경제]


가사노동의 시장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발달에 따라 일부 가사노동 영역도 시장화됐다. 개별적인 자가노동이 아닌,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사회적 노동으로의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가사노동의 자본주의적 사회화는 곧 시장화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이윤(율)에 맞는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시장 형성을 통해 이뤄졌다.

첫 번째로 시장 생산이 기존 가사노동을 대체했다. 정미, 직조나 의복 제조, 비누 등 생활용품의 생산은 가사노동 시간을 축소하거나 대체했다. 상품을 사는 것이 집에서 만들어 쓰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됐고, 이는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두 번째로 가사형 소비재의 발달로 가사노동 시간을 단축했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식기세척기 등 가사노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재화의 개발 또는 기술혁신은 제품의 생산과 생산비를 소비 가능한 수준까지 낮춘다. 이 재화의 구매와 소비를 통해 기존 가사노동 시간을 단축한다.

세 번째는 가사서비스 시장의 형성이다. 가사서비스 시장은 정상 임금을 지급할 수 있거나, 그보다 더 낮은 착취적 임금 수준이 가능한 영역에서 형성된다. 현재 ‘세탁특공대’, ‘런드리고’를 비롯해 청소 서비스인 ‘미소’, ‘청소연구소’, ‘김집사’ 등의 업체가 있다. 가사노동 시장은 8조~13조 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사노동 시장은 대부분 여성 노동자의 플랫폼‧호출 노동 같은 불안정하고 비공식적인 노동으로 채워진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돌봄과 가사노동의 중요성이 커지자 정부는 가사근로자 법을 제정해 가사노동자의 일부를 공식 노동으로 포함하려 하고 있다.

가사노동의 비용은 기본적으로 개인이나 개별 가구에서 자발적으로 담당한다. 따라서 시장의 규모는 개인의 가사노동 지불 규모와 총량이 된다. 이때 시장화는 결국 공급 비용을 따지게 되므로 일정액 이하로 공급액을 낮추던가 아니면 개인의 지불 비용을 높여야 한다. 공급 측면에서 보면 공급액을 낮춰야 더 많은 이용자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술 숙련도를 높이거나 기술적 혁신을 거듭한다 해도 결국 가사노동자의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통제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 된다. 그럼에도 총액 수준에서 여전히 공급액이 높기 때문에 다수의 가계는 이를 이용할 수 없다. 맞벌이 여성이 저임금 수입으로 이 가사노동비용을 대체하거나, 남성 가장의 고소득으로 비용을 대는 방법 외엔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 발달에 따라 가사 노동이 사회화시장화되는 영역은 더 커진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력의 진출도 자본주의 생산 관계 내부로 확대된다. 하지만 시장화된 가사노동은 부분적으로만 사회화된 채, 여전히 다수의 가사노동은 수탈적 형태로 잔존한다. 성별 분업 하에 놓여 있는 여성의 상태를 정당화해 여성의 노동을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위치 짓는다. 가사노동의 자본주의적 사회화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가치가 낮아야 하고 여성 중심의 성별적인 노동으로 남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사회화시장화-된 가사노동은 일부 공식 노동으로 편입되더라도 플랫폼 노동 등 불안정, 비정규, 비공식 노동의 형태가 된다. 따라서 가사노동의 사회화(실질적 사회화)는 여성에게 불평등한 물질적 기초를 없애고, 가부장적 성별 분업체계를 철폐하는 핵심적인 문제다. 다시 말해, 가사노동의 사회화 없이 성평등이나 가부장적 모순의 철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사노동의 가치화

사용가치를 갖는 자가노동인 무급 가사노동을 유급 노동으로 전환하는 것을 ‘가사노동의 가치화’라고 할 수 있다. 가정에서 식사를 차리고 영유아와 부모를 직접 돌보는 것은 자가노동이지만, 이 또한 가치 있는 사회적 노동이기 때문에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지불이 이뤄져야 한다. 가사노동의 가치화가 필요한 이유는, 가족에 대한 가사노동의 자발성이 존재하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가사노동의 특성상, 사생활 보호나 안전 문제 등으로 직접적인 자가노동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다.

