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타고 대선으로? 대선 주자 5인 분석

[워커스 28호] 대선 레이스의 시작…촛불 민심을 잡아라!

  사진/ 정운 기자

새누리당이 사라진 대선판, 야권에선 어느 때보다 살벌한 긴장감이 흐른다. 대선 승기가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새누리당-반기문의 막강한 콜라보는 막상 이뤄진다 해도 예전만큼의 파급력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야권 내부 정리만 남은 셈이다. 대선 주자 모두가 “국민만 바라보겠다”며 애써 경쟁 분위기를 누르려 하지만 긴장은 삐져나오기 마련이다. 야권 대선 후보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어금니 꽉 깨물고 서로 견제구를 날리기 바쁘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이전보다 선명한 주장으로 존재감을 새기려 하고 있다. 경쟁자를 견제하면서 국민에게 비전도 제시해야 하니 이들의 대선 레이스는 가속을 올리는 상태다. 야권 후보 지지자에게 곧 다가올 대선은 다 잡은 물고기다. 혹시나 초를 치게 될까 스스로 경거망동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각 후보 지지자들끼리 기 싸움은 상당하다. 요즘 SNS엔 이런 글이 유난히 자주 보인다. “우리끼리 분열하지 맙시다. 이번엔 문재인 후보 밀어주고 다음은 이재명, 그다음은 박원순 시장이 사이좋게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우리 싸우지 말자고요.” 물론 대통령 순서는 그들이 지지하는 인물에 따라 바뀐다. 《워커스》는 국정 농단 게이트 이후 대선 주자로 꼽히는 5인의 행보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들은 정말 촛불의 민심을 읽었던 정치인이었을까?

지지율 1위에게도 남은 과제는 산적해 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조기 대선을 치를수록 대권과 가까워지는 정치인이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그를 위협하는 건, 그를 뺀 나머지다. 정치권에선 비문을 중심으로 뭉쳐보자는 제안이 오간다.

올해 초 문 전 대표는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연이은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책임지겠다는 의미였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카드는 그가 내놓은 수습 해법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비상체제로 4.13 총선을 치렀고 123석을 얻어 예상을 뛰어넘는 소득을 올렸다. 그가 내민 김종인 카드가 통했다는 평과 함께 그의 입지도 살았다. 그리고 지난 10월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띄우고 공약 준비 등 대선 준비를 하고 있다.

갑작스레 터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문 전 대표는 처음엔 ‘2선 후퇴’를 요구했다. 시민의 요구는 ‘즉각 퇴진’ ‘즉각 하야’에 있는데 민심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1월 20일 그가 다시 던진 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이었다. 문 전 대표는 다른 야권 대선 주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퇴진) 결단을 내려준다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명예로운 퇴진의 구체적인 의미를 밝히지 않은 채 신중함만을 보인 그에게 지지자들은 실망을 표했다. 이재명 시장은 “박 대통령 퇴로 보장은 안 된다. 퇴진 후 반드시 구속 처벌해야 한다”고 반박하며 문 전 대표와의 차별성을 부각하기도 했다.

이후 위기감을 느꼈는지 조금 더 강하고 분명한 안을 던지기 시작했다.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 3차 대국민담화 직후 여론이 들끓자 트위터를 통해 즉각 사임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해야 할 것은 임기 단축이 아니라 즉각 사임입니다. 퇴진운동과 탄핵을 흔들림 없이 함께 병행해 추진해나가겠습니다.” 탄핵 이후에도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 중이다.

진보가 좋아한다는 문재인 전 대표는 사실 진보가 아니다. 스스로도 ‘진보’와 선을 긋는다. 그는 지난해 1월, 기자들과 만나 “우리 당은 진보정당으로 갈 수 없고, 저도 진보정당 노선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지고 시민들은 이번 기회에 적폐를 해소하자고 벼르고 있다. 특히 민중사회에선 악법 폐기, 재벌총수 구속 등 새로운 사회를 위해 필요한 요구안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민주노총 등은 문 전 대표에게 지난해 밀어붙인 노동법 개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부가 얼마 전까지 총력을 다해 도입한 성과연봉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개 질의했지만, 답변은 없었다. 다만 지난 12월 13일 열린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항소심을 앞두고는 정세균 국회의장, 국회의원 45인, 이재명 시장, 박원순 시장 등과 함께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신스틸러’에서 입지 굳힌 이재명…인권 감수성은 우려할 수준

언론이 앞다퉈 이재명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까지 2%대에 머물던 지지율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지나며 치솟기 시작했다. 12월 15일 발표한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현재는 16% 정도로 2개월 사이 문재인 전 대표, 반기문 총장과 3강 구도를 형성할 정도가 됐다.

