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워커스 8호 특강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누구에게나 회자하고 있는 유명한 정의를 습관적으로 내뱉게 된 것은 E. H. 카(Edward Hallet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옮김, 까치, 1997) 때문이다. 이 책은 1980년대에 필독서였다. 그리고 영화 <변호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

역사에서 ‘사실’보다 ‘해석’을 중시한다는 카의 책은 1980년대 학생들에게 한국 현대사가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출발점을 제공했다. 과거의 사실들이 어떠했는가보다는 역사 지식을 생산하는 역사가가 현재의 사회와 현실에 대해서 어떤 문제의식과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랑케의 실증주의를 반박하고 있다. 랑케는 역사를 “과거에 있었던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일 뿐”이라면서, 실제 사실만을 집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증주의는 로크에서 러셀에 이르는 영국 경험주의 전통과 맞물려서 “주체와 객체의 완벽한 분리”를 전제했다. 사실은 주체의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것이고, 주체는 외부의 사실을 인식하면서 수동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카는 역사는 재구성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인식되므로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말한다. 역사로 취사선택이 된 것은 이미 개인적인 견해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규명하고자 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가이다. ‘과거에 대한 사실(a fact about the past)’ 그 자체가 ‘역사의 사실(a fact of history)’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사실들(historical facts)’이란 역사가가 오늘날의 관점과 문제의식에 따라서 ‘과거에 대한 사실들’ 중에서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선택해서 일정한 질서로 배열하는 것으로서 성립하는 ‘역사’라는 담론 체계의 결과물이다(제1장 역사가와 그의 사실).

즉, 역사적 지식에 대한 객관성은 오직 연구자들 간의 상이한 가치를 조화시킴으로써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식이 존재에 구속된다”는 마르크스의 인식론과 “인식자는 개별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의 일원으로서 사고한다”는 만하임(K. Mannheim)의 지식사회학적 인식론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이는 논지이다.

샤프(Adam Schaff)는 인식이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이행하는 데 중점을 둔다. 즉 개인적 인식은 언제나 제한되어 있고, 주관적 요소에 영향을 받으며, 부분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상대적 진실인바, 인류라는 규모의 인식은 총체적인 진실의 획득을 통해 상대적 진실을 극복해 나가는 끊임없는 과정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식의 사회적 완성이라는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주관적 요인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Adam Schaff. 1970. Geschichte und Wahrheit. Wien. p.243). 인식에 개입하는 주관적 요소와 그와 연관된 인식의 왜곡 위험을 깨닫고 개인적인 인식에서 사회적 인식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이 사건의 원인을 연구하는 방법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을 제시하려고 한다. 카도 러시아 혁명의 발생 원인에 대해 한 가지 원인만을 제시한 학생보다는 다양한 러시아 혁명의 원인을 제시한 학생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136~137).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필하게 된 배경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연구가 그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10월 혁명을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카의 시각은 자본주의 문제를 소비에트 체제에 투영함으로써 20세기 초반 서구 사회와 연관되어 변해 나갔다.

역사가로서 카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서 한편으로는 매우 억압적이고 비효율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무한정 확장을 유일하게 저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체제를 연구했다.

그는 혁명의 영웅과 창조자는 노동자 농민이고, 레닌의 천재성은 이러한 민중의 정서를 제대로 읽어 내는 능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스탈린의 공포 정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말이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무엇을 이루었고, 그러한 성과들이 서구 사회에 던지는 교훈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하여 1944년에 시작한 연구가 33년이 지나서 총 14권의 《소련사(History of Soviet Russia)》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카의 《소련사》는 “소련의 역사가들도 본받을 만한 매우 객관적 분석을 제공하는 역사서”였으며, 그러므로 “수십 년 동안 부르주아 역사 연구에서 지배적 있던 전통적 접근 방법과 결별한” 역사서로 평가받았다(Stephen White. 2000. “The Soviet Carr.” Cox, Michael (editor). E. H. Carr: A Critical Appraisal. London: Palgrave. p.110).

이러한 평가의 기저에는 사료 활용의 엄밀한 태도에 대한 신뢰와 역사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져야 되는지가 깔린 것이다. 물론 카의 소련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대해 언제나 문제 삼던 영국 사회는 이러한 평가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역사 서술은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사건들이 어떤 경로로 끊임없이 확장되고 깊어지는가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진보적인 학문이다(185~186). 카에게 역사란 그 끝이 존재하지 않고 잠시 후퇴는 있을지라도 결코 진보성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도 역사가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소련과 동구권 몰락 이후 등장한 ‘포스트모던’은 역사의 진보를 신봉했던 근대주의적 역사관이 ‘역사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 삶의 문제는 역사적 지식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는 니체의 지적을 염두해 둔다면 현재의 우리와 어떻게 대화할지 고민스럽다.

여전히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박근혜 정부는 교과서가 오히려 이념 논쟁의 도구가 되는 현실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바로 이들의 왜곡된 역사관 때문에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정부에게서 특별히 바랄 것은 없다. 논리와 대의명분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종종 사극에 열광하고 역사 소설에 선택적 친화력을 보이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과거를 미학적 대상으로 삼는 앤티크 풍의 귀족주의 때문이다. 혁명의 뜨거움 대신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감염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변혁에 대한 시대적 욕망 때문이다. 특히 소설과 드라마에서 정조 시대는 관심과 흥미의 대상이다. 이는 역경을 이겨내고 스타덤에 오른 정조 개인에 대한 관심도 작용했지만, 구태를 벗으려는 변혁에 대한 시대의 열망을 역사적 알레고리로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하나일 수 없으며 단일하게 기록되지 않는다. 있는 사실 그대로 기록해도 개인적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읽힌다. 그래서 사관들의 몫은 예전부터 매우 중요했지만 그들의 목이 쉽게 달아나기 때문에 제 역할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역사는 승자 독식의 원칙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사실 그대로를 기록해서 후대에 계승했기 때문에 현재의 역사를 구성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덧붙이는 말

배성인 한국 정치와 사회 운동을 연구하면서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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