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신영에 노조를 들이셔야 합니다

[르포]기부왕 회장님은 알고보니 횡령왕…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이 싸우는 이유


서울 구로구 독산동에 위치한 신영프레시젼은 한때 잘 나갔던 기업이다. 1993년 금형전문업체로 세워진 신영프레시젼은 금형 제작과 사출 생산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휴대폰 케이스와 휴대폰 반조립품을 LG전자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는 고용규모가 큰 제조업체에 속하기도 했고, 주변보다 처우가 괜찮아 ‘신영’에서 일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자부심이었다. 지금은 빈 책상과 놀고 있는 설비들로 가득 찬 이곳에서, 예전엔 파견 노동자에 알바까지 700여 명이 빡빡하게 일하고 함께 밥을 먹었다. 신영의 노동자들 때문에 주변 상권이 살아날 정도였다.

근처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금 골목을 보면 휑하잖아요. 식당도 파리 날리고, 구멍가게도 하나는 망했어요. 돈 벌어서 내 뺀 건 신창석 회장 하난데, 그 영향은 얼마나 큰 지 몰라요”라며 혀를 찼다.

그의 말대로 지금 회사엔 신창석 회장도, 경영권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신영주 사장도 없다. 대신 노동자들이 지난 12월 17일부터 공장을 점거하고 있다.

복직대신 공장점거

지난 1월 17일 저녁, 공장에서 해고 노동자들을 만났다. 정확히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복직을 기다리는 노동자들이었다.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 신영프레시젼분회 조합원들은 4~5명씩 조를 짜 돌아가며 공장 점거투쟁을 벌이고 있다. 24시간 공장 점거 뿐 아니라, 매일 아침 회장의 자택 앞 투쟁과 저녁문화제도 이어가고 있어 조합원 모두 저마다의 일로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

기자가 찾은 회의실엔 5명의 조합원이 모여 있었다. 짧게는 13년, 길게는 24년째 신영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대부분 여성인 그들은 지난 세월 신영에서 있었던 일은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받은 차별이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부터 회사의 잘못된 점들이 보였다고 했다. 그 전까진 제 날짜에 나오는 월급과 성과장려금, 명절 떡값을 감사히 여기며 회사를 내 가족처럼 아꼈다. 회사에서 일손이 필요하다고 하면 밤에도 나가고 명절에도 나갔다. 맨날 적자가 난다고 우는 소리 하는 관리자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전기세를 한 푼이라도 아껴주려고 이리저리 스위치를 끄고 다닌 건 진심어린 마음에서였다.

그런데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직원들은 송년회 때마다 빠짐없이 무대에 나가 ‘장기자랑’을 해야 했다. 직원들을 위해 만든 자리라고 했지만, 정작 조합원들은 “회장을 위한 재롱잔치”였다고 생각했다. 관리자들은 송년회 행사가 끝나기 전에 나가면 결근 처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송년회가 끝난 뒤 어렵게 잡은 택시 안에서 조합원들은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회의감에 시달렸다.


남녀차별 문제, 임계점을 건드리다

임계점을 넘은 건 남녀차별 문제였다. 주야 2교대를 하던 회사가 주 52시간 이상의 초과 근무로 고용노동청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두 번의 적발 후, 한 번 더 적발되면 사장이 구속될 수도 있다는 말에 부랴부랴 3교대로 바꿨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삭감됐다.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회사는 남성에게만 연봉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같은 요구를 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외면했다.

김준희(가명) 조합원은 “남녀차별이 너무 심해서 상담 받다가 노조 문턱을 밟게 됐어요. 똑같이 일하는데 남잔 연봉제로 해서 더많이받고,여자는연봉제는커녕수당도없이적게주는 거예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은지(가명) 조합원은 관리자의 폭언도 심각했다고 증언했다. “인격적으로 모욕을 많이 줬죠. 밉보인 사람한텐 일 못한다고 멍하니 앉혀놓기도 하고. 말대꾸 하면 청소시키고. 같이 일하는 언니들은 ‘늙은 소’라는 얘기도 들어봤대요.”

그렇게 여성 조합원들이 주축이 돼 2017년 12월 신영프레시젼에 노조(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 신영프레시젼분회)가 처음 생겼다. 회사는 분회와 단체교섭을 진행하는 등 노조를 인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경영난을 계속 강조했고, 고용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고용유지지원금 휴업’까지 진행했다. 그러다 돌연 지난해 7월 문자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해고자는 모두 72명이었고, 다수가 여성이자 조합원이었다. 과거부터 노조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던 신 회장이 노조를 탄압한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모두 나가라’...청산절차 돌입한 신영

하지만 절차도 안 지킨 정리해고가 그대로 진행될 리 없었다. 분회는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과 함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11월 23일 지노위는 회사의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해고된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12월 복직을 기다렸다. 하지만 회사는 ‘청산절차를 밟겠다’는 더욱 강력한 수를 뒀다. 노조를 깨지 못할 바에야 회사 문을 닫겠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12월 말 모든 직원들을 상대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청산 작업을 위한 인원들만 비정규직으로 남겨뒀다. 1월 17일 복직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2주 뒤 다시 해고됐다. 1월 30일, 회사는 이희태 분회장을 포함해 44명의 조합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분회는 다시 부당노동행위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

