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사익보다 알 권리…“알 권리는 살 권리다”

[기획연재] 삼성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비공개 재결 비판①

[편집자 말] 지난 8월 23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삼성전자 등 3개 계열사가 제기한 ‘작업환경 측정결과 보고서 정보공개 결정 취소청구’ 행정심판 사건 중 주요 쟁점 사안을 모두 비공개 하기로 결정해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전문가, 산업보건전문가, 반올림 활동가들은 이 같은 행정심판 결과가 부당하며 영업비밀보다 생명건강권 정보에 대한 알권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이에 참세상은 왜 삼성의 안전정보가 공개돼야 하는지 이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번 기획연재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소리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출처: 김용욱]

지난 9월 4일 삼성 공장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이산화탄소 가스가 유출돼 협력업체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부상자 중 한 분도 사고 후 일주일 쯤 지나 결국 돌아가셨다. 삼성에서의 사고는 감출 수 없을 때에야 드러나곤 했다. 이번에도 은폐의혹이 심각하다.

삼성은 사고 발생 후 2시간 가까이 신고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법을 지켰으니 문제없다는 게 삼성의 입장이었는데, 소방법은 안 지켜도 되냐는 반박이 제기됐다. 구조와 구급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소방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신고의무가 생기는 화학물질관리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뒤따랐다.

산업안전법도 제대로 지킨 것인지 의문이 제기됐다. 사망자 발생 외에도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이면 신고의무가 발생하는 중대재해이다. 노동자 3명이 사고 직후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한 명은 곧바로 사망했고 두 명은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이를 중대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삼성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도, 애초 신고했던 사망시간보다 1시간 이상 빠르게 기록된 사고 당시 구급차의 기록이 발견되면서 삼성의 변명마저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러니, 사망사고가 아니었다면 과연 제대로 알려지기는 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2014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이번과 거의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 그 때도 이산화탄소가 유출돼 협력업체 노동자가 죽었다. 비난 여론이 컸고, 시민사회와의 간담회에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안전보건개선계획 수립명령’을 내렸다는 점을 확인해주었다. 위험한 이산화탄소를 안전한 청정약제로 바꾸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명령이 제대로 내려지고 이행됐다면 이번 죽음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의 해당 명령은 사고가 발생했던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만 내려졌다. 노동부 경기지청과의 얼마 전 간담회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삼성전자 전 사업장에서 똑같은 소화용 이산화탄소를 사용하고 있었고, 그 위험도 다르지 않았지만 그랬다. 삼성의 비용과 노력을 줄여주었던 ‘명령’의 대가는 4년 후 기흥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목숨으로 치렀다.

그럼에도 ‘명령’의 존재도 세부내용과 이행여부도 고용노동부는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찾아가 목소리를 높여야 겨우 조각 정보 한두 개를 내어줄 뿐이었다. 사람이 죽었고, 비판여론이 거센 상황이었지만 그랬다. 이 부실했던 ‘명령’의 세부내용이 진작 공개됐다면 비판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죽음은 없었을지 모른다. 노동자들에게 알 권리는 살 권리이다.

삼성의 안전정보는 언제나 ‘영업비밀’

삼성의 안전정보는 늘 ‘영업비밀’이었다. 2013년 불산 누출 사고 후 삼성반도체 전 공장에 대한 안전보건진단을 실시해 만들어진 보고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이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한 재판에서 증거자료로 요구했을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삼성이 ‘영업비밀’이라 주장하면 노동부는 군말 없이 따랐다. 결국 이 보고서는 지난한 소송을 거쳐 지난 해 말에야 받아볼 수 있었다.

삼성 공장의 유해환경을 측정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도 언제나 ‘영업비밀’이었다. 역시 소송을 통해 지난 2월 공개판결을 받고 나자, 이제 ‘국가핵심기술’이 돼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 산자부와 행정심판위원회가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안전정보들이 은폐돼온 결과, 삼성직업병 피해자들은 증거도 없이 직업병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려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피해자들은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인정받아도 몇 년씩 시간이 흐른 뒤였고, 때론 생을 마친 후였다.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한 열악한 처지가 병을 더욱 깊게 했을 것이다.

지난 9월 18일 이혜정님의 직업병이 인정됐다. 이혜정님은 온 몸이 굳고 장기까지 굳어져 숨을 쉬기도 누워서 잠을 이루기도 어려운 전신성경화증으로 고통 받다 돌아가셨다. 치료와 생계지원이 필요했던 2014년 투병 중에 산재신청을 했으나 인정되지 않았다가, 지난 해 추석에 고인이 돌아가신 후 유족이 재신청해 인정받은 것이다. 너무 늦었다. 그리고 인정받은 여러 피해자들이 이렇게 늦었다.

세 아이의 어머니였던 이혜정님의 생전 인터뷰를 떠올리면 늘 먹먹하다.*

“5년 생존율이 20~30% 밖에 안 된다는 얘기 들었을 때 너무너무 무서웠거든요. 진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10년만 아이들 옆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제 몸 하나 챙기기 힘들 정도가 되니까 신랑이나 아이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것 같은 거예요.”
“저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안하다고 사과는 안 해도 돼요. 앞으로 이런 똑같은 병이 없기를 바랄 뿐이니까.”


기회있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얘기하는 혜경 씨의 울분도 마찬가지로 먹먹하다.

“위험하다고..내가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어요. 저는 꼭 삼성의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한혜경님은 삼성전자에서 LCD를 만들다 뇌종양 수술로 시각, 언어, 보행 장애를 얻었다.

약의 부작용은 약을 먹기 전에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판단도 하고 대처도 할 수 있다. 약을 먹은 사람들에게만 알려준다거나, 약의 부작용이 의심되는 사람들이 부작용이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할 때만 알려준다고 하면 용납할 수 있을까? 제약회사들이 ‘영업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하면 인정해줄 것인가?

삼성은 부작용 확인을 위해 안전 정보를 요청해도 내놓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후안무치하다. 그러나 이혜정 님과 한혜경 님은 단지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해서 삼성의 안전 관련 정보를 원했던 게 아니다. 다시는 자신처럼 모르고 병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이 없기를, 일터의 위험이 사라지기를 원했다. 삼성의 이익보다 우리들의 알 권리가 더 소중하다. 알 권리는 온전히 보장받아야 한다. 알 권리는 살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혜정님 인터뷰영상 : https://youtu.be/8ULVLiATm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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