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 죽어도 좋으니 젊은 그대, 물처럼 노조에 밀려오라

[워커스 인터뷰] 26년 만에 처음 생긴 게임산업계 노조…배수찬 넥슨지회장, 차상준 스마일게이트 지회장 인터뷰

첨단산업을 이끌지만 자신의 노동환경은 전근대적 이었다. 넷마블에선 2016년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중 한 건은 과로사로 확인돼 게임업계 장시간 노동 문제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넷마블은 “업계 최고의 복지”를 보장해 주고 있다며 “직원들의 건강과 가정을 챙길 수 있도록” 기업을 운영해 왔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업계’사람들의 속내는 씁쓸할 뿐이었다. 고용이 불안한 상태에서 복지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진통제만 주는 꼴이었다. 척박한 노동 환경을 직접 바꿔보겠다며 노동자들이 나섰고, 배수찬(넥슨)과 차상준(스마일게이트)이 맨 앞에 섰다.

이들이 구상한 노조는 업계 특성을 전적으로 반영했다. 넥슨지회, 스마일게이트지회라는 이름 대신 각각 ‘넥슨 스타팅포인트’ ‘SG길드’를 선택했다. 그리고 노조원 대신 ‘길드원’이 돼달라고 호소한다. 비상식의 벽을 부수는 대신 ‘레이드’하자고 외친다. 두 개의 노조는 노조가입서를 함께 배포하고, 출근 선전전도 같이한다. 두 지회장을 판교에서 따로따로 만났다. 차상준 지회장은 곧 프로젝트 출시를 앞두고 있고, 배수찬 지회장은 노조 업무에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살고 있어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그들의 레이드를 따라가 보자.

조합원 증가 속도가 남다르다. 현재 얼마나 모였나?

배수찬(이하 배): 10일까지 800명 정도 모였다. 일주일 지났을 때 10%(약 400명) 정도 모이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노조가 생기니까 많은 분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입했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공한 것도 아니고 노조를 띄운 것만으로 ‘우리가 원했던 게 이거야’라며 큰 호응을 해주셨다. 얼떨떨하다.

차상준(이하 차): 약 320명 정도다. 예상보다 많은 편 이긴 하다. 목표는 일단 1,000명이다. 전 계열사 합쳐 2,000명 정도가 있는데 이분들의 50% 정도가 가입하면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 같다.

왜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화섬연맹)에 가입했는지 궁금하다. SG길드(스마일게이트지회)는 카드뉴스까지 제작해 배포했다.


우리나라에서 젊은 사람들이 노조 만든 데가 거의 없는데 화섬연맹 소속인 파리바게뜨지회, 네이버지회가 실적으로 봤을 때 제일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네이버지회에 자문했을 때도 신뢰할 수 있다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민주노총을 경계하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구하고 절차에 따르겠다고 했다.

게임업계의 연대가 무조건 필요했다. 게임업계 내 노동자들은 다 돌고 도니까 대표적인 회사에서 변화가 시작되면 연쇄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이를 위해선 같은 산별로 묶이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고. 네이버가 파리바게뜨지회를 따라간 것처럼, 넥슨과 스마일게이트도 자연스럽게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따라간 것이다.

두 지회장 모두 노조 결성 직전, 주 52시간제를 두고 회사와 교섭했던 근로자위원 경험이 있다

7월 1일부터 시행될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를 앞두고 유연근로제 도입을 추진했다. 유연근로제만 놓고 봤을 때 교섭 결과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뭔가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직원들 대표로서 책임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후 믿을 만한 열 명 정도에게 노조 결성을 제안했다. 업계 1위의 부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넥슨이 이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책임감을 느꼈던 거다.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은 전부터 있었다. 변화를 위해 앞장설 용의도 있었다. 지금 맡은 업무가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회사에서 날 자르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근로자위원으로 선출되고 회사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답답한 부분이 많았다. 불가피하게 주 52시간 이상 근무를 해야 할경우도있을 텐데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우리가 내놓은 제안들도 다 거부를 했다. 불법을 뭉개고 가겠다는 건지, 참. 어쨌든 조금은 아슬아슬한 주 52시간 제도 교섭 후 먼저 연락을 주신 분들이 계셨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프로젝트가 얼마 안 남은 상황이지만 노조에 뛰어들었다.

