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산업의 가장 밑바닥, 고 문중원 기수는 왜 목숨을 끊었나

[르포] 마사회 지난해 용역보고서 “조직 내 차별, 불균형, 불통, 마초 존재”

남편이 죽은 지 49일이 되던 날. 오은주 씨는 아직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남편의 49재를 올렸다. 불교에서 49재는 죽은 이가 이승을 떠나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 씨는 남편이 아직도 자신의 옆을 맴돌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 수도, 이제는 편히 쉬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20일 넘게 광화문 세종로공원 운구차에 누워있는 남편을 생각하면 그랬다. 하루빨리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남편의 49재를 올렸던 날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 중 하나였다. 평소에는 눈물을 흘리다가도 이런 저런 투쟁 일정을 소화하다보면 잠깐씩 슬픔이 잊히곤 했다. 하지만 그날 영정사진 속 남편은 평소와 달랐다. 정말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다가왔다. 아직은 믿고 싶지 않아 애써 그 사실과 맞닥뜨리지 않으려 했는데, 누군가가 오 씨의 옆에서 ‘죽었어’ ‘믿어야 돼’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는 49재 내내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비극적인 연쇄사망 멈출 수 없어

남편의 죽음을 밝혀내는 시간이 이리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설 연휴 전날인 1월 23일, 농성장에서 만난 오은주 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설 전에는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유족들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는 설 전 해결을 요구하며 매일을 치열하게 살았다. 헛 상여를 매고 청와대까지 행진했고, 4박5일간 오체투지를 벌이기도 했다. 1월 13일부터 한국마사회와 집중 교섭도 벌였다. 하지만 마사회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고 문중원 기수의 진상조사 요구에 대해서는 마사회가 주도하는 연구 용역만을 고집했고, 유서에 거론된 책임자 처벌에 대해서는 경찰수사 결과만을 되뇌었다. 진상조사, 책임자처벌, 제도개선이라는 유족의 요구는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출처: 김한주 기자]

결국 오은주 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광화문 농성장에서, 열사의 운구차 옆에서 설을 지냈다. 설 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 씨는 당장이라도 기차표를 끊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덮쳐오는 그리움을 견디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 씨는 아직 아이들 곁으로 갈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아빠의 죽음을 들여다보는 날이 왔을 때, 그 죽음이 그저 허망함으로만 남아서는 안됐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개인의 죽음으로만 기록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아빠의 죽음을 숨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들에게도 알렸어요. 아빠가 말을 타다가 사고가 나서 하늘나라로 갔다고. 첫째는 병원 가서 수술하면 되는데 왜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냐고 해요. 둘째는 아빠가 정말 하늘에 있는 줄 알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면서 하늘을 보며 인사해요. ‘아빠 나 왔어’ 하고. 아빠가 왜 죽었는지, 평생 숨기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아요. 조금 더 크면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겠지요. 그때 그 죽음이 어떤 죽음이었는지, 아빠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아빠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저는 싸움을 포기할 수 없어요.”

그는 요즘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사회의 부정과 비리를 폭로한 남편의 유서를 봤을 때도, 자신이 한국마사회를 상대로 투쟁에 나설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부산경남경마장에서만 6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이었다. 남편은 일곱 번째 희생자였다. 그래서 당연히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머리를 숙이고 유족들에게 사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도 조문을 오지 않았다. 사과도 없었다. 남편의 죽음도 앞선 죽음처럼 잊힐 것 같았다. 그저 억울한 죽음으로만 남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면 비극적인 연쇄사망은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다.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마사회를 바꿔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했다.

통산전적 3404회의 경마기수는 왜 목숨을 끊었나

3404회. 고 문중원 기수가 남긴 15년간의 통산전적 기록이었다. 그가 사망한 후,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장은 그의 이름을 퇴역기수 명단에 올려놓았다. 그는 총 85명의 퇴역기수 중 두 번째로 많은 통산전적을 남겼다. 그리고 일곱 번째로 많은 1위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는 종종 조교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 오은주 씨는 “결혼 전 조교사가 남편에게 몇 등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부당지시를 했다. 하지만 말은 속력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남편이 순위 안에 든 적이 있다”며 “조교사는 왜 자신의 지시에 따르지 않느냐며 화를 냈고, 남편은 잘못했다고 조교사 집 앞까지 찾아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그 때만 해도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그래도 노력하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으니까. 결혼 직전 해인 2007년, 고 문중원 기수는 294번 출전해 각각 29회, 33회에 걸쳐 1위와 2위를 기록했다. 2011년은 출전횟수만 302회로 가장 많이 말을 탄 해였다. 2014년까지만 해도 294회를 출전해 11번의 우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기수로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그가 유서에서 남겼듯, 15년간 기수로 살아왔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경마기수의 산업재해율은 타 산업 평균재해율의 50배가 넘었다. 그 역시 여러 차례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코뼈가 으스러졌으며, 허벅지를 꿰맸고, 목 디스크에 시달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사회와 조교사의 부당한 갑질을 더 이상 참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2015년 어렵게 조교사 면허를 땄다.

