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먼저 온 미래를 만나다

[워커스 르포]강정 해군기지와 성산 제2공항 투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시작도 안됐다.

단식 42일 만인 11월 20일 오전, 김경배 씨가 병원으로 후송됐다.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입원 중인 그를 22일 만났다. 야윈 얼굴에 눈빛도 푹 꺼져 있던 그. 성산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살아났다. 전날까진 본인이 바라던 만큼의 성과 없이 단식을 중단하게 되면서 마음의 어려움이 컸다고 했다. 마침 22일 아침 10시엔 제주해군기지로 미국의 핵 추진 잠수함이 입항해 한숨도 깊었다.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제 2공항 막는 수밖에. 제2공항 막아야 해군기지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거니까요.”

정부와 제주도정은 제주의 발전을 위해 제2공항이 필요하다고 입씨름을 한다. 하지만 제2공항 신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부지 설계안도 납득할 수 없거니와 개발로 인한 환경 문제에 눈을 감을 수 없다. 강정해군기지와 연계된 공군기지가 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 주민은 없다. 김경배 씨는 어쩌다 강정 이야기가 나오면 목소리가 떨렸다. 그에게 강정은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 자칫 빼앗길 수 있는 자신의 미래라고 말했다.

  오신범 성산읍대책위 선전홍보차장과 문정현 신부 [출처: 엄문희]


아직, 강정

2012년 봄 구럼비를 폭파한 자리에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해군이 지키고 있지만 마을은 조용할 날이 없다. 준공 직후부터 사단이 났다. 마을에 훈련통보도 없이 총을 든 군인들이 초등학교 하교 시간에 마을 큰 사거리를 활보해 항의를 한 주민은 1년 내내 재판을 받았고 어두운 거리에선 젊은 남성들이 무리를 지어 다닌다.

대한민국 정부는 순수한 해군기지라고 어르고 달랬다. 미군기지가 아니라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미군의 전략적 거점 의혹은 줄곧 이어졌다. 지난 3월 25일에는 미국 해군의 이지스구축함 스테뎀함(USS63)이 입항했다. 제주 4.3에 책임이 있는 미국이 4.3 추모 기간에 군함을 타고 제주에 들어온 것이다. 그때부터 수차례 외국 함정이 입항했다. 올 때 마다 예외 없이 분뇨와 쓰레기를 제주도에 버린다. 불법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다 주민들에게 들키기도 했다. 마을은 외국군함이 입항할 때마다 일상이 흔들린다. 그러나 제주도정은 무심할 정도로 잠잠하다. 그러다 11월 22일 오전에는 기어이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이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했다.

주민들은 지난해 창설된 해군제주기지전대 경비노동자들에게 감시를 받는다고도 여긴다. 한번은 지난 9월 군인들이 마을 안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곤 쓰레기를 내버려두고 갔는데 이 사건을 알게 된 한 주민이 SNS에 짧은 글을 올리자 해군 경비노동자가 해당 편의점에 찾아와 들쑤시고 갔다. 피해 여성은 두려움에 질려 일을 그만두었고 마을회와 해군기지반대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해군의 사찰행위 의혹 등을 항의했는데 해군제주기지전대는 이를 전면 부인했다.

해군기지 정문 밖 할망물 로터리에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는데 생명평화문화제가 열리면 마치 감시카메라처럼 회전하면서 마을을 기록해 주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자 감시카메라들은 원래의 방향을 찾았지만 해군이 왜 CCTV를 마을 방향으로 설치해 감시하고 있는지 마을 사람들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해군 경비들이 주민들의 문화 활동과 집회를 방해한 것도 수차례다.

오늘, 성산

이런 강정주민에게 성산주민들은 그냥 이웃사촌이 아니다. 제2공항을 반대하는 성산주민들은 제주도의회 앞에 천막을 펴고 농성을 하고 있다. 그 천막은 김경배 씨가 10월 10일부터 단식 농성을 한 곳이기도 하다. 강정 주민들이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연대 방문도 하고 1인 시위도 해왔다. 그럴 때마다 도청 공무원들과 경비들은 강정마을 주민을 밖으로 내보내게 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런 제주도청의 몰상식한 처분에 항의하기 위해 강정과 성산 주민들은 나무로 만든 소를 끌고 다니며 길거리 문화제를 벌이기도 했다.

