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VS 반이재명, 불붙은 기본소득 논쟁

[요즘 경제] 기본소득 논쟁의 정치화


설 연휴를 전후로 대선 레이스의 신호탄이 터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형 기본소득에 대한 건설적 논쟁”을 제시했고, 이에 맞서 여권 내 반이재명계 정치인이라 분류할 수 있는 임종석, 정세균, 이낙연, 김경수 등이 차례로 강한 반대 표명하며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포퓰리즘”, “쓸데없는 낭비”, “정의롭지 못한” 등 다소 과격하고 예민한 말들까지 등장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기본소득 정책이 품고 있는 비전과 방향이 더 중요”하고, “현재 기본소득 논쟁은 좋은 경쟁의 한 사례”라며 우회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내년 대선을 계기로 갑작스레 불거진 기본소득

논쟁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것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녹색평론 등의 운동단체가 기본소득론을 대안 경제 이념으로 제시했고, 학계에서도 소소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다가 2012년 대선에서 복지국가 논쟁을 계기로 기본소득론이 급부상했다. 당시는 2008년 금융위기의 여진 속에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대중적으로 널리 확산하고, 자연스레 대안 경제에 대한 여러 가지 논쟁이 분출했던 시기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경제정책의 큰 기조였던 ‘소득주도성장론’도 그때부터 회자되기 시작했다. 본래 이름은 ‘임금주도성장론’이었는데, 정치적 이유로 ‘소득주도성장론’으로 탈바꿈해 2014년 민주당의 정책으로 부상했고, 이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아젠더가 됐다.

그 무렵 정치인들은 기본소득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이재명이다. 그는 2015년 성남시장 재직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 배당 도입을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국민(지자체나 정부) 소유의 공공재에서 발생한 이익을 국민에게 배당하는 기본소득(혹은 시민배당금)의 개념을 성남시에서 최초로 도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실제로 성남시는 청년 배당 정책을 실행했다. 당시 “공산주의자가 나라를 말아먹으려 한다”라는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이 정책은 이후 이재명을 기본소득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8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 지난해 코로나 사태를 맞아 재난 기본소득의 열렬한 주창자가 됐고 대선을 일 년여 앞둔 현재는 차기 대선 주자 1위를 달리고 있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어져 온 그의 정책궤적에서 기본소득론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대선 과정에서도 뜨거운 쟁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논쟁은 반이재명계 여권 인사들이 일제히 정치적 공격을 시작한 것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연기처럼 사라진 ‘소득주도성장론’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이런 논쟁이야 늘 있는 일이다. 오히려 불나비처럼 불이 붙었다가 속 빈 강정처럼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다. 과연 이번 기본소득 논쟁은 어떻게 수렴될까? 앞서 언급한 ‘소득주도성장론’을 돌아보면, 정권 출범 초기 1~2년간 우리는 이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그런데 어느새 어느 정치인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고 있다. 이미 대통령조차 이 말을 쓰기 않는지 오래다. 그토록 논쟁했던 ‘소득주도성장론’은 어디 가고, ‘K뉴딜’, ‘K방역’이 그 자리를 자치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사태로 정책 포인트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해도,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것은 1~2년짜리 정책개념이 아니다. 최소 5년 이상의 중기적 개념의 정책이다. 소위 ‘1차 분배’라 일컬어지는 임금/이윤의 분배 몫을 늘려,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고 이것이 고용증대로 선순환되는 개념이다. 그러기 위해선 ‘1차 분배’를 강제할 방안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는 정책적 고리를 단단히 만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도 주식과 부동산에만 올인하면 선순환은 미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제적으로 기업의 이윤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지 않는 이상, ‘1차 분배’를 제도화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노동자들이 임금투쟁을 통해 따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낮은 노조 조직률, 단위사업장별 임금교섭체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커다란 분배 격차, 비대한 자영업자 비중 등,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임금을 중심으로 ‘1차 분배’를 제도화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명칭에서 ‘임금’을 ‘소득’으로 바꿔 ‘소득주도성장론’이라고 고친 것이다. 소득이라고 고치면 정책 대상을 자영업자까지 확장하면서 내용도 정부에 의한 ‘2차 분배’까지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대상과 내용을 늘려 훨씬 확장된 형태의 성장론으로 발전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확장된 ‘소득주도성장론’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2차 분배’를 포함한 분배정책을 주도하기 위해선 다양한 정책들과 더불어, 특히 재정 투여를 대폭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말했듯 자산의 역할을 ‘마중물’ 수준으로 이해했다. 펌프질하기 위해선 필요한 물을 부어줘야 하는데, 정부의 재정을 물꼬를 터주기 위한 초동조치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 그다음부터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레 펌프가 작동할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안일한 상황인식이었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확인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분배정책이 확대됐다고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정부는 항상 재정 문제를 핑계로 보여주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가령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논란처럼, 최저임금이 올라도 월급이 깎이는 정책을 폈는데 어찌 분배가 확대되겠는가? 여기에 부동산 정책의 헛발질이 코로나 사태에도 활황을 지속하는 부동산 시장을 만들었으니, 분배-소비-투자-고용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는 아무래도 끊어진 것 같다. 모든 자금을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이 빨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기본소득 논쟁의 초점은 국가재정

