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김용균의 동료이자, 또 다른 김용균입니다.

[인터뷰]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조합원

[출처: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석탄가루로 뒤덮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도와줄 동료도 없이, 위험천만한 불법파견 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았던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고 김용균 씨는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60여 명의 조합원 중 한 명이었다.

남은 조합원들은 또 다른 김용균이다. 김용균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위험한 현장에 투입돼, 직접 부딪히며 일을 배웠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마주했다. 노동자들은 기회가 되면 열악한 환경과 처우의 일터를 떠났다. 경력 노동자가 없는 이곳에서 남은 20대의 젊은 노동자들은 다른 직장을 찾기 급급했다. 김용균의 동료들이 2017년 말, 노조를 결성한 이유다.

김용균은 죽었지만, 이들은 죽은 김용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투쟁거점을 서울로 옮긴 현재, 태안과 서울을 오가며 바쁘게 싸우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2월 1일, 서울역에서 귀향 선전전을 진행한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이찬영(27), 김인성(28), 홍현석(29), 박성호(35) 조합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의 요청으로 기사에선 가명을 사용했다.


-김용균 씨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

김인성 “우리는 용균이와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 특근을 하거나 업무 지원을 할 때 같이 일한 적이 한 두 번 있다. 만나면 서로 인사도 하고, 회식 자리에서 보기도 했다.”

-김용균 씨가 사망하고 어떤 시간을 보냈나?

김인성 “사망 사고 이후 2, 3일을 더 출근했다. 점검 업무라서 컨베이어 벨트 이상을 확인해야 하는데 죽음의 장면이 상상이 되고, 야간 근무를 할 땐 어두운 곳에 들어가는 게 어려웠다. 지금은 출근을 안 하고 트라우마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1, 2주 동안은 잠도 잘 못 자고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이찬영 “태안에서 하는 촛불집회에 나가 발언도 많이 했고, 주말마다 서울에 와서 범국민추모제에 결합했다. 인터뷰로 현장 상황을 알리기도 하고, 인권단체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 대해 실태조사를 할 때 증언을 했다. 요즘엔 매일 아침 청와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민들에게 이 사고를 알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홍현석 “처음에 전단을 나눠주는 일이 쑥스럽기도 했는데 조금씩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아서 길어지는 싸움에 힘을 내고 있다.”

박성호 “민주노총의 산하 조직들을 돌면서 함께 싸워달라 이야기를 드리고 있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리고 저희가 다른 투쟁 현장에 찾아가 연대하기도 하는데 다른 문제를 가지고 같이 싸울 수 있다는 게 새로운 경험이다.”

-태안에서 서울로 빈소를 옮기는 등 투쟁거점을 서울로 이동했는데 변화가 있나?

홍현석 “많은 노조와 시민단체가 우리 싸움에 결합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까 중요한 싸움이라는 게 느껴진다. 마주하는 시민들도 많고, 얼마 전엔 국무총리가 직접 찾아오지 않았나.”

-이낙연 국무총리의 방문을 어떻게 봤나?

박성호 “확실한 답 없이 두루뭉술한 말들만 하고 갔다. ‘유감을 표한다’, ‘논의하고 있다’, ‘빨리 해결되길 원한다’는 말을 들으려고 유가족이 대통령 만나자고 한 게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선 개인적인 보상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계신다. 오직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말씀하고 있는데 확실한 답을 빨리 주길 바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통령에게 만남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대통령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

홍현석 “어머니가 현장을 방문하시고 어떻게 이런 데가 있냐고 오열하신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야기해도 한 번 보는 게 훨씬 이해가 쉽다. 대통령을 만난다면 한 번만 현장을 방문해달라고 하고 싶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유가족의 말씀을 들어달라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태안화력발전소

[출처: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2015년부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했던 홍현석 씨는 그전까지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영동의 화력발전소에서도 일했지만, 태안화력발전소의 경우 유달리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노동자들이 힘들었다고 했다.

