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 24주? 임신 중지에 주수 제한 없어야”

“임신주수 제한적 허용 담긴 정의당 법안, 헌재 판결보다 뒤처져”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낙태죄의 법조항 개정이 국회의 역할로 넘어간 가운데 임신중지가 가능한 임신 주수에 대한 입장들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정의당이 임신 14주 이내에 임부 동의만으로 수술이 가능하도록 하고, 14주부터 22주 이내 범위에선 조건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낙태죄 폐지’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낙태죄 폐지 운동을 벌여온 활동가들은 “임신중지는 어떠한 주수 제한도, 어떤 처벌도 없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12일 마포구 합정동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현재 언급되고 있는 주수제, 사유제, 상담 의무, 숙려제 도입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이들은 모든 임신중지의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할 것은 여성의 ‘건강’이라고 강조했다.

문설희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재판관 4인의 헌법불합치 의견에서 다음과 같은 주수에 대한 헌법적 이해를 도출할 수 있다”라며 “여성이 임신을 인지하고, 다양한 선택지에 대해 탐색하며, 이를 숙고하고, 결정하는 과정은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며 이를 도식적으로 구분하고, 주수 간에 차등을 두는 것보다는 임신 22주 내에서 이러한 과정이 충분히 보장돼야 함을 명시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해당 헌법불합치 의견에 따르면 임신 22주(모자보건법상 24주)까지를 여성이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여성의 판단과 요청이 전적으로 존중되는 것이 헌법적으로 타당하다고 파악한다”라며 “재판관 4인의 헌법불합치 의견은 여성의 판단과 요청을 근간으로 한 입법적 방향성을 이미 제시하고 있으며, 입법 재량은 이를 넘어설 수 없다”라고 짚었다.

문 공동집행위원장은 낙태죄를 단순위헌으로 판단한 재판관 3인의 판결도 소개했다. ‘임신한 여성이 임신의 유지 또는 종결에 관하여 한 전인격적인 결정은 그 자체가 자기결정권의 행사로서 원칙적으로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보장되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재판관 3인은 또한 임신 22주 이후에도 임신중지가 이뤄질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을 요청했다.

문 공동집행위원장은 “재판관 3인의 단순위헌 의견은 임신 22주 이후에도 임신중지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인간의 삶에 나타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을 고려해 사유를 두어 이후의 임신중지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입법자들은 특정한 주수를 우선적 기준으로 검토하는 구시대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여성의 임신중지 결정권이 임신 기간 전체에서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헌재의 의견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정의당이 준비 중인 법안에 대해서도 “헌재 판결보다 뒤처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12주, 24주를 나눠 전반적 허용, 제한적 허용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라며 “헌재는 주수를 언급하며 제약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는데 헌재 판결보다 뒤처지는 안”이라고 평가했다.

또 나영 공동집행위원장은 “헌재가 주수를 언급한 것은 이 주수 이후 처벌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태아 성장 과정에서 모체에서 나와 살아 성장할 수 있는 창구로서 언급했을 뿐”이라며 “최근까지의 조사들에 따르면 여성들은 가급적 이른 시기에 임신중지를 하게 되고, 후기 임신중지의 경우 선택을 빨리 할 수 없을 때, 가령 파트너나 가족과의 관계, 지역적 조건, 연령, 장애, 질병, 태아의 상태 등 각 요건에 따라 시기가 미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처벌이 아니라 그런 요건을 살피고 줄여나가는 것이 사회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해 유산유도제의 도입을 즉각 승인하라는 요구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오정원 산부인과전문의는 “주수가 늘어날수록 임신 중지 과정에서 통증, 출혈, 실패율이 증가하게 되는데 미프진은 9주 이내 복용하면 위험률이 수술적인 치료방법보다 훨씬 적다고 돼 있다”라며 “미페프리스톤 등의 유산유도 약물을 한시라도 빨리 허용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오 씨는 이외에 필요한 보건의료체계와 의료정책들로 △의료인 및 예비의료인 (재)교육 △대학병원과 공공의료기관에서 임신중지를 제공 △피임과 임신중지에 관련된 가치중립적 정보를 포함한 포괄적 성교육을 제공하고 의료상담환경을 조성 △임신중지와 피임을 보험급여화 등의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의 경우 그동안 임신중지 불법으로 인한 여성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들었지만, 앞으로 유산유도 약물 도입 등의 승인 권한을 가지고 있어 그 역할이 더욱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앞으로 낙태죄 폐지 이후 필요한 후속 조치를 구체적으로 논의해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보건의료체계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는 만큼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도 언급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11일 공동 보도자료를 내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라며 “관련부처가 협력해 헌법불합치 결정된 사항에 관한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