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구조에서 꽉 막힌 노조할 권리

노조할 권리 위한 사이다 입법 언제 통과될까

“사업주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관계를 맺는 것을 피하려 한다. 형식적 사용자를 중간에 끼워 넣거나(간접고용), 근로계약이 아닌 다른 형식의 계약으로 노동자를 사용하려 하거나(특수고용), 두 가지를 중첩하여 활용한다. 사업주가 노동자에 대한 지배는 유지하면서 그에 따르는 책임은 부담하지 않으려는 것이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 박탈을 가져오는 핵심적 원인이다.”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


27일 민주노총의 주관으로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간접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해법 찾기 토론회’가 개최됐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만도헬라, 아사히글라스, 파리바게뜨의 불법 파견을 적발하며, 간접고용의 문제들이 불거지는 가운데 열린 토론회였다.

간접고용은 원청 사용자가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타인이 고용한 노동자를 이용하는 고용 형태다. 고용형태의 특성상 고용은 불안하고, 노조를 만들더라도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의 책임 회피로 노동 3권을 온전히 행사하기 어렵다. 노동조합을 약화하거나 노조 간부의 활동을 막으려고 업체변경 및 위장폐업도 수시로 일어난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규모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공시제’를 통해 확인한 300인 이상 대기업의 간접고용 규모만 하더라도 155만 명이다. 건설 일용직과 중소 영세업체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면 2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토론회에서 소개된 네 가지 현장 사례들은 원청의 개입 아래, 간접 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가 얼마나 방해받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냈다.

청소노동자 노조 활동, 원청 병원이 지켜보고 통제한다

최다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조직차장에 따르면 신촌 세브란스 병원은 민주노조를 결성한 130여 명의 청소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직접 개입해 방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브란스병원은 태가비엠(주)이라는 용역업체를 통해 청소노동자의 업무 일지를 보고 받았고, 노조 파괴를 위한 세부적인 지시를 적어 태가비엠에 전달했다.

한국노총 산하 노조 시절, 최저임금, 월 2일 휴무 등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던 세브란스병원 본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6월 민주노총의 문을 두드렸고, 전체 근무자 200여 명 중 136명이 빠른 속도로 가입했다. 민주노조가 생긴 직후 현장관리소장은 개별 면담을 통해 탈퇴 회유와 협박을 하며 ‘민주노총은 안된다’고 끈질기게 피력했다.

민주노조가 생기고 3개월 뒤인 9월의 업무일지를 살펴보면 “민노(민주노총) 서경지부 집회정보 (9/8, 9, 12, 13) 만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다혜 한노집행부 방문 소란 등은 철산노 위원장에게 실시간 전달하여 ‘노노대응’ 유도 바랍니다. 최XX 배상”이라 쓰여있다. 최XX은 세브란스병원 파트장으로, 한국노총 소속의 철도사회산업노조와 민주노총 노조의 갈등을 이끌었다. 이런 식의 구체적 지시를 적으면 태가비엠 현장관리소장이 그 아래에 “명심하겠다”고 적었다.

세브란스병원의 개입은 파트장을 넘어 사무부장까지 올라갔다. 9월 28일 업무일지엔 “사무부장님도 지시하신 ‘민노불법행위 조치 방안’ 신속히 보고 바람. 최XX 배상”이라고 적혀있었다. 최 조직차장은 “사무부장이 언급된 것으로 봐서 파트장 개인의 지시사항이 아닌 세브란스병원 차원에서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세브란스 병원과 소송전도 벌이고 있다. 서경지부는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에 이병석 세브란스병원 병원장과 장경숙 태가비엠 대표이사를 비롯한 7명을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하지만 서부지청은 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도 혐의없음으로 처리했다. 해당 사건은 현재 항고 중이다. 서경지부는 최근까지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져 9월 초 노동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병원은 현장 조합원과 노조 활동가들을 상대로 ‘업무방해, 명예훼손, 특수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해부터 병원이 제기한 소송은 6건이다. 조합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병원 100m 이내 출입금지’ 등의 과도한 가처분신청도 냈는데 거의 기각됐다.

최 조직차장은 “병원에 출입만 했을 뿐인데 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병원장실 앞에서 면담 요구한 것으로 현행범으로 체포가 되기도 했다. ‘병원 100m 이내 출입금지’ 신청은 병원이 노조를, 민주노총을 보는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쟁의행위를 한다는 것을 상상을 못 하는 사업장”이라고 비판했다.

답은 나와 있는데 멈춰있는 입법 시계

이날 토론에서 발제를 맡은 윤애림 서울대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위원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과제들을 제시했다. 윤 연구위원이 제시한 과제로는 △노조법 제2조 개정 △원청과의 단체교섭 보장 △쟁의행위 시 원청의 방해 금지 △부당노동행위 책임 확대 등이다.

노조법 제2조 개정의 핵심은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는 것에 있다. 윤 연구위원은 “대법원 역시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는 근로계약 당사자인 사용자에 한정되지 않으며, 근로자의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노조법 제2조 개정안과 관련해선 민주노총의 안이 있고,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3가지 법안들이 있다. 공통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따져 사용자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윤 연구위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노조법 2조 개정안들의 ‘실질적, 구체적인 지배력, 영향력’이라는 표현이 다소 모호해 사용자의 범위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할 것을 우려하고 있는데 이는 법률 규정이 가질 수밖에 없는 일정한 추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윤 연구위원은 또 ‘집단적 노동관계 형성을 통한 실효성 있는 보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 연구위원은 “정규직 고용형태를 기준으로 설계된 현행 노동법의 규정들은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형태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복수의 사용자가 존재할 경우 이들에게 어떤 부분을 책임지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양한 경우의 수가 생길 수 있다”며 “간접고용 노동자를 조직한 노동조합이 관련 사용자들과 단체교섭을 하면서 해당 업종, 직종에 가장 적합한 노동조건 개선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가장 실효성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 방안은 간접고용 관련 사용자 간 단체교섭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밖에 ‘쟁의행위 시 원청의 방해 금지’ ‘부당노동행위 책임 확대’를 골자로 하는 입법안도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것들이 있다. 윤 연구위원은 “사용자의 금전 부담이 늘거나, 정부 재정 투입 같은 사회적인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입법”이라며 “노동부와 국회가 즉각 나서서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송옥주 의원과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공동주최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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