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상품이다’ 불법촬영물의 여혐 효과

[워커스X한사성]

메갈리아에서 소라넷 폐쇄 운동이 시작된 이후, 한동안 ‘소라넷이 없어지면 소라넷과 같은 문화는 더 음지로 갈 뿐이며, 어차피 이 범죄는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것은 성매매를 금지하면 성폭력 범죄가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는 종류의 고전적인 협박이었고 동시에 ‘사이버성폭력이 음지로 가지 않는’ 것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불법촬영물 유통의 장, 그러니까 공공연한 사이버성폭력 사건 현장 노출이 미치는 효과는 여성 전반을 향해 혐오발언을 하는 것과 같다. 여성이 폭력을 겪는 순간을 고정해 반복 재생할 수 있도록 만든 게시물을 음지가 아닌 곳에서 볼 수 있을 때,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만들어짐’이나 ‘규율’ 등의 표현 정도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경험을 상처라는 단어로 쓰겠다.

외국의 어느 거리에서 누군가가 한국인을 계속 때리고 있는데도 다들 그 광경을 즐겁게 구경하거나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 말 않고 지나가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심지어 해당 행위를 처벌할 법이 없고, 있어도 잘 집행되지 않는다면 그 장면을 목격한 다른 한국인의 기분은 어떨까. 직접 맞는 사람이 아님에도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딘가 다친 감각을 느낄 것이다. ‘메갈’들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기 전까지 여성과 한국의 사이버성폭력은 그러한 일방적인 관계로 설명될 수 있었다.


우리는 사이버성폭력이 문제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 채 너무 긴 세월을 보내며 상처받았다. 여성으로 태어나 불법촬영물 관련 정보를 처음 마주한 순간의 위축됨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때때로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 아는’ 이라는 문구와 함께 눈치껏 웃어야 할 것 같은 농담처럼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는 동안 여성 개개인이 취했던 다양한 생존 전략, 즉 남성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해에 동참하기를 선택했을 수도 있는 사례도 있었다. 자각하지 못한 상처의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특히 한국은 웹하드 카르텔까지 존재하는 나라가 아닌가.

명목상으로나마 음란물의 제작과 유통이 금지된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한국인의 성관계 영상은 ‘남성과 여성이 성관계를 하고 있다’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며 시청자와 상호작용했다. 그런 영상이 국내 사업자인 웹하드에서 유통됐으며 웹하드가 카르텔까지 이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나는 이미 ‘불법촬영물이 국산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수천수만 건씩 유통되고 핸드폰이나 신용카드 등의 합법적인 결제 시스템을 이용해 유통 중인 촬영물을 결제하는 것이 가능할 때, 그것은 어떤 사이버성폭력 인식개선 캠페인도 꺾기 어려운 강력한 효과를 낳는다’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 왔다.

웹하드에 ‘국산’을 검색하면 나오는 장면은 피해경험자의 존재와 ‘국산야동’이 갖는 경제적 가치와 결합해 ‘여자인 이상 너는 딸감에 불과하다’ ‘이것은 체제하에서 살기로 합의한 인간을 권리 침해에서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조차 동의한 일이다’라는 맥락을 형성한다. 즉, ‘우리는 너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여성은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다’라는 것이다. 설사 들은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안다 해도 여성으로 규정된 이상 그로 인한 악영향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발화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문장의 참/거짓의 여부보다는 발화의 기능, 즉 ‘세상에서 그 말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라넷이 없어지면 소라넷과 같은 문화가 더 음지로 가게 된다는 것은 여성에게 결코 나쁜 변화가 아니다. ‘소라넷’으로 표상되는 것들은 양지를 살아가는 사람에겐 감히 들리지 않는 존재로 축소되어야 마땅하다. 완전한 해결로 향하는 과정에 긴 시간이 걸린다면, 현대 여성들의 삶을 위해 최소한 그것들을 음지로 몰아넣기라도 하는 것이 옳다. 눈치가 보여서라도 혐오발언의 발화자들을 침묵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애초에 그런 문화가 음지가 아닌 곳에 나와 있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삭제는 사후조치에 불과하다. 이미 유포가 이뤄진 뒤 삭제하는 것은 상처가 생긴 다음 수습하는 것과 같다. 근원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유통의 총량을 줄이는 방향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한사성의 유통 근절 담론은 바로 이러한 깨달음의 연장선에 놓인다. 단체 차원의 판단을 내린 후, 한사성은 각종 간담회를 비롯해 원고, 인터뷰, 강의, 학회 등 거의 모든 자리에서 유통 근절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2년 내내 웹하드를 위시한 유통 플랫폼 고발 및 규제 요구 활동을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이후 불법촬영물 유통은 조금씩 음지화 됐다. 특히 해외 불법 포르노사이트 136개의 범행 증거를 정리해 고발한 이후로, 예전에는 대놓고 구 검색에 노출되던 게시물을 조금 귀찮은 절차를 거쳐 찾아야 할 때가 잦아졌다. 추천인 코드를 입력하거나 전화로 목소리 인증을 해야만 가입 가능한 플랫폼, 일정량 이상의 비트코인을 결제해야 게시물 조회가 가능한 플랫폼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게시물 수의 감소뿐만 아니라 있는 게시물의 접근이 어려워지는 것도 유통 규모 축소에 해당하기에, 단체가 채택한 운동 방식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감정적으로는 기존과는 또 다른 느낌의 분노를 느끼게 된다.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가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는 이상 지원자로서 겨우 이 정도로 ‘나아졌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어렵다. 어떻게든 성폭력을 지속하려는 범죄자들의 노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사성 또한 새로운 유형의 플랫폼에 대한 고발 방법과 삭제 프로세스를 다시 고민해야 할 지경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것을 긴 싸움의 역사에서 긍정적인 변화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짚고 싶다.

한사성은 이제 사이버성폭력을 개인과 개인 간의 폭력으로 소급해 보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으로 분석하는 판단이 맞았다고 확신한다. 불법촬영물 유통 규모의 축소는 분명 여성과 여성이 사는 사회적 환경의 손상도를 낮추는 방향의 운동이다. ‘나’를 위해 ‘메갈’이 되었던 나는 요즘 다음 세대 여성을 상상하며 이 시간을 견딘다. 나와 같은 상처를 입지 않은 미래의 인간을 만나고 싶다. [워커스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