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팔찌가 풀어지는 날이 엄마가 복직하는 날”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31)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일본 산켄전기 위장 폐업 철회 원직복직 투쟁 이야기①

[필자주] 지난 5월 8일, 일본 산켄전기의 위장폐업 철회·한국산연 공장 정상화·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마산 한국산연 노동자(금속노조 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 소속)들의 천막 농성이 300일을 맞이했다. 한국산연 노동자들의 투쟁 배경과 과정, 투쟁을 선택한 이유와 심정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마산에서 새벽밥 먹고 서울에 오다

4월 14일 오전. 서울 강서구 마곡동 건와빌딩 앞에 도착한 승합차에서 ‘먹튀 일본 산켄전기 불법폐업 철회’가 적혀있는 주황색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내린다. 경남 마산자유무역지역(구 ‘마산수출자유지역’) 한국산연에서 짧게는 10년 길게는 32년까지 일해 온 노동자들(금속노조 경남지부 한국산연지회 소속)이다. 지난 1월 20일 모기업인 일본 산켄전기의 일방적인 폐업(법인해산)으로 일자리를 잃은 16명의 한국산연 노동자들은 일본 산켄전기의 위장폐업 철회와 한국산연 공장 정상화,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276일 째 투쟁하고 있다.

“왔나. 아침 일찍 고생했다!”

먼저 와있던 상경팀 노동자들이 마산에서 온 노동자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나무보단 거가 낫겠다.”

“빨리 해라!”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깃발을 꽂고 엠프 설치를 하고 현수막을 챙기며 집회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봄비가 내리고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햇살은 반가운데, 바람이 제법 매서워 현수막을 들고 있는 게 쉽지 않다.

  집회 준비를 하고 있는 한국산연 노동자들 [출처: 연정]

“지금부터 산켄 규탄 집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희들은 서울 건와빌딩 앞에 와있습니다. 불법 위장폐업으로 한국노동자 다 죽이는 부도덕한 일본 기업 산켄전기에 항의하는 마음을 담아 큰 소리로 함성 한번 지르겠습니다. 시작~!!”

“와~~~”

집회 사회를 처음 본다는 백은주 씨의 여는 말로 집회가 시작된다. 건와빌딩 4층에는 산켄전기 서울영업소가 있고, 5층에는 LG와 산켄전기의 합작회사(지분 산켄전기 51%, LG 49%) 어드밴스 파워디바이스 테크놀로지가 있다.

오해진 지회장이 갑자기 잡힌 일정 때문에 상경투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서 역할분담에 큰 변화가 생겼다. 매번 오해진 지회장이 하던 집회 대회사를 김형광 사무국장이 하게 되고, 김형광 사무국장이 하던 사회는 백은주 씨가 맡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진 촬영과 조합원 발언에도 변동이 생겼다. 산켄전기 서울영업소와 일본대사관, LG트윈타워 세 군데에서 집회를 하다 보니 발언도 사회도 3개 씩 준비해야 했다. 발언을 맡은 노동자들은 준비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이어지는 일정 내내 “아, 떨려...” 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각종 혜택 단물만 먹고 도망간 ‘먹튀 기업’

“저희는 마산자유무역지역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입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의해 각종 세금혜택 등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혜택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 혈세로 주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혜택을 받고도 한국에서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고 있는 것이 이곳 일본 산케전기입니다.” (한국산연지회 김형광 사무국장)

한국산연은 1973년 마산자유무역지역(구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일본 산켄전기가 100% 출자하여 설립한 회사로, 전원장치와 트랜스·CCFL(냉음극 형광램프)·LED 등의 전기전자 부품을 생산해온 회사다. 그동안 한국산연은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조세·임대료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받아 왔다. 김형광 사무국장은 그 많은 혜택을 받았으면 한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유지해야 하는데, 일본 산켄전기는 단물만 빨아먹고 도망간 ‘먹튀 기업’이라며 비판한다.

지난 38년 동안 산켄전기는 한국 생산 공장인 한국산연에서 7번의 희망퇴직 공고를 하고, 세 차례의 생산 사업부 철수를 시도했다. 2천 년대 초반 산켄전기는 산업 전망 예측을 못하고 한국산연 공장에 곧 사양산업이 될 CCFL 생산을 배치하고 과도한 투자를 했다가 사업 전환에 실패하고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보게 된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신규 아이템 개발 요구를 거부하며 모든 책임을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의도적으로 ‘돈이 안 되는’ 사업을 한국 공장에 배치했다.

  일본 산켄전기 서울영업소가 있는 서울 마곡동 건와빌딩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는 한국산연 해고노동자들 [출처: 연정]

산켄전기는 지난 2016년에도 경영악화를 이유로 생산 부문을 폐지하고 생산직 노동자 69명을 해고했으나 지방·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과 1년간의 일본 원정투쟁 끝에 희망퇴직자를 제외한 16명이 복직하게 되었다. 복직을 하면서 회사는 노동조합과 공장의 정상화를 위한 제반조치를 하겠다는 합의를 했지만, 회사는 이 합의를 어기고 그동안 단 1%의 기계 생산설비 투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복직을 한지 4년이 되기도 전에 노동자들을 또다시 거리로 내몰았다. 이번에는 정리해고도 생산부 철수도 아닌 해산과 청산이었다.

