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워커스] 사전

좌파세력을 후려치기 위해 고안된 새로운 접두어로 21세기 한국의 정치적 형세를 상징하는 낱말이다. 종북은 ‘종북 좌파 세력’이라는 발언 형태로 등장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북이란 좌파를 가리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이를테면 과거에 유행했던 용공 좌파란 말을 동시대 버전으로 업데이트한 것이 종북 좌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좌파 내부에서 종북으로 지칭되는 정치세력을 견제하고 비판하기 위해 좌파 세력 스스로 만들어낸 말임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80년대의 급진적인 정치운동을 이끈 주된 세력인 민중민주파(PD)와 민족해방파(NL) 가운데 민족해방파의 일부를 가리키고자 사용된 종북이란 용어는 훗날 통합진보당의 해산과 그 정당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정치가들과 활동가들의 구속과 탄압의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종북은 극우 보수세력이 자신과 대립하는 정치세력을 지칭하기 위해 주문처럼 사용하는 낱말이다. 또한 현실에 좌절을 느끼며, 말로만 변화를 부르짖을 뿐 이렇다 할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환멸하는 ‘일베’ 류의 낙오자적 청년집단이 즐겨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출처: 사계]

종북은 북한을 추종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북한을 추종한다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국가정보원의 재량이거나 보수 언론이 맞장구를 치면 마음대로 재단될 수 있는 기형적 괴물이기 때문이다. 북한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활약한 정대세 선수를 두고 종북이라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북한 지역의 지질학적인 구조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지리학자를 두고 종북이라 말할 수도 없다. 어쨌든 종북을 제대로 헤아리고자 한다면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라는 분단 이후 남한에서 자리 잡은 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데올로기란 흔히 이념공세라고 말할 때의 그 이념과 같은 것은 아니다. 이념은 현실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꾸며낸 관념이나 생각으로 현실을 재단하고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란 의식이나 관념으로 좁힐 수 없다. 무엇보다 이데올로기란 현실이 마치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방식 그 자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은 이데올로기이다. 타인에게 고용되어 돈을 벌고자 하는 일을 두고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먹고 살아가는 게 원래 그런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치도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므로 현실에 관해 덧붙여진 생각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각에 앞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현실 자체가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생각이나 관념, 의식이기에 앞서 그렇게 여겨지는 자명한 현실의 원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를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때문이다. 물론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는 일종의 관념이기도 하다.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복리를 도모할 수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적인 사고와 달리 상품 생산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평등한 처지에 놓인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주의적인 사고는 엄연히 대립된다.

저항에 대한 지배집단의 두려움

그러나 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주의나 반북주의는 그와는 다른 것이다. 남한에서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는 냉전 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것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세계 질서의 커다란 변화들과 관련이 있다. 수많은 식민지 상태의 세계가 국민국가를 수립하였고 이들 가운데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 보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려는 노력을 시도했다. 제3세계나 비동맹운동이 바로 그러한 움직임을 대표한다. 한편 사회주의를 택한 동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물론 서부와 남부의 많은 유럽 나라들에서 강한 반자본주의적 정치세력이 정치 무대의 중요한 힘을 이루었다. 이로써 미국을 필두로 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국가들과 공존을 유지하는 한편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가로막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공주의와 반북주의가 이데올로기인 까닭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기대와 저항이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따라서 반공주의와 반북주의는 지배집단이 가리키는 대로 현실이 나타나지 않는 데 대한 두려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에 대한 꿈이 희박해진 지금 종북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라고 보기에 어렵다. 종북 좌파에 대한 공포를 품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기피하는 이는 세상에 없다. 취업 지원자에게 친인척의 신상명세서를 요구하고 사상 검증을 하려는 기업가도 없다. 종북이란 정치적 이해를 다투면서 정권을 차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이 상대에게 가져다 붙이는 주술이다. 이를테면 박근혜 지지자들은 박근혜를 탄핵한 이들을 북한 지지자라고 부르기만 하면 박근혜가 무고해지고 석방될 것이라고 믿는 초능력 관념론자들이다. 결국 종북이란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것이라는 꿈이 초라해진 세상에서 자신들이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가져다 쓰는 초라한 낱말에 불과하다. 유연하고 글로벌한 지배집단은 자본주의가 유일한 현실로 보이는 이상 팔짱을 끼고 어떤 정치세력이 자신의 사업에 유리할지 계산을 할 따름이다.[워커스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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