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한반도 딜레마, 주체적인 해결만이 답이다

[참세상 기획] 문재인 100일을 말한다(2) 한반도

문재인 정부 취임 100일, 촛불 시위에 힘입어 출범한 정부에 대한 기대는 어디쯤 머물고 있을까요? 참세상은 ‘문재인 100일 말한다’는 기획으로 각계 사회운동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싣습니다. 정부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운동진영의 과제를 주목한 이번 기획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연재순서]
노동 | 김혜진(철폐연대)(링크)
한반도 | 배성인(한신대)
의료, 복지 | 강동진(포럼 사회복지와노동)
교육 | 이현(전교조 참교육연구소)
문화 | 박선영(문화연대)
언론 | 권순택(언론연대)
여성 | 한국성폭력상담소
정치 | 이광일(성공회대)

[출처: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 동안 70% 이하로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는 높은 지지율은 그만큼 국민들의 국정운영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가장 낮은 평가를 받으면서 우려되는 부문은 최근 ‘한반도 8월 위기설’에서도 나타났듯이 대북정책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였다. 그것은 동북아 정세의 역동적인 변화에 대한 안일한 자세와 인식부족으로 인해 안보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정세인식 부족한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면서 완전한 비핵화를 평화적 방법으로 추구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대북 구상을 내세웠다. 북한이 핵을 동결하면 한·미의 요구인 비핵화와 북한의 관심사인 종전 협정, 체제 보장, 북·미관계 정상화를 패키지로 다루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래서 이산가족상봉이나 동계올림픽 참가 등 쉬운 분야부터 남북관계를 재개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지난 8년 동안 독자적으로 생존했던 북한에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고 새롭지도 않은 구태의 방법이기 때문에 남북관계를 재개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같은 시기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 동안의 남북관계 단절과 연동되어 북한의 생존 능력을 향상시켰다. 북한의 생존 능력은 핵보유 그 자체였고 오로지 그 길로 직진했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핵 능력을 고도화해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져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핵실험을 5번 감행했고, 운반수단 확보를 위해 틈나는 대로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금까지 북한과 국제사회는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에 국제사회는 제재를 가하고, 북한은 아랑곳없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고, 국제사회는 다시 제재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결국 올해 들어와 ICBM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동북아 지역의 안보 환경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게다가 미국과 국제사회는 계속 ‘역대 최강의 제재’를 가했지만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새로운 조건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자기 덫에 걸리고 말았다. 제재와 압박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이렇게 정세가 북한에게 유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남북관계를 재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또다시 도발하면 더더욱 강도 높은 제재 조치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면서 “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도발을 멈춰야만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 같은 남북대화론은 적절한 발언이 아니다.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이 굴복할 것이라거나 대화만 성립되면 문제가 우리 뜻대로 풀릴 것이라는 기대는 모두 희망적 사고에 불과하다. 정세를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중적인 동아시아 정책

그동안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의해서 규정돼 왔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른바 대북 ‘전략적 인내’ 시 미국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이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당장의 위기로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따라서 오마바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실패한 외교’로 규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현재까지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발언과 정세적 대응은 참모들을 비롯한 측근들을 당황스럽게 하면서 뒷수습에 급급하게 만들었다. 이는 북한의 핵능력을 놓고 내부 의견 조율과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한반도 8월 위기설’의 배경이 된 ‘말 폭탄’은 미국 조야에서 북한의 핵개발이 소형화되고, ICBM 능력이 재진입장치(RV) 능력 확보로 완성단계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분석이 맞다면 북한은 핵보유국의 문턱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묵시적으로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기도 하다.

남은 것은 미국이 이를 언제 인정하느냐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한다면 북핵 문제가 미국의 위기로 확산됐음을 의미한다. 핵무기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제시한 ‘쌍중단(북한의 핵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수용하지 않았던 트럼프 행정부에게 대북 대화의 전제 조건인 북한의 비핵화는 이제 유효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본토로 날아올 수 있는 북한의 ICBM급 미사일을 저지해야 할 절박성이 생긴다. 물론 과대평가는 곤란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리는 지난 북한의 ‘괌 포위사격’ 발언을 통해서 그들의 능력을 일차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남한, 일본에 이어 괌까지 미사일 타격 범위에 들어와 있음을 실증해 미군의 한반도 접근 저지 능력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는 이중포석이 깔려있다. 북한에 대한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면서 궁극적으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 국내 정치 및 경제와 직결되어 있어서 사활적이다.

