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전쟁: CBDC를 통한 위안화 국제화와 달러 패권

[99%의 경제]


디지털 화폐가 온다

CBDC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줄임말로 ‘전통적인 지급준비금이나 예치금과 다른 전자 형태의 중앙은행 발행 화폐’를 의미한다. 즉, 지폐나 동전과 같은 현금이지만 전자적인 형태로 발행하며, 현금을 주머니와 지갑에 갖고 다니듯 스마트 전자지갑에 디지털 화폐를 넣어 다니고, 전자태그 등으로 현금을 이동시킨다. 한마디로 디지털로 된 현금이다.

CBDC는 현재 각국 중앙은행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준비하고 있지만 주로 2019년 페이스북이 리브라(Libra)라는 리저브 기반 디지털 화폐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이에 대응해 CBDC 도입을 검토하게 됐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 등에 따른 현금 사용 감소, 지급 결제수단의 디지털화 등으로 CBDC 도입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지난해 국제결제 은행(BIS) 조사에 따르면, 65개 중앙은행 중 CBDC 연구를 진행하는 비율은 86%로, 2017년 65%에 비해 3분의 1가량 증가했다.(1)


신흥국이 선진국보다 적극적으로 CBDC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CBDC 심화 단계 (advanced stage)에 진입한 8개 중앙은행 중 7개가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이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CBDC 도입에 다소 보수적이었는데, 코로나19 확산과 중국이 CBDC 도입을 서두르면서 CBDC 연구에 합류하고 CBDC 도입 계획을 속속 밝히고 있다. 미국의 행보도 빨라졌다. 미국의 디지털 달러 발행 의지를 확인하듯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월 ‘범용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전제조건’ 보고서를 발간해 디지털 발행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2월 디지털 화폐 연구팀을 신설했고 올해 디지털 원화 시범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CBDC 도입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디지털 현금이다 보니 거래기록이나 현금 사용기록이 전자적으로 남을 수 있어 사생활 노출 가능성이 크고, 전자지갑을 은행 당국이 직접 통제할 수가 있어 국가에 의한 감시통제의 우려가 상존한다. 또한 중앙은행이 전자지갑 형태로 국민 전체에 대한 개인별 계좌를 개설할 수도 있어 은행을 통한 금융 중개 기능의 약화나 중앙은행의 은행 지배, 금융위기 시 금융 리스크의 중앙은행으로의 집중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각국에서 CBDC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네트워크로 연결돼 외화 CBDC도 사용 가능해지면 의도와는 정반대로 현재 기축통화인 달러화(디지털 달러)가 자국 통화의 이용을 잠식하게 될 수도 있다. 즉, 화폐 주권이 지금보다도 더 달러화(이를 발행하는 미국)에 종속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현재에는 이런 우려에도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면 거래의 투명성 강화로 사생활이나 감시통제 강화보다 범죄나 부패 등의 고리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중앙 은행은 소액거래의 경우엔 익명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직접 개인계좌를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시중은행을 통해서 진행해 기존의 금융 중개 경로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최대한 유지하겠다고 밝힌다. (중국 인민은행이 특히 그렇다.) 아울러 화폐 주권의 종속보다 CBDC는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대체할 가능성과 편의성이 더 높다는 이유도 부각된다.

최근 디지털 화폐 도입을 서두르는 곳은 단연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CBDC인 디지털 위안화를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이전에 시중에 보급해 법정화폐로 공식 유통하려 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디지털 위안화 사용과 관련한 국내 테스트는 마쳤고, 올해 4월 초 홍콩 통화 당국인 홍콩금융관리국 (HKMA)과 역외 결제(국제 결제)와 관련한 테스트도 마쳤다.

달러 패권과 시뇨리지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할 때 얻는 이익을 ‘시뇨리지(seigniorage) 효과’라고 부른다. 가령 만 원권 화폐를 만드는 데 100원이 든다면 9,900원이 바로 시뇨리지다. 한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 (물론 국채 등 발행액만큼의 자산–리저브– 를 쌓지만)는 자국 내에서는 일정한 시뇨리지를 갖지만, 국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즉, 국제결제통화로 사용되는 달러화, 유로화, 엔화 등 기축통화만이 시뇨리지를 얻을 수 있다.

1945년 브레턴우즈 체제 성립 이후 달러의 금 태환이 정지된 이래로 달러화는 천문학적인 시뇨리지를 얻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미국은 매월 평균 400억 달러(45조 원), 연 최대 5천억 달러(약 550조 원)를 국채매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시장에 뿌려댔지만 달러 가치는 크게 훼손되지도 않고 인플레이션도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 제도(Fed)는 홈페이지를 통해 1달러를 발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7.7센트, 10달러는 15.9센트, 100달러는 19.6센트라고 공개하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는 100달러를 찍어내면 99달러 80.4센트의 주조 차익이 발생한다.

