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급’이 부를 또 다른 ‘노동자 신분제’

“직무급제, 공정하고 합리적 임금체계 아냐”

직무급제는 정부의 말대로 과연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는 임금체계일까? 아니면 특정 집단 노동자의 신분을 고착하는 또 다른 차별 제도일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3일 이슈페이퍼를 통해 “직무급은 직무에 따라 임금, 승진체계, 고용구조 등을 달리하는 임금 체계로 직무에 따른 차이가 차별로 고착하는 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철폐연대는 “본래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상시지속업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문제를 정부가 정책적으로 해결한다는 목표를 가졌지만, 이내 정규직화 방법은 자회사 및 무기계약직 전환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런 흐름은 직무급제 도입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과 더불어 직무급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성과급제를 폐기하고 ‘산업 단위 표준 직무급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기획재정부는 직무급제 도입에 관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은 언론을 통해 직무급제 도입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노동 현장에도 ‘직무급’ 도입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노사는 지난 26일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공사 직접고용 대상자를 ‘별도 직군’으로 편제하는 것에 합의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 27일 청사관리본부 용역 근로자 2,435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며 직무급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자회사나 무기계약직 전환도 비용 논리로 등장했다. 그런데 정부나 기업은 이마저도 장기적 임금상승이 따른다는 이유로 임금체계 개편까지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철폐연대는 이를 두고 “정부는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사용했다는 관행이 잘못됐다면서, 이에 따른 해결 비용을 직무급제로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그 동안의 잘못을 바로잡는 비용은 사회 전체가 어떻게 분담할지 논의해야 하는 문제이다. 정부가 직무급, 자회사 등 단계적 절차와 시간을 인내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능력주의’ 속 차별

최근 불거진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간 갈등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정’과 ‘경쟁’을 말하고 있다. 공정한 절차 없는 정규직 전환은 ‘무임승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규 교원들이 기간제 교사, 영어회화전문강사 등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교원 자격을 얘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정부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대상자는) 미숙련이기 때문에 연공급이 아닌 직무급제가 적합하고, 이를 통한 상향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도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캐셔 노동자’ 5천여 명을 정규직 전환하며 직무급을 도입했다. 이들은 기존 정규직과 다른 임금과 승진 체계를 적용받았다. 2015년에는 ‘신인사제도’를 통해 공통직(정규직 관리사원), 전문직(계산원 및 매장 진열 노동자)로 직무를 통합-분리했다. ‘전문직’ 군으로 분리된 노동자들은 매년 최저임금 인상만큼만 임금이 인상됐고, 공통직으로 직무 이동은 불가능했다.

철폐연대는 “(직무급제에서) 능력주의는 자신의 능력에 따라 선발돼 위계적 사회체제에서 배치·분배받는 원칙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시험 같은 제도에서 능력에 근거한 경쟁을 통해 직무 위치가 달라지는 것이니 이에 따른 차이도 공정하다는 믿음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도록 한다”며 “공정성과 합리성이라는 포장은 정부 정책 패러다임의 문제를 은폐할 뿐 아니라, 기존 정규직과의 차이, 직무직종 간 차이를 가장한 노동계급 내부의 차별이라는 쟁점을 숨기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그 전제도, 과정도, 결과 역시 전혀 공정하지 않은 것이기에 또 다른 신분제를 만들어내고 만다”고 지적했다.

직무급이 부를 노동자 내부 분열

철폐연대는 직무급제가 도입되면 노동자 내부 분열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소득은 꾸준히 늘어났지만, 임금근로자 하위 90% 소득은 1997년 약 45%에서 2010년 약 39%로 감소했다(이병희, 「노동소득분배율 측정 쟁점과 추이」, 2014). 정부는 줄어든 노동소득분배율 안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따라서 정부는 ‘정규직 양보론’을 내세우게 됐고, 노동자들은 주어진 ‘파이’를 잃지 않으려는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철폐연대는 “기업은 더 이상 경제적 성장이 어려운 구조적 모순에서 노동에게 주는 몫을 축소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노동소득을 줄이는 최고의 방법은 노동자 내부 분열을 확대하는 것이며, 직무급제는 그 획책으로 볼 수 있다.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차이부터 고용형태, 성과, 직무직종에 따른 불평등 문제는 노동자 내부 임금 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지금 쟁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자본으로부터 노동 전체의 몫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폐연대는 “임금결정 기준을 노동의 대가나 시장임금 같은 자본의 이해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닌, 모든 노동자에 차별 없는 삶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 설정해야 한다”며 대안적 임금체계의 원칙으로 △안전성 △집단성 △생활보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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