그는 뛰어난 선동 실력을 갖추고 있다. 발언권이 생기면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간다. 지난 3일 가장 많은 규모가 참석했던 서울 촛불집회에서 그는 마이크 없이 즉흥 연설을 하며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8일엔 페이스북에 “탄핵에 집중하되, 탄핵은 최후수단일 뿐 조기 퇴진 투쟁을 멈추거나 완화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박근혜와 몸통 새누리는 끌려 나올 상황이 아니면 단 하루 단 한 시간이라도 끝까지 버틸 것”이라며 “우리 손으로 가장 빨리 청와대를 국민에게 되돌려주고, 박근혜가 청와대를 나서는 순간 수갑을 채워 구치소로 보내 처벌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침없는 언행은 잘못으로 이어졌다. 촛불집회에선 성차별적 발언이 문제가 됐고, 본인이 석사 논문을 썼던 대학을 두고 ‘듣보잡’이라는 말로 비하하거나 장애인을 폄하하기도 했다. 말실수뿐 아니라 장애인을 상대로 불통,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31일 성남시가 장애인 콜택시 요금을 인상하자 장애인 단체가 시장실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는데 불법 점거라며 공무원들을 시켜 강제 퇴거시켰다. 2주 뒤, 이 시장과 장애인 단체들과의 면담이 성사돼 대치했던 일에 대해선 사과하기로 했지만, 이 자리에서도 이 시장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요구한다고 해도 절차를 무시하고 물리적 폭력을 사용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냈다. 인상된 요금에 대해서도 철회 뜻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보수’ ‘친기업 인사’라 칭한다. 최근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재벌을 해체하자고 한 적이 없다. 다만 5%도 안 되는 지분을 갖고 공정하고 합리적 경쟁을 가로막는 재벌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밝혔고 “정상적으로 기업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리한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장에서 지지받고 싶어요

촛불집회에 나가면 박원순 서울시장을 종종 만났다. 박 시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주로 광장을 찾아 시민들과 접촉면을 넓히려고 노력했다. 그는 평일 촛불집회에 참석해 3분의 시간을 얻어 자유발언을 하기도 하고, SNS 라이브 방송을 찍기도 했다. 할 말이 더 많았는지 최근엔 ‘박원순과 국민권력시대’를 조직해 토크 콘서트 형식의 집회를 시작했다. 경제민주화, 재벌, 문화, 언론, 검찰 개혁을 논하겠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광장에 대한 갈증은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한 12월 9일에도 엿보였다. 탄핵안이 통과되고 국회 앞 2만여 명의 시민이 환호하자 그는 “촛불집회에 매일 나온 정치인이 저”라며 자신의 공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는 광장의 민심을 애타게 원하지만, 지지율은 4~5%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박 시장은 정책 방향을 제시하며 꾸준히 어필하는 중이다. “재벌개혁의 선두에 나설 사람”, “기필코 세상을 바꾸겠다”, “새로운 대한민국” 등의 표현은 대선을 앞두고 결기를 보여주고 있다. 곧 그의 측근들로 구성된 싱크탱크 ‘희망새물결’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민중 진영에선 그의 잦은 말 바꾸기를 문제 삼고 있다. 지난 5월, 옥바라지 골목의 강제 철거 현장에 찾아와 철거 진행을 막고, 서울시에서 해결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후 옥바라지 골목은 지난 8월 강제 철거 수순을 밟았다. 박 시장은 9월 29일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서울 하늘 아래선 강제철거 같은 불법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람은 결코 철거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점상 단체에 따르면 동작구청의 강제철거로 이수역 7번 출구 앞 노점상들은 오늘로 두 달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아현역 앞 노점상, 청량리4구역 등도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가 진행 중이다.

