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 ‘분쟁의 불씨’ 될 6가지 문제들

전환예외, 특수고용, 자회사, 직무급, 고용승계, 정규직 연대까지

문재인 정부가 20일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둘러싸고 환영과 우려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상시, 지속적 업무의 판단기준 완화와,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및 무기계약직 관련 대책이 포함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만, 여러 분쟁 소지가 있는 한계를 남겨뒀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후 분쟁의 소지가 큰 한계와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가이드라인 내용 중 향후 노정간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들을 짚어봤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분쟁지점1. 전환 예외 사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교사 및 강사 중 특성상 전환이 어려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환 예외’ 대상으로 남았다. 향후 전환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전환 여부를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전환 예외 사유에서 구체적인 직종이 제시된 건 학교비정규직이 유일하다. 현재 학교에는 기간제교사,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 다문화언어강사 등 다양한 교사 및 강사 그룹이 존재한다. 정부는 이들이 기존 교사와 채용사유와 절차, 고용형태, 근로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전환 예외 사유로 포함했다고 밝혔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7월 4일과 6일, 민주노총을 방문해 이번 가이드라인 관련 노정협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학교비정규직 문제는 노정이 평행선을 달리는 쟁점 중 하나였다. 학교비정규직 중 영어회화전문강사는 최근 고등법원에서 무기계약 지위를 인정받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이들 직종에 대한 무기계약직 전환을 권고하기도 했다. 때문에 민주노총은 당시 노정교섭 자리에서 이를 근거로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전환 예외 문구의 삭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 측은 삭제가 불가능하다며 “교사의 경우 입직경쟁이 치열하고 임용고시를 치러야 하는 조건이어서 취업준비생들의 항의가 워낙 강하다. 지난해 교육공무직법 관련해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문구 수정과 관련해서도 “관계부처(교육부 등)에서는 어떻게 수정하더라도 취지에 대한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돼야 한다는 강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논평을 통해 “학교비정규직 중 고용불안이 가장 심각한 직종인 초등스포츠강사와 영어회화전문강사의 무기계약 전환 여부도 여전히 모호하게 남겨졌다”며 “지난 12일 초등스포츠강사 9명이 피눈물을 흘리며 집단삭발을 진행했지만, 결국 정부는 무기계약 전환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고 교육부에 공을 넘기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60세 이상 고령자’ 예외 조항 역시 전환 과정에서 대량 해고 위험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기관 차원에서 별도 정년설정이나 고용안정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분쟁지점2. 특수고용노동자 전환 대책도 빠져

정부 직속 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는 ‘재택집배원’이라는 명칭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약 280여 명의 재택집배원 월 급여는 100만 원 남짓. 특수고용노동자라 4대 보험도 적용받지 못한다. 이들은 법원으로부터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정사업본부는 이들을 ‘개인사업자’로 분류해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도 노정협의 자리에서 정부에 재택집배원, 수도검침원 등 공공부문 특수고용 노동자 중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특수고용에 대해서는 충분한 스터디가 되어 있지 않다”며 추후 2단계 전환 계획에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발표되기 전인 지난 18일,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제대로 된 비정규직 대책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유아 우편지부 재택집배원지회장은 “법원은 재택집배원은 우정사업본부 소속 노동자라고 1심과 2심에서 판결했다”며 실질적인 정규직화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분쟁지점3. 무늬만 정규직, 직무급제

