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곳간은 누가 채워주었나?

[연속기고](3) 삼성과 현대차에 짓밟힌 노동자의 삶

[출처: 반올림]

누가 이 죽음들을 책임질 것인가

일주일 전인 지난 5월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아무 이유도 없었다. 그저 우연히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었던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어간 피해자를 추모하며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었다.

바로 그 10번 출구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 강남역 8번 출구에는 번쩍이며 높게 치솟은 삼성 서초사옥 앞에 작은 농성장이 있다. 삼성의 간판 상품인 반도체, LCD 등 전자제품을 만들다 백혈병, 혈액암, 뇌종양 등 각종 희귀 난치성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76명의 삼성 노동자를 추모하는 곳이다. 이들 역시 자신들이 왜 죽어 가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굴뚝 없는 공장”이라며 자부하던 삼성에서 생산 공정에 벤젠을 비롯한 여러 발암물질이 사용됐지만, 삼성은 그 위해공정을 ‘사업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고 직업병에 대한 책임도 회피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직업병 피해자 가족들은 위세를 자랑하는 삼성 사옥 앞에서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강남역에서 강남대로를 따라 쭉 내려오다 보면, 삼성 사옥 못지않게 위압적으로 높이 솟아있는 현대-기아차 양재동 본사가 나온다. 본사 바로 옆 한 귀퉁이에 두 달 전 지난 3월 17일 목숨을 끊은 ‘한광호’라는 노동자의 영정을 부여잡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있다. 죽음으로 내몰린 이유는 단 하나, ‘노조’를 했기 때문이다. 헌법에도 보장된 노조의 권리는 재벌의 문 앞에서 멈춘다. 현대차는 부품사인 유성기업에 노조 파괴를 직접 지시했고, 이에 따라 폭행, 직장 내 괴롭힘, 표적 징계 및 해고, 어용노조를 동원한 민주노조 말살 공작이 진행됐다. 노동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한계에 이른 상태였고, 한광호 열사가 자결했을 때 동료들은 ‘올 것이 왔다’고 느꼈다. 얼마든지 예상됐던 일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죽음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영문도 모른 채, 혹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노동자가 죽어가고 있는데, 삼성의 문은 굳게 닫힌 채 강남역 농성장을 감시하는 CCTV만 돌아가고 있고, 현대차 양재동 본사는 경찰의 차벽과 현대차가 고용한 덩치 큰 용역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들이 누리는 이윤의 천국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극대화에 있다.” 경제학원론 교과서 가장 앞부분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재벌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연재를 시작하면서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754조 원에 육박한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 가운데 삼성이 243조 원으로 압도적 1위이며 현대차그룹은 121조 원으로 2위다. 삼성과 현대차 두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30대 재벌 전체의 절반 수준(48%)이다. 증가율도 엄청나다. 지난해 한국 GDP 성장률은 2.6%에 그쳤지만, 삼성의 상장계열사 사내유보금 증가율은 9.4%, 현대차그룹은 10.2%에 달한다.

총수일가는 그 엄청난 이윤을 마음껏 누렸다. 지난해 삼성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받은 배당금은 각각 1,772억과 373억으로, 총 2,145억 원이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이 받은 배당금 역시 773억과 494억으로 합치면 1,267억 원이다. 이 네 사람은 지난 해 배당금 상위 5위권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나머지 한 사람은 SK 최태원 회장으로 560억을 받아 3위를 차지했다. 여담이지만 이 배당금을 받은 지난 2015년 최태원 회장은 횡령으로 인해 복역 중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참고로, 지난해 최저임금은 6,030원이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받은 2,145억 원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해도 무려 12,182년이 걸린다. 삼성의 이 부자는 그 돈을 1년 만에 배당금으로 받은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골백번 다시 태어나도 만져볼 수 없는 수준의 배당금, 그리고 그 배당금을 주고도 엄청나게 쌓인 사내유보금, 그 사내유보금의 원천인 재벌의 이윤. 단순화하면, 이윤은 수익에서 비용을 뺀 나머지다.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과정은 비용을 최소화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노동자의 삶은 바로 자본이 최소화시키려 하는 이 ‘비용’으로 간주된다.

‘이윤이 커져야 노동자가 받아갈 몫도 늘어난다.’ ‘재벌 대기업이 잘 돼야 경제가 살아난다.’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다. 흔히 이윤은 그 자체로 ‘사회적 부’인 것처럼 혼동되고, 호도된다. 그래서 ‘이윤이 늘어나야 사회가 부유해 진다’는 낙수효과가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일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이윤은 엄연히 ‘사유재산’으로 ‘신성하게’ 보호된다. 이윤이 아무리 늘어도 그것은 자본 소유주의 곳간에 쌓일 뿐, 그것이 사회로 돌아온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754조 원의 재벌 사내유보금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다.

노동자의 삶이 이윤으로 바뀌는 과정

그동안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인가? 이윤 극대화의 양면, ‘비용 최소화’ 혹은 ‘비용 절감’ 명목으로 삶의 조건은 계속 벼랑으로 내몰렸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1만인 이상 거대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41.7%에 달한다. 그 중 대부분이 ‘간접고용’이다. 마음대로 해고하고 값싸게 부려먹으면서, 하청업체와 바지사장을 내세워 자신이 고용한 게 아니라고 발뺌할 수 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노조를 파괴한다.

삼성에는 14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고, 그 가운데 12만 명이 간접고용이다(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유언에 따른 무노조 경영(왠지 유훈통치가 떠오르는 게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으로도 유명한데, 삼성에서 노조탄압과 간접고용의 집중포화를 맞는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다. 삼성 마크를 달고 일하고, 삼성에서 만든 에어컨, 냉장고 같은 전자제품을 설치하고 수리하지만 삼성은 자신이 고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는 시급도 아니고 분 단위로 쪼개진 임금을 받는다. 기본급은 80~9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삼성은 ‘노조 만들었다’는 이유로 업체폐업, 표적 징계, 해고를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최종범, 염호석 두 조합원이 목숨을 끊었다.

‘악법은 어겨서 깨뜨린다’고 했던가. 제조업에서 파견은 불법이지만, 현대차는 ‘사내하청’이라는 이름으로 마음껏 법을 무시하며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대법원조차 불법이라고 판결했지만 현대차는 ‘쿨하게’ 씹었다. 현대-기아차에는 2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일부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이것조차 10년에 걸친 투쟁으로 얻어낸 것이었다)으로 현대차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자, 현대차는 대규모 용역을 투입해 물리적 폭행을 자행하는 한편 징계해고, 출입금지 조치하고 조합원들을 ‘블랙리스트’로 처리했다. ‘정규직 채용’을 미끼로 노조 탈퇴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치외법권, 즉 법의 효력이 작동하지 않는 곳. 노동자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비용으로서 계산되는 곳. 우리가 마주한 삼성과 현대차의 본모습이다.

재벌 사내유보금, 원래 네 것이 아니야!

사내유보금의 정체는 이윤이다. 그리고 그 이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신비롭지도, 신성하지도 않다. 권리의 박탈, 폭력과 강요, 불법과 착취, 그리고 죽음이 떠돌아다니는 과정이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이윤은 형태를 달리하는 여러 옷을 입지만 결국 총수일가가 정점에 서 있는 재벌의 곳간으로 들어간다. 이윤을 만들어내기 위해 손실과 고통은 노동자가 짊어지고 그 결과물을 총수일가가 독식하는 체제가 이 사회구성원 가운데 대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인가. 그 돈, 원래 당신들 것이 아니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목숨 값이자 인간다운 생존의 권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