노조 결성 과정에서 회유하거나 방해하려는 시도는 없었나?

믿을 만한 사람한테만 제안해서 보안유지가 잘 됐다. 회사 측에 교섭 공문을 보내니 ‘잘해보자’라고 전체 게시판에 올렸더라. 현재까진 그게 다이다.

지회가 어떤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서 비밀스럽게 준비한 측면이 있다. 이전에도 게임업계에서 노조를 결성하려다 불발된 사례를 들어서 더욱 조심스러 웠다. 넥슨이 노조를 띄운다는 것도 직전에서야 알았다. 아쉬운 건, 운영, 보안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그런 분 들의 이야기를 많이 못 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다양한 직군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회사 내 가장 큰 문제는 뭐였나?

  배수찬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지회장

가장 절박한 문제는 고용불안이었다. 프로젝트팀이 접혔을 때, 그러니까 게임이 엎어졌을 때 아무리 정직원 이라고 하더라도 이 회사에 남아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회사 내에서 구직을 해야 한다. ‘저를 팝니다. 사주세요’ 식으로 다른 팀에 어필해서 일을 구해야 한다. 그나마 넥슨은 큰 회사라, 구인‧구직 풀이 넓으니까 70% 정도는 다른 팀으로 간다. 그런데 디자이너처럼 고유의 화풍이 있는 경우, 실력이 뛰어나도 자리 찾기가 힘들다. 안 팔린 사람은 계속해서 일없이 사무실을 지키고 회사는 나머지 자리를 싹 정리한다. 회사는 업무 배분을 하거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한다. 그렇다고 내쫓지도 않는다.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작전? 그럼 실업급여도 못 받는 거 아닌가?

회사가 한 달 정도 지나면 권고사직을 이야기한다. 3개월까지 안 기다려도 서로 안다. 그럼 실업급여는 받는 거다.

일명 ‘크런치 모드’라고 불리는 장시간, 과중 업무 실태도 심각한 문제다.

크런치 모드는 게임 출시를 앞두거나, 게임 서비스 직전의 테스트 기간 앞뒤로 한두 달 가량 업무가 집중 되는 상황을 말한다. 그때는 정말로 일주일에 100시간 정도 일하는 사람이 생긴다. 나는 지금 미용실을 두 달째 못 가고 있다. 이 크런치모드가 상시적이라는 게 문제다. 처음부터 끝까지 크런치모드가 되기도 하는 거다. 1년 동안 만들어야 할 걸 6개월만 주고 만들라 하면 그렇게 된다. 그동안 회사는 지시하고, 우리는 따라야 했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정해인(서준희 역)이 만들던 게임이 우리 회사 게임이다. 드라마에서 정해인은 연애도 하고, 퇴근 후 맥주 한 캔 마시며 하루를 마칠 수도 있지만 실제 게임 디자이너들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일정 조율을 노동자들이랑 함께 할 순 없었나?

회사에서 게임 배포 및 서비스하는 곳들과 계약을 맺을 때 아예 일정을 정해놓는다. 일정이 늘어나면 계약 파기가 되는 거고. 하지만 게임을 만들다 트렌드가 바뀌어서 다시 만들기도 하고, 예측 못 하는 상황들이 많다. 또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가도 임원들 상대로 시연을 한 번씩 하게 되면 큰 수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걸 반복하면 완성도는 떨어지고,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넉다운된다.

노조로서의 첫 과제는 뭔가?

노동조합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뿌리내리고 싶다. 조합원으로 가입만 하고 지켜보는 게 아니라 함께 결정하고 참여하고, 시도하는 과정을 밟았으면 한다.

구멍이 많은 취업규칙을 손보고 포괄임금제 폐지 까지 함께 하고 싶다. 지금은 워낙 사람을 쉽게 자를 수 있으니까. 이 부분을 보완하고 상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지금은 깜깜이로 돌아가는 운영이라든가 일적인 부분을 시스템화하고 투명하게 공개될 수 있게끔 하고 싶다.

국내 게임산업이 침체기라는 앓는 소리도 들린다. 어떻게 보나?

  차상준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스마일게이트지회장

재무제표를 열어보면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익률이 높다. 2016년엔 4천억 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냈는데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우는 형편없다. 민주노총 분들과 이야기할 때 연봉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 수준이 낮았다. 지난해 개인적으로 임금을 노동시간에 대비해 계산해 본 적이 있었는데 최저임금에도 못 미쳤다. 그때는 너무 일이 많아서 임금은 둘째 치고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심정이었다.