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논평에서 “가이드라인을 한 줄로 요약하면 ‘무기계약직을 대폭 확대해 고용을 보장하겠다’로 해석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정부가 표현하는 ‘정규직 전환’은 온전한 ‘정규직’이 아닌, 통상 ‘중규직’으로 표현되는 ‘무기계약직 전환’이다. ‘무기계약직’은 고용 형태만 기간의 정함이 없을 뿐, 정규직과 임금, 노동조건 등에서 차별을 받아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불리기도 한다. 노동계는 지금껏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인정하지 않아왔고, 정부 역시 이번 대책을 준비하며 ‘무기계약직’이라는 표현의 점진적 해소를 염두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무기계약직’에 적합한 명칭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인사제도를 마련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되, 별도 직군이 필요한 경우 ‘공무직’, ‘상담직’, ‘환경관리직’, ‘통계조사직’ 등의 명칭으로 직군을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인사시스템을 도입하고, 정부가 표준관리규정안을 마련해 제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사실 이 같은 직군분리는 이미 민간사업장에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악용 돼 왔다. 무기계약직을 하나의 직군을 묶고 정규직과 임금, 승진, 노동조건 등에 차별을 두는 방식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도 정부는 “고용안정부터 확보하고, 처우개선은 국민부담 등을 고려해 단계적,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며 처우개선의 일괄 추진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 측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던 정규직 대비 80%수준까지 임금 인상 약속조차 빠져 있다며, 정부의 대책이 무기계약직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분쟁지점4. 자회사 정규직 전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우회적 정규직 전환 방식은 현재 노동계 안팎의 논쟁거리다. 정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파견, 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조직성격 및 규모, 업무특성 등을 고려해 노사 협의, 전문가 자문을 거쳐 직접고용, 자회사 등 방식으로 결정”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공공부문 자회사 설립 정규직화는 이미 도시철도ENG, 메트로환경, 우체국시설관리단 등에서 시행된 바 있다. 이들은 열악한 임금과 동종유사업무 정규직과의 차별, 노사갈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업장들이다. 특히 자회사 방식은 원청 직접고용이 아닌 원거리 고용으로, 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 책임’을 요구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자회사 정규직 전환은 ‘직무급제’와 맞닿아 있다.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의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를 통제하기 위해서다.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기존의 연공급 방식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자회사를 설립해 직무 별로 별도의 임금체계를 수립하겠다는 의도다.

노정 협의에서도 노동계는 ‘자회사 방식’에 대한 문구 삭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자회사 방식을 삭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관계부처 협의를 할 때 반드시 명시를 해달라고 하는 것이 자회사 방식”이라며 “이 문구를 빼면 기재부 등과 협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다만 정부는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자회사 방식이 또 다른 용역회사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해 “신설 자회사는 사실상의 용역 계약 형태의 운영을 지양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분쟁지점5. 고용승계

정부의 정규직 전환 계획은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대로 고용승계하는 방식이 아니다. 정부의 채용방식 계획에 따르면, 기존 근로자의 전환을 원칙으로 하되, 결격요인 등 최소한의 평가절차를 거친다는 방침이다. 특히 전문직 등 청년 선호 일자리와 인원이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경우 등은 제한경쟁, 공개경쟁(가점부여) 등 적합한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탈락자, 해고자가 발생하는 등 분쟁이 예상된다며 별도의 채용 심사 없는 전환을 요구해 왔다.

이미 일부 지역은 공개채용 방식으로 무기계약직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분쟁을 겪었다. 올 초, 광주교육청은 돌봄 전담사의 상시, 지속적 업무를 인정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기존 돌봄 전담사의 고용승계를 배제하고 공개채용 방식을 강행하며 노조와 마찰을 빚었다. 돌봄전담사들은 광주시 교육청이 사실상 노동자 134명을 집단해고 한 것이라며 노숙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교육청과 노동자들은 1년 6개월 이상 일한 자에 한해 서류 면접으로 공채를 실시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 조건에 해당되는 돌봄전담사는 134명 중 절반 정도다. 정부 측은 민주노총과의 노정 협의 자리에서 “단순노무 업무는 고용승계가 원칙임을 명시할 것”이라며 “다만 업무에 따라 순환제로 되고 있는 업무와 청년 선호 일자리는 공개채용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분쟁지점6. ‘정규직과 연대’로 뭉뚱그려진 ‘정규직 양보론’

정부는 ‘임금체계’ 부분에 있어 “과도한 국민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존 근로자와의 연대 및 협조를 통해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여기서 ‘기존 근로자’란 ‘정규직 노동자’를 뜻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관련 Q&A’라는 자료도 함께 배포했다. 노동부는 이 자료에서 정규직 전환에 따른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기존 정규직도 함께 연대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이는 자칫하면 총액인건비, 기준인건비 제도를 손대지 않은 채 정규직의 임금만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미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새정부의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 토론회에서 “공공부문 고임금 억제를 통해 공공부문 인건비를 통제하고, 여기에서 절약한 임금 분으로 공공부문의 추가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자회사 정규직화, 처우개선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충당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정 협의 자리에서도 민주노총은 이 문구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반면 정부는 “애초에 ‘정규직 양보’라는 문구가 나왔으나 말이 안 된다고 해 ‘협조’라는 말로 바꾸었으나, 이 표현도 오해의 소지가 많아 노동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연대’라는 말로 바꿨다”며 ‘상징적 수준에서라도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윗선의 의지가 강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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