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압승이 삼켜버린 ‘좋은 일자리’

[워커스 세상 평판]

지난 6월 13일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 한국당의 참패였다. 새날이 밝자 ‘보수 텃밭’의 지역신문들은 ‘민주당 OO년 만의 입성’ 소식을 일제히 알려야 했다.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뒤집은 선거였다.

이 이변은 최근 높게 유지된 대통령 지지율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언론도 탄탄한 분석보다는 다양한 변심 스토리에서 기삿거리를 찾았다. 보수 정당에서 민주당으로 바꿔 투표한 주된 이유로는 한국당이 오만했다는 일명 ‘오만 심판론’이 제기됐다. 물론 정당 심판 성격의 선거는 지금껏 쭉 있었다. 그러나 작년 대선에서 이미 패배한 정당을 1년 만에 다시 주저앉힌 이번 심판은 그 온도가 다르다. 여러 인터뷰 기사에서도 소위 변심 유권자들은 “보기 싫었다”거나 “내 손으로 몰아내야겠더라”는 적극적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오만 심판론’과 대통령 지지율

그런데 한국당의 무엇이 그리도 오만했다는 걸까?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홍준표 전 대표의 막말이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홍 전 대표의 “거친 입이 오만함으로 비춰졌다”며 직설과 원망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언론이 홍 전 대표가 지난 1년간 쏟아낸 막말들을 복기하기도 했다. ‘오만 심판론’은 ‘막말 심판론’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홍 전 대표의 1년 치 막말을 들출 것도 없이, 선거의 판세는 북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이 뉴스에 오르내린 4월 중반 이후에 확정된 모양새다. 한국당이 무당파만이 아닌 보수층까지 돌아서게 한 패착은 민심을 읽지 못하고 남북‧북미정상회담 폄하에 몰두한 게 결정적이었다는 진단이 많다. 실제로 홍 전 대표의 막말 행진은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반감과 조롱이라는 대중 반응을 응집시켰고, 이어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정치적 오명까지 썼다.

지난해 ‘적폐청산’을 기치로 조기대선을 성사시킨 시민들의 고양된 자부심이 이번 선거의 높은 투표율과 결과에 작용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판문점 회담이 없었더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 세력을 몰아내자는 지금의 압도적 심판론도 없었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국정의 잘잘못과 반대의 합리성을 따졌다고 하기엔 국정 첫 해의 큰 축이던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문제는 도마 위에 오르지도 않았다. 이런 점에서 6월 13일의 ‘오만 심판론’은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고공행진 중인 대통령 지지율의 동어반복이기도 하다. 마침 참패 닷새 후 한국당은 오만한 보수가 아닌 ‘냉전적 보수’를 탈피하겠다고 했다.

[출처: 김용욱]

원하는 건 ‘지금처럼만’의 국정운영?

민주당의 선거 압승은 문재인 정부에 안정적인 국정운영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민심으로도 해석된다. 그런데 그 민심이 바라는 국정이란 과연 어떤 국정일까? 혹은 문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와 요구는 지금처럼만 해달라는 주문으로 충분한 걸까?

여기엔 정권 2년 차에 접어들며 새롭게 추진 궤도에 오른 정부의 주요 공약들이 중요한 참조점이자 시험대가 될 것이다. 지자체와 마을 중심의 초등학생 돌봄 체계를 구축한단 취지로 지난 4월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온종일돌봄’이 한 예다. 이 정책의 추진계획에서 정부는 지자체들에 사업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시설공간과 운영체를 지정하도록 지침하고 있다. 세부 운영방안에는 민간위탁과 바우처 사업이 포함됐고, 돌봄 일자리에 대해서는 자원봉사자, 은퇴자, 학부모,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목표 대상만이 나열됐다.

문제는 공공부문에 이미 만연한 민간위탁과 바우처 사업이 ‘나쁜 일자리’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둘은 공공사업을 위탁운영하거나 중개하는 민간이 중간에 끼는 데다가, 이때 오가는 위탁운영비와 바우처가 편의상 사업비, 운영비, 인건비를 구분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처우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좋은 일자리’ 공약을 내놓은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 정부의 ‘좋은 일자리’ 정책과는 아무 접점이나 충돌도 없이, 곧 ‘온종일돌봄’ 정책은 장년층과 여성들에게 처우가 매우 의심스러운 마을 돌봄 인력으로 나설 것을 장려하게 될 테다. 돌봄 서비스와 일자리를 원하던 다수의 사람들은 아마도 ‘온종일돌봄’ 정책을 환영하는 동시에, 그 이용자나 노동자가 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는 현실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이미 정부의 기획에서 이들은 민간위탁을 통해 확대된 돌봄 서비스를 원하고 탄력적인 단시간 시급제 일자리를 원하는 시민으로 간주되고 있다.

문 정부가 현재 청산 중인 것처럼 보이는 공공부문 ‘나쁜 일자리’는 결국 마을과 여성의 ‘나쁜 일자리’로 되돌아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이번 선거 결과에 담긴 민심이 지금처럼만 국정운영을 해달라는 주문이라면, 그 실체와 결과는 매우 모호하고 분열적인 것처럼 보인다.

촛불시민의 자부심에서 자존감으로

요즘 자존감이란 말이 유행이다. 다른 무엇보다 자존감은 자기존중과 성숙한 관계를 위한 치료법이자 훈련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년째 베스트셀러인 책 ‘자존감 수업’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또 잘 표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겠다고 공언했다. 출범 시엔 ‘국민인수위원회’라는 별칭의 ‘광화문1번가’를 설치했고 얼마 전 이것은 ‘국민정책소통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온라인 ‘국민청원’도 큰 인기다. 그러나 이 모든 기획과 참여의 효과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가망 없는 ‘헬조선’으로 자조된 2년 전, 조기대선이 열린 1년 전, 그리고 바로 지금도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또 잘 표현하고 있을까? 지금 이대로도 좋은 대통령을 배출했고 그 정부에 힘을 모아다 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촛불시민의 큰 자부심이다. 이제 이 자부심은 시민의 자기존중과 정부와의 성숙한 관계를 위한 자존감으로 진전돼야 할 때다. <워커스 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