홍현석 “예전에 영동에서 일할 땐 꽤 교육을 잘 받았다. 그런데 태안은 교육도 없고, 팀장들한테 물어봐도 잘 모른다. 오히려 팀장이 우리한테 물어보기도 했는데, 관련 경험이 없다 보니까 설명을 해줘도 이해를 못 한다. 발전소에서 2, 30년 일한 사람들이 경력으로 들어오는데 우리랑 비슷하게 잘 모르는 상태다.”

이찬영 “한전산업개발 사람들한테 구걸하듯 물어보고 다녔다. 경쟁업체 사람한테 일을 물어보니 당연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핀잔을 들었지만 그래도 알아야 일을 하니까 꾹 참고 물어봤다. 시운전 할 때부터 노동자들이 제대로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상태로 계속 인수가 잘 안 됐다.”

김인성 “제 경우도 6일을 따라다니다가 갑자기 근무지로 투입됐다. 무작정 가보래서 갔고, 모르는 것 있을 때마다 전화로 물어봤다. 잘 모르니까 맨날 와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직접 부딪히면서 알아가기도 하고.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 하다 보니 위험한 일도 위험한 줄 몰랐다.”

박성호 “2015년, 한국발전기술에서 태안사업소를 운영하면서 처음 ‘프로젝트 계약직’을 도입했다. 서부발전이랑 계약한 3년 일할 사람을 뽑는 거다. 계약이 연장되면 우리도 계속 고용되는 거지만, 계약이 끝나면 일자리를 자연적으로 잃는 그런 계약직이다. 계속 계약직으로 있다가 한국발전기술 정규직이 된 게 2017년 12월이다. 아마 그런 편법적 운영이 회사에 불이익을 줄지도 모르니 급하게 바꾼 듯싶다.”

-회사, 원청에선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나?

김인성 “입찰을 위해 원청에 밉보이면 안 된다는 게 지켜야 하는 룰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 잘못이 아닌데도 회사는 원청에 무조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우리 회사의 관리자면 우리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내용을 잘 모르기도 하고, 입찰에 불이익을 받을까 무조건 저자세였다.”

홍현석 “설비 개선을 요구해도 우리 의견은 아무것도 반영이 안 된다. 우리 요구가 회사를 거쳐 원청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다 잘렸다. 우리가 외쳐도 바뀌는 게 없으니 노조까지 생긴 것이다. 노동자 의견을 힘있게 전달하려면 노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조에 가입했을 때 생길 수도 있는 불이익은 생각하지 않았나?

홍현석 “거기서 더 안 좋아질 것도 없었다. 처우도 최저임금에 가깝고, 임금 인상도 거의 되지 않았다. 설비 개선 요구 관련해선 물러설 데도 없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중노동에 최저임금, 불만은 없었나?

박성호 “2015년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경쟁입찰로 한국발전기술이 정말 싼 가격에 계약을 입찰했다. 원래 한전산업개발이 맡았어야 하는데 낮은 금액을 제시하니 한국발전기술이 따낸 거다. 이런 식으로 무조건 가격 낮춰서 들어간 다른 사업장도 있다. 그렇게 계약금액을 낮춰서 들어가면 어디서 메꾸겠나. 인건비를 줄이지 않을까.”

김인성 “용역회사들이 하는 인건비 따먹기랑 똑같다. 우리에게 책정된 인건비가 월로 환산하면 400만 원 정도라고 들었는데 실제 떨어진 건 반 토막 이하였다. 나머지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 해야 한다.”

이찬영 “지금 한국발전기술 소속 직원들 중에 나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숙련자들은 돈을 많이 줘야 하니까 20대 신입을 많이 쓴다. 또 일이 힘들고 노동 조건도 좋지 않아 나가는 사람도 많다. 신입이 많고, 경력직은 거의 없는 상태다.”

홍현석 “불만이 있어도, 고용안정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점도 있다. 가족들도 나를 따라서 다 태안으로 옮겼는데 입찰이 안 되면 직장을 잃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하지 않나.”

-실수가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끔찍했다. 위험 요소들이 곳곳에 얼마나 많나?

