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연대는 ‘반론보도문’을 어떻게 둔갑시켰나

[편집장 칼럼] 노동자연대의 성폭력 사건 ‘반론보도문’의 진실

지난 12월 30일, <참세상>에 반론보도문 하나가 실렸다. 지난해 6월 <참세상>이 보도한 세종호텔 해고자 복직 촉구 기자회견에 관한 사측의 반론이었다.

<참세상>은 해당 기사에서 2011년 세종호텔이 친사용자 성향의 복수노조 설립에 개입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세종호텔은 <참세상>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및 3,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후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심리가 열렸고, 세종호텔과 참세상은 ‘정정보도문’이 아닌 ‘반론보도문’ 게재에 합의하는 조정합의서를 작성했다. 세종호텔은 반론보도문에서 “복수노조 설립은 노조 관련 노동법 개정에 맞추어 적법하게 진행된 것으로 회사가 개입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참세상>의 기사 내용이, 그리고 노동조합의 주장이 ‘허위사실’이었기 때문에 사측의 반론보도가 실린 걸까. ‘복수노조 설립에 개입한 적 없다’는 사측의 ‘반론’은 그 자체로 ‘진실’인 것일까.

<노동자연대>의 두 차례 반론보도

지난 2018년 3월, <참세상>이 발행하는 월간지 《워커스》는 운동사회 성폭력에 대한 기획 기사를 보도했다.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에서도 여전히 음모론과 역고소, 2차가해 등의 백래시가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보도 이후 <노동자연대>는 <참세상>에 수차례 항의를 해왔다. 기사에 대학문화·노동자연대 성폭력 사건이 하나의 사례로 언급된 까닭이었다. <참세상>은 해당 사건 역시 음모론과 민사소송 등 피해자를 향한 백래시가 존재했고, 노동자연대가 피해자들에 대한 가해 논란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고 썼다.

이후 <노동자연대>는 <참세상>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반론보도를 청구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정정보도는 기각했고, 반론보도에 한해 직권조정안을 내놨다. 위원회가 직권조정을 결정한 이유는 당사자 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노동자연대>가 요구한 반론보도 청구문에는 ‘해당 사건은 노동자연대 사건도, 성폭력 사건도 아니’며 ‘이 일은 H측의 비방으로 오히려 노동자연대가 피해를 겪고 있는 사건’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참세상>은 반론보도는 수용하되, 신청인 측이 요구한 위 내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언론중재위원회 역시 해당 내용이 포함된 <노동자연대>의 청구문 원안을 거부했고, <노동자연대>가 이를 받아들여 조정이 성립됐다.

그리고 2018년 5월, <참세상>은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을 보도했다. 노동자연대로부터 성폭력 2차 피해를 받고 있다고 밝혀온 피해자 J씨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이후 노동자연대가 가해지목인을 해임했지만, J씨에 대한 사과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속 기사도 내보냈다. <노동자연대>는 또 다시 언론중재위원회에 <참세상>을 제소했다. 이번에도 언론중재위원회는 정정보도를 기각했고, 조정심리 끝에 <참세상>은 반론보도를 수용하기로 했다. 당시 기자는 조정회의에 참석해, 몇 가지 단어 수정을 거친 뒤 조정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해 7월 3일, <참세상> 페이지에 <노동자연대> 측의 반론보도문이 게재됐다.

반론보도는 ‘허위사실’에 대한 판결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민주노총은 <노동자연대>에 공문을 보내 ‘대학 내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J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아울러 피해자의 조력자들을 비방하고 괴롭혔던 것을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12월 10일까지 이와 관련한 <노동자연대>의 답변을 달라고도 했다. 그리고 12월 10일,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에 ‘민주노총 집행위원들께 혜안과 숙고를 호소합니다’라는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에서 <노동자연대>는 <참세상>에 게재 된 두 건의 반론보도문을 언급했다. 그중 J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노동자연대> 공문의 내용은 이렇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참세상> 기사(J인터뷰)가 허위사실임을 지적하고 그 언론에 반론보도문을 게재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참세상>은 조정을 받아들이고 이행했습니다.(조정합의일 2018.6.29.)”

과연 <노동자연대>의 주장처럼, <참세상> 기사가 허위사실이라서 반론보도문이 실린 걸까. 언론중재위원회가 해당 기사를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하기는 한 걸까.

대한민국에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반론보도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명시 돼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정정보도 청구 요건’은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 등이 진실하지 아니함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사에 적시된 ‘사실적 주장’이 ‘진실’이냐 아니냐다. 때문에 언론사 역시 정정보도를 거부할 권리를 갖는다. 이법 15조(정정보도청구권의 행사) 4항 2에는 ‘청구된 정정보도의 내용이 명백히 사실과 다른 경우’ 언론사 등이 정정보도 청구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적시 돼 있다.

반면 ‘반론보도’는 다르다. 제16조(반론보도청구권)에 따르면, ‘반론보도’는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 등으로 피해를 입은 자’가 청구하는 권리다. 그리고 같은 법 3항에는 ‘보도 내용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명시 돼 있다. ‘반론보도’는 ‘사실적 주장’의 ‘진실’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청구인의 주장이 무엇이든 그냥 실으라는 거다. 지난해 말, 유성기업 사측이 <참세상>을 상대로 제기한 정정·반론보도 청구 건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심의를 진행할 때였다. 당시 언론중재위원회 모 위원은 유성기업이 제시한 반론보도문의 사실 여부를 따지는 기자 앞에서 이 법 조항을 읊었다. 반론보도문은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실어야 하는 것이라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허위사실’로 둔갑시켜

언론중재위원회는 사실 여부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곳이 아니다. 말 그대로 당사자 사이를 ‘중재’하고 ‘조정’하는 곳이다. 물론 언론중재위원회가 ‘직권조정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이 또한 양 당사자가 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에 동의했을 때다. 만약 언론사가 정정보도든, 반론보도든 거부할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이럴 경우 사건은 소송으로 가게 된다.