실제 게임업계 빅3에 해당하는 회사들의 영업이익은 전산업의 영업이익 평균보다 매우 높은 편이다. 넥슨은 종속기업 등을 포괄하는 지배기업 ‘엔엑스씨’를, 스마일게이트는 ‘스마일게이트홀딩스’를 기준으로 지난 해 각각 1조871억 원, 2,681억 원을 기록했다. 기업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은 넥슨이 40.7%, 스마일게이트는 42.6%다. 전산업 평균값인 7.4%를 훨씬 웃돌 정도로 수익성이 높다. 게임업계 빅3 중 하나인 엔씨소프트는 33.4%를 기록했다. 인건비 비중이 전산업 평균보다 높기는 하지만 기업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에 비해서는 약과였다. 지난해 넥슨과 스마일게이트는 인건비 비중이 20.2%, 19.5%였다. 전산업 평균은 12.5%다.

업계에서 손꼽히는 회사인데 왜 이렇게 대우가 낮은 건가?

우선 고용 불안정이 문제다. 이직율이 높다. 팀이 해체돼 더 이상 갈 데 없는 사람을 일정 금액을 주고 권고사직하게 하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직률이 높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인데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는데 처우가 좋아질 리가 없다.

들어올 때 연봉을 깎고 들어오기도 한다. 연봉 외에 인센티브로 채우라는 건데, 하도 그런 사례가 많아서 문제의식도 희미해진 것 같다. 그런데 인센티브 제도 설계도 불합리하다. 1조원을 버는 어떤 팀엔 인센티브 3만 원도 못 받는 사람이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지난해 연장근로수당 미지급으로 고용노동부 시정지시까지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정말 웃겼던 게 회사가 출퇴근 기록부를 날렸다고 했다. 3년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오류가 나서 없다는 거다. 연봉도 깎고, 연장근로수당도 안 주니까 회사로선 인건비에서 세이브 하는 거다. 또 서로 간의 임금 정보가 없다는 것도 회사가 이용하는 점 중 하나다. 기준이 될 만한 것이 없으니 깎기만 하면 된다.

비정규직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나?

비정규직 노조원도 있다. 용기 있게 가입해 주시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후 교섭에 적극 반영하려고 한다. 비정규직의 경우, 신상이 노출되고, 이후 불이익을 받을까봐 노조 가입을 더욱 꺼릴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는 가입 여부를 알 수 없다. 후에 조합비를 원천 징수하게 될 경우 조합원임을 알게 될 수 있지만 교섭을 진행할 때쯤이면 노조도 안정이 돼 있을 것이다.

노조를 짧은 시간 안에 띄우다보니 준비가 안 된 부분이 있다. 애매한 상황이 많아 논의 중이다. 이것 외에도 기업공시에는 누락돼 있지만 넥슨의 자회사로 볼 수 있는 회사, 넥슨이 만들었지만 실질적으로 경제적 고리는 끊어져 있는 회사직원분들의 경우 노조원이 될 수 있는지 정확하지 않아 의논 중이다.

연대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주목받고 있다.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있나?

연대를 강조하는 건 혼자만으론 힘드니까. 실질적인 이유로, 같이 하면 좀 덜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거고. 사회적 책임은, 잘 모르겠다. 그냥 그게 옳다고 생각 했고 거창하게 사회적 책임인지도 몰랐다. 저만해도 야근 없이 일하다가, 개인의 삶에 만족하며 일하다가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어떤 기회로 책임감을 느끼게 되면서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잘하는 건 게임 만드는 거다. 노조활동을 게임화하고 싶다. 노조가 안정되면 만들고 싶은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는데 비밀이다. 노조는 당연히 세상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10%도 안 되니까. 또 필요하면 싸움도 하게 될 텐데 IT 업계 종사자로서 온라인을 통한 게릴라전, 이런 걸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노조 게임, 그건 우리가 먼저 제안한 거다. 하하. 이것 말고도 아무래도 젊은 노조원들이 많으니까 판교에서 집회, 시위를 하게 된다면 축제처럼 만들어 보고 싶다. [워커스 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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