주민 김경배 씨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9월 17일 서귀포시청이 김정문화회관에서 은밀히 열려던 제2공항 추진상황 설명회 때문이었다. 서귀포시는 성산에서 수십 킬로 떨어진 김정문화회관에서 18일 오후 3시 ‘제2공항 추진상황 설명회’를 시도했다. 현장에는 국토교통부 관계자를 비롯해 안동우 정무부지사, 이상순 서귀포시장 등이 참석했다. 뒤늦게 시간이 임박해 소식을 들은 반대 주민들이 ‘제2공항 예정지인 성산읍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설명회를 여는 것은 성산 주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장내에 진입하자 미리 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다수의 공무원들이 앞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설명회 시작은 오후 3시였고 2시 30분에 장소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왔는데도 이미 앞좌석은 꽉 차 있었다. 동원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로 강당 앞자리를 메운 사람들 중 상당수는 공무원이었다. 성산 주민들은 많은 의혹들이 해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타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가 개최되려던 점에 분노했다. 이 시장은 국토부에서 나눠준 자료를 읽어보라며 설명회를 중단했다.

실제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과정도 비슷했다. 반대 주민들의 반발을 이유로 제주도 차원에서 강정마을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추진 상황 보고회를 열었고, 이 보고회를 법적 절차에 필요한 주민 설명회로 대체했다. 이 일과 관련해 서귀포시는 ‘법적 절차에 필요한 주민설명회가 아니라 단순하게 추진상황 정보를 알리기 위한 보고회’라고 해명했지만 강당 정면 행사 알림판은 설명회로 표기돼 있었다.

그렇게 단식은 한 달을 넘어갔다. 최소한의 태도 변화도 보이지 않는 도정 앞에서 안타깝게 시간만 흘러가던 중 강정 주민으로부터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다급한 발신이 시작됐다. 자발적인 시민 주최 촛불 문화제를 일주일 사이 뚝딱 만들어 냈다. 문화제를 준비하면서 시민들은 농성천막 앞으로 일상을 끌어들였다. 노트북을 가져와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뜨개질을 했다. 말 그대로 뭐라도 하자는 행동이었다. 강정에 7년 째 살고 있는 문정현 신부도 매일 오후 강정에서 달려와 나무판 새김작업을 했다. 사람이 많아지자 이야기가 다양해졌다. 제2공항 반대와 주민들을 응원하는 릴레이 만화가 온라인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제주도 내 진보정당의 연설회도 이 문제를 매번 다뤄나갔다. 이미 난개발로 망가진 제주, 강정 해군기지로 인한 아픔을 다시 겪을 수 없다고 했다.

  김경배 씨 [출처: 엄문희]


투쟁은 이제부터

김경배 씨가 병원으로 후송되던 날 제2공항을 함께 고민했던 제주의 시민사회단체는 ‘제2공항 전면 재검토와 새로운 제주를 위한 도민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선언을 했다. 본격적인 제2공항 반대운동을 시작할 참인 것이다. 1년 넘게 제2공항 반대 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와 함께 부실용역 검증 및 원점 재검토를 촉구하는 운동을 벌여온 도민행동의 이런 변화는 제2공항 대응을 ‘재검토 촉구’가 아닌 ‘완전 폐기’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도민행동 측은 ‘제2공항 건설’을 원천 반대하고 제주 어디에도 건설돼서는 안 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도민행동은 이러한 투쟁기조 변화의 중요한 이유를 ‘양적 팽창 위주의 관광개발정책과 난개발로 인한 도민의 삶의 질 추락’을 이유로 들었다. 1년 넘게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제2공항 계획의 절차적 문제점과 입지 결정 과정에 대한 부실 및 조작 의혹, 오름 절취, 공군기지 문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문재인 정부와 원희룡 도정은 단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부실 용역 검증 요구를 외면해왔다고 정면 비판했다. 40일 넘게 목숨을 건 김경배 부위원장의 단식과 제주도민의 동조단식에도 국토교통부는 최근 성산읍반대위와 제주도가 합의한 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제주도와 국토교통부에 제2공항 추진의 근거가 된 사전타당성 검토용역에 대한 공개합동검증을 제안했었지만 국토부가 타당성 재조사를 ‘전문 기관의 판단에 따를 필요가 있다’며 공개합동검증을 노골적으로 거부한 것도 제주 시민단체들의 변화에 불을 지핀 것으로 보인다.

아직 강정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성산은 시작 되지 않았다. 강정에선 공사를 막지 못했지만 성산은 다른 미래를 가져볼 만하다. 왜냐면 강정을 통해 이미 미래를 먼저 만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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