실제 지난 8월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위기설’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에서 비장의 카드인 슈퍼 301조를 꺼내들었다.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를 슈퍼 301조로 부르는데, 미국 정부가 상대국의 불공정 행위에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8월 14일 행정각서에 서명함으로써 중국의 지적재산권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착수한 것이다. 이번 조사는 북한을 빌미로 미국이 중국 견제에 나섰다는 측면과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대응 차원을 넘어 북한 도발을 억제시키도록 중국 압박을 강화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물론 중국이 북한 문제와 양국 무역관계를 연계하는 데 대해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미중 제국주의 국가 간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불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을 어떻게 구상해야 하는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100일 동안 한반도 정세에서의 무능함과 무대책을 드러난 것은 한미관계 때문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현실적으로 한미동맹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려면 타당성있고 설득력있는 논거를 제시해야 한다. 최소 수준에서 한국과 미국이 대화와 협의를 통한 협력적 관계를 구축해서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공조가 이루어져야 하고 역할분담이 전제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미관계는 항상 일방적이고 비대칭적이고 불균등한 관계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1일 한미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권 확인을 꼽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한반도 위기설’에도 문재인 정부는 ‘전쟁불가론’을 외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묘안을 도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에 어떤 옵션을 사용하든 사전에 한국과 충분히 협의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약속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우선주의자이며 인종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영토만 아니면 어떠한 공간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몇 명이 사망해도 상관없다는 인식의 소유자이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 전 미대통령을 신뢰했다가 뒤통수 맞은 역사적 사실을 기억한다면 새로운 한미관계가 절실하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환경평가를 이유로 보류해둔 사드 배치를 북한의 ICBM 실험발사를 계기로 전격적으로 완료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미국방문을 전후로 자신의 정책을 반전시켰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또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시간을 벌면서 ‘사드가 필요치 않은 안보환경 조성’을 시도하려던 전략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가 실질적인 효과보다 미국 정부와 국내 보수층을 의식해서 그런 행태를 보였다면 정말 우울하다. 사드 배치는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시금석인데, 그 선을 넘어섰다. 일방적인 한미동맹을 지속하면서 그 핵심인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것은 적폐를 잔존시키겠다는 것인데, 나중에 그 역사적 평가를 어떻게 감당할지 암담하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현실적인 정책으로 만들려면 한미관계를 재구성해야만 가능하다. 이제는 강대국결정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역할을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에게 역할 분담을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자세는 물론이고 미국에게 사드 가동 중단을 제안해서 중국의 협력을 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필요하면 대북 특사를 보내고 6자 회담을 다시 개최하자는 제안도 필요하다.(배성인, 프레시안, “사드가 필요 없는 안보 환경 만들자”)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를 철회해서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고 동북아 안보환경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반전평화운동의 과제

한반도 안보는 미국에게 의존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정치적 주체로서 노동자민중의 반전평화운동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우선적으로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대중적 결집력을 높여야 한다. 북한의 ICBM 시험을 명분으로 강행되고 있는 사드배치가 우리의 안보와 무관하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오로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사드배치를 강행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긴장의 또 하나의 원인인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시켜야 한다. 한미 양 당국에서는 이를 ‘방어훈련’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는 공격훈련이다. 올해는 그 규모를 축소했지만 매년 최대 규모를 갱신하고 있으며, 핵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미국의 전략자산들의 결집으로 매년 '최대위기를 갱신'하고 있다.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중단되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미군 기지 오염 문제,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 문제, 전시작전권 반환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평화협정 체결에 노동자민중의 적극적인 집합행동이 필요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핵무기의 개발과 반입, 이동,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비핵지대 설립을 촉구하고, 국제사회와의 연대도 강화해야 한다. 그것만이 한반도의 핵 대결과 전쟁 위기를 극복하여 평화와 평등 그리고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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