하지만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조교사로서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 면허를 취득했다 해도, 마사회가 주관하는 ‘마사대부 심사’에서 통과해 마방을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었다. 마사대부 심사위원은 마사회 내부인사 5명, 외부인사 2명으로 구성됐다. 평가는 정량평가 80점과 정성평가 20점으로 이뤄졌다. 정량평가는 마주로부터 받은 관리위탁 의향서를 받고, 근속기간을 채우면 됐다. 문제는 정성평가였다. 면접을 통해 사업계획이나 경마산업 이해도, 노무관리 방안 및 인성 등을 평가하는 항목이었다. 주관적인 평가 항목이라 친분에 따라 당락이 결정됐다.

[출처: 김한주 기자]

고인은 조교사 면허를 따고도 5년간 마사대부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는 유서에서 “면허 딴지 7년 된 사람도 안 주는 마방을 갓 면허 딴 사람들한테 먼저 주는 이런 더러운 경우만 생기는데, 그저 높으신 양반들과 친분이 없으면 안 되니...(중략)...내가 좀 아는 마사회 직원들은 대놓고 나한테 말한다. 마방 빨리 받으려면 높으신 양반들과 밥도 좀 먹고 하라고”라고 썼다.

노조에 따르면 조교사 면허 취득 후에도 마사대부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한 인원은 17명. 그리고 이들이 마사대부로 발탁되지 못하고 있는 기간은 평균 3년 6개월. 반면 최근 2년 간 부산경마공원에서 마사대부 심사에서 통과한 이들의 평균 발탁 기간은 1년 6개월이었다. 마사회는 조교사 면허증을 발급하고도, 마사대부 심사라는 또 다른 불필요한 심사를 두고 기수들을 관리했다.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심사는 매번 공정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마사회-마주-조교사-기수 및 마필관리사’
부패와 부조리를 가능케 한 다단계 하청구조


고 문중원 기수는 조교사 면허를 취득하고도, 또 다시 5년간을 기수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조교사 면허를 취득한 후, 그의 삶은 오히려 더욱 고단해졌다. 말을 탈 기회도 줄어들었다. 오은주 씨는 “2015년 조교사 면허를 취득한 후 기수로서도 기승 횟수가 현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며 “조교사 면허증을 갖고 있는 기수는 조교사들 입장에서는 경쟁 상대이기 때문에 남편에게 말을 잘 태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 문중원 기수의 기승횟수는 2018년에 140회, 2019년에는 123회에 그쳤다.

이 같은 마사회의 부정과 부조리는 ‘다단계 하청구조’속에서 은폐되고 재생산됐다. 공기업인 마사회는 1993년, 직접고용 돼 있던 기수와 조교사, 말관리사와의 고용관계를 해지하고 이들을 외주화했다. 동시에 마사회-마주-조교사-기수 및 말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구조를 공고히 했다. 마사회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원청’의 역할을 했다.

  한국마사회가 지난 2월 작성한 ‘경마산업 종사자 안전관리 및 삶의 질 개선에 대한 연구 최종보고서’

마사회는 마주로부터 마주 등록을 받고, 기수에게는 기수 면허와 조교사 면허를 발급했으며, 조교사 면허를 취득한 후에도 마사대부 심사를 주관했다. 말관리사 역시 조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마사회가 주관하는 조교승인 시험과 조교보 시험, 조교사 시험, 마사대부 심사를 거쳐야 했다. 분명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쪽은 한국마사회였다.