단순 계산으로는 미국이 달러화를 발행할 때마다 이 만큼의 주조차익이 생기는 것이 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달러의 시뇨리지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낸 것과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한 것의 차이인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본다. 계산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확실한 것은 미국이 시뇨리지 효과를 가장 크게 누리는 국가라는 점이다. 미국은 경상 적자나 재정적자가 아무리 불어나도 국가 부도 사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달러는 기축통화이며 세계 경제는 달러 패권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미국이 달러 패권을 지속시키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축통화는 결국 무역 거래에서 결제통화로 사용되는 통화를 의미한다. 미국의 달러화는 전체 무역 거래에서 40% 가까이 결제 통화로 이용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필요한 외환거래를 위해 달러화 자산을 보유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기축통화라 하더라도 무역 거래와 같은 역외 결제에서는 실제 물리적인 현금이 오갈 수 없어 은행 계좌를 통해 서로 대금을 주고받아야 한다. 국제거래에 대한 지급, 결제, 청산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달러체제는 CLS(Continuous Linked Selement)와 국제은행간통신협회 (SWIFT)의 국제결제망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네트워크와 국제결제망이 바로 미국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달러의 패권이 유지된다. CLS는 주요 금융기관의 실시간 결제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외환동시결제 시스템이며, SWIFT는 CLS 네트워크 등을 통한 금융거래의 메시징 시스템이자 통신망이다.


달러 패권과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

그동안 달러 패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속해서 확대됐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 위기 이후 미국 달러화의 양적 완화가 대규모로 진행되면서 달러 패권에 대한 문제 제기가 더욱 크게 일어났다. 미국의 통화 발행 부담이 신흥국으로 옮겨 갔고 그에 따라 신흥국의 통화 여건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기축통화국, 즉 미국, 유로존, 일본, 영국, 중국만이 실질적인 양적 완화를 할 수 있었다. 즉, 달러화를 발행하는 미국과 기축 통화국만이 시뇨리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달러체제를 둘러싼 기축통화국 내 에서의 경쟁은 물론 비기축 통화국 간 경쟁도 유발했다. 특히 비기축 통화국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달러와 통화 스와프를 어떻게 맺는가가 위기 탈출의 관건이 됐고,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 표시 채권(주로 미국 국채)으로 수요가 몰려 미국은 아무런 부담 없이 양적 완화를 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물론 대부분의 국가는 달러화 자산을 매입하는 데 골몰하거나, 통화정책은 실종된 채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금리 정책과 양적 완화 추이만을 주시해야 했다. (2020년 코로나 위기에서는 이런 비판 때문인지 기축통화국을 넘어 일부 신흥국도 양적 완화를 할 수 있게 됐다. 그중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또한 달러 패권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도 계속 존재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시도와 노력이 계속됐다. SDR은 애초에 미국의 달러 패권에 대한 비판 속에서 도입됐지만, 미국의 적극적인 견제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극히 제한적인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SDR은 국제수지가 악화할 때 담보나 조건 없이 외화를 인출해 갈 수 있는 권리이며, 실물이 존재하지 않고 전자적으로 기재되는 일종의 가상화폐다. 2016년 10월 중국 위안화가 SDR 구성 통화에 편입되고 난 후, 중국은 SDR의 역할을 확대하고 새로운 기축통화로 활용할 수 있도록 SDR의 위상 강화를 계속 요구해 왔다. 그러나 실제 무역 거래 등에서 달러화의 수요는 줄지 않았고 여러 차례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더 크게 일어나는 등 SDR을 기축통화로 만드는 시도는 전혀 현실적인 힘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는 현금이면서도 전자적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역 거래나 해외 송금 등 역외 결제에서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중간 단계 없이 간편히 이동할 수 있다. 게다가 비트코인에 사용되는 분산원장 기술을 이용하면 거래의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인 수단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는 장래에 미국 달러화 중심으로 되어 있는 기축통화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고 되고 있다. 마크 카니 전 영국 중앙은행장은 2019년 8월에 달러를 대신할 가상 기축통화를 위해 중앙은행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니 전 총재는 한 통화의 패권(달러패권)이 다른 통화로 넘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네트워크를 통해 무역이나 국가 간 거래에서 사용하는 새로운 ‘합성 패권 통화(SHC, Synthetic Hegemonic currency)’ 개념을 제안했다. 쉽게 말해 각국의 CBCD 네트워크를 연결해 디지털 공동 통화를 만들고 이를 무역과 역외 거래에 적용하면서 기축통화로 기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각국 중앙은행에서 디지털 통화 발행에 대한 계획을 현실화하면서 앞서 카니 총재가 제안한 새로운 합성패권통화(디지털 공동통화)가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 네트워크로 구현 가능하다는 주장이 늘어나며 이 사안이 현실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달러체제의 문제와 함께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중국 내에서 미국 달러화의 헤게모니에 대한 우려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압박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올해 중국 인민은행은 CBDC의 역외 결제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국제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지난 2월, 인민은행 산하 디지털 화폐연구소는 ‘다자간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 가교(M-CBDC Bridge)’에 가입했는데, ‘M-CBDC 브릿지’는 홍콩금융관리국과 태국 중앙은행이 2019년 결성한 CBDC 역외 결제 프로젝트로, 아랍에미리트(UAE)도 가입했다. 이 프로젝트는 분산원장기술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을 활용해 외환을 실시간으로 역외 거래하는 결제 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한다. 더욱 이 프로젝트가 관심을 끄는 것은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이자 가장 중요한 국제은행 기구인 국제결제은행(BIS)이 이 프로젝트에 협력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화할 가능성이 큰 프로젝트이고 멀지 않는 장래에 결국 역외 결제는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 네트워크 속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더 실리고 있다.