홍현석 “컨베이어 벨트엔 수많은 롤러가 있다. 컨베이어 벨트의 이상 신호는 주로 소리에서 찾는다. 어떤 롤러에서 다른 소리가 나나 찾아야 하는데 워낙 현장이 시끄럽고 분진이 많다 보니 정확히 찾는 게 쉽지 않다. 영동에 있을 땐 아이들러 롤러가 직접 드러나지 않았고 다 감싸져 있었다. 의심이 가는 롤러 밖에 체크만 하면, 정비팀이 와서 바꾸는 구조였다. 그런데 태안은 감싸져 있기는커녕 다 열려 있었고, 또 정확하게 몇 번 아이들러인지 이야기해달라고 하니 우리도 얼굴을 가까이 대고 최대한 정확하게 찾을 수밖에 없었다.”

김인성 “설비가 크고 높다. 키가 안 닿는 곳이 많은데 사다리도 없고 잡아줄 사람도 없으니 주변의 다른 설비를 밟고 올라간다. 발을 잘못 디디면 큰일 나는 건데 많이 하다 보니 둔감해지더라. 슈트 같은 데 탄이 껴서 고착되면 이걸 삽을 넣어서 빼는데 아이들러에 삽이 빨려들어 갈 때도 있다. 그럴 땐 삽을 놔버리는데 만약 계속 잡고 있으면 같이 빨려드는 거다.”

이찬영 “석탄재가 날리면 시야 확보도 너무 어렵고 위험하다. 낙탄 처리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간 사람도 수두룩하다. 완전 노가다니까. 원래 업무인 점검 업무보다 키만큼 쌓인 낙탄을 우선 처리하라고 했다. 원청에서 지시 없었다고 하지만 낙탄 때문에 설비에 문제 생길 것 같으니 치우라고 했다. 우리한테 직접 하진 않고, 우리 회사 과장한테 카톡을 보내면, 과장이 다시 우리에게 시키는 식이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노조는 언제 결성됐나?

박성호 “2017년 12월쯤 결성됐다. 프로젝트 계약직에서 한국발전기술의 정규직이 되고 얼마 후였다.”

김인성 “관리자들 빼고 거의 다 가입을 했다. 저임금과 위험한 작업 환경 문제들이 다 겹쳐서 모두가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가 생기고 나서 임단협도 체결해 임금도 조금 올랐다. 하지만 설비 개선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원청이 움직여야 하는데 씨알도 안 먹히니까…”

-직접고용 요구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박성호 “김용균이 죽었는데 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나, 너무 이야기가 널뛴다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노동자가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 공공재의 민영화를 막는 것이 모두 비정규직의 직접 고용과 관련이 있다. 지금 구조에선 이런 사건이 터져도 원청이 벌금 몇 푼을 내고 끝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하는 노동자들은 입찰을 바꿔버리면 밀어낼 수 있고.”

홍현석 “우린 또 다른 김용균이다. 이걸 아셨으면 좋겠다. 지금 구조를 놔두면 우리 중 또다시 누군가는 죽는다. 촛불정국 때처럼 시민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

이찬영 “정규직 전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나도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안정되고 안전한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꿈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 사고가 터지고, 정규직 전환을 꼭 이뤄보고 싶다. 우리가 안 하면, 3년 뒤 누군가가 와서 이 문제를 다시 겪을 것 아닌가. 많은 분들과 함께 일터를 직접 바꿔보고 싶다.”

-복귀시점은 언제로 보고 있나?

김인성 “처음에 특별휴가 2주를 받았다. 하지만 더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도 있어서 계속 연장해왔다. 지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데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박성호 “원청(서부발전)에서 회사(한국발전기술)를 통해 빨리 복귀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회사는 회사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특별휴가가 끝났으면 빨리 복귀시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원청에선 우리들의 활동을 자제시킬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일은 안 하더라도 우선 출근만 하라고 한다.”

한편, 광화문 김용균 분향소 옆에서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대표단 6명이 단식을 한 지 12일째다. 이들은 정부가 고 김용균 씨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까지 내놔야만 장례를 치를 수 있다며 지난 1월 22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오는 6일 오후 3시부터, 단식 중인 이들을 응원하는 각종 행사들이 진행된다. 이들은 ‘일하다 죽지 않는 나라’를 바라는 목소리를 힘껏 모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