엄밀히 말해 자본주의 생산 관계에서 시장이 아닌 방식으로 가사노동을 가치화할 방법은 없다. 자본주의 상품 생산의 가치는 교환가치를 갖는 것인데, 시장에서 거래되고 교환되지 않는 상품의 가치화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가노동의 가치화는 시장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강제로, 의제화해 가치화할 수 있다. 즉, 무급 가사노동의 생산물을 일종의 공공재로 보고 (세금이나 의료보험료와 같이) 사회적 지불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가 됐든 가치화의 문제는 결국 가사노동의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선,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화와 관련해 기존 임금에 가사노동의 가치를 포함해 지급하는 방식이 있다. 즉, 자본이 가사노동비용을 지급하는 경우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조삼모사와 같다. 가사노동 자체가 교환가치를 갖지 않기 때문에, 임금에 가사노동의 가치를 포함하더라도 임금재의 물가가 그만큼 오르게 된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포함해 임금이 올라도 생활수준은 임금 인상 전과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임금의 명목 가격은 오르지만 물가도 똑같이 올라 과거와 같이 무급 가사노동을 하는 상황이 된다. 다만 무급 가사노동자에게 가치만큼의 임금이 직접 주어지면, 임금을 매개로 한 성별적인
위계질서를 다소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국가나 사회가 지불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 세금 인상을 하지 않고 세출 조정을 통해 국방비와 여타 사회지출을 줄여 가사노동비용을 대거나 둘째, 증세를 통해 가사노동비만큼 추가 세수를 확보하거나 셋째, 적자국채를 발행해 시장에서 화폐를 흡수하거나 넷째, 화폐를 새로 찍어 필요한 만큼 통화 공급을 확대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국가의 1년 재정 규모는 550조 원 수준이고, 2019년 말 기준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는 500조 원이다. 1년 치 국가 재정을 모두 가사노동비에 들여야 하는 셈이다. 국세 수입도 연간 300조 원 수준이라 세출 조정으로는 충당이 불가능하다. 세금 인상 역시 국세를 현재 수준에서 3배 가까이 인상해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세금 인상은 국가가 민간으로 이전 지출한 소득을 다시 세금으로 흡수하는 것이라 이 경우도 무급 가사노동의 현실은 바뀌지 않고 ‘수입증대–지출증대’라는 양적 규모만 커진다.

한편, 적자국채 발행은 국가채무 부담과 국가재정 악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세금 인상으로 흡수하지 않으면 매년 GDP의 25%에 해당하는 국채를 발행해야 하므로 이 방법도 지속 불가능하다. 또한 신규 화폐 공급은 상품의 가치는 그대로인 반면, 화폐량만 늘리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우려를 가중한다.


세 번째, 공공부조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가구별 무급 가사노동을 서로 다른 가구가 상호 지급하는 방식이다. 의료보험제도와 같이 가구별 소득에 비례해 가사 보험료를 내고, 각 가구가 평균적인 가사노동 가치를 지급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사서비스 공급이 시장이나 공공부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단순한 소득 재분배가 된다. 또한 수요와 가사노동의 규모를 봤을 때, 공공부조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현실화할 수 없다. 따라서 공공부조는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화의 방식으로는 적절하지 않으며, 소득 재분배나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재원 마련 정책 정도로 고려해 볼 수 있다.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화는 임금과 세금, 물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단순히 명목 임금인상이나 재정지출로 가사노동 비용을 충당하면 기업의 수익률이 오르지 않은 한 물가가 오르게 되므로 소용이 없다. 이처럼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화에는 (자본주의 생산 관계 아래에서)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전체 가사노동을 대상으로 했을 경우 물가나 세금 인상을 수반하게 돼 가치화 이전 상태로 되돌아간다. 다만 가치화가 이렇게 무력화돼도 지불 주체와 대상이 변하기 때문에 임금을 매개로 한 성별 위계 구조를 약화할 수 있다. 어쨌든 무급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현상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화는 가사노동 가치 순환의 최종단계가 아닐 수도 있다. 가정 내의 가사노동에 어떤 형식의 ‘지불’이 이뤄지면 다시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급받은 만큼 직접 자가노동을 해도 되고, 시장이나 공공부문에서 가사서비스를 구매할 수도 있다. 이때 가사서비스 시장이 일정하게 발달해 있거나 공적 공급체계가 없으면 가사서비스 업체가 급성장해 시장화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 즉,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화는 의도했든 아니든 물가가 일정한 수준에서는 수요를 창출한다. (게다가 이 돈이 가사서비스 구매에만 사용되리란 보장도 없다. 오늘날의 유동성 장세처럼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으로 몰려가 자산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따라서 무급 가사노동의 가치화는 해당 국가의 재정과 가계의 지출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적이다. 또한 가사 서비스의 공적 공급체계 즉,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연결돼 확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연간 500조 원에 달하는 무급 가사노동 중 일부만을 가치화해도 그 규모가 매우 커 한 가지 수단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때문에 위에서 제시한 모든 방법을 세분화해 부분적으로 동원하고, 수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하며 부담을 줄여나가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가사노동의 사회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사노동의 사회화

가사노동을 사회 필수 서비스로 보고 교육, 의료와 같이 공적 공급체계를 통해 제공하는 것을 ‘가사노동의 사회화’라 부를 수 있다. 현재 보육과 돌봄 등의 일부 영역이 이런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이때 전국 규모에서 공공가사서비스센터가 설립돼, 형태별 가사노동을 다양한 양태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적정한 노동력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가사노동의 훈련과 교육기관이 전국 규모로 형성될 필요가 있다. 다음은 가사노동 사회화의 전제이자 조건이다.