서울시는 시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2012년 스스로 인권 도시라고 선언하고 조례를 제정했다. 박 시장이 강조했던 강제 철거에 대한 조례가 제정돼 있고, 장애인, 어린이, 청소년 인권 조례가 있다. 하지만 박 시장은 2014년 11월 28일 서울시민인권헌장을 폐기하면서 성 소수자 인권을 부정했다. 박 시장은 인권헌장 폐기 며칠 후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임원 조찬간담회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성 소수자를 배제하고자 하는 일이 본인의 신념이든, 정치적 표 계산이든 앞으로 계속 발목을 잡을 문제로 보인다.

지지율 3등 내주고, 존재감 미미

11월 24일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대선주자 지지율 순위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에겐 꽤 충격적인 결과였다. 이재명 시장의 지지율이 1.6%p 상승하고,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이 0.6%p 하락하며 3위와 4위가 뒤바뀌었다.

새누리당 지지철회를 한 보수층이 안철수 전 대표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무당층으로 남으며 안 전 대표의 지지율로 이어지지 못했다. 안 전 대표가 세력화를 위해 반기문 총장이나 비박 세력과 연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12월 6일 “새누리당과의 연대는 없다. 부패 세력과의 연대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새누리당 연대설을 일축했다.

안 전 대표는 이번 게이트에서 꽤 선명하게 당과 자기 뜻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표가 명예로운 퇴진을 외치고 있던 11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에 온 힘을 싣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0일엔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경제, 정치, 사법 분야의 대한민국 혁신안을 내놓기도 했다. 검찰, 재벌, 관료를 겨냥해 강한 어조로 부패 청산을 외쳤다.

정치권에 입문하기 시작하고 ‘새 정치’를 외치던 안 전 대표가 노동, 민생 등 주요 현안에 얼마나 목소리를 내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2014년 새누리당의 기초연금법을 합의해준 흑역사만 인상 깊을 뿐이다. 2014년 4월, 새누리당은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기초연금을 덜 받는 기초연금법을 마련했다. 국민연금 장기가입자를 차별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급여액이 감소해 세대 간 분열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거셌다. 무엇보다 노인 빈곤 1위를 기록하는 나라에서 노후 소득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고 있던 안 전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제가 책임지겠다. 정치적 결단이니 받아 달라”며 반대 의견을 차단하고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했다. 일부 절충안이 포함됐지만, 노후 복지 체계가 흔들리는 큰 퇴보였다.

촛불 국면에서도 시민사회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아니다. 촛불집회에 대해 “광주 정신을 이어받은 시민혁명”이라면서도 광장의 목소리를 모아 대안 사회를 제시하려는 움직임을 견제하고 있다. 안 전 대표는 1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금은 행정권력, 대통령이 무너진 상태로 국회가 더욱 많은 책임을 갖고 국정운영에 참여해야 한다”며 “(시민단체는) 국민의 의견을 듣는 수준 정도”라고 밝혔다.

반기문, 제3지대서 대권 도전하나?

돌아가야 할 정당이 뿌리째 흔들리는 모습에 망연자실 했을까? 국정농단 게이트가 터지기 전, 반 총장은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통했다. 보수층이 가장 크게 선호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게이트 이후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지만, 다시 오르고 있고 여전히 대선후보 설문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는 명실상부 대권 후보다. 비박을 중심으로 반 총장을 세우자는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지만, 국정 혼란에 책임이 있는 새누리당과 결합 시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어 반 총장이 이들과 손을 잡겠느냐 하는 관측이 많다. 로이터통신은 새누리당의 분당 위기로 반 총장이 합류할 정당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다만 신당 창당 등으로 세력화하며 기존 보수층을 흡수하는 것은 가능한 그림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엄청나게 많은 국민의 분노와 불만을 보고 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명예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밝혔다. 지난 5일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촛불집회를 언급하기도 했으나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에 대해 “국민들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하고, 헌법에 따라 국정의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 출마 여부는 유엔 총장 임기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 논의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긴 하지만 시국 관련 대응과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대해선 알 수 있는 게 없다. 그가 높은 지지율을 구사하고 있는 것도 성공한 관료로서의 이미지 덕이 크다. 신뢰, 유능, 청렴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지만, 본격적 검증이 들어갈 경우 흠집 날 가능성이 높다. 유엔 총장으로서의 능력은 혹평이 더 많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 때는 관련 의혹을 철저하게 부인했지만 지난 10월 반 총장의 조카 반주현 씨가 경남기업을 상대로 사기를 친 행각이 드러나기도 했다. (워커스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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