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교육개혁은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까

[참세상 기획] 문재인 100일을 말한다(3) 교육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80%를 넘나들면서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수구 보수정권 기간에 쌓여왔던 적폐 중에 비교적 국민적 합의가 높은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신속한 조치들이 높은 지지율의 원인일 것이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치 방식이 근대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쉽게 볼 수 없는 매우 퇴행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이미지와 개방적인 통치 스타일 또한 대통령의 높은 인기의 비결일 것이다.

교육 부문도 이와 비슷하다. 국정교과서 추진 중단, 일제고사 폐지, 김초원-이지혜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등 몇 가지 적폐 사안에 대해 매우 신속한 행보를 보였다. 이중에서 특히 일제고사 폐지는 통쾌함보다는 씁쓸함을 주었다. 10년 가까이 일제고사를 강행하면서 교육부는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해직시키고 징계하였다. 그런데 국정기회자문위의 일제고사 폐지 요구 공문 한 장으로, 일제고사 시행을 불과 6일 앞두고 교육부는 일제고사를 전면 폐지하였다. 교육정책에 대한 어떤 소신이나 철학도 존재하지 않는, 영혼 없는 관료들의 민낯을 보는듯하여 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의 높은 인기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의 성공적 개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반대 여론이 높은 첨예한 현안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했다고 하여, 문재인 정부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거나 개혁에 대한 높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없다. 교육부문에서도 과연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출처: 교육희망]

교육 개혁의 핵심, 입시제도...개편안은 대폭 후퇴

교육부문의 경우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입시중심 교육과 관료지배 체제이다. 대부분의 근대국가에서 학교교육은 사회적 지위 배분의 주요 기제이며,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입시경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에서 입시경쟁은 매우 특이하다. 극단적인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의 과잉보상 체계에 의해 입시경쟁이 교육을 지배하는 강도가 매우 높다. 학교교육의 목적과 가치는 오로지 입시경쟁에서 점수 올리기로 귀결된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국가가 관장하는 입시제도(학력고사와 수능)를 도입한 이래, 학교교육은 국가입학시험 준비에 매몰되었다.

교육은 학생들 개개인의 배움과 성장을 일차적 목적으로 한다. 점수 올리기에 매몰된 입시경쟁 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한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지만 필요한 배움과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의 학생들은 무력감과 패배감을 체화하게 되고, 소수는 출세지향적 인간이 된다. 또한 경쟁의 강도가 강화될수록 가정의 지원이 결정적 변수가 되어, 학교교육은 사회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정당화하는 기제가 된다.

따라서 입시제도 개혁은 교육 개혁의 핵심적 과제이다. 문재인 정부는 수능 절대평가를 통해 더 이상 학교교육이 수능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약하였다. 하지만 실제의 수능 개편 시안을 만들면서 대폭 후퇴하고 말았다. 수능 절대평가는 수능의 변별력을 대폭 약화하여 학교교육이 더 이상 수능 준비에 매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수능 변별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부 여론의 입장을 수용하였고, 그 결과 수능 부담을 줄일 수 없는 절대평가 9등급제(교육운동 진영은 5등급제를 주장하였다)를 제시하고, 그나마 일부 과목은 상대평가를 유지하는 방안을 기본 방안으로 제출하였다. 수능의 영향력 약화와 수능 변별력 유지라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신호를 동시에 보냄으로써 논란과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교육 문외한으로 보이는 총리까지 가세하면서 수능 개선안은 개악안에 가까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수능 변별력이 없어도 학생부 중심으로 학생들을 충분히 선발할 수 있다. 지금도 수시전형으로 70% 이상의 학생을 뽑고 있다. 물론 학생부 종합 전형은 커다란 문제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학생부 종합전형의 개선 방안을 동시에 마련해야 하며, 학생부 전형에서 학생부 교과 전형의 비율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수능은 논술고사 다음으로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전형이다. 사교육 없이 학력고사를 통해 대학을 진학했던 장년 세대들의 향수와 달리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수능에서 고득점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관료지배 체제 개혁도 공약과 달라