첫째, 가사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국가 및 공공영역의 가사노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한다. 즉, 지역별 공공가사노동센터를 설립하고 여기에 고용된 노동으로 가사노동과 가사서비스를 모든 가구에 제공한다.

둘째, 가사노동의 사회화에서도 ‘지불’은 매우 중요하다. 유통 화폐량, 통화공급량의 변동이 실제 임금과 물가 수준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공공부문이 신규 고용을 창출하고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통해 신규 가치를 창출한다. 이때 유통화폐의 총량은 화폐의 수요로 결정되므로 가치 생산(액)에 따른 화폐량 증가(화폐 수요의 증가)는 물가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여기서 (최초의) 필요 화폐량을 중앙은행과 정부가 공급한다. 이후 증가한 화폐를 포함해 다음 해에 가사노동자에게 지급될 비용 및 재생산 비용을 국가가 세금 등으로 환수해 사회적으로 순환한다.

셋째, 가사서비스 노동자를 국가가 고용하고, 모든 가구가 가사서비스를 이용하면 약 500만 명의 신규고용이 창출된다. 실제 사회화를 통한 가사노동의 가치화는 이들의 임금을 통해서 실현된다.

물론 우려도 있다. 밥 공장, 세탁 공장 같은 것을 만들어 획일적으로 운영하거나, 평균 수준에 미달하는 가사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현재 시장화된 가사노동 영역의 질적 수준은 과거를 연상케 하는 ‘밥 공장’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현재 논의되는 사회화의 질적 수준 또한 최소 시장화된 부문을 넘어서는 형태로 고려된다. 이를 위해 시설 및 재료의 관리뿐 아니라 노동력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 체계가 요구된다.

현실적으로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다음과 같이 설계해 볼 수 있다. (지면 관계상 2019년도 말을 기준으로 한 가사노동 사회화의 설계 및 추계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총비용은 310조 원(1일 2식 식사 포함)으로 추계된다. 이는 애초 500조 원에서 실질 가치가 줄어든 것인데, 사회화의 생산적 효과로 고용된 가사노동자의 생산성 향상 및 가구당 노동시간 절약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비용은 가사 보험(공공부조) + 중앙은행 신규 통화 + 정부 지출(세입 증대) 및 세출 조정을 통해 가계 및 물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수준에서 구성한다. 또한 5년 동안 매년 70조 원씩 단계별로 증액해 350조 원(5년간 가치 인상분 반영)이 될 때까지 확대한다. 정부는 가사 보험과 세출 조정을 통해 집행된 비용을 제외(다음 해에도 그만큼 들어오기 때문에)하고 나머지 비용에 해당하는 부분을 세금 인상으로 환수한다. 이때 5년간 중앙은행의 신규 통화 발행액만큼 가계에 공급됐기 때문에 세금 인상에 따른 국민부담은 최소화된다. 각각 부담 비율은 가사보험, 신규통화 발행, 정부 지출의 구성에 따라 달라진다.


결론적으로 개인은 1인당 매월 20만 원, 가계는 매달 평균 50만 원의 가계지출(가사 보험료, 총액 100조 원)로 가정관리, 돌봄, 식사 등 모든 가사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500만 명 정도가 가사노동자로 국가에 고용돼 현재 노동자 중위소득 수준(월 300만 원)으로 가사노동의 가치(총액 180조 원)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개인과 가계는 신규 발행된 화폐액만큼 세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이때 만약 전체나 부분적으로 자가노동을 희망하는 가구는 해당 부분만큼의 가사 보험료를 감액하고 가구별 소득 수준을 고려해 자가노동의 가치만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현금 지급한다. 이 자가노동의 규모가 크고 일정하다면 해당 부분만큼 가사서비스의 공적 공급체계를 줄여 자가노동의 가치 보전비용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 이것이 가사노동의 가치화와 사회화의 결합이다. 적정 임금과 공적 공급방식을 고려한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가치화가 결합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고려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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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결론적으로 개인은 1인당 매월 20만 원, 가계는 매달 평균 50만 원의 가계지출(가사 보험료, 총액 100조 원)로 가정관리, 돌봄, 식사 등 모든 가사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500만 명 정도가 가사노동자로 국가에 고용돼 현재 노동자 중위소득 수준(월 300만 원)으로 가사노동의 가치(총액 180조 원)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개인과 가계는 신규 발행된 화폐액만큼 세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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