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채를 늘려라! 그래야 산다

[요즘 경제]

5차 재난지원금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빠져 들고 있다. (이글이 발표될 쯤 해소될 수 있을까?) 참으로 답답하다. 각 주장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핵심을 놓치다 보니 계층 간 아귀다툼으로 비친다. 문제의 핵심은 재정투입의 절대적인 수준이 낮다는 것을 모두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과 세수로 걷힌 부분을 나눠주겠다는 재정 당국의 기본적인 태도가 낡은 균형 재정론에 얽매인 생각이다. 영업 제한에 대한 손실보상에 6,000억 원이라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재정을 배정해놓고 비난이 빗발치자 1조 2천억 원으로 두 배 늘렸다. 하지만 이걸로는 여름 내내 지속될 4차 대유행의 고통을 감내하기엔 턱없이 부족 하다. 이 와중에 국채를 갚기 위해 2조를 상환하겠다니, 부총리가 과연 현실 감각이 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빚쟁이들이 몰려와 당장 빚을 갚으라고 멱살이라도 흔든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급해 국채 상환에 손실보상금보다 훨씬 큰 액수를 배정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칭 경제전문가들도 TV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해 국가부채 증가를 지적하며 심각한 위기가 올 것 인양 떠들어대고 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 또한 고장 난 레코드처럼 똑같은 주장을 반복한다. 심지어 유력 대선 후보가 세금 걷어 나눠줄 바엔 아예 걷지 말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한다. 국가재정, 세금, 국가부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매우 넓게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GDP 대비 40~50% 수준인 한국의 국가부채가 문제라면, 230%가 넘는 일본부터 100%가 넘는 상당수의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에 망했을 것이다.


국가부채에 대한 잘못된 말장난

국가부채 논란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이 있다. 바로 미래세대가 이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는 논리다.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국가부채가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1인당 매겨진 국가 부채에 채권 추심을 당하며 살지 않는다. 개인이 짊어진 부채와 국가부채는 애초 성격이 다른 것이다. 국가부채가 외채가 아닌 자국 통화로 되어 있다면 사실상 문제 될 게 없다. 자국 통화는 국가가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부채는 거시경제의 안정적인 운용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장기능이 망가져 지금처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경제영역과 역할이 넓어질 수록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위기상황이 아니어도 국가부채는 늘어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통화안정 채권 이라고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180조 원 규모의 가장 큰 채권이 있다.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유일한 주체가 중앙은행인데, 왜 채권을 발행해서 돈을 조달하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하지만 이 채권의 목적은 돈을 조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거시경제의 안정을 위해 시중의 풀린 돈을 흡수하기 위해 존재한다. 수출로 유입된 달러를 한국은행이 사들이면 막대한 원화가 시중에 풀리는데 이것을 한국은행이 흡수하기 위해 발행하는 것이다. 만약 통화안정 채권도 국가부채에 넣는다면(일본 재정 당국은 국가부채로 계산한다), 우리나라 국가부채 비율은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다. 국가부채를 비판하는 논자들에 따르면 당장 우리가 짊어져야 할 부채도 엄청나게 늘어나는 셈이다. 미래세대는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말장난 같은 일인가!

국가부채의 숫자놀음에 빠지면 이런 황당한 말장난이 난무하게 된다. 실제 수년 전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는 통화안정 채권 에서 지급하는 이자를 거론하며 국민 세금 운운하고 부채를 줄이라는 촌극도 벌어졌다. 중앙은행의 역할과 국가부채의 성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숫자가 주는 공포감에 다들 화들짝 놀라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채와 동일하게 착각하는 것이다.

민간부채를 줄이고 국가부채를 늘려야 한다

사실 한국의 부채 위기는 국가부채가 아닌 민간부채에 있다. 가계부채 비율은 GDP 대비 103%, 기업부채 비율은 111%이다. G5(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평균이 각각 72%, 104%임 점을 비춰보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와중에 대출 규제를 풀어 젊은이들이 집을 쉽게 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정치인들과 규제 완화론자들의 주장은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포퓰리즘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간부채는 상환압박이 매우 분명하게 존재한다. 정부가 상환유예와 같은 특혜를 주지 않는 이상, 기한 내에 약속한 돈을 모두 갚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은 법적인 제약으로 신체적인 구속과 경제적인 파산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는 다르다. 외국통화가 아닌 자국 통화로 발행한 국채에 상환압박은 존재할 수 없다. 설령 외국인이 국채를 가지고 있어도 자국 통화로 바꿔주면 그만 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돈을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 각국이 시행하고 있는 양적 완화 조치(국채매입) 들이 바로 이런 방법이다. 혹자는 1990년 조지소로스 같은 금융투기꾼이 영란은행을 주저앉힌 사례를 거론하며 중앙은행의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고정환율제를 시행하고 있던 유럽 통화제도(ERM)의 허점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영국의 국가부채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더구나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세계 각국에 달러 스와프(자국통화와 달러의 교환)까지 열어준 상태에서 환투기 공격은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4,500억 달러로 세계 8위 규모다. 그러므로 한국의 국가부채 폭증이 제2의 외환위기로 번진다는 일각의 주장은 수많은 중간 단계를 생략한 채, 최악의 상황만을 가정한 현실성 없는 비판이다.

국가부채 규모는 경제정책의 필요에 따라 조정할 뿐이다. 그리고 정부 부문의 적자는 민간부문의 흑자로 이어진다. 정부가 쓴 돈이 증발하진 않을 테니 분명 민간부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민간부문의 돈이 많아지면 인플레가 온다고 주장하지만, 돈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재화와 서비스도 같이 늘어난다. 돈은 생산과 소비를 매개로 순환한다. 만약 민간부문에서 모든 가용자원이 활발하게 활용된다면, 정부가 굳이 적자를 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애초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경제 위기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해 삶이 곤궁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는 국가가 재정을 투여해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상식이다. 문제는 민간부문 누구의 호주머니에 얼마만큼 돈이 들어가도록 해야 할지가 중요하다. 굳이 시장을 없앨 필요는 없겠지만, 시장이 제 기능을 못 하면 다른 누가 그것을 대체해야 한다. 시장이 망가져도 사람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가가 망가진 시장을 대체해야 하는 시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가의 귀환이라는 화두가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를 살릴 것인가 선택하지 마라, 모두를 살릴 수 있다

세금이 걷힐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된다. 재정은 세금에 의해 제약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4조 달러 경기부양책이 법인세가 걷힐 때까지 기다렸다 하는 것이 아니듯,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 손실보상과 재난지원금도 세수 부족 때문에 지급액을 줄이거나 미루면 안 된다. 세수가 부족하면 부채를 늘리면 될 문제다. 오히려 부채를 늘리지 않고 개입할 때를 놓치거나 방기하면, 이는 국가가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K뉴딜에는 115조 원을 쏟아부으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참아달라고 송구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명확해진다. 사실 국가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 민간부문 누구의 호주머니에 얼마만큼 돈이 들어가도록 해야 할지, 구체적인 대책을 정교하게 만들고 실질적인 효과가 발행하도록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과 현대가 벌이는 반도체와 전기차 산업에 쏟아붓는 돈은 세금을 걷어 지원하는가? 아니다. 경제정책의 판단에 따라 재정을 배정하는 것이다. 미래 먹거리가 중요하다는데 그러면 그렇게 해라. 그런데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를 살릴지 선택하지 말고,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국가는 그러라고 있는 것이고, 대통령은 그 방법을 결단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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