<참세상>은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꽤 빈번하게 출석 요구를 받는다. 과거 기사까지 건건이 찾아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를 하는 회사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중재위에 불려 다니며 괴롭힘을 당해보라는 거다.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내용증명을 보내 협상을 요구하는 곳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소장을 송달받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대응 방법을 놓고 고민을 한다. 반론보도문을 거부하고 소송을 진행할 것인지, 그렇다면 여건과 상황이 받쳐주는지, 현재 다른 소송이 진행 중인지 여부 등등. 실제로 반론보도문을 게재를 거부하고 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현재 이 같은 소송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번번이 소송으로 대응하기에는 내부적으로 많은 부담이 따른다.

‘반론보도문’이라는 것이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신청인 측의 주장을 싣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내부에서는 어려움이 따른다. 반론보도가 행여 진실인 것처럼 보여질까봐, 그래서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그런 이유로 기자들은 자신의 기사에 대한 반론보도문이 나가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착잡해진다.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에 보낸 공문에서 ‘언론중재위원회가 J씨를 인터뷰한 <참세상> 기사가 허위사실임을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중재위는 기사를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할 만큼 사건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할뿐더러, 만약 ‘허위사실’임을 인지했다면 <참세상>에 ‘정정보도’를 요구했어야 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보내온 문서 중, 위원회가 해당 기사를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한 문구는 어디에도 없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신청인의 반론권을 보장했을 뿐, <노동자연대>의 주장의 사실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연대>는 해당 공문에서 대학문화 성폭력 피해자 A씨와, J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중상모략을 중단하겠다고 한다면’ 사과하고자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리고 <참세상>의 반론보도문을 그 ‘중상모략’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그 때 <참세상>이 사인한 조정합의서가 이렇게 왜곡된 채 재생산 될 줄은 몰랐다. 반론보도문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둔갑해, 피해자를 재차 비방하는 데 이용되는 것이 유감스럽다. 또한 반론보도문을 이유로 피해자의 인터뷰가 ‘허위사실’로 명시되고 유포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고 죄송스럽다. 반론보도문이 피해호소인의 목소리를 가로막는 수단으로 악용돼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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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한심한 참세상이로구만, 조선일보를 보쇼, 자신들이 모든 가치의 중심으로 놓고 글을 쓰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부도 정치도, 노동도, 주도적인 글을 쓰지 않습니까. 무슨 노동자연대하고 시시비비한 글이나 쓰고 있소 이 창피한 참세상아. 자신의 논리를 더 개발하고 주장도 더 할 생각을 해야지. 단순히 옮기는 기사에서 주도하는 기사로 갈 생각을 해야지.

  • 죽여줄까 생각하는 시인

    여기 정몽준의 생각이 있다.
    "오늘 노조가서 글 좀 보니까 노조는 지들끼리 꿍꿍이 속 중이니까(사실 나한테 두 무릎을 꿇었군. 걔들은 담함만 막으면 되지) 만만한데. 문재인이가 개혁으로 살살 가슴을 찌르는구만. 근데 이거 오늘 문재인 신년회 말을 들어보니까 만만하지가 않게 생겼어"

  • 위드유

    위의 분이 더 한심하네요. 참세상처럼 노동자 투쟁이든 국제 쟁점이든, 경제 문제든 자기 논리로 주도적으로 쓰는데가 어디있나요. 더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운동사회 내부의 문제에도 내로남불로 침묵하지 않고 할말을 한 것은 정말 대단한거임. 운동사회 내부의 적페에 대해서 침묵하고 은폐하고 그런 식으로 가면 희망은 없네요. 미투의 물결에서 운동사회가 오히려 뒤처지고 있는데 참세상 덕분에 희망이 보이네요.

  • 생존자에게연대

    고민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작성하기까지도 용기가 필요했을 듯 합니다. 글로써 진흙탕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명

    똥은 무서워서 피하기 보다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죠. 그래도 성폭력 문제를 피할 수 있나요. 피해자와 그 피해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은 반가운 글입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끝까지 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의 악의적인 공격과 비방까지 감내하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 지지합니다

    노동자연대의 치졸한 공작과 집요한 괴롭힘에 굴하지 않고 지킬 것은 지키는 참세상 지지합니다!

  • 생산직

    노동자연대는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
    민주노총은 노동자연대와의 모든 관계를 중단하라. 창피하다.
    노동자연대 OUT
    힘내라 참세상!!!!!

  • 수수

    참세상. 언론의 참역할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실, 사실보도에 대해 언론이 겪어야 하는 힘듦을 알 수 있는 기사입니다.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은 동지로 함께 했던 사람들이 가해자들이기 때문에 더욱 힘들 것입니다. 조직 내 그런 사건이,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운동사회의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아니라고 반박과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하고 성찰하는, 바뀌려는 노력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 옹달샘

    감추어야 할 게 있으니 반론보도를 허위사실 적시로 둔갑시키는 거 아닌가? 노동자연대의 둔갑술에 실소만.. 노동자연대여, 이제 그만 부끄러운 줄 알고 사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