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휘둘려온 인권위의 10년...혁신위, 13개 권고 발표

인권위 혁신위 1월 29일 자로 3개월 임기 종료

국가인권위원회가 독립되고 힘 있는, 실질적 인권 보호를 위한 기관이라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올해로 설립 17년 차를 맞은 인권위는 보수 정권 10년 기간 동안 부적합한 인사 임명과 국내 주요 인권 사건에 대한 침묵, 심지어 인권위가 적극적으로 수행한 인권침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인권위는 박근혜 정부 집권 기간 동안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로부터 인권위원 선정과정의 투명성·다양성 부족 등을 지적받아 세 차례나 등급보류 결정을 받은 ‘흑역사’도 가지고 있다.

새로운 정부 출범과 더불어 ‘적폐 청산’의 바람이 인권위에도 불었다. 지난 10월 30일, 인권위 혁신과제를 제시하는 자문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 혁신위원회(아래 혁신위)’가 출범한 것이다. 혁신위 위원들은 하태훈 위원장(참여연대 공동대표)을 비롯한 외부위원 10인과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 등 내부위원 3인으로 구성되었다. 출범 당시 이성호 인권위원장은 “그동안 인권위에 대한 많은 질책이 있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면서 “인권위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혁신위를 최대한 지원하고 혁신위의 권고안을 최대한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혁신위는 1월 29일 자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임기 기간 동안 혁신위는 총 13건의 권고를 인권위에 전달했다. 2월 1일, 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하태훈 혁신위원장은 “권고안이 실질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인권위, 무엇보다 국민의 관심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인권위가 제대로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인권거버넌스의 한 축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길 바란다”라며 권고안을 발표했다.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잡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혁신위는 과거 반성과 재발 방지에 관해 △우동민 사망 및 장애인 인권활동가 인권침해 △청와대 인권위 블랙리스트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 등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침묵 △직원 부당징계 등 인권에 반하는 운영 등 총 4개 사안에 대한 권고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故우동민은 지난 2010년, 장애인활동지원법안 규탄과 현병철 당시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진행된 장애인 활동가들의 인권위 점거 농성에 참여했다가 폐렴으로 사망했다. 당시 시민사회는 인권위가 활동지원인 출입 통제, 전기 공급 중단, 엘리베이터 운행 중단 등의 행위로 장애인 활동가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우 활동가의 사망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인해왔다.

[출처: 비마이너]

혁신위는 인권위가 자체 제작한 ‘농성대책 매뉴얼’에 따라 행동을 취했음을 확인했고, 인권위가 일련의 행위를 부인하고 은폐해온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공식 사과와 고인의 명예 회복, 진상조사팀 구성, ‘농성대책 매뉴얼’ 폐기 등을 권고했다. 이러한 권고에 따라 지난 1월 2일, 이성호 인권위원장이 직접 우동민 활동가의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공식 사과를 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적극적 해명이나 진상규명이 없었던 점 역시 인권위가 청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이명박 정부 때였던 2009년, 청와대 행정관이 새로 임명된 사무총장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관리해야 할 인권위 직원들의 명단, 이른바 ‘인권위 블랙리스트’를 건넸다는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었다. 그러나 당시 인권위는 사실관계 파악이나 기초조사도 않은 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고,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라며 ‘유감’ 표명만을 하는 데 그쳤다.

혁신위는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전달되었다는 것 자체가 직원을 ‘사찰’해왔음을 의미하며 이는 인권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인권위에 진상 파악과 조사관의 독립적 활동 보장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그밖에도 혁신위는 지난 2009년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병철 당시 위원장의 독단적 회의 종료로 인해 의견 발표가 지연된 점과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논란을 방송한 MBC PD수첩 제작진을 검찰이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한 사건, 국정원의 기무사 사찰과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등의 사건에 대해 인권위가 침묵했던 것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권위의 ‘적폐’라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인권에 반하는 기준과 방식으로 운영되어온 문제 역시 청산해야 할 과제로 제시되었다. 인권위는 지난 2011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원회 지부 부지부장인 A씨를 해고했고, 이에 반발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언론에 기고한 직원 11명을 징계했다. 지난 2015년에는 ‘탈동성애’를 표방하는 단체들이 진행한 성소수자 혐오 행사에 인권위 배움터를 대관하기도 했다.

혁신위는 이러한 인권위의 과오를 지적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과 공식 입장 발표, 인권위원들과 직원에 대한 국제인권기준 교육, 인권위원 자격 기준과 결격사유 구체화, 민주적 조직문화 구축 등을 권고했다.