한국교육 체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강고한 관료지배 체제이다. 일제 강점기 때, 근대학교교육의 체제가 형성되면서 모든 교육권한을 중앙정부가 독점하는 극단적인 수직적 권위주의 체제가 형성되었다. 해방 후에도 독재 권력이 들어서면서 중앙 집중적 관료지배 체제는 지속되었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는 교육부의 관료들에 의해 좌우된다. 교육부의 고위 관료들은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들이다. 그들은 교육학을 전공한 전문가도 아니고, 교육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당연히 교육에 대한 철학과 소신은 물론 교육현장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도 없다. 그들은 권력 상부의 요구와 유행하는 세계의 교육 트렌드들을 적당히 버무려 교육정책과 교육제도를 기획한다.

학교장은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민주적 결정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부의 교육관료들의 지시와 명령을 수행하는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다. 현장에서 교육실천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주체들의 권한이 부재하기 때문에 협력적 관계 형성도 어렵고, 높은 책임감도 갖기 힘들다. 학교현장의 활력이 질식당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대선 기간 동안 교육부를 해체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성할 것과, 교육부와 교육청의 권한을 학교현장으로 대폭 이양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다수의 후보들도 이와 관련된 공약을 제출하였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자문기구로서 국가교육회의를 우선 구성하고 이후에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하였다. 단, 국가교육회의에 힘을 실기 위하여 대통령이 의장을 직접 담당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재 입법 예고된 국가교육회의 방안을 보면, 민간인이 의장을 맡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한 정부 관료들과 대학당국의 참여는 법령으로 보장하면서 유초등교원이나 대학교원 그리고 학부모-학생 등 교육주체의 참여는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국가교육회의나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주체들의 의견수렴과 민주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문제에는 매우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결부되어 있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높은 정치적 지도력과 철저한 민주적 절차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교육개혁은 혼란과 사회적 논란만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 대통령이 의장을 맡아야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상황 때문에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해명도 없이 슬그머니 후퇴하였다.

당사자들의 절충주의가 득세하나

문재인 정부가 초기의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넘어 구조개혁으로 전진할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특히 교육부문은 더욱 그렇다. 벌써 개혁추진 주체의 형성이나 개혁 의지에 있어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현장의 교원들과 함께 교육개혁을 추진할 의사가 있었다면 진작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하지만 수구-보수 세력들의 눈치를 보면서 실기하였다.

적폐 세력인 교육부 관료들에 대한 조치도 확인하기 어렵다. 교육개혁의 주체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안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수능개편 방안과 국가교육회의 구성 방안을 통해 교육부문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고, 교육 권력의 배분에서도 기존의 체계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

역대 정권들은 정권 교체 이후, 이전 정권의 교육정책 몇 가지를 폐지하거나 개선하여 차별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몇 가지의 정책을 추가하여 마치 새로운 교육개혁이 가능한 것처럼 선전하였다. 하지만 결국 한국 교육체제의 기본적 성격은 변함이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수구 보수 정권에서는 권력층의 정치적 의도가 교육에 강하게 관철되었다면, 문재인 정권에서는 수능 개선안에서 볼 수 있듯이 이해 당사자들의 절충주의가 득세할 가능성 높다. 관료들의 주도권 아래, 다양한 이해당자들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절충적인 타협안들이 활개 칠 것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개혁 요구는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입장을 무시하는 과격한 의견으로 치부될 것이다. 관료들만 이해당자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중립적 세력으로 포장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모습이 그랬으며, 문재인 정권에서도 그런 징후들이 벌써 보이고 있다.

[연재순서]
노동 | 김혜진(철폐연대)(링크)
한반도 | 배성인(한신대) (링크)
교육 | 이현(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의료·복지 | 강동진(포럼 사회복지와노동)
문화 | 박선영(문화연대)
언론 | 권순택(언론연대)
여성 | 한국성폭력상담소
정치 | 이광일(성공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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