“회사가 노동조합이랑 교섭도 안하고 일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석 달 동안 휴업을 하고 있던 때였어요. 회사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저희는 매일 회사 앞에 나왔어요. 계속 이래 휴업을 해서 되나 싶었어요. 그러다가 일본 산켄전기 홈페이지를 보고 산연 철수를 알게 된 거죠. 동종업계 세계 8위인에도 회사는 계속 어렵다고 얘기해서 진짜 어려운 줄 알고 많이 양보했어요. 교대 돌라면 교대 돌고 주간 돌라면 주간 돌고 휴업하라면 휴업하고. 10년 동안 임금도 동결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저희를 복직시켜 놓고 뒤로는 천안에 다른 공장(EK, 구 LG지흥)을 차리고 우리를 정리할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던 거죠.”

21살에 한국산연에 입사해 올해로 20년 차가 되었다는 이혜민 씨는 아직도 폐업이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다. 혜민 씨는 ‘산연’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일본 산켄전기 서울영업소가 있는 서울 마곡동 건와빌딩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한국산연 해고노동자들 [출처: 연정]

일본 못 넘어온다, 이때가 절호의 기회

작년 7월 9일 공장 앞에서 퇴근선전전을 하던 중에 한 조합원이 일본 산켄전기 홈페이지에서 이상한 조짐을 발견한다. 확인해보니 일본산켄전기 이사회에서 한국산연 해산을 결정했다고 했다. 일본 본사의 움직임과 휴업 등 고용 문제와 관련해 월 1회 노사가 고용안정협의회를 개최하여 고용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자는 합의를 한 지 이틀 뒤였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일본 산켄전기에서 LED와 전자 관련된 사업부 통폐합 움직임이 포착되어 노동조합에서도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회사 측에 문제제기하고 설명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한국산연과는 무관한 내용이라는 이야기만 해왔다. 처음에는 당시 한국산연 이태용 대표이사도 청산 결정을 몰랐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몰랐을 리가 있겠냐?’며 말을 바꾸었다.

“대표이사가 나중에는 내가 몰랐겠냐, 이러는데, 진짜 몰랐던 거 같아요. 워낙 일본본사에서 급작스럽게 결정을 했거든요. 일본 본사가 전반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어요. 일본 현지 공장도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은 있었는데, 거기에 한국산연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들었어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이번에는 한국에서 원정투쟁 못 넘어온다. 이때가 절호의 기회다, 무조건 정리해라.’ 이렇게 갑작스럽게 청산되는 공장에 포함이 된 거죠.” (한국산연지회 이선임 조합원)

지난해 7월 15일 회사는 근로관계 종료 공지문을 통해 “십여 년 간 지속된 누적손실로 인하여 더 이상 정상적 경영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2021년 1월 20일 자로 폐업(한국 산연(주) 법인해산)”한다고 했다. 노동조합에서 경영악화에 관한 근거 자료를 요구했으나 사측은 본인들에게 유리한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 3년 치만 주었다. 산켄전기는 연간 50억 적자라는 한국산연의 인력과 생산규모를 감안할 때 가능하지 않은 주장을 했다. 한국산연 단협에는 ‘회사 폐업, 축소, 이전 등으로 해고·감원할 때는 6개월 전에 노동조합에 통보한다’고 돼 있는데, 이를 의식한 듯 날짜를 정확하게 맞춰 폐업일자를 정해서 공지했다.

많을 때는 500~600명에 달하던 노동자가 계속 떠나 지금은 16명이 투쟁을 하고 있다. 많지 않은 인원이지만 산켄전기 서울영업소와 일본대사관, LG전자, 부산영사관,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등에서 1년 가까이 투쟁해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산연 투쟁을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되어 일본 내 산켄전기 8개 영업소와 본사 앞에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다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몸도 마음도 경제적으로도 녹록치가 않다. 주변에서 심지어는 동지들조차 ‘답이 없는 싸움’이라고 말릴 때, 이들은 다시 한 번 새로운 길을 만드는 여정에 나섰다.

  일본 산켄전기 서울영업소 앞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혜민 조합원 [출처: 연정]

“20대 어린나이 한국 산연 회사에 들어와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20년 청춘 받쳐 일한 공장입니다. 저의 왼쪽 팔에는 삼색실로 만들어진 실 팔찌가 채워져 있습니다. 사랑스런 첫째 아들이 엄마를 위해 학교 선생님과 만들었다며 삼색 실 팔찌를 저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실팔찌가 풀어지는 날에 좋은 소식이 찾아온다며 그날이 엄마가 회사에 복직하는 날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저희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저희를 지지해주는 많은 연대 단체들과 110만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함께 실팔찌가 풀어지는 그날까지 저희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산연지회 이혜민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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