#더 투명하게, 더 독립적으로, 더 다양하게

[출처: 비마이너]

혁신위가 인권위 조직과 운영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바로 정부로부터의 독립성과 의사결정의 투명한 공개가 미비하다는 점이었다. 이는 지난 10여 년간 보수정권하에서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엄격한 인권의 잣대로 사회 여러 사안에 제대로 된 의견을 내지 못했다는 평가에 기반한 지적이다.

혁신위는 인권위가 정부의 부당한 간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인권위 조직 역시 전문성과 다양성, 그리고 다원성이 부족해 주요 인권 사안에 부적절하게 대처해왔다고 지적했다. 혁신위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인권위원 임명 절차와 의사결정 절차 때문이라고 보았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 조직을 5국 22과에서 3국 10과로 대폭 축소하고 직원 정원을 21% 감원했다. 이 과정에서 인권위 의견은 묵살되었고, 인권위는 독립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조직 축소를 감내해야 했다. 이렇듯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속수무책이다 보니 인권위의 활동 역시 정부 ‘입맛대로’ 휘둘리게 되었다고 혁신위는 지적했다.

인권위원 임명절차 역시 국회, 대통령 또는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방식이다. 인권위법에서는 이들이 위원을 임명할 때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그 과정이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다. 혁신위는 바로 이러한 제도적 미비 때문에 지난 정권들에서 인권위원에 부적합한 이들이 위원으로 임명되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혁신위는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이 각각 한 명씩 지명하는 형식으로 임명되어온 인권위원 선정 절차에 투명성과 독립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혁신위는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인권위원의 몫을 축소하거나 폐지함으로써 인권위원의 위상과 사법체계로부터의 독립성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원 중 법조인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다. 현재도 상임위원 3명 중 2명이, 비상임위원 7명 중 5명이 법조인 출신이다.

혁신위는 이에 대해 “인권위가 사법부에 대한 적극적 의견 개진을 꺼리거나, 사법적 결정에 어긋나는 결정을 자제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라며 “보편적 인권과 국제 인권기준의 관점에서 인권에 관한 적극적 옹호자가 되어야 하는 인권위가 실정법과 기존 판례의 틀 내에서만 소극적으로 인권문제에 접근할 경우, 그 존립 의의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혁신위는 인권위원 구성에 있어 여성, 장애, 성소수자, 이주민, 아동 등 다양한 소수자 계층의 대표성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신규 직원을 채용할 때에도 인권 활동 경력자나 전문가의 입직을 위한 경로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권위의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한 점 역시 혁신 과제로 제시되었다. 위원장을 비롯해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인권위 대표적 의결기구인 전원위원회 비공개 의결안건은 연도별 평균 41.4%에 달한다. 상임위원회 역시 비공개 안건 평균 비율이 31%에 달한다.

인권위 회의록 역시 위원들의 이름이 익명으로 처리되어 제공되고 있다. 위원 익명처리는 ‘소신있는 발언과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2014년 제10차 전원위원회에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혁신위는 이미 인권위원이 직무상 행한 발언과 의결에 관해 민사상 또는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 면책조항이 있으며, 우리 사회 주요 인권사안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회의록인 만큼 알 권리 보장과 인권위 책임성 강화를 위해 익명 처리가 불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밖에도 혁신위는 상임위원회 회의록이 회의결과만 공개되는 점이나 전문 분야별 소위원회 회의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점, 그리고 회의공개 방식이 방청에 한정된 점, 조사 진행 과정의 불투명성, 장애 당사자에 대한 웹 접근성 부족 등을 지적했다.
이에 혁신위는 포괄적인 비공개회의 관행 적극 개선, 의사공개 원칙 준수, 회의공개 대상 확대, 실명 기재된 녹취록 형태 회의록 작성 및 공개, 회의 녹화 영상 공개 및 공익성 높은 안에 있어서는 생중계 방안 모색, 정보 접근성 증대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출처: 비마이너]

그밖에도 혁신위는 △조사와 구제 혁신 △인권정책 기능 실효성 제고 △인권교육 혁신 △인권위 내 비정규직 고용 및 차별 해소 △인권위의 계속적 혁신을 위한 ‘혁신추진실무위원회(가칭)’ 구성 운영 등을 권고했다.

하태훈 혁신위원장은 “여러 가지 권고안 중에서도 인권위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자격 있는 인권위원 임명과 이를 위한 투명한 추천, 검증 과정 마련”이라고 밝혔다. 하 위원장은 “현재 상임위원 중 한 분의 임기가 만료되었고,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천, 임명하는 자리”라며 “권고안에도 담겨있듯, 시민사회가 검증할 수 있는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임명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은 “이성호 인권위원장이 권고안 적극 수용 의사를 밝혔고, 현재 인권위 각 과별로 권고안 이행방안 마련을 지시해둔 상태”라며 권고안에 대한 인권위의 입장을 밝혔다.[기사제휴=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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