지난해 재난 기본소득은 대중에게 매우 강렬한 인식을 남겼다. 국가가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일괄적으로 나눠준 예는 역사상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가 이렇게 돈을 막 써도 되는가에 대해 대중은 항상 불안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런 관념이 일거에 깨진 것이다. 오히려 마트에서, 편의점에서 돈이 돌고 있다는 소비 효과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대중의 이러한 인식 변화가 재난지원금 논쟁의 중심에 있는 이재명의 지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선별이니 보편이니 불필요한 논쟁만 벌이며 시간만 낭비하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선 일단 재정을 대폭 풀어야 한다는 이재명 식 사이다 논리가 먹히는 것이다.

선별이냐 보편이냐는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선별을 잘해서 더 두텁게 하면 될 일이다. 선별에만 초점을 맞춰 핀셋 처방 한답시고 시간만 낭비하면서 시급한 재정투여를 차일피일 미루는 미련한 짓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이 스스로 말한 ‘재난위로금’ 논쟁도 이런 엇나간 예다. 지금은 코로나 종식 후 위로금에 대해 논쟁하는 한가한 때가 아니다. 당장 생계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생활지원금이 절실한 때다. 그것도 한두 푼 수준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수개월째 영업을 못 하고, 일감이 없어 빚으로 메우고, 올해까지 위기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한 달 생활비 수준의 지원으로 해결되겠는가 말이다. 그것도 위기가 다 정리된 한참 후에야 준다니, 대통령의 상황 인식부터가 이렇게 안일하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선별이냐 보편이냐 기준을 나눠 편을 가르는 것이다. 이미 언론은 그렇게 스탠스를 잡은 듯하다. 여론조사 보도만 봐도 재난지원금 형식에 대한 선별이냐 보편이냐를 묻고 어느 쪽이 높은지 보도한다. 가장 어리석은 논쟁이다. 심지어 악의적인 행태다. 이런 관점과 기준이 자리 잡은 이유는 한정된 국가재정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재정이 한정돼 있으니 적게 골고루 나눠줄 것인지, 아니면 특정 부분에 몰아서 줄 것인지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국가재정의 여력을 매우 낮게 설정해 놓고, 간에 기별도 안 갈 수준으로 지원한다는데 있다. 이래선 아귀다툼만 늘어날 뿐이다. 국가재정을 어떻게 대폭 늘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논쟁의 중심도 여기로 옮겨져야 한다. 언론에선 국가부채 걱정을 연일 보도하는데, 사실 빚으로 쌓아 올린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훨씬 큰 문제다. 부채 수준만 놓고 보면,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0%를 넘긴 약 2천조 원에 이른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참고로 선진국 가계부채 평균은 GDP 대비 약 70% 수준이다. 하물며 GDP 대비 40%인 700조 원 수준의 국가부채로 국가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주장은 한쪽 눈을 감은 채 떠들어대는 말과 같다.

기본소득 논쟁의 올바른 교훈

기본소득 논쟁으로부터 올바른 교훈을 얻기 위해선 무엇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선별과 보편의 대립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대중에게서 멀어질 것이며, 국가를 민주화 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상실할 것이다. 기본소득 논쟁을 단순히 나눠주는 방식과 액수로만 이해하면, 일회성 인기몰이 정책으로 전락할 수 있다. 100년 기본소득을 처음으로 주장했던 사람의 말을 들어보자. “개혁 프로그램에는 두 개의 주춧돌이 있다. 구매력과 제품 가격 간의 괴리를 해소할 수 있도록 ‘국민 배당’을 전 국민에게 배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가격을 조정하는 메커니즘이다. 여기서 ‘공정가격’은 생산시스템의 물리적 효율성이 증가한 만큼 소매가격을 인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요소를 통해 소비자는 원하는 만큼 생산된 제품을 살 수 있고, 그 소비는 자동으로 생산의 지속성을 보장해주게 된다.”

이렇듯 기본소득의 출발은 단순한 분배정책이 아니다. 분배와 생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엮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다. 그가 말한 ‘국민 배당(기본소득)’과 ‘공정가격’ 모두 국가의 엄청난 권력을 동원하는 정책이다. 세금, 화폐 발행, 가격조정 등등 매우 논쟁적인 사안들이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민주화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이며, 사회개혁 및 사회혁명의 전초를 마련할 수 있는 디딤돌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의 소모성 편 가르기와 언론의 악의적 보도행태로 이런 중요한 논쟁의 계기가 침몰당하는 것을 그냥 놔둘 순 없다. 연기처럼 사라진 ‘소득주도성장론’을 반복할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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