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장애여성들의 노동

[세계여/성노동자대회 기획연재] n개의 성, n개의 노동, n개의 노동자, n개의 노동현장③

[기획자 말] 10월 27일 청계광장 프리미어 빌딩 앞에서 세계여/성노동자대회가 열립니다. 세계여/성노동자대회는 노동의 성별화와 성적 위계 속에서 비가치화되고 가려진 노동들을 드러내고, 직접 우리의 노동을 이야기하며 선언하는 자리입니다. 이 기획을 통해 제1회 세계여/성노동자대회 준비위원회는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노동의 현장들과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세계여/성노동자대회 페이스북 페이지/링크)

[연재순서]
① 당신에게 여/성노동은 무엇일까 | 숨(링크)
② 레즈비언 노동자 하나, 트랜스젠더퀴어 노동자 리나의 이야기 | 김하나·리나(링크)

[출처: 픽사베이]

집안에서 A가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드물었지만, 방바닥에서 해야 할 일은 늘 주어졌다. 나물 다듬기, 파/양파/마늘까기, 빨래 다리고 개기, 걸레질하기…. 지체장애로 걷지 못하는 A를 위해 개발된 것처럼 방바닥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은 끊이지 않았다. 다른 형제들처럼 학교에 가지 않으니 A에겐 시간이 많았고, 살림을 돕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특별한 음식을 차리는 것도 아닌데 여섯 식구 집밥을 만들어 먹이는 것은 일의 연속이었다. 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뿌듯했고 어깨너머로 엄마 요리 솜씨를 배운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자부심은 명절마다 여지없이 깨졌다. 명절 상에 올라오는 모든 반찬을 엄마와 허리 휘게 만들어 올렸지만, 엄마와 A는 수고했단 말을 듣지 못했다. 대신 말이라도 맞춘 것처럼 친척들은 ‘쟤는 저렇게 몸은 크는데 어떻게 살아가냐’ ‘돌보느라 고생이다’라며 가족들 걱정이 늘어졌다. 일을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집안일 잘해 봤자 고작 대접이 이렇구나 낙담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대부분의 장애여성 친구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몸이었지만, 늘 집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사노동은 장애여성인 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족에게 증명하기 위한 발버둥 같은 거였다. 아예 못한다고 팽개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정말 일도 못하는 무용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괴로웠던 기억들. 학교도 회사에도 가지 않았던 A의 시간과 노동은 가족들 누구든 손쉽게 쓸 수 있는 공공재 같은 것이었다. 아무도 의미 있게 가치를 두지 않았고, 그러니 보상도 없었다.

중증장애여성 B는 듣기 싫어도 피하지 못하고, 가족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몸을 움직여서 하지 않아도 가족들의 감정을 살피고, 케어하고, 날선 감정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보내야 했다고 한다.

B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독립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학력을 갖추기 위해 5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대입검정고시까지 패스를 했다. 공부를 하는 기간은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한다. 공부가 즐거웠다기 보단 검정고시를 패스하면 더 많은 새로운 기회들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졸 검정고시 학력을 가진 장애여성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없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 등록도 해보았지만, 의미 없는 몇 번의 면접기회가 전부였다. 고졸학력을 가졌다는 즐거움은 잠시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는 절망이 더 크게 찾아왔다.

장애여성 친구들을 통해 일자리를 수소문해 보았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만난 친구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모닝콜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주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사람들을 깨워주는 일이었다. 친구는 콜 몇 명을 잡으면 수입이 얼마라고 알려주며 시작해 보라고 권했다.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 시작한 공부인데, 다시 집안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키지 않았지만 여러 명 모닝콜을 성실하게 해주면 수입도 적지 않아 보였다. B가 맡은 고객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정중하게 전화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긋나긋한 목소리나 섹시한 목소리로 깨워주면 안되냐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모닝콜은 그냥 깨워주는 노동이 아니라 성적 서비스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 일하면 얼마 버냐?’ ‘용돈 줄까?’라고 말을 걸어올 때면 이번 달까지만 해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정된 수입을 가진 일자리를 당장 구하기 어려웠고,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문제나 접근권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서 포기할 수 없었다. 소개해준 친구도 비슷한 일을 경험 했겠지만, 둘 사이에서 그런 일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제서야 B는 왜 친구가 모닝콜 전화번호는 별도로 새로 만들라고 했는지 알게 됐다.

모닝콜에 대한 수요가 적어지면서 지체장애여성이 접근 가능한 노동 중 하나는 전화방 아르바이트였다. B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당시 시급 4천 원 이상이었던 이 일은 전화로 친구가 되어준다는 광고와 함께 꽤 매력적으로 들렸다. 교차로, 벼룩시장 등과 같은 신문에 광고가 넘쳐났고, B도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됐다. 전화를 걸었을 때 노골적으로 폰섹스나 직접 만나기를 요청하지만 않으면, 한 사람과 오래 대화하는 게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장애여성이 성노동을 했다고 하면 믿지 않을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수년 전에는 채팅, 전화방 등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언어장애가 있는 장애여성에게는 온라인 채팅 기반의 활동이, 신체 장애가 있고 언어장애가 없는 장애여성에게는 전화방이 몸을 드러내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요긴한 일거리였다. 드물지만 실제 만나 연애를 하거나 대가를 받고 성관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길에서 알아볼까, 만약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탈출해야 하나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출처: 픽사베이]

중요한 일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얼마 전에 오랜만에 C에게 연락을 하니 어머니 병간호로 밖에 나오기 힘들다고 한다. 형제들은 무엇을 하냐고 물으니 다들 바빠 부모님 케어는 자기 몫으로 돌아온다고 한숨이다. 그런데도 남들은 나이 들어서도 부모가 돌봐주고 있다고 오해하니 억울하단다. 자조모임 활동과 연극 모임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으로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움직임에 함께하고 있다고 주장해도, 장애여성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생산적인 활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족과 아이가 있는 다른 형제들을 위해 내 시간을 양보해야 한다. 더 중요한 생산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든 포기하고 희생할 준비를 하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중요한 일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비장애/자본주의적/이성애 중심의 ‘생산’에 대한 정의 속에서 장애여성의 몸과 노동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구분해 왔다. 그래서 언제나 더 중요한 일을 위해 자신의 일을 포기할 준비를 해야 했다. 쉼 없이 움직이며 만들어온 시간과 노동, 가치에 대한 불인정은 결국 삶과 존재에 대한 불인정이기도 하다.

중증장애여성들은 종종 숨쉬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노동이라고 말한다. 폐로 공기를 들이마시는 행위도 몸을 움직여 시간과 힘을 쓰는 것이고, 그 순간에도 그 공간에서 무수한 관계를 맺으며 감정노동과 돌봄노동을 해야 하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 활동 참가율 63.3%(2016년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은 모두 비경제활동 인구이다.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돼 있다고 해도 대부분 최저임금 예외 대상인 경우가 많다.

2018년 기준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 8,906명 중 7,257명은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됐다. 장애인 보호작업장 평균시급은 2,835원이고, 서울시는 1,961원으로 최하위다. 제도적으로는 최저임금법 예외조항에 놓여진 몸. 그러나 돌봄노동을 하며, 퇴직금을 안주기 위한 11개월짜리 계약직 노동을 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노동을 하며, 생존을 위한 노동을 쉼 없이 하며 장애여성은 살아간다. 장애가 있음에도 내 몸은 생산적이라고 증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돌봄과 생산이 건강한 비장애남성의 몫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세상을 움직이는 노동에 장애여성이 참여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