또한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3월에는 국제 은행간통신협회(SWIFT)와 중국 기관들이 공동으로 합작 법인인 금융정보서비스사 (金融信息服 有限公司)를 설립했다. 벨기에에 본부가 있는 SWIFT는 앞서 설명한 대로 국제결제망으로서 전 세계 200여 개국 1만1000여 개 금융사 간 국제 결제를 중개 하는 기구다. 당초 SWIFT는 기축통화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 했는데, 이 SWIFT가 중국과 함께 합작사를 설립했다는 데는 의미가 크다. 이에 따라 중국 금융기관이 해외 결제 업무를 할 때 직접 SWIFT와 연결해야 했던 이전과 달리, 앞으로는 곧바로 금융정보서비스사를 거치면 된다.

기축통화를 둘러싼 패권 경쟁

SWIFT는 미국의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현실적인 수단이자 미국이 경제제재의 최후 수단으로 고려하는 것이 SWIFT 배제다. SWIFT에서 배제되면 현실적으로 무역 거래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미국은 이란, 베네수엘라를 경제제재의 형태로 SWIFT에서 배제해 왔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극단적인 경우 중국을 SWIFT에서 배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디지털 위안화와 독립적인 역외 결제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는 셈이다.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면 미국은 중국 정부가 아니더라도 화웨이와 같이 중국의 개별 기업을 언제든 SWIFT에서 배제 조치를 할 수가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4월 11일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정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무부와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등 주요 부처가 현재 디지털 위안화가 안보와 기축통화인 달러의 지위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디지털 위안화를 활용하면 기축통화인 달러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미국 금융 시스템과 관계없이 다른 나라와 무역거래가 가능하다. 중국으로서는 미국이 중국을 달러 기반 국제결제망에서 배제하더라도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우회로 확보가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위안화 국제화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 SWIFT를 통한 국제결제에서 달러화 비중은 약 40% 수준이고 위안화는 2.4%에 불과하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외환보유액에서도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하는 데 반해 위안화는 2%에 그친다.

(디지털)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서는 실제 결제에서 위안화가 더 많이 사용돼야 한다.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한 좋은 계기로 삼고 있다. 일대일로 참가국들이 디지털 위안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디지털 위안화로 대출금을 지불하고, 각종 인프라 설치 비용을 지불하고, 거래 수수료를 낮추도록 요구할 수 있다. 중국과의 교역량이 늘고 특히 석유의 역할을 대체하는 필수자원으로 등장하는 희토류의 거래에 위안화 결제가 확대된다면 위안화 국제화는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 기축통화(와 통화 패권국)가 없어지고 (가상의) 공동통화가 될지, 미국과 함께 새로운 기축통화국인 중국이 자리매김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통화 패권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를 유지하는 핵심 수단인만큼 미국이 스스로 양보할 일은 없고 경제적인 갈등이나 경쟁보다도 전쟁과도 같은 정치적 대결 속에서 결정 날 공산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국(민중)으로서는 우선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특정 패권국가의 통화가 기축통화가 되는 현재의 구조를 탈피하는 것을 지지해야 한다. 동시에 현재 미국과 국제금융시장에 종속된 화폐 주권을 회복해 나갈 방안으로 디지털 통화(디지털 원화)의 도입과 공동통화로 역외 결제를 가능하게 할 국제적 공조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각주]
(1) “Ready, steady, go? - results of the third BIS survey on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BIS, 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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