회사는 노동자들을 몰아내는 것과 동시에 기계 설비까지 빼내려 하고 있다. 2월 1일까지 벌써 네 차례나 시도됐지만 조합원들의 방해로 모두 무산됐다. 한숨을 돌리고 있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상태다. 신영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횡포에 누군가의 생존권이 휘둘린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송은지 조합원은 “나와서 일하는 노동자들 모두 다 가장이에요. 이 사람들 가족까지 생각해 보세요. 80명이 그만뒀는데 가족 3~4명이 있다고 생각해보면 300명이 벼랑 끝으로 몰린 거예요. 신창석 회장은 정말 기업인으로서 빵점인 사람인 거죠”라며 분을 삭였다.

2층 사무실 책상엔 반납된 작업복과 사원증들이 놓여져 있다. 조합원 아닌 노동자들은 더욱 쉽게 해고됐고, 더욱 빨리 회사를 떠났다. 조합원들은 사람들이 떠난 회사에 남아 청산 절차를 막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이들은 이미 한번 물러서면, 계속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습득했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은 충격적이었다. 회장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은 배신으로 변했다. 신 회장은 회사 돈을 빼서 골프장을 지었다. 몇 백억 씩 골프장에 쏟아 부으며, 노동자들에겐 1원이라도 아끼라며 잔소리한 것이 괘씸하고 분했다. 노동자들이 상시적 무료 노동과 마이너스 연차로 전전긍긍하는 동안, 신창석 일가에 들어가는 배당은 수백억에 달했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배당총액은 862억 원. 2012년 골프장 운영업체인 신영종합개발로 흘러간 돈 468억 원을 합치면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신창석 일가가 챙겼다. 현재 분회는 신창석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업무상 배임‧횡령)으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신 회장은 그의 고향인 학산면사무소, 가족이 다니는 반석교회, 회사가 위치한 금천구청, 성모재가노인복지회 등에 일 년에 수억의 기부금을 내고 있었다. 기부금은 신영프레시젼의 회계에서 빠져나갔다. 액수는 2013년 2억7000만 원, 2014년 3억2000만 원, 2015년 3억 원, 2016년 2억6000만 원, 2017년 1억2000만 원에 달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인정받아 2016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지난해 초엔 재경영암군 향우회 신임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LG, 그렇게 정의로운 기업 아니다”

분회는 원청인 LG를 상대로도 투쟁 중이다. 신영프레시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만큼,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고용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희태 분회장은 LG가 협력업체의 생산량을 마음대로 컨트롤하려 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업종 상 등락이 심해요. 물동이 많을 땐 엄청 많고, 쪼그라들 때도 있죠. LG입장에선 탄력적으로 유지하고 싶어서 외주화를 하는 거고요. 예전에 신영에서 삼성 물량을 받아서 일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 계약을 타진하던 중에 LG한테 걸렸어요. 그때 전해듣기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다음엔 물량을 못 주겠다고 했대요. LG는 혹시라도 자신들이 바쁠 때를 대비해서 다른 일은 하지 말라고 하죠.”

최근 SNS에선 LG의 각종 선행 사례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네티즌들은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도 홍보를 못하는 LG가 안쓰럽다며 선행 사례들을 퍼 날랐다.

하지만 이 분회장은 LG가 노동자, 노동조합을 대하는 방식이 전근대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엘지는 정의로운 기업이 아니”라며 “원청인 LG를 상대로 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화섬식품노조 한국음료지회, 엘지유플러스비정규직지회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LG의 전근대적인 노동통제를 많이 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분회장은 분회의 투쟁계획을 신중히 밝혔다. 그는 “경제 전망이 안 좋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 보릿고개만 잘 버티면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이 던진 말도 안 되는 청산 계획을 철회시키고, 어떻게든 사업을 진행해 나가는 게 올해의 목표”라며 “사출이라는 공정의 특성상 화장품이든 AI스피커든 아이템만 있으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원들은 새벽이 돼서야 회사 사무실 바닥에 깐 전기장판에 몸을 뉘였다. 조합원들은 누워서도 한참을 자지 못하고 바빠서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서울남부지회 소속 ‘성진씨에스분회의 언니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보다 힘들 텐데 언니들이 잘 버텨줘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 남부지회의 성진씨에스분회와 동부지역지회 레이테크코리아분회는 여성 사업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고 있다.

다음날 아침, 신 회장의 자택으로 알려진 서울 성수동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 앞에서 선전전이 이어졌다. 등, 허리, 배, 발바닥 등에 핫팩을 덕지덕지 붙인 조합원들은 현수막을 달고 피켓을 들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광명에서부터 왔다는 한 조합원은 투쟁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우리는 앞이 안 보이는 싸움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서 약자라는 이유로 대응을 못했는데 노조가 있을 때 싸워봐야지 않겠어요?”라며 “끝까지 싸워서 일터로 돌아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워커스 5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