다단계 하청구조는 마주-조교사-기수 및 말관리사 간의 갑을 구조를 만들었다. 마사회는 마주에게 경주 상금을 지급했고, 마주는 조교사와 마필 위탁관리 계약을 맺고 관리비와 상금을 지급했다. 조교사는 또 다시 기수와 기승계약을, 마필관리사와 고용계약을 맺고 이들에게 각각 상금을 지급했다. 출전 상금의 대부분은 마주 차지였다. 조교사는 마방을 운영하며 마주에게 받은 상금을 기수에게 지급하는 사실상의 ‘소사장’ 역할을 했다. 오경환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 위원장은 “상금 중 60~70%는 마주가 가져가고, 조교사가 8%,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각각 4~4.5% 가져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단계 하청구조의 밑바닥에 놓인 기수들은 조교사의 부당지시와 갑질에 시달렸다. 기수들은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이 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뿐만 아니라 부산경남경마공원은 2004년 개장과 동시에 ‘선진경마시스템’이라는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비경쟁성 상금을 줄이고 경쟁성 상금을 확대했으며, 1위 기수가 상금의 57%를 가져가는 승자독식 구조를 공고히 했다. 5위 안에 들지 못한 기수는 상금을 받지 못했다. 무한경쟁체제 속에서,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현재까지 7명의 기수와 말 관리사가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마사회도 용역보고서 작성
“조직 내부에 차별과 불균형, 불통, 마초 등의 문제 존재해”


고 문중원 기수 사망 후, 공공운수노조는 전체 경마기수 125명(서울, 부산, 제주) 중 75명을 상대로 노동건강 실태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58.57%가 조교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60.3%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답했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로는 기승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마사회가 기수와 조교사, 마방 운영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묻는 질문(1점~10점)에서는 10점 만점을 선택한 비율이 54.9%였다.

한편에선 기수와 조교사가 체결하는 ‘기승계약’마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응답자 중 41.4%는 기승계약서를 보지 못했고, 서명한 적도 없다고 답했다. 통상 경마기수들은 조교사로부터 기승료와 상금을 받는다. 여기서 고정적으로 나오는 수입은 기승료의 절반 정도다. 기승료 중 절반을 고정급여로 받고, 나머지 절반은 실제 훈련 시간에 따라 지급받는다. 기승계약서에는 이 같은 급여를 포함해 근로시간, 기수의 의무, 계약해지 요건 등이 명시 돼있다. 사실상 근로계약인 셈이다.

[출처: 김한주 기자]

하지만 정작 기수들은 기승계약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오경환 부산경남경마기수노조 위원장은 “기승계약서를 보지도 못한 기수가 95%는 될 것이라 본다. 대체로 기승계약을 구두로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기승계약 자체에서 조교사와 기수 간의 갑을 관계가 명확하다. 조교사가 해지하고 싶으면 해지할 수 있다”며 “기승계약을 했다고 해서 조교사가 계약한 기수에게 기승 기회를 모두 주는 것도 아니다. (계약하지 않은) 여러 기수에게도 훈련을 시키거나 말을 배정한다”고 덧붙였다.

노동조합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한 달여 뒤, 한국마사회는 실태조사에 참여한 기수들에게 출석통지서를 보냈다.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출석하지 않을 시 제재처분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전했다. 일종의 실태조사 참여자들에 대한 문책성 조치였다. 하지만 마사회 역시 이 같은 불합리한 구조를 모르고 있지 않았다. 기수와 마필관리사들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관련 용역보고서도 작성했다.

앞서 지난해 2월, 한국마사회는 민간에 의뢰해 ‘경마산업 종사자 안전관리 및 삶의 질 개선에 대한 연구’ 최종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서는 조직 내부의 차별과 불균형, 불통 등의 문제가 존재하며, 한국마사회가 이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직무스트레스 부분에서 경마산업종사자의 평균은 51.72점이다. 13개 표준산업별 직무스트레스 평균인 49.05점 보다 높다. 특히 직무불안정과 직장문화 부문에서 13개 산업 평균보다 높았다. 경마기수의 경우, 관리시스템 및 직장 삶의 질, 조직문화에서 다른 직무보다 어려움을 호소했고, 공정성과 존중을 받지 못한다는 비율이 높았다.

  한국마사회가 지난 2월 작성한 ‘경마산업 종사자 안전관리 및 삶의 질 개선에 대한 연구 최종보고서’

보고서에서는 “경마산업 종사자 조직분야 조사결과를 종합해보면 차별, 불균형, 불통, 과다, 마초, 형식의 6가지 주요 요인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며 “경마산업 종사자 안전관리 및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중장기적인 추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1월 20일 노조를 결성한 오경환 위원장은 “노조를 결성한 이유는 그동안 마사회로부터 기수들이 존중받지 못해왔기 때문”이라며 “마사회는 고 문중원 기수의 문제가 해결하고, 무한경쟁체제를 개선해 기수들이 존중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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